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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안에서

여기요~ 끝까지 안올렸고 밑에 몇 편 잘랐어요 끝까지 보고싶으면 유애 정회원되서 보시길!



여. 름. 안. 에. 서.





시아.




아.. 덥다.

여기는 도쿄




" 시아, 가서 콜라 좀 사와. "

" 내가 왜.. "

" 너도 콜라 좋아하잖아. "




코카콜라 라이트, 코카콜라 레몬, 그냥 코카콜라

어떤걸 고르지? 난 그냥 코카콜라




" 시아, 넌? "

" 난 안 마실래. "

" 왜.. "




난 그냥 더운게 좋아.

이렇게 더운 날 아무것도 마시지 않을래.




" 시아. 축구나 하러 갈까? "

" 그래. 저기 애들이 부른다. "

" 너 저번처럼 끌다 뺏기지마. "

" 내.. 내가 언제.. "




내 머리칼이 레몬처럼 노랗게 흩날린다.

저기 저 태양도.. 내 머리칼만큼이나 노랗다.




" 나 먼저 갈께. 미안.. "

" 시아, 너 어디 가!!!!! "




나와 같은 한국인 친구 혁재의 말을 뒤로 하고

학교 운동장을 지나 학교 전체를 빠져 나간다.




헉.. 헉..




왜 이렇게 뛰었을까..

숨이 차서 고개를 들 수 없어.




너무 더워서.. 너무 뜨거워서..

눈을 뜰 수가 없고 말을 할 수가 없어.




" 야!!! 비켜~~ "




이제 들리지도 않아.

귓속이.. 그리고 머릿속이 멍멍해.




" 야!!! 정신차려!! "




누구지? 누가 나를 흔드는거지?

너무 더워서 이제는 움직일 수가 없어.




여.름.안.에.서.




믹.키.




아.. 덥다.

여기는 미국 버지니아




왜 이렇게 안 오지?




" 많이 기다렸어? "




내가 사랑하는 한 여자

내 첫키스 상대인 그녀




" 대답 없는거 보니까 많이 기다렸구나? "

" 아니. 사실은 나도 방금 왔어. "

" 그런데 왜 그렇게 땀을 흘려? "

" 뛰어 왔으니까.. "




덥다. 정말 더워.

나는 저 태양을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할만큼 뜨거우니까..

그래서 그녀의 두 눈도 보지 못한채




" 사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

" 나, 너무 더워서 그러니까 뭐 좀 마시면서.. "

" 우리 헤어져. 여기서 그만두자. "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녀가 전하는 마지막 선물




" 믹키, 농구하러 가야지. "

" 그.. 그래. "




내 눈물은 이제 땀이 되어 흐른다.

이제 아무것도 뜨겁지 않다.

내 열정도, 내 숨소리도, 내 사랑도




" 믹키, 패스!!! "




저 태양을 향해 힘껏 던진다.




여.름.안.에.서.




재중




아.. 시원해.

여기는 홍콩




"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 것도 듣지 못하겠어.




" 재중아, 나 한국으로 갈거야. "

" 한국이라니.. "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여기 눈 앞에 내가 있는데 왜




" 무.. 무엇 때문에? "

" 나, 너 진심으로 사랑했다. "




기.. 기다려.

우린 아직 할 말이 남아있어.




그런데 난 널 붙잡을 수 없었어.

내 무책임에.. 널 떠나 보낸것 같아.




" 잘 가. 그리고 사랑해. "




보내줄께.

너가 날 사랑했다면..




여.름.안.에.서.




유노.




홍콩의 밤거리는 눈부시다.

낮의 한여름과 같이.. 똑같이




"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




그 녀석의 눈치를 살핀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 재중아, 나 한국으로 갈거야. "

" 한국이라니.. "




내 얘기 제대로 듣고 있는거지?

너, 나 좋아하잖아. 나.. 사랑하잖아.




" 무.. 무엇 때문에? "

" 나, 너 진심으로 사랑했다. "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어.

이제 너 아닌 다른 녀석을 사랑할거야.

너의 그 무책임.. 내 책임도 있겠지.




" 잘 가. 그리고 사랑해. "




또렷이 들렸다. 너의 목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겠지. 사랑한다는 말




여.름.안.에.서.




창민.




" 유노형, 중요한 볼일이라는거 끝냈어? "

" 응. 아주 깨끗이.. "




다 알아. 나 때문에 포기한거..

3년 8개월의 사랑을 묻어둔다는거




" 유노형, 우리 정말 한국에 가는거야? "

" 그럼.. 너도 나도 가고 싶어 했잖아. "

" 우와.. 기대된다. 너무 오랜만에 가는 곳이라.. "

" 나도.. 너와 처음 가보는 곳이라 궁금해. "




유노형이 지쳐 보인다.

이제 내가 있으니까 걱정없어.




" 창민아, 나 먼저 들어갈께. "

" 응. 들어가서 쉬어. "

" 넌.. 안 들어가? "




유노형은 내 대답도 듣지 않은채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더이상의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지 않는 사랑 속으로




여.름.안.에.서.




재중.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

여기는 인천, 인천 공항이다.




아.. 더워.

다시 홍콩으로 돌아갈까
















유노..

유노윤호




한국에서 바라보는 저 태양을 보니까

다시는 홍콩으로 돌아가기 힘들거 같아.




이런 뜨거움..

아직 홍콩에는 있지 않아.




유노와는 만남과 이별이 언제나 반복되어 왔어.

그래서 너가 날 떠난게 아닌가 싶어. 잡을 수 없이




저 태양이 부서진다면 너에게 갈께.

어떻게든 너를 찾고 말거야. 절대 포기 못해.




" 나, 아직 너와 헤어지지 않았어. "




낯선 한국 말에 내가 놀랬다.

내가 어째서 홍콩에 갔던 것일까

여기서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거야.










------------------------------------------------------------------------------------- 1













시아




꿈을 꾼다.

더운것도 잠시 잊은 채




" 엄마.. 엄마 맞지? "

" 우리 준수.. 엄마 보고 싶었지? "

" 그럼.. 이렇게 꿈에서라도.. "




분명 엄마였다.

깊은 꿈에 빠져든다.




" 준수야.. 일본에서 많이 힘들지? "

" 아냐. 사실은.. 조금 그렇긴 해. "

" 준수는 커서 뭐가 될거야? "

" 엄마도 알면서.. 가수가 될거야. "

" 그래. 준수는 가수가 꿈이지. "




엄마는 울고 있다.

아마도 나 때문인거 같다.




" 그런데 가수가 될 수 없다면 어떻게 할래? "

" 아직.. 그런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 "

" 그래도..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다면.. "

" 그럼 아주 슬픈 사랑을 할래. "

" 어떤 사랑이 슬프다고 생각하는데? "

" 곁에 있어도 그리운 사랑.. 하지만 영원해. "




엄마는 웃고 있다.

그리고 점점 희미해진다.




" 준수야.. 엄마를 위해 노래 한곡 불러줄래? "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는데.. "

" 그럼 엄마에게 미리 들려주지 않겠니? "

" 알았어. 특별히 엄마에게 처음으로 불러볼께. "

" 그래. 고맙다. 잘 들을께. "




Lately, I have had the strangest feeling

With no vivid reason here to find

Yet the thought of losing you"s been

hanging "round my mind ........................




Oh, I"m a man of many wishes

I hope my premonition misses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





내 노래가 끝났을 때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연습하며 부르던 그 노래가 최상의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바보같이.. 그것이 마지막의 내 노래가 될 줄은 모르고




여. 름. 안. 에. 서.




정말 어렵게 눈을 떴다.

다시는 못 뜰 줄 알았는데




" 이름을 말해보세요. "




시... 시.. 아.

시아, 시아라고




" 제 목소리가 안 들리세요? "




드... 들.. 리는.. 데

아주 잘 들리는데 왜




" 그럼 어서 이름을 말해보세요. "




어떤 여자가 내 귓가에 대고 크게 소리친다.

그 소리에 내 온 몸은 산산히 부서질 것 같다.




" 제 목소리 안 들리세요? "




내게 들리는 소리는 고함으로 변해가고

그 소리로 인해 나도 힘껏 소리치고 싶었다.




시... 시.. 아. 라니까

내 목소리.. 가 안 들리는거야?




" 눈은 떴는데 귀에 이상이 있네요. "




그 여자는 나를 한껏 쏘아보고는 등을 돌리지만

난 그 여자를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붙잡는다.




" 어머, 정신이 드세요? "




대답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 여자가 간호사라는 것을 이제 알게된다.




" 기다려요. 선생님 불러 올테니까.. "




그 여자는 아주 급하게 병실을 나간다.

그래. 이 곳은 병원이다. 내가 다친거야.




여. 름. 안. 에. 서.




