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5위 소가노 이루카
아스카 시대에 열도의 권신 백제계로 당시 일왕을 좌지우지 하다가 다이카 개신의 전야 을사의 변에서 토벌당하고 소가가문은 멸족당했다.
공공 5위 다누마 오키쓰구
에도시대에 열도의 재상 열도최초의 중상주의 정책을 추구하였으나 정경유착의 화신으로 수많은 뇌물을 받아먹어 끝내 모든재산을 몰수당하고 화병으로 죽었다.
4위 다이라노 마사카도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는 헤이안 중기의 간토(關東)의 호족이다.
간무(桓武) 천황으로부터 최초로 다이라(平)라는 성씨를 사성받은 가즈사와라(葛原) 친왕의 손자 다카모치왕(高望王)의 셋째 아들인 다이라노 요시마사(平良將)의 적자로서, 간무 천황의 5세 손이다.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에 걸쳐 세거하고 있던 다이라 일족간의 항쟁을 끝내는 간토 전역을 휩쓴 대전쟁으로까지 확산시켰으며, 고쿠가(國衙, 관아)를 습격해 고쿠시의 인끈을 빼앗고 마침내 교토의 조정에 맞서는 독자적인 천황으로서 즉위하여 '신황(新皇)'이라 자칭, '조적(朝敵)'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황으로 즉위하고 불과 두 달 만에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鄕)ㆍ다이라노 사다모리(平貞盛) 등에게 토벌당했다(죠헤이承平ㆍ덴교天慶의 난) 사후 간다 진쟈를 비롯한 여러 진쟈에 모셔졌으며, 신으로 모셔지게 된 뒤에는 간다묘진(神田明神)이라 불렸다. '무사(武士)'라는 존재의 발흥은 다름아닌 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전투에서는 영지에서 방목한 풍부한 말을 이용한 기마전법을 구사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휘어진 형태의 일본도를 최초로 만들게 했다고도 전한다.
3위: 도쿠가와 츠나요시
막부의 5대장군 일명 개장군 개를 지나치게 아껴서 살생금지령을 내려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었다. 그가 죽은 뒤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개들을 모두 삶아먹은 것이었다.
2위 : 오다 노부나가
설문에 응한 사람들은 죽인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것 같아서"라고 이야기했다
1위 아케치 미츠히데
일명 통수의 달인 통수하면 떠오르는 남자 열도인들은 배신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드라마에서 봤을때 좋은 이미지를 본 적이 없다" 등의 의견을 나타냈다.
가까운 예로 박정희와 김재규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