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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이 보천보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가 맞다는 주요 근거로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본명이 김성주(金成柱)로 같다는 것이다.보천보 사건을 일으킨 김일성(金日成, 1901-1937)의 본명은 혜산사건 (惠山事件) 판결문 등에서 金成柱로 나온다.
또 이명영 교수가 혜산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책임자였던 市原感一(당시 警部, 1896~?)을 1971년 2월에 찾아가서 당시 일에 대해 들은 증언이 "김일성 열전(p.274~281)"에 나와 있는데, 그는 "박록금(朴祿金)은 김일성(金日成)의 나이가 36세, 본명은 김성주(金成柱),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나왔고 만주사변 후에 소련(蘇聯)에서 만주로 온 사람이란 것을 처음으로 진술했었다. 박록금(朴祿金)에 의해 김일성(金日成)의 신원이 알려졌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권영벽(權永壁), 이제순(李悌淳), 박달(朴達), 박금철(朴金喆) 등 간부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었다. 그들의 진술은 거의 일치했다."고 증언했다고 하였다.
혜산사건 판결문에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라 한 것도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박록금 등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판사나 검사가 재판의 피고인도 아닌 김일성의 신원을 따로 조사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신문조서 내용의 진실성을 다시 확인했을 수는 있겠다.
따라서 혜산사건의 판결문에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로 나온 것을 그가 북한 김일성이 맞다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 피고인들이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인 것과 함께, 나이가 36세,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나온 북한 김일성과는 명백히 다른 인물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명 金成柱만 취하고, 다른 진술은 틀린 것이라며 배척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한편 북한 김일성의 본명도 북한 측은 金成柱라고 주장하며, 남한의 학계 다수 인사들도 이것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명영의 "김일성 열전"에는 북한 김일성의 어릴 적 친구 등의 증언을 통해 그의 본명은 金成柱 아닌 金聖柱라고 밝히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이 설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주장은 모두 신빙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제외하면, 북한 김일성의 정확한 본명이 金成柱, 金聖柱 중 어느 것인지 문헌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제시대 호적이나 학적부가 남아 있다면 정확한 본명을 알 수 있겠으나, 그런 문건을 입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일제시대 기록으로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 Kawagoe Shigeru, 1881—1969) 길림(吉林) 주재 일본 총영사가 1929년 5월 14일자로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조선공산청년회의 건(朝鮮共産靑年會ノ件)」으로, 여기에는 金聖桂 로 나온다고 한다. 이종석 등은 이를 金成柱의 오기로 보는 것 같지만, 이름의 두 글자 모두 오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金聖柱의 오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柱를 桂로 한 것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成자까지 같은 음의 聖으로 오기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위 자료는 북한 측도 김일성 관련 자료로 인용하는 것임.] 이것만 보면 북한 김일성의 본명은 金聖柱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종석의 "현대 북한의 이해 (2002.10.10)" p.452에는 "일제관헌자료( 東省朝鮮人農民總同盟組織에 관한 件, 1930년 6월 25일 길림총영사 보고)는 무송(撫松)·안도(安圖) 지방을 담당할 이 동맹의 지부동맹조직위원으로서 金成柱가 선임되었음을 보고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종석은 여기에 적힌 이름 金成柱가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이 문건은 가와고에 시게루(川越茂) 총영사의 후임 이시이 이타로(石射猪太郎, Ishii, Itarō, 1887-1954) 총영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위 두 문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국회도서관에 마이크로 필름 자료로 있는 것 같다.