믹키




나 때문에 망쳤다.

농구 시합도 내 사랑도




온 몸이 차갑게 식은 나.. 그리고 지금

태양을 향해 달려가 보지만 멀어져만 간다.




내가 더이상 여기에 있어야 할까..

이러다 내 온 몸이 얼어버릴지 몰라.




금새 그녀가 보고 싶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고

나와 왜 헤어져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녀에게 가야 한다.

그녀를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끝없이 달렸다.




" 너, 믹키 맞지? "




헉.. 헉..

숨이 차 오른다.




" 누.. 구 세요? "

" 나, 모르겠어? 저번에.. "




아.. 알겠다.

그녀의 친구다.




" 알아요. "

" 그런데 왜 그렇게 달리는거야? "

"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구요. "

" 헤어진것 때문에 그러니? "




그 순간 도저히 마르지 않을 눈물이 흘렀다.

난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데.. 겨우 나 한명은




"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




그녀의 친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한다.




" 말하지 말랬는데 일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봐. "

" 여기서 먼 곳을 말하는거에요? "

" 응. 아주 먼 곳을 말하는거야. "

" 그런데 왜 내게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은거죠? "

" 그건 너가 나중에 물어봐. 분명 대답해 줄거야. "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아래를 보고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그녀의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뜨거운 태양만이 날 녹여주고 있었다.




이제 이 곳 버지니아에는 그녀가 없다.

그러면 나도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녀도 알까.. 나도 곧 떠난다는 사실을




" 아주 먼 곳으로 "




여. 름. 안. 에. 서.




유노




이제 이 곳 홍콩을 떠난다.

내 가엾은 재중이를 두고서




" 유노형, 무슨 생각해? "

" 너 치료 잘 되야 한다는 생각 뿐이지. "

" 고마워. 분명 꼭 그럴거야. "




창민아, 미안해.

이제 정말 너만 볼께.




" 비행기 시간 늦겠다. 어서 서두르자. "

" 유노형, 이거 두고 가는거야? "




어떤걸 말하는거지?

그리고 유심히 고개를 들었다.




재중이가 내게 선물하던 수많은 사랑들이

날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른다. 아주 서글프게




" 창민아, 정말 늦겠다. 어서 나와. "

" 유노형, 이거 여기에 그대로 두는거야? "

" 어서 나오라니까 "




홍콩에 버린다.

사랑과 김재중.. 너를




그리고 난 태양을 녹일만큼 차가운 사람이 될거야.

널 언젠가 보게 되리라 생각해. 그래서 그런거야.

넌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녀석이니까.. 바보 같은 놈




여. 름. 안. 에. 서.




창민




이제 곧 있으면 한국으로 간다.

유노형이 사랑하던 사람을 여기에 두고




그런데 유노형이 이상하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듯




" 유노형, 무슨 생각해? "

" 너 치료 잘 되야 한다는 생각 뿐이지. "

" 고마워. 분명 꼭 그럴거야. "




내게 미안해 하는거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날 쳐다 보지마.





" 비행기 시간 늦겠다. 어서 서두르자. "

" 유노형, 이거 두고 가는거야? "




유노형이 아끼던 것들을 그대로 둔다.

일부러 그러는걸까.. 나를 위해서?




" 창민아, 정말 늦겠다. 어서 나와. "

" 유노형, 이거 여기에 그대로 두는거야? "

" 어서 나오라니까 "




고마워. 유노형

더이상 의심하지 않을께.




사실 내 눈의 치료를 위해 가는거지만

이미 형은 내 것이 된거야.

다른 누구의 사람이 될 수 없어. 이제는




여.름. 안. 에. 서.




재중




덥다. 더워.

짜증날만큼




우선 호텔로 가볼까?

돈은 별로 없지만 첫 날이니까




헉..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어딘가 허전한 이 기분은




내.. 내 지갑

그 안에 유노가 있는데

유노와 함께 찍은 사진이




" 소.. 소매.. 치기야!! "




어떻게든 찾아야해.

그런데 누가 훔쳐간거지?




혹시 저, 이상하게 생긴 사과머리

저 녀석 아냐? 저 녀석 같은데 내 기분에




" 너 거기 서!! 사과머리 너!! "




그래도 끝까지 모른척 걸어가네.

저 걸어가는 폼이 예사롭지 않아.

저 녀석이 틀림없이 훔쳐간거야. 분명해.




" 거기 서라고 했잖아!! "

" 왜 그러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




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 지갑보다도 소중한 너와의 사진이




너, 정말 한국에 오는거지?

나, 아주 낯선 곳에 온거야. 알아?

















----------------------------------------------------------------------------------------2






















시아




난 목소리를 잃었다.

무엇을 위해서 잃어야만 했을까




단순한 사고였다.

너무도 뜨거운 여름 날에

태양은 내 목소리를 삼킨 것이다.




축구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걸

소중한 내 꿈마저 녹아 버렸어.




" 시아, 그때 왜 그렇게 달려 나간거야? "




혁재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너무 더워서.. 너무 뜨거워서

축구 공을 끌다 뺏기고는 그대로 달아났어.




" 넌 농담이 나오냐? 불쌍한 놈 "




혁재는 날 끌어 안는다.

너무도 익숙하다. 이런거




더운데 붙지마.

시원하게 말하고 싶은데




" 덥지? 미안.. 안 그럴께. "




말할 수 없는 나를 위해 혁재는 말을 아낀다.

나는 핸드폰 문자 메세지로 열심히 대답을 하고서

핸드폰을 혁재에게 보여준다. 조금씩 익숙하다.




" 나하고 같이 한국에 가지 않을래? "




혁재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난 한국에 가본 적 없어. 나는 왜?




" 넌 여기 혼자잖아. 나하고 같이 가자. "




혁재야, 난 이미 이 곳에 익숙해 있어.

내가 이 곳을 떠난다면 너도 나도 힘들텐데




" 왜 힘든 것만 생각해. 좋은 것도 많은데 "



혁재야, 고맙지만 난 여기에 남을래.

끔찍한 사고를 겪은 곳이기도 하지만 여기 있을래.




" 그러지 말고 더 생각해봐. 한번쯤 가고 싶어 했잖아. "




그래. 가고 싶어했지.

그런데 그때는 이렇지 않았어.

이런 모습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구




" 왜 대답이 없어? "




혁재야, 내 한국 이름 알지?

그 이름으로 한국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 그럼 가기로 결정한거야? 그런거지!! "




혁재야, 너만 믿고 간다.

그 곳도 지금쯤 여름일테니까




" 그래!! 잘 생각했어. 준수야!! "




왜 갑자기 한국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나를 끌어당기는게 있는것처럼

누군가가 꼭 나를 기다려 줄것만 같았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정말 그녀가 떠났다.

그녀를 사랑하는 날 두고




나도 울고 태양도 울고 있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듯이

하염없이 눈물은 쏟아져 내린다.




" 믹키, 농구 한판 어때? "

" 그럴 기분 아냐. "

" 농구 하면서 다 날려버려. "

" 그럴만한게 아냐. 쉽지가 않거든. "

" 그러니까 잠시라도 잊어봐. "




그래. 잠시라도 잊기로 했다.

태양을 등지고 농구공과 싸운다.




" 믹키, 패스!! "



이번엔 제대로 패스한다.

멋지게 슛!! 하지만 무겁다.

온 몸이 무겁고 땀에 무겁다.




" 믹키, 패스!! "




이번에도 정확한 패스를 한다.

태양은 여전히 나를 주시한다.

그녀가 예전에 내게 그랬던 것처럼




" 믹키, 괜찮아? "




내게 달려드는 공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공은 내 손가락을 스치고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도 힘없이 땅위에 쓰러지고 만다.




" 믹키, 왜 그래? "




쉬운게 아니라니까..

잠시라도 잊을 수 없다니까




더럽혀진 내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또 닦는다.

이 곳에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녀가 생각난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게 이 곳을 정말 떠나려한다.




" 나, 갈거야. "

" 가다니.. 어딜 "

" 어디든 갈거야. "

" 믹키, 정신차려. "




다들 날 사랑에 병든 놈으로 본다.

난 병들지 않았다. 병에 걸리지 않았어.

내가 있을 곳을 향해 갈거야. 끝까지




여. 름. 안. 에. 서.




그녀도 한국 사람

나도 한국 사람이다.




한국으로 가볼까?

그런데 그녀가 없으면?




다시 여기로 와야할까?

이 곳, 버지니아로 다시




우선은 가보는거다.

그리고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




" 뭐가 문제야. 지금같은 상황에 "




사실 그녀가 없어도 좋다.

있다해도 그녀 곁에 갈 수가 없을테니..

이제 내게 아주 작은 용기도 남아있지 않다.

