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거지근성을 가진 사람들 일화가 나오길래
문득 생각난 과거의 한 인간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해요.
기가 막혔던 몇 가지 일화만 쓸게요. 쓰다가 제가 고혈압으로 쓰러질지도 모르거든요.
좀 길어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에 슬그머니 제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라
솔직히 저도 똑똑하게 대처를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머리 끝까지 화가 솟구쳐요.
20대 후반인 나이에 연봉 5천 정도 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저와(지금도),
저보다 한 살 많은 반백수(만나는 시기 중 4/5를 백수로 지냈죠ㅎ)와의 일화입니다.
키 크고 잘 생겼던 건 사실이지만,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남자에요.
1. 니 돈은 내 돈, 내 돈은 안 쓰는 돈
같이 피자를 먹으러 간다 치면, 지가 계산하는 날은
'어차피 다른 거 먹지도 않잖아. 피자만 시키자' 이러면서
제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가장 기본 피자만 시킵니다.
'샐러드 시키자' 해도 배 불러서 다 못먹는데 이러면서 안 시켜요.
근데 제가 계산하기로 한 날은
치즈크랩에 온갖 토핑 추가하고, 샐러드까지 넣어서 세트로 시켜요.
새로 나온 사이드 메뉴도 집어 넣구요.
그러고는 남으면 또 싸달래서 자연스럽게 지가 들고 가서 지 엄마 줘요.
먹을 때는 서로 기분 좋게 먹지 싶어서 별 말 없이 먹고 난 다음에 물어봤어요.
왜 내가 시킬 때랑 오빠가 시킬 때는 다르냐구요.
그랬더니 자긴 몰랐대요. 그냥 오늘 그게 먹고 싶어서 그랬대요.
먹는 거 가지고 너무 그러는 거 아니래요.
근데 그런 일이 또 무한 반복돼요. 변명도 무한 리플레이돼요.
2. 우리집은 껄끄러운 집, 오빠네 집은 벌써부터 우리집
무슨 맘이었는지 만난지 얼마 안됐고, 사귀기로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저를 집에 데리고 갔어요.
원래는 밖에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집에 뭘 갖고 나와야 한다고 잠시 들르자고 하더니 억지로 인사까지 시키네요.
우리집에서는 누구 만나는지도 모르는데,
그 집에서는 이런이런 며느리감 인사왔었다고 동네 소문 다 내고,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다 동생네 애기 백일이다 할 때마다 끌려 다녔어요.
네, 끌려다녔죠. 제가 바보 천치였죠.
오빠 상황이 좋지 않은 때라 우리집을 챙기라 하면 서로 불편해질까봐
그 부분을 묵인했던 게 제 잘못이었어요.
한 번은 오빠네 엄마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밥 먹으러 오래서 갔더니
오빠네 엄마가 선물 뭐 해줄거녜요. 제가 예? 이랬더니 속옷 세트 봐 둔 거 있는데 사 달래요.
그러더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홈쇼핑 카달로그를 들고 나오네요.
앙선생님 세트 20만원 가까이 하는 거요. ㅋㅋㅋㅋ 제가 무슨 봉으로 보였나 봐요.
'오빠한테 사 달라고 하세요' 이랬더니
'우리 아들은 돈 없어~ 넌 돈 잘 벌잖아~' 이러네요
그 일로 오빠랑 대판 싸우고 오빠 뿐만 아니라 이제 오빠네 가족까지 나를 봉으로 보냐고 그랬더니
부모 욕했다고 별 지랄발광을 다 떠네요.
자존심 상하면 니가 그렇게 못하게 말씀드리고, 니가 선물 해 드리라고.
아들이 둘이나 있으면서 왜 부모님 기념일을 며느리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나한테 사 달라 하냐고, 그랬더니 저보고 사람이 왜 그렇게 계산적이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어머니, 제가 새 옷 입고 있는 거 보면 자기도 그런 거 사 달래요.
백화점 자주 다니니까 싸게 파는 털 달린 거 있으면 사다 달래요. 돈 준대요.
처음에 몇 번은 심부름 아닌 심부름을 했었는데 돈 못 받았어요.
결국 모피를 사다 달라는 거였는데
'어머니, 우리 엄마한테도 아직 모피는 못 사드렸네요.
아들이나 며느리한테 사 달라 하셔야죠'
이랬더니 기분 나쁜지 아무 대꾸도 안하더라구요.
자기는 책도 많이 읽고, 소녀 같다고 다들 그런다고, 항상 철없는 문학소녀 코스프레를 해요.
그래면서 뭐 사 달라, 이거 먹고 싶다, 저거 갖고 싶다 하는 얘기를 또 저한테 해요.
한 두 번 부담 없는 거는 들어드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습관적이다 싶어서 딱 끊었네요.