日本外務省陸·海軍省文書. 2287-2296 / 外務省警察史 國會圖書館所藏 마이크로필림 復製本임
-- 2295-2296(40-41). 在吉林總領事館及敦化分館 (外務省警察史 滿洲ノ部)
발행사항
서울 : 國會圖書館司書局, 1980
형태사항
冊 ; 26 cm
주기사항
國會圖書館所藏 마이크로필림 復製本임내용: 2287(32). 在帽兒山分館(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 2288(33). 在도鹿分館(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 2289(34). 在農安分館(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 2290-2293(35-38). 在鄭家屯領事館(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 2294(39). 在赤峰及承德領事館(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 2295-2296(40-41). 在吉林總領事館及敦化分館 (外務省警察史滿洲ノ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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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길림 총영사 보고문 2건만으로는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 / 金聖柱 어느 쪽인지 판별하기 어렵다.
1939년 이후 일제시대 문건으로 아래 2건에서 처럼 북한 김일성의 본명을 金成柱로 쓴 것이 더러 보이나, 그를 보천보 김일성과 동일 인물로 혼동하고 있고, 보천보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이므로, 이런 문건을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라는 결정적 근거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본명에도 혼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휘보(思想彙報, 1939년 8월)의 혜산사건(惠山事件) 기록 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보천보 김일성의 신원을 북한 김일성과 유사하게 적고 있고, 본명을 金成柱라 하였다.
朝鮮人ノ現在ノ動向ニ就テ (1944년) 1944년 12월 일본 제국의회(귀족원)에서의 질의응답 자료
북한 김일성을 보천보 사건 당사자라 하고, 본명을 金成桂라 하였다. (桂는 柱의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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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4월 만선일보에는 김일성의 본명이 나와 있으나, 글자 판독이 어려워 金成柱 / 金聖柱 어느 쪽인지 온라인 이미지로는 확인이 잘 안 된다. 원본을 보면 알 수 있을지?
비수(匪首) 김일성(金日成)의 생장기(生長記) 1~5회 - 만선일보 1940/04
또 한 가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보천보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에 죽은 후 북한 김일성이 적어도 1938년 6월 1일자 기록에 스스로 김일성(金日成)이라 칭하며 보천보 김일성 행세를 하고 있었으므로, 이후로 본명도 보천보 김일성에 맞추어 金聖柱에서 金成柱로 변개하여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38년 이후 기록에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로 적힌 것이 있다고 해도, 이는 기록자가 보천보 김일성과 동일인으로 혼동했거나, 아니면 북한 김일성 스스로 본명을 변개했거나 했을 가능성 때문에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가 맞다는 결정적 근거로 보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반면에 어릴 때, 또는 젊은 날의 김일성을 알았던 지인들은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그런 사람들의 증언이 일제시대 기록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김일성을 더러 만났고, 부친 김형직도 알았던 백파(白波) 김학규 (金學奎, 1900 ~ 1967) 장군의 자서전에는 북한 김일성의 본명을 金聖柱로 적고 있다.
일제시대 김일성 관련 증언 : 김학규, 이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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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내무성경찰국의 특별고등경찰 보고서 특고월보(特高月報) 1940년 4월호에는 김성보(金成甫)가 김일성(金日成)의 4촌형(從兄)이라고 하였다. 북한 김일성은 김보현의 장손으로 4촌 형이 없으며, 형제나 종형제들의 항렬자가 柱 이므로 김성보(金成甫)는 북한 김일성의 4촌형은 절대로 아니다. 이명영 교수는 "김일성 열전"에서 김성보(金成甫)는 본명이 金成柱인 보천보 김일성의 4촌형이며, 이들의 항렬자는 柱아닌 成이라고 하였다.
아래는 이와 관련한 진명행 블로그의 글이다.
김일성考④...동북항일연군 2방면 군장 경력의 진위여부 : 김일성 '金成柱'의 사촌 형 金成甫의 체포기록
일제의 내무성경찰국의 특별고등경찰 보고서 특고월보(特高月報) 1940년 4월호를 보면 그해 1월 10일 만주의 불령선인 용의자 김창하(金昌河)를 검거하여 취조한 결과 반일회(反日會)라는 불령단체가 존재함을 발견하고, 1월 24일 이 반일회를 급습하였는데 김성보(金成甫)라는 인물을 검거하였다.