내 사랑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자신이 없다.




" 너 거기 서!! 사과머리 너!! "




한국에 도착하고 시끄러운 잡음 속에 내가 있다.

내가 그 안에 속해 있으며 내가 그 안에 들어간다.




" 거기 서라고 했잖아!! "




가까이서 나를 향한 외침이 힘껏 흔든다.

내게 하는 말 같은데.. 어쩐지 이상하다.




" 왜 그러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




내 몸을 마구 뒤 흔드며 이리저리 만진다.

그녀에 대한 정리도 끝나지 않은채 나는 시선을 맞춘다.




" 무슨 일이세요? "




진지하게, 아주 진지하게 물어보지만

내 몸을 미치도록 더듬는 손길에 무섭기만 하다.

내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시간은 무섭게 흐른다.




" 없어. 모든게 다 "




그 사람은 말한다.

그것이 내게 하는 말인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지 못한채 내 귀에 스며든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여. 름. 안. 에. 서.




창민




한국에 도착했어.

우리를 기다리던 이 곳에




" 창민아, 힘들지 않아? "




유노형이 있어서 전혀

이제 힘들지 않을거야.




" 택시타고 어서 가자. "




유노형이 나를 먼저 태우고 뒤따라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 포근히 내 손을 잡아 나를 끌어 당긴다.




" 어디로 모실까요? "

" 서울 화수동이요. "




화수동은 아주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인적이 드물어 우리에게 알맞은 곳이다.




" 유노형, 형이 다 알아본거야? "

" 그래. 너와 내가 어울리는 곳으로 알아놨어. "




유노형은 미리 알아보고 나를 데려간 것이다.

나는 그저 유노형과 함께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 참, 그리고 너가 다녀야 할 병원과도 가까워. "

" 정말? 근데 병원에 다니면 정말 나아지겠지? "

" 그럼.. 그런 생각만 하는거야. 오로지 너와 나만 "




유노형이 잡아주는 내 손이 떨린다.

유노형도 알까.. 형밖에 없는 나를..




" 유노형, 언제부터 자세히 알아본거야? "

" 너의 눈을 치료해 주는 병원이 한국에 있다는걸 알고부터 "

" 정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내 마음 알지? "

" 알아. 그리고 앞으로도 너의 마음만 알아 갈거야. "




유노형은 한국에 온걸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면 벌써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유노형은 내 손을 놓지 않는다.




" 다 왔습니다. "




유노형은 돈을 지불하고 나와 함께 택시에서 내린다.

택시에서 내린 곳은 아주 조용하며 깨끗한 작은 동네였다.




" 눈.. 부.. 셔.. "




태양의 눈부심이 좋아 해본 말인데

유노형은 내 눈을 걱정하고는 손바닥으로 그늘을 만들어 준다.




" 밖에 있는건 좋지만 태양을 직접적으로 보는건 좋지 않아. "

" 알았어. 너무 좋아서 그런거니까.. 다시는 안 그럴께. "

" 창민아, 너 내가 제일 좋은거 아니였어? "

" 유노형, 삐칠 줄도 알아? "

" 그럼.. 내가 지금 저 바보같은 태양을 질투하고 있다구 "




따뜻하다.

유노형의 마음이.. 사랑이




태양을 담아내는 그 곳으로

유노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서로가 말없이 천천히 걸어간다.



















----------------------------------------------------------------------------------------------3




















재중




없어. 모든게 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다면 유노가 돌아오겠지.

그러니까 난 찾을 수 없는거야.




" 유노는 절대 돌아오지 않아. "




유노가 돌아올거라면

내가 여기 있지도 않았어.

정말 유노를 만날 수 있을까




내 안에 담아두던 태양이

점점 빛을 잃어가며 저문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 어, 저 사과머리.. "




내 실수로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과머리를 한 녀석은 저만치 걸어간다.




그대로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과도 하고 싶고 정말 할 말이 있기도 해서




" 죄송하지만 "

" 저요? "

" 네.. 죄송하지만 "

" 정말, 자꾸 왜 그러세요? "

" 아까는 죄송합니다. "

" 저를 아세요? 저는 모르겠는데 "

" 그런게 아니라.. 정말 죄송해요. "

" 저도 기분 좋지 않으니까 가세요. "




이러면 안된다.

어쩔 수 없지만




" 제가 지갑을 잃어 버려서요. "

" 제가 가져가지 않았어요. 아직도 의심되세요? "

" 아니요. 그런게 아니구요. "

" 저, 지금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건들지 마세요. "

" 건들지 않을께요.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




사과머리를 한 녀석도 나처럼 지쳐 보인다.

정말 나처럼 복잡한 기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으로 내 얘기를 한다.




" 저는 김재중이라고 해요. 잠깐만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

" 간단하게 말하세요. 그럼 "

" 제가 지갑을 잃어 버렸어요. "

" 네. 그런데 제가 가져가지 않았어요. "

" 그건 저도 잘 알구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




상당히 지쳐 보인다.

난 도움을 받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필요한듯 싶다.




" 지갑을 잃어 버려서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어요. "

" 한국에 연락할 사람 없어요? "




지쳐 보이지만 내 정곡을 찔렀다.

잠시 할 말을 멈추다가 다시 시작한다.




" 없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

"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는데요? "

" 저를 좀 도와 주시겠어요? "

" 제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요. "




내가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몰랐다.

진심으로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겠다.




" 저에게 돈을 빌려 주는건 곤란하죠? "

" 아무래도 그렇죠. 저도 얼마 없으니까요. "

" 그러면 제가 하루만 동행해도 될까요? "

" 동행이요? 저와 같이 다니겠다구요? "

" 그래도 된다면.. 나중에 꼭 갚을께요. "

"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럼 그렇게 해요. "




이제야 내가 귀찮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래도 고맙기는 그 전과 다름 없다.

건방지긴 하지만 마음은 여린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실수를 했으니까




" 어디로 갈까요? "




오히려 내게 질문을 한다.

당황해서 대답을 찾지 못한다.




" 저도 비행 때문에 쉬지 못했는데 쉬는건 어때요? "

" 그렇게 해요. 저도 비행을 해서.. "

"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왔는데 "

" 아, 그러세요? 저는 홍콩에서 왔어요. "




이름을 물어보는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 가까운 호텔 괜찮죠? "

" 네. 저기 보이네요. "

" 그럼 저기로 갈까요? "




차마 같이 걷지는 못하고 뒤따라 조심스레 걷는다.

유명한 호텔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텔인데 푹 쉬고 봐야겠다.




" 저도 돈이 얼마 안되서 같은 방 써요. "

"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




동방호텔 902호

그 안으로 들어간다.




여. 름. 안. 에. 서.




모든게 이상하다.

어느 것도 낯설지 않기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거지?

정말 쉬기 위해 이 곳에 있는걸까?




아니다.

나는 유노를 찾으러 왔다.




그리고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야 한다.

그 안에 있을 유노와의 사진을




우선은 푹 쉬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면 된다.




우선은, 우선은

눈을 감고 유노를 만나야겠다.




꿈 속에서라도

유노가 나를 찾아줬으면 하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는 있을지




" 저.. 이제 씻으세요. "




내게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한채

그대로 깊게,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든다.




정말 유노가 찾아와 나를 흔들어도

눈을 뜰 수 없는 어두운 어둠 속으로




여. 름. 안. 에. 서.




믹키




" 저.. 이제 씻으세요. "




나보다 더 지쳐 있던걸까..

내게 공손히 말하던 사람은 이미 잠들어 있다.

내가 깨울 수도 깨울 힘도 없기에 같이 잠든다.




그렇게 소리없이 태양은 사라지고

날이 밝아서야 태양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태양은 소리없이 나를 깨운다.

빛에 물든 유노형을 유심히 바라본다.




" 나, 조금 더 잘께. "




유노형은 눈도 뜨지 않은채 중얼거린다.

하지만 유노형의 팔이 나를 품안으로 이끈다.




" 그렇게 해. 그럼 "




유노형이 깨지 않도록 내가 속삭인다.

따뜻하다. 이 따뜻함을 너무나 갖고 싶었다.




" 따 뜻 해 .. "




여. 름. 안. 에. 서.




시아




" 시아, 도와줄거 없어? "




혁재야, 이제 준수라고 불러.

그러기로 했는데 왜 자꾸 그래.




" 아, 맞다. 미안 "




혁재야, 난 별로 짐이 없어.

이 작은 가방만 있으면 끝이야.




" 너무 간단한거 아냐? 난 이렇게 많은데.. "




혁재야, 어서 가자. 공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 시아, 덥지 않아? 물이라도 살까? "




혁재야, 너 혼자 마셔.

나 이제 너랑 얘기 안해.




