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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혼 이야기

헌남 |2015.06.23 20:15
조회 75,935 |추천 203
너무 사랑했던 그녀와, 한 때는 내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와 결혼을 준비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그녀는 참 예뻤다. 유행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면바지에 티셔츠 한장을 입어도 내 눈에는 참 예뻐보이고 아껴주고 싶던 그런 여자였다.

우리는 봉사단체에서 만났다. 남중 남고를 나와 공대생이 된 나는 여자를 참 몰랐다. 우리 공대 학관은 참 멋이 없어 군대틱 했다. 가끔 학생식당에서 까르르 웃는 인문대 여학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말도 섞어볼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다 스펙도 되고 좋다고 해서, 친구 권유로 활동 하게 된 단체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참 털털하고 얼굴에 약간 여드름 자국도 있고 화장도 안했다. 땀이 나면 수건으로 얼굴도 쓱쓱 닦고 자기도 힘들면서 같이 하는 친구들을 먼저 챙겼다. 그리고 자기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눈빛이 예쁜 그런 아이였다.

오가다 인사 외에 제대로 말도 못해보고 그 여름 활동이 끝났다. 그런데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석달 후 자기가 개인적으로 봉사를 하는 곳이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학기 중이라 바빴지만 나는 기꺼이 주말에 달려갔다. 그렇게 조금 가까워지고 내 마음을 전하니 빨개지며 당황하던 풋풋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그녀는 모든 것이 서툰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이해해주고 감싸주며 예쁜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는 졸업, 취업 몇개의 난관을 함께 넘으며 함께 성장한다고 믿었다.

취직 후에도 사회생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낄때면 서로에게 의지했다. 이보다 더 든든한 아군이 있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 했다. 그런데 프로포즈를 한 날 부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양가 부모님을 뵈어야 하는데 도통 부모님께 소개를 하려고 하지를 않는 것이다. 몇번 이야기 해보았지만 재촉 한다고 기분상해 하길래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어느 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자신이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이 한푼도 없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두분 다 많이 아프셔서 장기치료 중이시고 이제까지 번 돈이 다 치료비와 입원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은 큰 일이 아니라고 위로하였다. 부모님께서도 여유가 있으시고 나도 취직하고 모은 돈이 꽤 되었다. 그 날로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사실을 고하자 부모님께서도 돈은 있다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며, 현명한 배우자를 맞는게 더 중요한 것이라며 내가 선택한 그녀를 받아들여주셨다.

나는 부푼 가슴으로 그녀를 만나 우리 결혼 진행에 큰 무리 없음을 알렸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그녀가 버는 수입은 그대로 부모님의 병구완에 쓸 것을 전제로 우리는 결혼준비를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신 집에 신혼집을 차리기로 하고, 내가 모은 돈으로 혼수에 해당하는 살림과 결혼식, 신혼여행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그 와중에 티파니에서 반지를 사서 프로포즈를 정식으로 하였다. 부담되어 받을 수 없다는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품에 끌어안자 정말 이제 그녀가 내 사람이 되는구나 하고 감격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성격이 돌변하였다. 원래 부모님이 신혼집으로 가지고 계시던 30평대 집을 주시기로 하였으나 지금 살고 있는 분들 계약기간이랑 맞지 않아 20평대의 전세를 구해주시고, 30평 집의 전세가 끝나면 그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혼수도 내 돈으로 하는 마당에 차라리 조금 작은 집을 더 안심하고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그녀는 작은 집에 채운 혼수로 더 큰 집으로 나중에 이사 가면 사이즈도 안맞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30평대 전세를 구하자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돈 관련으로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없어 당황했지만 결혼이란게 여자에겐 큰 로망이고 그녀 말도 맞는 것도 같다고 생각해서 30평대 전세를 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부모님이 이사 시켜주신다는 집이 진짜 있는거냐며 등기부등본을 요구하였다. (부모님께서 갖고 계신 집은 강남, 지금 신혼집을 구한 곳은 성남) 그러나 이 또한 결혼을 앞두면 여자들은 불안해하기도 하고 결혼 전에 시댁에서 약속한 것은 제대로 지켜지는게 별로 없어서 그렇게 생각 할수도 있다는 직장 선배 (기혼)의 말에 그럴수도 있나 생각했다.