이 자료에 의하면 김성보(金成甫)가 김일성, 최현 부대의 정치고문으로 종사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김일성의 사촌형(從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김일성이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나, 이 반일회라는 단체가 동북항일연군 제2방면군 소속이라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 김일성의 소속과 일치하다. 당시 김일성은 제2방면군 군장이었음은 앞에서도 설명했다.
특고월보(特高月報) 1940년 4월호 소장처 :
특고월보(特高月報) 쇼와(昭和) 15년 (1940년) 1-12월호 : 낙성대 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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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대로 일제시대 기록만으로는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金成柱 / 金聖柱 어느 쪽인지 명확히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명영 교수의 "김일성 열전"에는 유년기 또는 청소년기의 북한 김일성과 잘 알았던 사람들이 그의 본명이 金成柱 아닌 金聖柱라 증언한 것이 나오고, 역시 청소년기의 김일성과 그 부친 김형직을 잘 알았던 김학규 장군도 金聖柱라 하고 있으므로, 일제의 기록보다는 지인들의 증언이 더 정확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가지 북한 김일성의 동생들의 이름 철주(哲柱), 영주(英柱)를 보면, 맏형 김일성의 본명도 成柱보다는 聖柱가 더 어울린다는 점이다. 이름 가운데 글자가 뜻하는 바는
聖(성인), 哲(지혜로운 사람), 英(영웅)
이고, 김형직이 아들 형제들 이름을 지을 때 모두 빼어난 사람을 뜻하는 글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외가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고, 부친 김형직은 기독교의 중심 교육기관이었던 평양의 숭실학교를 다녔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聖자가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
金成柱가 맞고 金聖柱는 틀린 것이라면 成과 음이 같은 글자는 많이 있는데 하필 일관되게 聖으로 잘못 기억하거나 기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역으로 金聖柱가 맞는데 金成柱로 바꾸어 적은 것이라면 거기에는 이명영 교수가 지적한대로 북한 김일성이 보천보 사건의 공을 자기 것으로 할 목적으로 본명까지 조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인은 북한 김일성의 실제 본명은 金聖柱이나, 보천보 김일성의 본명 金成柱에 맞추어 본명 역시 조작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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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록에는 특이하게 북한 김일성의 본명을 金誠柱로 적고 있다.
金日成은 나의 弟子다? 三八線 넘는 崔東旿氏談 : 민중일보(民衆日報) 1948/04/22 第324號 (4권)
최동오 [崔東旿, 1892.6.22 ~ 1963.9.16]씨가 김구 선생과 함께 1948년 4월 방북 길에 오를 당시 기사이다. 6.25 때 납북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요직을 지내고, 월북한 최덕신 [崔德新, 1914 ~ 1989]은 그의 아들이다.
민중일보는 윤보선 전대통령이 사장으로 있었다.
그동안 김일성은 만주에서 「정의부」라는 독립 운동 단체가 운영하는 화성의숙에서 수학했다. 화성의숙의 숙장은 천도교 신자이면서 민족주의자인 최동오였다. 최동오는 뒷날 상해임시정부의 간부가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대한민국에서 육군 소장과 외무부 장관 및 서독 대사를 역임하고 나중에는 월북한 최덕신이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9390373&qb=7KeE7Iuk7J2AIOqzvOyXsCDrrLTsl4fsnbjqsIA/IDog67O07LKc67O0IOu2gOuMgOydmCDquYDsnbzshLHsnbQg7KeE7KecIOu2ge2VnOydmCDquYDsnbzshLEg66ee64qU6rCAPyAvIOuwleqzhO2WpQ==&enc=utf8§ion=kin&rank=6&search_sort=0&spq=0&sp=1&pid=SdvLXspySDossbyaLmRssssssuK-289057&sid=AUMq9SPZokTk%20DZ12aIq%20w%3D%3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