" 미안, 미안.. 한국에 가면 정말 준수라고 부를께. "




몰라. 몰라.




" 너무 습관이 되서 그래. 시아라는 너가 "




혁재는 물을 사야 한다며 날 두고 간다.

내 작은 가방과 혁재의 짐 꾸러미들을 두고서




내가 또 다시 도쿄로 올 수 있을까

이 곳과 영원히 이별하는 기분이 들어.




" 시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혁재야, 나 가고 싶은 곳이 있어.




" 지금? 여기 지금 공항이야. "




혁재야, 이 곳 도쿄가 아닌 한국에

내가 꼭 가야 할 곳이 지금 생각났어.




" 너, 나하고 기숙사에 있기로 했잖아. "




혁재야, 나 그 곳에 가야할 것만 같아.

나, 그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지? 그렇지?




" 우선 비행기부터 타러 가자. "




혁재는 작은 생수 병을 입 안에 가득 담으며

내 작은 가방까지 어깨에 두르고는 날 이끈다.




" 시아, 대체 거기가 어딘데 "




혁재야, 나 병원에 있을 때 엄마가 꿈에 나왔어.

그건 내가 너에게 말했을거야. 아니, 알려준거지.




" 설마, 너 엄마를 찾으러 가는건 아니지? "




혁재야, 엄마를 찾는다는게 아냐.

엄마가 계셨던 그 곳에 내가 가야해.




" 시아,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알아? "




혁재야, 얼핏 들은 기억이 있어.

서울 화수동이라고 하던데 정말 있을까?




" 시아, 비행기 안에서 말하자. "




혁재는 내가 걱정 되었는지 내 팔을 잡는다.

내가 정말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가고 싶다.




" 시아, 거기서 지내면 누가 널 돌봐주는데? "




혁재는 은근히 내 걱정을 많이 한다.

그걸 알기에 혁재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혁재야, 거기라면 나 혼자서도 잘 지낼것 같아.

물론 너는 내 말을 믿을 수 없겠지만 난 그래.




" 어, 비행기 뜬다. 가만 있어. "




혁재는 한국에 부푼 꿈을 키우는 중이다.

그 꿈을 지켜주고 싶기에 짐이 될 수 없는걸




" 시아, 심심하지? "




혁재야, 넌 그냥 조용히 자.

괜히 나 신경쓰지 말고.. 어서




혁재는 바로 눈을 감고 손에 힘을 푼다.

그 안에 내 손이 떨어지고 나는 창밖을 본다.




여. 름. 안. 에. 서.




조금씩 알거 같아.

내가 가야할 곳을




내가 지금 하늘 위에 있지만

꼭 태양과 가까이 있는건 아냐.




정말 태양과 가까이 있는 곳을 찾아

말 없이.. 말 할 수 없이 찾아 갈거야.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거야.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여름 안에서..












---------------------------------------------------------------------------------------------- 4




















재중




태양이 내 가슴을 두드린다.

너무 뜨거워 그만 벌떡 일어난다.




여기가 어디지?

호텔.. 인것 같은데




주위를 살펴보니 낯설지 않은 녀석이 있다.

어제, 이 곳에 데려와 나를 쉬게 해주던 착한 녀석

아니, 사실은 내가 동행하자고 계속 부탁했지.

가만히 잘 가던 녀석을 소매치기라고 몰았으니까




너무 고마운데 아직은

내가 갚을 길이 없다.




다음에.. 아주 다음에 내 근처에 있어 준다면

내가 꼭 어젯밤 만큼이나 푹 쉴 수 있도록 해줄께.




너무 미안해서 그냥 간다.

꼭 한번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 잘 있어. "




조용히 문을 열어 닫고는 내 몸만 빠져 나온다.

그 아이의 지갑을 열어 보기는 했지만 가난하다.

돈은 있어 보이는데 갑자기 한국에 온것처럼 보인다.




그 애도 지갑 안에 사진이 있는데

여자 사진이다. 그 여자 때문인가?




꼬.. 르르.. 륵




아, 배고파.

돈이 없는데..

다시 갈까..




" 그럴 수 없지. "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뒤로 한채

배를 한 손으로 가볍게 움켜쥐며

돈이 될만한걸 찾기 위해 움직인다.




지금은 돈이 필요해.

밥이라도 사 먹을만한




여. 름. 안. 에. 서.




믹키




태양 아래로 내 몸이 뜨겁다.

눈을 뜨려 했지만 조금 더 조금만 더




내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 시각은

이른 오후였다. 너무나 늦잠을 잔것이다.




왜.. 안 보이지?

이제 씻는건가?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이미 어디론가 가버린 느낌




벌써 가버렸구나.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면

그때도 그 사람이 여기 있었을까




아직 내 이름도 말하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홍콩에서 왔다고 했어.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뭐였지?




잠시 잊고 있던 그녀의 사진이 보인다.

분명 지갑 안에 넣어둔건데 왜 나와있지?

혹시 그 사람이 내 지갑을 만진게 아닐까?




가까이 다가가 내 지갑을 열었지만 그대로다.

다만 그녀의 사진이 지갑 밖으로 나와 있을 뿐




배가 고픈데..

얼마없는 내 돈이지만

밥 한끼는 사줄 수 있었는데




" 밥이나 먹으러 가자. "




호텔 식당으로 내려간다. 여기는 9층이니까

혼자 먹는게 쓸쓸하기는 하지만 내가 원한거니까




우선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정해진게 없는데.. 복잡하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 창민아, 늦었어. 어서 준비해. "

" 유노형, 무슨 잠을 그렇게 자? "

" 나도 모르겠어. 일찍 잠들었는데 "




부지런한 유노형이 늦잠을 잤다.

아직은 괜찮아. 처음이고 시작이니까




" 그럼, 병원에 가볼까? "




유노형이 이끄는데로 집을 벗어나

근처의 조그마한 작은 건물 안으로




" 유노형, 여기가 병원이야? "

" 그래. 병원 맞아. 이상해? "




유노형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좋은 예감이 들지 않았다.




" 자네가 윤호군인가? "

" 네. 그리고 이 애가 창민입니다. "

" 그래. 어서 들어와라. "




유노형과 저 의사는 아는 사이다.

아니면 나 때문에 아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 그럼 검사를 해볼까? "




유노형은 진찰실에서 나가지 않았다.

내 곁은 아니지만 근처에서 날 지켜본다.




" 윤호군이 말한것과 같네. 힘들겠어. "




힘들어도 좋다. 그런건 상관없다.

그런데 유노형이 힘들어 하는건 싫다.




" 점점 시력을 잃게 될텐데 큰 방법이 없어. "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다.

그런데 유노형이 걱정한다.




" 그럼 우선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




유노형은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 매일 치료 받으러 와야 하나요? "

" 아쉽게도 특별한 치료 방법은 없어. "




유노형은 애써 질문을 만들어 보려 하지만

유노형에게도 어려운 질문이 있나 보다.




" 너무 어두운 곳에만 있지 말고 가끔은 밖에 있는 것도 "




유노형은 내 손을 잡고 날 일으킨다.

난 이미 알고 있는데.. 고칠 수 없다는거




" 치료가 되는거죠? 그렇죠? "

" 윤호군, 그건 약으로도 할 수 있어. "

" 어떤 약이죠? 먹는건 힘들지 않나요? "

" 꾸준히 먹는 약도 있고 힘들면 이 약을 "




의사는 자신의 데스크 서랍 안에서 열심히 찾는다.

그 사람의 손에 쥐어진건 작고도 투명한 봉투, 약이다.




" 이 약이 유지는 될거야. "

" 많이 독할텐데.. 이 애가 먹어도 괜찮은거죠? "

" 그런데 너무 어려서.. 머리가 아플 수도 있어. "

" 그러면 이 약은 정말 필요할 때만 먹어야겠네요. "

" 그렇지.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거나 심해질 때 "




두렵고도 무서웠다.

이런 기분을 느낄 줄은




" 점점 시력을 잃는다고 했는데 갑자기 앞이 안 보일 수도 있나요? "

" 때로는, 아주 가끔은 그럴 수도 있지. "




내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표정을 태양에 빼앗기고 있다.

유노형이 볼 수 없게 고개를 돌린다.




" 창민아, 이 약도 우선은 가져가 보자. "




유노형은 내 대답도 듣지 않은채 그 약을 챙겼다.

그리고 정말 큰 돈을 그 의사에게 주며 질문한다.




" 꾸준히 먹어야 한다는 약도 주세요. "

" 그건 나가서 간호사에게 말하면 줄거야. "

" 이 약은 구하기 힘든거죠? 여기 오기를 잘한거죠? "

" 아마도 그럴걸세 "




유노형은 내 손보다도 그 약 봉투를 꽉 쥐고 있다.