3. 어이없는 동생네
진짜 만나면서 수천번은 싸운 거 같은데 만남이 이어졌던 게 신기해요.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싸우다가 좀 풀고는 워터파크에 가기로 했었는데,
오빠네 집이 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이라,
제 차를 그 앞에 세워두고 오빠 차 타고 이동하려고 갔는데 마침 오빠 동생이 와 있더라구요.
우리 놀러간다고 어머님이 얘기하니 자기들 애기 둘 좀 데려 가래요.
제가 어이가 없어서 대꾸를 안하고 있으니,
오빠가 제 눈치를 보면서 무슨 소리 하냐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니 그 동생이 아 쫌 데리고 다니면 어디 덧나냐고 애기 둘이 더 붙는다고
뭐 그리 신경 쓸 일이 있냐고 그러더라구요.
애 둘 달고 가면 그 뒤치닥거리랑 돈은?
애들도 막 키워서 어른들한테 십원짜리 욕도 막 퍼붓는 애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주말만 되면 애 둘은 시부모님 댁에 보내고,
오죽하면 애 병원도 시어머니보고 데리고 가라 그러고 자기는 친구 만나고 놀러 다녀요?
둘 다 일이나 하면 말을 안 해.
동생도 반백수에 그 마누라도 집에서 펑펑 놀면서, 자기는 죽어도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린데.
4. 백수에 들러붙은 새끼 백수들
나이 서른에 백수로 지내는 것도 한심해 죽겠는데, 또 남자 자존심 너무 뭉개는 건 별로고,
알아서 구직하고 있다니 니 인생이다 싶어서 그냥 참고 보고 있었어요.
근데 또 게임에 목숨을 걸고 빠져 드네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만나기로 해 놓고 게임방으로 오래요.
가서 멍하니 기다리면 나보고도 게임하라고 컴퓨터 켜 주고
동네 동생백수들 끼고 무슨 지가 왕이라도 되는양 으스대면서 게임에 몰입해요.
화 나서 먼저 나와 버리면 또 쫓아 나와요. 게임 때문에도 진짜 얼마나 싸웠는지 모르겠네요.
근데 문제는 게임을 하면 밥도 굶어요.
한 번은 너무 안 됐다 싶어서 밥이나 먹고 게임하라고 나가자 하니 지가 동생들을 챙기네요.
그래요, 또 제가 계산했죠. 어느 순간부터는 이 동생들도 저를 호구 잡더라구요.
밥이며 술이며 참 많이도 사 먹였네요.
제가 바보 멍청이인줄 알면서도 어쨋든 만나는 동안은 남자로서 자존심 뭉개지 말자 싶어서 앞에서는 웃어 보였어요. 뒤 돌아서서 왜 꼭 나한테 니 후배들까지 건사하게 만드냐 그러면 미안하대요. 근데 또 무한반복이에요.
5. 백수새끼한테도 여자는 붙더라구요,
생긴 게 멀쩡하게 생겼다 보니 여자가 잘 붙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미래에 대해 생각을 좀 하라고 다그치고, 남자 자존심만 자존심이냐,
내가 호구냐 그러면서 쏘아 붙이고 싸움이 잦아지니 바통 터치할 여자를 물색했나 보더라구요.
처음 저랑 사귀게 될 때도 어정쩡하게 양다리 아닌 양다리 걸치고 있다가 걸리니
절대 아니라고 잡아 뗐었는데,
느낌이 쎄해서 유심히 봤더니 또 여자가 생겼더라구요.
그 때는 정말 제가 인간도 아닌 모습으로 쥐어 뜯었네요.
니라는 새끼는 사람 새끼냐고,
지금껏 상황이 안 좋으니 이해해달라 미안하네 어쩌네 해 놓고 뒤로는 딴 생각 하고 있었냐고.
사람 새끼면 지금까지 니가 배려 받은 거 돌려 줄 생각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또 아니래요. 무슨 일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제가 하도 화를 내대니 하소연할 데가 필요했대요.
결국 그 여자와 통화하게 됐는데 저를 미친년으로 만들어 놨더라구요.
오빠 전화를 제가 받으니 저보고 왜 그 전화 받냐고,
그 전화 갖고 있는거 오빠도 아냐고 되려 묻네요.
그래서 일단은 내가 여자 친구고 댁은 뉘신데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하고 문자 남겨 놨냐고 그러니 끊대요. 알고보니 작은 병원에 간호조무사라는데 아직 발전하기는 전 단계였던가 봐요.
잘못했다, 오해다 그래서 넘어는 갔는데 기분 더러웠죠.
6. 결국 남자도 아니었던 그 놈
보통 여자든 남자든 자기 사람은 챙기려고 들지 않나요?
전 내 사람이 남한테 모욕을 당하면 그게 친구든 가족이든 욱하는 성격인데,
오빠는 안 그렇더라구요.
