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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와 한국의 숨겨진 인연

콜로라도 |2015.08.01 16:59
조회 2,543 |추천 4

1988년 대한민국의 특정 종교서울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열기 위해 잭슨의 가족들과 접촉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 종교는 서울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4차례 공연을 갖는 조건으로 잭슨의 형제와 부모들에게 750만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형제들과 부모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제안에는 잭슨이 한국에서 한복을 입고 애국가를 불르며 한국어 노래를 몇 곡 부르는 것도 포함됐다. 잭슨은 공연을 하기 싫었지만 형제들과 부모의 끈질긴 회유 끝에 공연을 하기로 결심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애국가와 한국 가요는 부르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1988년 그는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은 현재 공개되어 인터넷 등에 많이 퍼져있다. 그런데 공연은 잭슨에게 지급해야 할 출연료 부족으로 무산되고 만다. 이 사실을 밝힌 그의 전기 작가 'J 랜디 타라보렐리'는 이로 인해 잭슨이 한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생긴 것 같다며 분석했다. 실제로 잭슨의 마지막 세계투어를 했던 곳은 한국 서울과 독일 뮌헨이었다.[302][303] 당시 일로 고소까지 했던 것이 80년대 한국 언론의 보도에 확인됐다.[304]

1993년 한국에서 공연을 열기 위해 김영삼 정부에게 허가 신청을 했지만 근검절약 등의 이유로 거절된 바 있다.[305]

1996년 10월 11일 잭슨은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을 개최했다. 내한공연은 많은 진통을 겪었는데 기독교 단체들이 중심으로 뭉쳐 시민단체들과 함께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비난을 쏟자 자칫하면 취소될 뻔 했다.[306] 무산위기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공연이 성사됐다.[307] 그러나, 반대 시위로 인해 공연은 청소년 관람 금지가 됐으며 시민단체들이 예매처를 봉쇄시켜버려 표를 판매하지 못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잭슨의 공연을 주관한 태원예능이 수작업으로 표를 판매했다.[308]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매진에는 실패했지만 총 좌석 수의 70%를 판매했으며[309] 총 2회 동안 76,881명의 관중들을 동원했다.[310]

1999년에는 마이클 잭슨의 생전 마지막 해외 투어가 한국 서울에서 개최된다.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열렸고 이는 SBS에서 생중계를 해줬으며 최고 42.3%의 시청률을 기록한다.[311] 잭슨은 공연 중 통일이 되면 반드시 또 다시 와서 공연을 개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망함으로 끝내 그 약속은 지키지 못 했다.[312]




애국가+한복강요


근데 계약금못줘서 파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3년 재시도햇으나 영삼이가 반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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