작고 좁은 진찰실에 투명한 태양의 얼룩이 물든다.




" 그럼 다음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

" 아니, 그 약들로도 충분할거야. "




유노형은 내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노형은 몰랐던 것이다. 내게는 시간이 없다는걸




" 가자. 창민아 "




유노형은 간호사에게 꾸준히 먹을만한 약을 찾는다.

약의 처방을 받고 그것도 주머니 깊숙이 넣은채 나를 찾는다.




" 창민아, 뭐해? "

" 유노형, 여기는 대체 무슨 병원이야? "




아무리 둘러봐도 병원 같지가 않다.

그런데 유노형은 이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 너를 낫게 해주는 곳이지. 이상할거 없어. "




그래도 다행이다.

이 곳을 또 오게 될 일이 없을테니까




" 어서 나가자. 유노형 "




유노형과 밝디 밝은 세상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는 태양이 우리를 질투한다.




" 창민아, 너무 뜨겁지? "






사랑만큼이나




" 뜨거워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노형은 나를 꼭 안아준다.

숨이 막히도록 좋아서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몰랐다.




" 사 랑.. 해. "




여. 름. 안. 에. 서.




시아




우리, 정말 한국에 온거야?




" 준수야, 저 태양 좀 봐. 눈을 못 뜨겠어. "




혁재야, 태양은 얼마든지 볼 수 있어.

내가 말한 곳으로 어서 데려다줘. 응?




" 넌 오자마자 벌써 그 소리야? "




혁재야, 너도 바쁘잖아. 다 안다구

그러니까 우선은 나를 책임져야지.




" 시아, 내가 너 버리고 갈까봐 그래? "




혁재야, 버리고 가는건 좋은데

한번만 더 시아라고 부르면 물어 버린다.




" 정신이 없어서.. 미안 "




혁재야, 택시부터 타자.

그리고 화수동이라고 말해.




" 알았어. 넌 나랑 빨리 헤어지고 싶구나? "




혁재야,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 농담이구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어서 쉬고 싶어서 그래.




" 그런데 꼭 거기에 가서 쉬어야 하는거야? "




혁재야, 아직은 마음이 불안해서

절대 너 때문은 아니고 나 때문에




" 저기 택시 온다. 어서 잡자. "




혁재와 나는 택시에 몸을 숨기지만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태양을 숨지 못한다.




" 화수동이라고 했지? "




혁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내 모습이 혁재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 화수동으로 가주세요. "




화수동은 어떤 곳일까..

내가 그동안, 아주 가끔 그려보던

그런 조그맣고 깨끗한 곳일지 궁금해.




" 준수야, 너무 걱정마. 분명 잘 될거야. "




그래. 그럴거야.

이제 곧 너와 헤어지겠구나.

그동안 쭉 함께였는데

나의 고마운 친구




혁재야, 고마워




" 쑥스럽게.. 이제 정말 준수라고 부를께. "




태양은 아직 저물지 않는다.

내가 그 곳에 도착하지 않는 한











-------------------------------------------------------------------------------------------------- 5

















믹키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다시 902호로 몸을 숨긴다.




이제 이 곳을 나서야 하는데

내가 갈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돈도 조금씩 떨어져 간다.

그리고 돈은 더이상 생기지 않는다.




" 어떻게 하지? "




우선은 배부름에 지쳐 침대에 누운 채

조금씩 태양을 향해 눈을 살며시 감는다.




다시는 깨지 않을

깊은 곳으로 몸을 맡긴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유노형과의 가벼운 포옹을 풀고

우리들을 반기는 집으로 향한다.




" 유노형, 꼭 우리만 있는거 같아. "

" 맞아. 너와 나만이 있는 곳이야. "




정말?




" 유노형, 그게 무슨 말이야? "




이 마을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태양이 눈부실 뿐이다.




" 너도 보다시피 여기는 아무 것도 없어.

이 거리를 보면 저기 저 전봇대만이 있잖아. "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저




" 유노형, 저기 저 3층 건물은 뭐야? "

" 저거? 꽤 낡았지? 아무도 살지 않는대. "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태앙을 마주보고 있어.




" 유노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

" 우리 집 구할 때 부동산에서 들었어. "




왜 아무도 살지 않을까?

눈이 무섭도록 따가울까봐?




" 저기 보면 큰 창이 하나 있잖아.

저 안으로 햇빛이 너무 강해서 그렇대. "

" 그런 이유로 사람이 살 수 없는거야? "

" 그건 아니지만.. 불편할 수도 있잖아. "




그렇긴 하다.

그래서 너무 눈부시다.




" 창민아, 이 곳은 건물이 세개뿐이야. "

" 우리가 사는 곳하고 저기 저 3층 건물? "

" 그래. 그리고 이 전봇대와 저기 저쪽에 건물이 또 있어. "




우리는 이미 전봇대에 가까이 와있다.

그리고 우리 눈에 조금은 떨어진 곳에도 건물은 있었다.




" 유노형, 저 건물에는 사람이 살아? "

" 아쉽게도 아니, 그 곳에도 사람은 없어. "

" 왜? 저 건물은 창문이 작아서 괜찮은데 "

" 다만, 아무도 이 곳에 오지 않을 뿐이지. "




그런건가, 맞아.

이 곳에는 아무 것도 없어.




아마 이 곳에는

유노형과 나와의 사랑만이

눈부시게 넘쳐 날거야. 분명




" 유노형, 저 건물은 작아서 잘 안 보인다. 몇층인지 알아? "

" 저기 저곳은 2층이긴 하지만 1층에서만 살 수 있대. "




저 건물도 아까 그 건물과 같이 낡아 보인다.

햇빛도 잘 들지 않을것 같고 바람만 불 것 같다.




" 유노형, 그러면 우리가 사는 집이 제일인거지? "

" 그럼.. 너와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 당연하지. "




어느 덧, 우리는 우리들을 기다리는 1층 건물 앞에 서있다.

여기서는 아까 보던 그 건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전봇대도

전봇대에서는 그 3층 건물이 보이며 3층 건물에서도 역시

전봇대만이 보일 것이다. 정말 나와 유노형만이 존재한다.




" 창민아, 우선 약부터 먹는게 "




유노형은 벌써 물이 중간쯤 담긴 컵을 내게 내민다.

유노형 앞에서 꾸준히 먹어야 할 알약을 가볍게 삼킨다.




" 창민아, 괜찮지? "




유노형과 나는 웃고 또 웃는다.

태양도 언제나 우리를 향해 웃을거다.




" 유노형, 난 여기가 좋아. "

" 난 이 곳에 너가 있어서 좋은걸 "




유노형이 날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내 생각과 맞았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 준수야, 미안한데 "




내 눈치를 살피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혁재야, 너 기숙사로 가야하지?

늦었겠다. 어서 가. 난 괜찮으니까




" 준수야, 그런거 아냐. "




그럼?




" 너, 이 곳에서 지낼거 아냐? "




맞아.




" 그럼 집부터 구해보자. "




혁재야, 너는?

너는 기숙사로




" 준수야, 난 기숙사로 가야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있어서 기뻐. "




무슨 뜻이야.

설마 그건 아니겠지?




" 저기로 가자. 빨리 와. "




혁재는 내 한쪽 팔을 끌어 당긴다.

허름한 부동산으로 들어가 숨을 돌린다.




혁재야, 여기는 부동산이잖아.




" 알아. 여기 앉아 있어. "




혁재는 나를 의자 위에 앉게 하고는

부동산 사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무슨 말을 하는걸까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조용히 창밖만 응시한다.

태양은 이 마을을 다 삼켜 버릴 듯 무섭게 쏘아댄다.




" 준수야, 이제 이리 와봐. "




혁재가 손짓하는 곳으로 간다.

부동산에 혁재의 짐만 놔둔채 나선다.



혁재야, 어디로 가는거야?




" 준수야, 너가 지낼 곳으로 "




혁재야, 너 무슨 돈으로




" 내가 해 줄 수 있는거야. 그 뿐이야. "




혁재야,

아무튼 고맙다.




" 내가 이제부터 조금씩 조금씩 도와줄께. "



혁재야,

모두 다 고마워.




" 너가 말을 할 수 있었을 때 듣지 못했던 말이네. "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혁재는 그저 웃기만 한다. 바보같이




" 너가 말을 할 수 있었을 때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




맞는 말이야.

그때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 저기 보이죠? "




부동산 사람은 혁재와 나를 향해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히 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 준수야, 겉으로 보기에 어때? "




내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저 건물이 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것 같았다.




" 준수야, 안 보여? 바로 저기잖아. "




혁재야, 보여. 봤어.

난 아주 좋은데 넌?




" 나는 무슨.. 너만 좋으면 된거지. "




우리는 지금 전봇대 앞에 서있다.

