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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딸아.. 얼른 걸어다니자

엄마야엄마 |2015.02.04 22:36
조회 4,694 |추천 41
2013년 8월, 그날은 아마 더웠을거다.
아스팔트는 이글거리고
쨍쨍 거리는 햇빛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들어가있었겠지.

8월초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어느날,
내가 그 더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난 새벽부터 진통으로 인해 병원에서
끙끙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7월 말이 예정일인데도
아가는 나올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결국 의사는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분만 전날, 병원이 친정에서 가까운터라
우래옥에서 불고기에 냉면까지 배가 부르게
먹고 남편이랑 친정에서 신나게 코골고 자고
그다음날 새벽 6시, 분만실에 도착했다.
촉진제를 맞자마자 시작한 진통
그리고 9시간만에 3.18키로의 어엿하게
예쁜 공주님을 품안에 안았다.

아가는 순했다. 내 딸이라 예뻤다.
내 딸이라 무엇을 해도 사랑스러웠다.
동네방네 사진이 프린트된 벽보를 붙이고 싶었다.
내 딸이라고, 너무 예쁘지 않냐고.

우리 애는 참 보챔도 투정도 없었다.
일주일에 세번 울면 많이 운거였고
어쩌다 울어도 5분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잠만 잘재워주고 엄마 젖만 쪽쪽 빨며
잘먹고 잘자고 큰 손이 안갔다.
물론 첫애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아니었지만,
돌아보며 생각하니 나혼자 안절부절했다.

이 예쁜 딸을 데리고 100일 촬영을 하러갔다.
애가 목을 가누지 못한다고 5개월때 오란다.
소아과를 가니 뒤집어주기도 하란다.
그렇게 했다. 그러니 목을 가누었다.
5개월이 되서야 백일촬영을 마쳤다.

7개월이 됐다. 뒤집지를 않는다.
이유식도 잘받아먹고 옹알이도 잘하고
웃기도 잘 웃는다. 그런데 영 뒤집을 생각이 없다.

어쩌다 베일리검사를 무료로 해준다해서
호기심에 신청을 해서 데리고 갔다.
두번의 검사를 거치니 소아정신과를 가보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사물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장난감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사람 품을
좋아하는 애였다. 그런 애인가보다 했다.
그게 이상한건줄 몰랐다.
나 유아교육학 전공자이다.
왜 이게 이상한걸줄 몰랐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8개월이 되니 뒤집기를 시작했다.
또 거기까지 였다.
여전히 잘 울지도 않고 방긋방긋 잘 웃는
그냥 순하디 순한 내 딸이었다.

예방접종하러 소아과를 갔다.
발달사항 체크해주던 선생님이 왜 아직도
못앉냐며 재활의학과 협진을 요청했다.
9개월때다.

발달검사하니 3-5개월 수준이 나왔다.
치료를 하자고 했으나 좀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믿었다. 착한 내 딸을.
무엇을 줘도 못바꿀 소중한 내 딸을.

11개월이 됐다. 여전히 앉지 못한다.
조리원 동기 애는 벌써 걷는단다.
손잡아주면 걸음마한다고.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애를 스튜디오에
사정을 설명하고 백일컨셉으로 촬영했다.
그래도 생에 첫 생일인데 어떤 모습이어도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다.

돌잔치를 하고 다시 발달검사를 했다.
그 사이 아이는 온 집안을 굴러다니고
사물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 팔을 바닥에 짚고 겨우 앉았고
배밀이는 하지 못핬다.

발달연령 6-7개월,
의사가 강력히 뇌mri촬영을 권유했다.
이제는 핑계될 말이 없어서 촬영했다.
딱히 이상은 없었다.

일단은 재활치료를 시작해보자고 했다.
병원 두곳에 대기를 걸어두고 기다렸다.

13개월, 모유수유를 끊고 밥이랑 국을 먹기
시작했다. 잘먹는다. 잠도 잘잔다.
여전히 많이 울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놀고
손이 많이 가는 애가 아니다.

15개월, 11월-
병원 두곳 모두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보통 병원 재활치료는 환자가 많아
주1회 치료를 하는데 우리 애는 워낙 늦어
주2회 치료를 받는다. 주4회, 화수목금

애는 병원을 싫어한다 무서워한다
병원 문앞에만 도착하면 울부짖는다.
치료사선생님이 눈인사만 건네도
만지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통곡을 한다.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는데
할 말이 없다. 처음에는 버틸만 했다.
치료 한달차되니 두팔떼고 자유자재로 앉았다.
사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다양한 높낮이의 소리를 내며 옹알이했다.

치료 두달차가 되니 점점 꾀가 생겼다.
성질도 낼 줄 알고 욕심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또래 아기가 와서 때리면 때리는데로
손에 쥔 장난감 뺏어가면 뺏긴채로 있었다.
이제는 안뺏기려하고 저도 가서 때린다.

치료 세달차, 드디어 기기 시작했다.
기기 시작하면 멘붕이라던데 사실이었다.
도대체 저 장난끼를 어디에 꼭꼭 감추고
살아왔는지 보통내기가 아니다.

여전히 병원을 가면 운다
문앞에만 도착하면 목이 터져라 운다.
치료실로 가는 엘레베이터 앞에만 가도 운다.
치료실 앞에서는 더 울고 들어가면 자지러진다.

정말 가기 싫다.
그 큰 대학병원에서 우리 애 모르는 사람이 없다.

휠체어탄 아이를 둔 엄마가 나를
측은하게 쳐다본다.
목도 못가누는 애를 데리고 온 엄마가
우리 애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별짓을 다했다.
하루종일 너가 병원에 왜 가는지
가면 선생님이랑 즐겁게 노는거다
절대 널 아프게 하지 않는다
엄마도 절대 널 떠나지 않을거다
치료실 사진도 보여주고 치료실에서 하듯
똑같이 운동도 해주었다.
그때뿐이었다.

