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는 성인이고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예요. 힘들었던 왕따경험에 추억이라는 단어를 쓴데는 이유가 있어요. 음슴체 갈게요ㅎㅎ
생에 처음으로 집단괴롭힘을 경험했던 시기임.
우리 반에 여왕벌 같은 여자애가 있었음.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나때는 해외여행 다니는 아이가 흔치 않았는데 그애는 방학마다 세계 곳곳을 다닌다고 했음. 외국에서 사온 장난감이나 엽서등을 맘에 드는 애에겐 주기도하고 교실에서 팔기도 하는 아이였고 선생님도 예뻐했음. 선생님의 제안으로 아이들 앞에서 외국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생각남 디스파냐 소노라벨라~하는...
암튼 그런 아이였는데 그 애가 날 한마디로 찍은거임. 아직도 내 어느 부분이 맘에 안 들었던 건지는 기억이 안남. 딱히 싸운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애에게 밉보이고 나니 반 전체 여자애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렸음.
그리고 그 때 정말 알아서 긴다는 말을 어린나이에 뼈저리게 느끼게 됨
그 여왕벌 아이가 딱히 겉으로 드러나게 무언갈 하는 일은 드물었음.
물론 가장 큰 역할인 분위기 잡는 일은 걔의 몫이었지만...
가끔 뭔가 지시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애에게 잘 보이고픈 여자애들이 알아서 행동했음.
욕을 퍼붓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파손하거나 시시 때때로 수치심을 주거나..
가해건 피해건 왕따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거임. 순간순간 뭐라 말할 수 없이 모멸감을 주는 행동들.
발을 세게 밟거나 무릎 아래를 발로 차는 등의 소극적인 신체적 폭력도 있었음
그리고는 그 애에게 가서 귓말로 보고를 하는 꼴이었음.
얄미운년 귓말 들으면서 웃던 얼굴 기억남.
왕따는 처음이고 순한 성격은 아니라 저항은 했지만 밀리고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일 친한 단짝친구의 너무 쉬운 배신이었음.
내가 뭘 아끼는지 등을 잘 알기에 그애의 괴롭힘이 더 효과적이었음
웃긴건 그애랑 나랑 집이 가까워서 등하교를 함께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된 후로도 아침마다 학교에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음.
그리고 등교길은 전과 같이 단짝친구 였다가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여왕벌의 충직한 심복이 되어 앞장서서 나를 괴롭혔음.
나도 등신같이 매일 아침 헛된 기대로 그애의 제안을 못끊고 같이 등교를 함. 오늘은 맘을 바꿨나?하는...지푸라기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그 어떤 괴롭힘 보다 힘들었던 거 같음.
허나 나는 지금도 그때도 그닥 깊게 고민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음
"어른들은 몰라요!"하며 숨기는 아이가 아닌 '어른들이라면 뭐라도 해주겠지'하는 아이었음
아끼는 샤프가 없어졌을 때 선생님께 말했음. 샤프가 없어졌다고.
그러나 그게 따돌림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은 못했음. 심증은 백퍼였으나 물증이 없고 수치심도 있고...아이들이 보고 있어서 두렵기도 하고...그냥 눈빛과 표정으로 이게 단순 분실이 아니라는 걸 어필했음.
그 당시 담임선생님은 인자하고 좋은 분이었으나 그런 나의 섬세한 어필을 캐치할 정도로 예민한분이 아니었기에...니가 분실한걸 어쩌라고의 반응만 안고 돌아옴.
그리고 더 고민할 거 없이 부모님께 상담함.
부모님 두분은 다 정규교사 경력이 있으셨음.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두분 다 그만 두셨지만 어느정도 긴 교사경력으로 섣불리 어른이 나서서는 안 된다는걸 알고 계셨음.
"우리가 나서면 아마 당장의 왕따문제는 해결 될 테지만 쉽게 부모님이 나서는 이미지 때문에 아이들이 널 어려워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고 하셨음. 즉 남은 기간 학교에서 은따가 될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아버지께서 조금은 특별한 조언을 해주시게 됨.
지금 어딜가서 얘기해도 다들 황당해 하면서도 감탄함. 그건 바로...때리라는 거였음..ㅋㅋ..