전봇대의 작은 그늘 안에서 그렇게




" 준수야, 3층 건물인데 3층이래. "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내가 머무를 곳이 바로 저기에 있어.




" 준수야, 3층인데 괜찮을까? "




혁재야,

난 3층이 제일 좋아 보이는데?




" 정말? 사실은 3층이 "




혁재야, 알아.

아니까 말할 필요 없어.




아주 좁고 작은 건물이었다.

한층에는 넓은 방 하나만이




" 준수야, 3층이 제일 싸대. "




혁재야,

그런거 필요없어.

난 3층이면 되니까




" 준수야, 그럼 올라가 볼까? "




혁재의 한쪽 어깨를 차지한

내 작은 가방을 내 어깨로 옮긴다.




한 사람만으로도 꽉 찬

좁은 계단을 끝까지 올라간다.




" 준수야. 계단은 좁지만 괜찮다. "




그래.

계단 안에도 태양의 움직임이 있어.

그래서 저절로 웃을 수가 있는거야.





여. 름. 안. 에. 서.




재중




꼭 더운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 거기, 똑바로 해. "

" 네, 알겠습니다. "




알았다구요.

근데 힘들다구요.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된다.




언제나 내 몸에 땀이 흐른다.

그렇게 살아보려고 돈을 구한다.




조금만 기다려.

유노, 널 잊지 않았어.




" 거기, 뭐하는거야!! "

" 아, 네!! 죄송합니다. "




유노를 생각할수록 일이 힘들다.

그래서 아주 잠시만 유노를 잊어보려 하지만




도저히

지워지지가 않는다.










-------------------------------------------------------------------------------------------- 6














믹키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가벼워지는 지갑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어떤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다시 호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하룻밤을 지샐 돈이 되지 못했기에




" 이제, 어디로 갈까? "




한국의 밤거리는 쓸쓸하다.

그녀의 사진도 내 모습도 역시




춥다.

점점

추워진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리고 열심히 벌었다.




난 열심히 했어.

이제 곧 끝나가.




아직은 부족하다.

더, 더 열심히 끝까지




" 유노, 너 어디에 있는거야!!! "




큰 소리로 세상에 말한다.

하지만 모두들 바라만 볼뿐이다.




" 어디에.. 어디에 있는거냐구!!! "




그래,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그저,

잘 있어줘.




" 내가 갈때까지만 "




내가 곧

갈테니까




내 목소리는 달빛에 물든다.

그리고 거리의 바닥에 스며든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내가 3층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은 나를 따스히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내가 다치지 않게




" 준수야, 밖에서 볼때보다 창이 너무 큰것 같다. "




혁재야, 그래도 답답하지는 않을것 같아.




" 준수야, 낮에는 눈도 못 뜨는거 아냐? "




혁재야, 난 태양이 좋아.

낮에는 눈을 못 뜰 수도 있겠지만




" 준수야, 근데 밖에 보이는건 저 전봇대 뿐이다. "




아냐, 저기

태양이 있잖아.




" 준수야, 왜 대답이 없어."




혁재야, 너 가봐야 하는거 아냐?

기숙사에서 너 기다릴텐데 괜찮아?




" 준수야, 미안하다. 여기 있지 못해서 "




혁재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여기 있겠다고 한건데




" 준수야, 그게.. 내가 자주 오지 못할것 같아서 "




혁재야, 알아.

내 걱정은 마.




" 준수야, 내가 어떻게 너 걱정을 안할 수 있겠어. "




혁재야, 마음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난 여기가 좋고 아주 편해.




" 준수야, 정말 그런거지? 너 믿을거다. "




혁재야, 너가 날 정말 믿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도 나도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




" 준수야, 시간이 늦어서 난 아무래도 "




혁재야, 지금가도 많이 혼나겠다.

어서 가봐. 나가보지는 못할것 같다.




" 준수야, 넌 그냥 여기 있어. 그렇게 해. "




혁재야, 우리 서로 마음 편하게 먹자.

내 걱정 많이 하면 나 힘들어 지는거 알지?




" 준수야, 알았어. 필요한거 있으면 문자로 보내고

그럼 내가 우편으로라도 보내줄테니까 부담 갖지마. "




혁재야, 어서 가봐.

그런 얘기 끝도 없겠어.




" 준수야, 시간나면 바로 책 구해서 보낼께.

너 글 쓰는것도 좋아하는데.. 이것저것 알아서 "




혁재야, 너 늦었다고 혼나면 내 책임 아니다.

그러니까 어서 가라고 할 때 부지런히 가는게 좋을걸?




" 준수야, 내가 또 언제 오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지. "




혁재야, 제발 그만

너가 이러면 나 힘들어.




" 목소리를 잃지만 않았어도 너가 이 곳에 있을 이유도 없는데 "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맞는 대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 준수야, 미안해. 너무 화가나서 "




혁재야, 그냥 가

나, 너 가는거 보고 싶어.




" 준수야, 그럼 갈께. 꼭 문자 보내. "




일부러 대답 하지 않았다.

혁재가 어서 가야 하니까




알았어.

문자 보낼테니까




" 준수야, 정말 간다. 잘 있어. 잘 지내. "




이번에도 대답 하지 않는다.

물론 너도 잘 지내야해. 몸 건강해.




혁재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제야 나선다.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들린다.




혁재가 내게 미안해야 할 이유 같은건 없는데

혁재가 왜 내 짐까지 안으며 괴로워해야 하는걸까




창 밖으로 혁재가 보인다.

혁재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나를 위해 고개 한번 들지 않는다.

아마도 울고 있는거다. 울고 있다.




혁재야, 울지마.




보낼 수 없는 글을 남기고는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혁재는 부동산으로 향했고

그 뒤로 혁재의 모습은 없었다.




혁재야, 고마워.

이 곳에 데려다줘서




여. 름. 안. 에. 서.




창민




일주일이 흘렀다.

그것도 무섭도록




" 유노형, 오늘부터 나가는거야? "




유노형은 바쁘게 움직인다.

내 약을 챙기느라 조금 늦은 모양이다.




" 유노형, 약은 내가 챙겨 먹는다니까 "

" 창민아, 그래도 내가 챙겨주는 약이 더 좋지 않아? "




그건

그렇지만




" 유노형, 그래도 늦을때는 내가 알아서 먹을 수도 있어. "

" 창민아, 나 조금 늦었는데 설마 무슨 일 없겠지? "

" 유노형, 이러지 말고 어서 신발부터 신어. "




유노형은 급하게 나를 껴안는다.

아쉽지만 유노형의 품에서 나온다.




" 창민아, 나 그럼 간다. "




유노형이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유노형의 등을 열심히 밀고 또 민다.




" 창민아, 나오지마. "




이번에는 유노형이 내 두 어깨를 민다.

유노형만큼이나 나도 헤어지기가 싫다.




" 조금 있으면 다시 볼텐데 "




유노형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대답한다.

유노형은 내 손에 약을 쥐어주고는 말한다.




" 창민아, 꾸준히 먹어야 할 약은 너에게 모두 줄께.

내가 이제 매일 매일 나가게 되면 놓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 약은 정말 중요한거니까 이것도 잘 갖고 있어. "

" 유노형, 정말 늦겠다. 어서 뛰어가. "




유노형의 힘찬 몸짓에 내게도 힘이 생긴다.

유노형이 없는 동안에도 잘 견딜 수 있을것 같다.




지금 유노형이 가고 있는 곳은 댄스 아카데미

유노형은 그 곳에서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친다.




생각만 해도 멋져.

내게도 가르쳐 준다면




" 청소부터 하자. "




유노형이 내게 건네준 약들을 살핀다.

꾸준히 먹어야 할 약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급할 때 먹는 약은 내 안쪽 주머니에 자리를 차지한다.




언젠가

이 주머니에 있는

약을 먹을 날이 오겠지




한 알, 한 알씩

죽음을 향해서




조금씩 먼지를 턴다.

조심히 창문도 열면서




" 시작해 볼까? "











--------------------------------------------------------------------------------------------- 7














믹키




눈을 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태양이 보이지 않아.

아직은 눈을 뜰때가 아닌데




다시 눈을 감지만

눈물만이 흐를 뿐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지쳐, 앉아 있었지만

조금씩 몸을 지탱하던 힘마저 서서히 풀어진다.




이대로 지쳐가면 안되는데

자꾸만 지쳐가. 죽을것만 같아.




차리리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태양에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건지




" 내가.. 싫어.. "




그녀를 사랑한 내가 싫다.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싫다.




이미 차가운 시멘트에 내 몸이 길게 쓰러진다.

서울 한복판의 어느 한 구석에 내가 버려진다.




내가 꼭 쓰레기 같아.

내가 나를 길거리에 버렸어.




이런 나를 그녀가 본다면 돌아서겠지.