어쩔때는 택시를 타서 ㅇㅇ병원으로 가주세요
하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한다.

저번달에는 재활의학과 진료를 보았다.
애가 기기 시작하니 좀더 나은 소견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갔다.
뇌성마비 의심 소견을 들었다.

병원안에 블랙홀이 있으면 그 안으로 빠져서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마구 짓누르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넌 절대 그 늪에서 못 헤어나올꺼야!!

늪? 무슨 늪은데??

우리 딸이 매일 병원에 가는 늪?
우리 딸이 진짜 뇌성마비일 수 있다는 늪?
아니면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 딸이 걸을 수 없다는 미래의 늪?


의심 소견임에도 가슴이 아팠던건
의사 말이 다 틀리지 않았던것
그리고 그가 10분을 넘게 문답하고
엄청 조심스럽게 말했다는 것,
오히려 시원하고 명쾌하게 말해주었다면
더 "쓸데없이 씨부리네" 하고 말았을까.

집에 와서 남편에게 태연한 척 말하니
남편은 진짜 태연하다.
난 이럴때 내 남편이 참 싫다.

2년넘은 결혼생활에서 제대로 돈 한번
벌어온 적이 없다.
1년넘게, 아이가 태어나도,

꼬물거리는 애옆에서 게임을 했다.
내가 주방에 있을때 애가 끙끙 거리길래
애좀 안아줘 하면 응~ 하고 만다.
답답해서 대충 할 일끝내고 가면 여전히
게임질이다. 눈길도 안준다.

그래놓고 어찌나 꼰대질인지 역겹다.
지 부모 좀 산다고 그거 하나 믿고
매일 게임에 티비에 게임에 술쳐먹고
하루가 그랬다.

난 18개월인 우리 딸 아직도 천기저귀채운다
기저귀값 아까워서,
옷도 한철되면 몇벌 사서 돌려입힌다.
내 옷은 어쩌다 한두벌사서 끝이다.

남들이 보면 우리는 엄청 부유층인데
속알맹이 하나 없다.

그래도 남편은 늘 있는 척한다.
진짜 없는 친구들앞에서..

돌지나 애가 표현이 많이 느니
그제야 안아주고 이뻐해준다.
도와달라면 시늉이라도 한다.

어떻게해서 취업했는데 수습이라
100만원씩 벌어온다.
애 한달 치료비가 100만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또 그러고 만다.

영업직인데 오늘 어렵게 상담이 잡혔는데
가는 길에 캔슬이 나서 속상해서
진짜 없는 그 친구랑 술마시고 온댄다.
매번 이런 식이다.

술쳐마시고 들어오면 거실이고 화장실 앞이고
아무데서나 널부러져 온다.
새벽 1시에 들어올때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포기했다.
사실 늦게 들어오는게 더 좋다.
없는게 속이 더 편하다.

9시 출근인데 8시에 일어나서 씻고
40분거리인 회사를 가면서
아침 안차려준다고 뭐라 한다.

난 애가 8시에 일어나면 밥먹이고 씻고
병원에 가야한다. 내 밥까지 먹을 여유가 없다.
1시간을 우는 애를 달래서 치료받고
30분거리에 집으로 와서
애 점심을 먹이고 놀아주고 살림을 하고
한숨 재우고 또 일어나 놀아주다 저녁먹이고
씻기고 또 놀아주다 재운다.
난 이미 치료가 끝나고 집에 오면 넉다운이다.

몇달째 두통에 시달린다.
애 울음소리도 지긋지긋하다.
치료하다 한숨쉬는 선생님에게도 미안하다.
일주일에 두세번 배달음식 시켜먹는 나에게
넌 참 살림 안하는구나 라는 남편은 싫다.
어쩌다 실수 한번 하면 넌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니 라며 인신공격하는 남편은 역겹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발달에 맞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난 애초부터 어린이집 보낼 생각도 없었고
남편 시댁은 직장 권유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아이를 위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뱃속에 있던 10개월동안에도
한여름, 9시간내내 진통을 하면서도
지금까지도.

가끔 아무것도 몰라주는 딸도 야속하다.
하루쯤은 누군가에게 맡기고
직장인 아니 프리랜서시절 때처럼
카페에 앉아 죽치고 글만 쓰고 싶다.
편의점 앞에 앉아 맥주한잔 하고 싶다.

슬프게도 사랑스러운 내 딸은
이 못난 엄마가 아니면 안된다.
잘때도 엄마 팔을 쭉쭉 빨다 잠들고
자다가도 내가 있나 확인하고 잠든다.
내가 먹여주는 밥이 아니면 안먹고
친정이나 시댁에 가서도 나나 남편이
안보이면 경기할 정도로 운다.

이미 그 울음에 진력이 나서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도 얼른 치료받고
걸었으면 좋겠다.

다른 엄마들앞에서도 힘들다 내색 안했다.
너희 애들은 발달 맞추어 걸어다니지
우리 애는 좀 늦는거야
그냥 우리 애의 상태를 숨기지않고
이야기해왔다.
그냥 자연스럽게 수용한 모습이었다.
이걸 내가 견디는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 아이고 내 아이가 겪는 일이니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거라 생각했다.
그뿐이다.

우리 애는 못걷는 애가 아니다.
발달장애가 아니라 발달지연이다.
언젠가 나에게 엄마! 라고 큰소리로 부르며
뛰어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가 언제일까...
언제까지 난 이 싸움을 지속해야할까..
내 자신과의 싸움..

이제 자야한다.
내일 또 병원에 가야한다.
우리 딸은 또 서럽게 울겠지..
무어라하며 달래주어야 할까...


추천수41
반대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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