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수 밖에 없는건 일본이 자신들이 한짓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흥선대원군 파의 선비들이 시아버지를 몰아냈다고 패륜 며느리 라며 깎아내리기도 했고요 기록대로 명성황후가 나라를 팔아먹고 사치가 심했고 투기와 질투가 장난아닌 몹쓸여자였다면 명성황후 사후에 고종황제가 명성황후만 찾으며 매일 밤을 울면서 보내진 않았겠고 덕혜옹주의 어머니께서 그시기에 맞물려 승은을 입을 당시도 옹주의 어머니가 명성황후와 닮아서 고종황제가 술에 취해 착각을했다는얘기도 있어요 명성황후가 시아버지와의 대립은 자신의 남편인 고종이 허수아비 왕이 아니기에 허수아비 왕을 만드려는 시아버지를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시라 한겁니다 수렴청정의 조건이 20살이였건만 그 20살이 지나도록 권좌를 돌려주실 생각이 없으니 고종입장에서는 아버지라 뭐라 할수 없고 그렇다고 허수아비 왕은 싫으니 명성황후의 손을 들어준거지요 그외에도 고종황제가 자주독립국을 추구하는데에 많은 내조를 했기에 고종황제가 명성황후 사후에 많은 자책감을 느꼈다고 하던걸요 고종황제와 순종 시기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많이 왜곡되었기에 여러가지 방면의 기록으로 해석해야 된다고 봅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이 정당했다고 주장하기위해 중상모략적 기록을 남겼을테니까요 친일파들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위해 더더욱이 적극적으로 도왔을테니 오히려 국내기록보다 그당시 교류했던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나라의 기록이 신빙성있다 생각 됩니다
베플초파|2015.08.27 19:49
진짜 그렇게 한심하고 멍청한 여자였으면 일본이 그래도 한 나라의 왕비를 시해강간했겠냐? 그만큼 똑똑하게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고 나섰으니 죽는것도 쉬이 안죽이고 욕보인거지. 한심하고 멍청한 여자를 뭐하러 그렇게까지 공들여 욕보임?
베플네다음|2015.08.27 10:42
드라마하나가 역사를망쳐놨다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대사로 감명깊게받은 여러분 그사람은 조선의 역사에 사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