그녀가 나를 볼지 몰라. 봤었을지도 몰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일어서야 겠어.




손 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을 뜰 힘조차도 내게는 없던 것이다.

그래도 아침을 기다렸는데.. 누구보다도




서서히 안개가 피어 오른다.

눈을 뜨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버려진 것도 며칠 째니까




" 내일은.. 볼 수 있을거야. "




다음에 눈을 뜰 때는 꼭

태양이 내 눈을 비춰 주기를




여. 름. 안. 에. 서.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그 다섯명에게도 다시 여름이 찾아왔다.




그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고

이제 서서히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아직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고

이제 그 곳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다시 여름이 찾아 왔지만

내 목소리는 내게 오지 못했다.




말 할 수만 있다면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아직도 하다니

내가 너무 우습잖아. 그만두기로 했지만




내가 말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건 이유가 있어서다.

사실 그런건 이미 포기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저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시는 태양을 향할 수 없게 된 이유도




모두 저 아이 때문이다.

그 아이만 바라봐야 하니까

저 아이가 내 이유가 된 것이다.




매일이면 정확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태양이 제일로 눈부실 때 그 아이가 나타난다.




바로

저 전봇대에 기댄채

누군가를 기다린다.




태양의 눈부심이 점차 흐려질때면

그 아이가 기다리는 누군가가 달려오고

그 둘은 내 눈에 담을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그렇게 바라 보기를 일년 째

일년이 되서야 내 목소리가 그리웠지만

항상 그렇다. 바라볼 수 있는걸로도 행복한거다.




이건

나만의

비밀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를 한번도

봐주지 않았다.




언제나

양쪽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진채

입술만 자꾸 부딪힌다.




무슨 노래를 들을까

나도 듣고 싶은데 흠흠




가끔 이런 상상도 한다.

그 아이가 있는 전봇대 주위에서

이어폰을 하나씩 꽂아 서로를 마주보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아니, 사랑스럽고 행복하기만 해.




이런게 사랑일까?




푸훗,




바보같아.




여. 름. 안. 에. 서.




창민




오늘도 유노형을 기다린다.

날씨가 유난히 좋아 기분이 좋다.




유노형은 지금도 댄스 아카데미에서 춤을 가르친다.

생각보다 오래 다니는 것 같다. 유노형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유노형을 기다리는 곳은 집이 아니다.

매일같이 들뜬 마음을 감추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걸




그래도 이 곳은 아주 작은 그늘이 있어.

이 전봇대에 등을 기대고 음악을 들으면




내가 이 곳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언제나 유노형이 내게 달려와.




" 창민아, 이 형아가 왔다!! "




어느새 유노형은 내 한쪽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는

내게 아주 작은 소리로 귀에다 속삭인다.




나는 정말 녹아 버릴 것 같다.

그럴때면 유노형에게 푹 기댄다.




" 창민아, 약은 먹었어? "




또,

그 소리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을 알면서

꼭 이렇게 내 속만 애타게 태운다.




" 사 랑 해!! "




그 말을 내게 할 때

유심히 지켜보는게 있다.




유노형의 덧니




" 창민아, 심심하지 않았어? "

" 유노형은 항상 같은 말만 해. "

" 창민아, 그래서 재미없어? "

" 유노형이 재미 없어도 하는 수 없지. "




내꺼니까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이 약만 삼킨다.




꾸준히 먹어야 할 약 하나만을

아직은 더 살아야만 하나보다.




이럴수록 유노형을 떠나기가 싫은데

아직도 내 시력은 크게 달라진게 없다.




다만,

아주

천천히




흐려 보일 뿐이다.




" 창민아, 덥지 않았어? "




내게 조금은 다른 말을 하려고

꽤 생각이나 하고 말한 것 같다.




" 유노형,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아? "




그래도 조금은

신선한걸 물어보라구




" 창민아, 난 모르겠는데 "




으이구

그럼 그렇지.




" 유노형이 모르면 나도 모른다구! "

" 창민아, 넌 너가 더운 것도 몰라? "




더워봤자 여름이지.




여. 름. 안. 에. 서.




재중




일년동안 죽어라 모았다.

그런데 아직 내 자리가 없다.




슬슬

내 자리를

찾아 떠나볼까?




사실 그동안

이리저리 떠돌며

돈을 조금씩 모았다.




이제는 그 돈으로

내 집을 구할 수 있다.




조금 기대되는데

내 것이 있다는게




유노야,

내가 간다.




이제 정말 느껴져.

너도 한국에 있다는게




으악!!!!!!!!!!!!!!!!!!!!!!!!!!!




턱을 땅에 박았다.

무엇에 걸려 완전 넘어졌다.

내 몸이 굴렀다고 해도 사실




" 아............. 아파. "




턱에서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사... 사람이다.

내가 사람에 걸려

턱을 다쳤다는 생각에




아...

소름 끼쳐.




재수없는 순간이다.

어서 무시하고 가야한다.




옷에 묻는 먼지를 툭툭 털어 버리기 전에

아니, 턱에서 흐르는 피가 마르기 전에 어서




" 아... 재수없어. "




사실 이런 지저분한 길거리를 걷다보면

다리에 사람이 걸리는 일 쯤이야 다반사다.




하지만 이렇게

걸려 넘어진걸 보니

어서 빠져나가고 싶다.




" 중........ 재... 중.......... "




무슨 소리가 들린다.

손가락으로 귓속을 후빈다.

그러자 턱이 더 땡기며 아파온다.




아......

욕 나오네.




" 재.......... 중.... 김.... 재.... "




내가 잘못 들은건가

얼핏 들으면 내 이름인데




큰 맘 먹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턱이 아픈것도 잊은채

눈을 크게 더 크게 뜨려고 한다.




" 김........... 재.... 중..... "




이렇게 더운 날씨에

이 녀석은 꽤 추워 보였다.




" 미............. 미... 친 놈.... "

















---------------------------------------------------------------------------------------------- 8























믹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름이 한번 더 찾아온건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며

거지 아닌 거지처럼 보내왔다.




그녀 때문이 아냐.

그럴 자격도 없는걸




몸을 가눌 힘이 없을때면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고개를 숙인다.

여름이여도 내게는 언제나 시리다.

한 팔에 내 얼굴을 묻고 몸을 웅크린다.




추워.

춥다.




저 태양을 보면 지금은 여름인데

이제 저 태양을 바라보는 내가 아냐.




이리저리 사람들의 발에 치인다.

이제 아픔보다도 내 두 눈을 숨긴다.




" 너, 대체 뭐하는 자식이야!! "




내 몸에 걸린 사람들은 한마디씩 내뱉는다.

그 말에 몸을 일으키며 눈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




" 어머, 젊은 사람 같은데 "




여러가지 말들이 쏟아진다.

내 안에 품던 빛들은 사라진다.




내게 꿈도 희망도 없다.

이제 정말 그녀를 잊고 싶다.




아직까지 왜

이 곳에 있는걸까




이 곳 한국에




다시 버지니아로

갈 수 있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모든걸

포기해야 하는지




그동안 착한 사람들이 내밀어준

적은 돈과 적은 음식들로 살아왔다.




하지만 내게도 돈이 있었으며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이 곳에 버려졌다.




스르륵

잠이 온다.




잠이 올 때 잘 수 있는건 행복한 일이다.

그동안 깊이 잠들어 본적이 내게 없었다.




작년 여름, 한국에 와서

낯선 사람과 호텔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주 깊게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깊은 잠에 빠져들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크게 걸려 넘어진것 같다.




내 몸에 발이

걸려버린거다.




한참이 지나고

그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 아... 재수없어. "




그나마 괜찮은 소리다.

그런데 꽤 아파하는 소리




내 밀려오는 잠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인지

나 때문에 얼마나 재수없게 다친자가 누구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

눈은 마주치지 않도록




손에 피가 묻어있다.

상처가 나서 닦았나보다.




내게 걸려 넘어진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큰 상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 사람은




저 사람은

걸음이 느리다.




정말 다쳤는지

잠시 서있기도




언제나 그랬지만

내 눈에는 뒷모습뿐




나도 포기하며

밀려드는 잠을

기다리려 한다.




그런데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그 사람이 살짝 고개를 돌렸을때

내가 기억해야 할것이 있다고 느꼈다.




" 중........ 재... 중.......... "




내 안에 있는 기억을 꺼내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 재.......... 중.... 김.... 재.... "




서서히 기억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이름을




" 김........... 재.... 중..... "




그래.

이제 알겠어.




와.......... 아...

기쁘다. 바보같이




" 미............. 미... 친 놈.... "




그 사람이 아닌가

점점 맞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해서

다시 얼굴을 내 팔 안으로 묻는다.