등기부등본을 보고는... 그 집의 명의를 이전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쯤 되니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너무나도 이상했다.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닌 거 같고 어느 때 부턴가 그녀의 얼굴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즈음 부모님도 나에게, 또 그녀에게 실망을 많이 했기에 차마 부모님께 못난 모습 보이기 싫은 마음에 그녀를 설득 하려고 펜션 여행을 제의했다.

장미꽃과 촛불 이벤트에 오랫만에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술 한잔 하며 자기가 미안하다고 이해가 부족했다고, 부모님도 아프시고 한데 결혼 후에 금전적으로 힘든 일 생기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그랬다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에게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며 약속하며 그렇게 밤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또 하나의 깜짝 이벤트를 위해 그녀가 가지고 온 트렁크를 열었더니,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작은 루이비통 가방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를 만나온 7년여 동안 그녀가 명품을 가진 적도, 그런 걸 원하는 성격도 아니라 그랬던 거 같다. 나이도 있으니 하나 사주겠다고 하면 늘 손사래를 쳤던 그녀였기에.

그런데 그 가방 속에 다이아가 박힌 까르띠에 반지와 또 다른 전화기가 들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전화를 켜니 비번이 원래 쓰고 있는 전화와 똑같다.

카톡에 들어가니 남자가 있다. 까르띠에 반지로 프로포즈를 한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잠들어 있는 그녀를 깨워 이게 다 무엇이냐고 따지니 한숨을 쉬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녀 부모님 아프시지 않단다. 그런데 집이 빚도 있고 어려워서 돈 걱정 하기 싫었다고. 결혼 할 때가 되니 내 조건도 좋지만 더 좋은 남자라 관심이 갔다고. 우리 부모님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있는 집에서 없는 집 딸 들이는 거 또 쉽지 않아서 양다리였단다. 그런데 그 집에서도 그녀를 탐탁하게 생각 해서 결혼을 진행하라고 했다며.

자기가 무리한 요구 하면 화내며 내가 파혼 하자 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잘 됬단다.

그 여자는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우연히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날 위로하려고 지인들은 그녀의 안좋은 이야기들을 꺼내들었다.

우선 봉사단체에 간사가 그녀가 아니라 친구였는데, 친구가 아파서 대신 간사를 맡고는 연락처나 활동을 관리하게 되니 자기가 한다고 고집 부려서 그 자리를 뺏었다는 것이다. 활동 특성상 학벌에 봉사정신까지 갖춘 남학생들이 많아 그랬다는 거다.

그리고 여러다리에 남자킬러라는 소문이었다. 미인에게는 마냥 빠져들면서도 경계하게 되는데 그녀는 굳이 따지면 흔녀였다. 아주 미인은 아니지만 평범한데 지혜롭고 따뜻한 여자라는 이미지로 잘난 남자들만 만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귀고 있을 때는 들리지 않았다. 오래 또 진지하게 만나고 있었기에 나에게 굳이 안좋은 "소문"에 불과한 이야기를 해줄 필요 없다고 생각한 친구들을 탓하지는 않겠다.

언젠가 일본에서 꽃뱀을 하다가 남자인생 여럿 망친 여자가 알고보니 나이도 많고 뚱뚱하고 미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당한 남자들이 의심하지 않았다고 하는 얘길 뉴스에서 봤었는데,

나도 비슷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페이스북 같은 걸 하지 않는 그녀가, 비주류 스타일을 고집하는 아날로그형 감수성이라고만 생각 했으니.




아는 후배가 판에 글 써보라고 아이디 빌려줘서 써 봅니다. 5월에 예쁘게 행복하게 식 올리고 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많이 힘듭니다. 여자를 믿을 수도 없고 만날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도 착실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에서 그저 못난 불효자가 되었네요.

몇번씩 그녀 결혼식장에 찾아가 식을 망치는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꿈에서도 그녀를 때리지 못하고 신랑을 패는 제 자신이 참 싫네요. 순수했던 그녀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아니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추천수203
반대수10
베플정말심각하다|2015.06.24 04:45
주작이여 날아 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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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에휴|2015.06.23 20:36
잘 풀린거임. 남은 인생 구겨질뻔했다가 펴진거임. 그뇬은 그 심보 평생 못 고칠텐데 같이 구렁텅이에 빠질뻔 하다가 구제 됐으니 님은 평생에 다시 없을 액땜한거고 행운 인거임. 휠씬 좋은 여자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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