정확히는 아이들이 너를 둘러싸고 린치를 할 때, 특히 최대한 많이 모인 클라이막스 상태에서 그 우두머리 여자애의 코를 이마로 들이 받으라는 거였음.
코에는 혈관이 많아 쉽게 피가 나 시각적인 충격 효과를 볼 수 있고 코뼈는 연해서 쉽게 부러졌다 붙었다 하기 때문에 그정도 치료비는 얼마든지 대줄테니 믿고 안심하고 치라고.
그러고나면 나를 쉽게 보고 해코지 할 수 없을거라고 하셨음.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의 주먹이라 봤자 별 파괴력이 없으니 이마로 치되 실수로 이빨을 치는 일은 없게 하라시며...치료비 많이 나오니까..ㅋㅋ
그리고 실제로 집에 오면 아빠랑 복싱연습을 했음. 주먹 쥐는 법부터...아빠 말씀으로는 학창시절 날리셨다는데 뭐 안그런 아버지 안계실듯ㅋㅋ그래도 믿어드림.
그래서 그렇게 했느냐?
아님. 끝까지 그럴 일은 없었음. 그걸 실행에 옮길만큼 폭력적인 아이가 아니었음. 그렇다면 왜 그 조언이 절묘했느냐.
그건 바로 자신감 이었음.
그 후론 아이들이 둘러싸고 욕을 하든 어쩌든 간에 너무 가소롭게 보이는거임.
내가 봐줘서 니들 그러고 나댈 수 있는거야 라는...
뭔가 필살기를 숨긴 자의 자신감? 그런게 싹텄음
괴롭히는 아이들은 상대방이 괴로운게 즐거운거임. 반응을 보일수록 더 신이 남
그런데 그 이후로 난 애들이 괴롭혀도 딱히 괴롭지 않았음. 관심도 없고 우스웠음.
그러다 보니 서서히 애들이 재미가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괴롭힘이 사그라듬.
실제로 폭력을 쓸 성품은 아니면서도 그것으로 충분히 자신감을 얻을 정도의 왈가닥함이 있었기에 정말 나에게 딱 맞는 맞춤 조언이 아닐 수 없었음.
그렇게 서서히 모든게 회복되고 괴롭힘에 가담하지 않았던 극소수의 아이들 무리와 친해져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냄. (걔네가 뭔가 악기 하나씩 다 다루고 공부도 잘하는 엘리트 느낌의 아이들이었는데 친해지고나니 걔들이 공책에 써서 주고받는 얘기들이 다 음담패설이라 놀람...초4 여자애들이...)
클라이막스는 크리스마스때 여왕벌이 내게 카드를 준거임.
걔가 준 카드도 남달랐음. 그 당시로써는 흔치 않은 가격의 카드였는데, 멜로디나 입체 등 어떤 특별한 기능이 있는 카드도 아니고 단순한 형태의 정말 예쁜 수채화 꽃그림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음.
내용도 일부 기억이 남. 졸라맨 둘이 등돌린 모습 옆에 '우리가 너무 반목하며 지낸것 같아'라며...난 그때 반목이 뭔 뜻인지도 몰랐음. 걔가 훨 똑똑했던건 인정ㅋㅋ
답장 물론 안함. 유치하지만 그때의 답장 안함은 지금까지도 내게 통쾌함을 안겨줌.ㅋㅋ...나 원래 많이 유치함...☞☜
이 글을 쓴 이유는 적어도 내겐 특별했던 기억이기도 하고 비슷한 문제로 힘든 어린 친구들에게 자신감에 대해 말하고 싶기도 하고...부모님 입장인 분들께도 힌트가 되었으면 하고...물론 말이야 쉽지 내 상황이나 운이 매우 좋기도 했다는걸 앎. 저 조언이 모든 이에게 정답이라고도 절대로 생각 안함.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거고 운이 좋다면 쉽게 찾을거고 대체로 많이 힘들거임. 마음 독하게 먹고 강해지고 부디 자신에게 딱 맞는 돌파구를 찾이서 어서 편해지길 기도하겠음.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너희는 평생 철이 안든 똥멍청이로 살거나 철이 든다면 뼛속깊이 후회해야 하거나 둘중 하나임. 후회 그거 되게 고통스러운 거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맘 착하게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