제가 친하게 지냈던 한 언니가 있었는데,
나이도 많고 지금 남편과 우여곡절 끝에 재혼을 했었어요.
그 언니도 오빠 때문에 한 다리 건너서 알게 된 사람인데
저를 더 좋아라 하면서 이뻐해 주더라구요.
그 때는 정말 친언니처럼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그 언니도 아는 동생이 오빠를 만나서 지방에서 왔었어요.
당연히 지갑처럼 절 옆에 끼고 밥 먹자 술 먹자 하길래 '있는 사람이 내는거다 괜찮다'하면서
제가 기분 좋게 계산했어요. 속으로는 부글부글했지만요.
근데 그 동생이 언니한테 그랬더라구요.
제가 뭐 책이라도 잡혔는지 돈도 제가 다 내고 그러더라면서요.
(저 솔직히 여자가 돈 더 많이 내고 어쩌고 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말 그대로 있는 사람이 더 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오빠가 싫었던 거죠.)
그렇게 그 언니와 동생이 뒷담화한 걸 제가 알게 됐어요.
그 언니가 저에게 집착 같은 게 좀 있었는데, 맘 상한 제가 같이 안 어울리려고 피하니까
전화해서 따지길래 말했죠.
'언니도 남편이랑 결혼하려고 할 때 남편이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서
남 눈치 볼까봐 많이 신경썼다고 했지? 나도 지금은 그래.
맘에 안 드는 것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만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가 그렇게 뒷담화했다고 생각하니 배신감 든다.
내가 생각했던 언니가 아닌 것 같다.'
이랬더니 언니가 울면서 사과하더라구요. 자기 생각이 짧았다면서요.
그 대화를 우연히 오빠가 듣게 됐는데 무슨 일이냐길래
속으로 '니가 못나서 내가 이런 얘기도 듣는다. 좀 깨달아라' 싶어서 있는 그대로 얘기했죠.
저는 그래도 사람이면, 몇 년이나 백수로 지내면서 제 등골 빨아 먹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 사람으로서 한 남자로서 부끄러워할줄 알았어요.
니가 그런 얘기 듣게 돼서 미안하다, 다 내 탓이다 이럴 줄 알았는데,
이년저년하면서 길길이 날뛰네요.
그 때 딱 알겠더라구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힌트가 있었지만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거 귀찮아서, 나도 나이가 있으니 싶어서,
그 오빠 가족 때문에(알고 보니 제 은사님 중 한분이 친척...) 참고 지냈는데,
정말 이 사람은 아니다 싶었어요.
그 일로 마음이 냉랭해져서 연락도 안 하고 서서히 멀어졌죠.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제 사촌동생이 결혼하는 거 가서 축하해 주고 오면서
전화로 이별 통보하고 차단해 버렸어요.
헤어지자 했더니 축 쳐진 목소리로 '내가 너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어. 미안해' 이렇게
가식적인(한 두번이 아니었거든요. 동정심 유발하는 거) 목소리로 끊더니
차단하고 난 뒤에 미친듯이 전화하고 음성메세지 남겨 놓고 난리였더라구요.
완전 식어버린 마음이라 확 돌아서서 헤어졌고,
지금은 정말 너무너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네요.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헐값에 게임방 인수해서 몇 년만 운영하기로 했다더라구요.
그것도 아는 동생이 형이 한심하다고 중간에서 다리 놔 준거에요.
어쨋든 백수에서 탈출했으니 잘 된 거죠. 그 기한이 다 돼 가긴 하지만.
카톡 친구들 정리하다가 추천친구 보니까 제 번호를 아직 저장해 뒀는지
그 오빠 얼굴이 뜨더라구요.
여전히 뺀질뺀질 허세 부리며 게임방 배경으로 사진을 걸어 놨더라구요.
제 안부를 그 동생 통해서 물었나 본데, 그 동생이 아무 말도 안해줬다고,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고 야단쳤다 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제 청춘을 왜 그런 시궁창에서 헤맸는지 모르겠어요.
그 오빠를 만나면서 얻은 중요한 교훈은, '아닌 건 아닌거다'라는 거에요.
아니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정에 끌려서,
불쌍해서 미적미적거리다가 시간낭비 돈낭비한 거죠.
판에서 비슷한 글들 보면 딱 잘라 말해주고 싶어져요.
그런 사람들 절대 안 바껴요.
그런 사람들은 절대 혼자만 그런 거 아녜요.
그 가정이 그런 분위기이니까 그런 근성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거에요.
그런 사람을 배려해주고 자존심 생각해주면 그 길로 더 무력해져요.
어쩌면 제가 몇 년 동안 먹여 살렸던 거니, 불편한 줄 모르고 더 백수로 지냈겠죠.
한 두 번 아니다 싶은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은 아닌 거에요.
저처럼 몇 년을 끌려다니며 시간낭비하지 마세요.
지금 생각하면 제일 아까운 건 제 시간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