무언가 묻었던 일을 갑자기 생각나게 한다는건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일인것 같다. 지금만큼이나




그때는 돈 없는 너를

내가 호텔에 데려가서

쉬게 해줬는데 기억하려나




기억 못해도 좋다.

내가 기억해냈으니까




후 후 후




혼자 웃는다.

무섭지 않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이상하다.

다시 돌아섰다.




아까 상황이 싫었고

내가 다쳤기도 했지만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 왔다.




내 이름을 부르던

거지같은 놈에게 간다.




그런데 그 녀석은

팔에 얼굴을 묻고는

미친 것처럼 웃고 있다.




다 들린다.

이 자식아




" 야, 너 뭐야? "




너,

누구야




별로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였지만

내 소리를 듣고는 두 눈을 마주친다.




그래,

너구나.

너였잖아.




" 저.. 그게... 그러니까 "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볼뿐

계속 중얼거리는건 나다.




그 아이를 감싸주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될것 같아서




" 어서 일어서. 아니면 내가 일으켜 줄께. "




그동안 잊던

진짜 내 모습을

이 아이가 갖고 있다.




" 일어나봐. 일어서지도 못해? "




내가 꼭 울것만 같았다.

그 아이는 그렇지 않았기에.




" 도대체.. 얼마나 여기에 있었던거야.

어쩌다 이런 곳까지 기어 들어 온거야. "




아직도 난 중얼거린다.

너무 비참하고 안타깝다.




" 너가 날 기억했구나. 이런 곳에서 "




이 아이의 눈이 매우 투명하다.

정말 슬퍼보이는 눈을 내게 보인다.




처음 널 봤을 때는 소매치기라고 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어서 사과까지 했었는데

그런 너가 내 부탁에 나를 편히 쉬게 해주었고

그렇게 너는 나를 잊고 나는 너를 잊고 ..........




내가 그 호텔을 나오면서 생각한게 있었어.

너에게 너무 고마운데 갚을 길이 없어서

아주 다음에 내 근처에 있어준다면 그때는

정말 편하게 쉬게 해주겠다고 그 날처럼 ...




꼭 한번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 야, 눈을 왜 감아. 여기서 잘거야? "




그런 너에게 날 쉬게 해달라고

공손이 말까지 높이며 부탁했는데




그런데 지금 너라는 아이는

한없이 어리고 여리기만 하구나.




내 동생이라도 된것처럼

어서 이 곳을 나가자. 지금




" 내 이름 ... 잘 불렀어. "




나, 재중

김재중이야.




너가 힘내어 부른 이름




" 김....... 재 중 ...... "




이미 탈진해 버렸다.

근처 병원으로 가야겠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혁재가 다녀갔다.

짧은 시간이었다.




한동안 들을 수 없던 소리를

혁재의 입에서 내 귀로 들려온다.




이 곳에 지내면서

소리와도 멀어졌다.




이 곳은 너무 조용하기에

고요해서 들어야 할게 없다.




그래서 지금 저 아이가

듣고 있는 음악이 듣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걸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저 아이는 음악을 들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거다.




가까이로 가서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저 조용히 바라만본다.

낡아버린 3층 창문 안에서 이렇게




혁재가 직접 갖고 온

많은 책들도 정리한다.




손으로 책들을 정리하고 있지만

내 눈은 아직 책들에게 향할 수 없다.




저 아이의 머리칼이 햇빛에 빛난다.

아주 가느다란 소리없는 바람에도

머리칼은 한올 한올씩 바람을 따른다.




혁재는 이제 더이상 CD를 가져오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듣게 되면 부르고 싶어하는걸 알기에




그래서 조금 있던 CD들까지 몽땅 가져갔다.

그래, 차라리 가져가는 낫다. 이런 고통쯤이야




저 아이를 바라보는 걸로

모든 고통은 씻을 수 있어.




어느덧 태양이 저물고

그 아이가 기다리던 사람이 온다.




그리고 그 아이는 수줍게 웃는다.

저 웃음을 오늘 잠들때까지 기억한다.




여기가 3층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낮고 내 시력은 정말 좋다.




누군가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게

목소리를 잃어도 할 수 있는거니까




그 아이와 함께 그 둘은 어디론가 간다.

내 눈은 그 둘의 발걸음을 계속 주시한다.




그들이 가버린 허전하고 빈 마을

그리고 나도 어느새 창문을 등진다.




넓고 포근한 하얀 침대에 누워

서랍속의 일기장을 꺼내 펼친다.




그 아이가 오늘은 한번이라도

고개를 들어주길 바랬는데 오늘도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내 눈에 사라지는것 보다는




낫겠지.




항상 똑같은 글만을 일기장에 채운다.

일기장은 그래서 언제나 가볍고 슬프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오늘도 어김없이 이 곳에 있다.

유노형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일찍 이 곳에 오는 이유는

햇살이 따사롭고 포근하고 아무튼 따뜻하다.




더운 여름이고 그늘도 없는 이 곳이지만

유노형을 기다린다는 마음이 더위를 없애준다.




그리고 가만히 전봇대에 등을 기댄채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흥얼거린다.




아.....

행복해.




유노형도 알까

이런 나의 행복을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이 곳에서는 느낄 수가 없다.




내 시력이 점점 희미해진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정말 약 덕분인가?




내 느낌으로는

이 곳이 날 치료해 준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이

눈도 맑아지고 조금은 덥지만 상쾌해진다.




하지만 내 머리 위의 태양을 볼 수 없다.

그 태양이 내 머리 위에 있든 어디에 있든




다만 느낄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

태양이 내 위에서 나를 향해 있다는걸




" 이상... 해. "




이상하게 정말 나를 보고 있다.

분명 그런것 같다. 아래의 나를




" 뭐가 이상해? "




유노형!!

유노형이다.




" 유노형, 조금 빨리 왔는데? "

" 이렇게 땀 흘리는거 보면 몰라? "




유노형은 언제나 땀에 젖어 있다.

달려올 때도 있고 걸어올 때도 있는데




그런데도 땀을 흘리는걸 보면

댄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하나보다.




" 창민아, 나 땀 닦아줘. "




유노형의 목줄기에 흐르는 땀부터 닦는다.

그리고 이마에 땀부터 천천히 아래로 닦는다.




" 이래서 여름이 좋다니까 "




내가 좋은게 아니구?




유노형의 손바닥에 샘솟는 땀을

내 손바닥에도 조금씩 느끼고 있다.




" 창민아, 손 잡으니까 좋아? "




그 순간 유노형의 얼굴을 살폈다.

이미 닦은 땀 위로 또다시 땀이 흐른다.




그리고 그 땀이 태양에 반짝인다.

또 한번 내 손과 얼굴은 뜨거워진다.







----------------------------------------------------------------------------------------------- 9

















믹키




정말 마음 편히 놓았다.

내 몸을, 마음을, 정신을




그가 하는 말들 따위는 정확히 모른다.

내게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 때 눈은 이미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난 모든걸 놓았다.

그 눈은 이미 내게 놓으라고




말한 것이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근처에 병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부축을 하며 데려 갔지만

병원이 눈에 들어올 때 업고 뛰었다.




" 조금만 참아봐. "




내가 널 쉬게 해줄께.

아직 너의 이름도 모르지만




병원에 들어서자 응급실이 보인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는 자리를 비켜준다.




" 어떻게 된거죠? "




어떻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급하긴 급한거 같은데 어떻게든




" 거리에 쓰러져 있었어요. "




그때부터 우리를 시큰둥하게 본다.

내 등에 업힌 아이에게는 외상이 없다.




" 그보다 턱을 다치셨네요. "

" 어떻게든 쉴 수 있게 해주세요. "




딱딱하게 굳은 턱에 생긴 상처를 느낀다.

나도 이 아이의 정확한 변명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건 놔둬서는 안된다.




" 그럼 여기 눕히세요. 영양제 놔드릴께요. "




좁고 작은 침대에 그 아이를 내려 놓는다.

힘없이 그 침대에 몸을 눕히고 얼굴을 본다.




다치진 않았어. 그런데 모든걸

저 밑에 놓아버린 기분이 들어.




" 얼마나 있어야 깨어나죠? "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이렇게 쉬어야 했다.




괜히, 내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아주 늦게 만났더라도

넌 지금 이 모습으로 아파했을까




눈을 감고 있으니 얼굴에 살이 없다.

눈을 뜨면 뭐라도 먹어야 겠다. 뭐라도




매점이라도 찾아보자.




불편하게 누워있는 그 아이를 두고

병원 안에 매점을 찾아 이리저리 뛴다.




겨우 그 영양제를 맞지 못해서

그렇게 고개도 못 들고 떨어야 했으니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었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게 있을거야.




여. 름. 안. 에. 서.




창민




달빛도 눈부시다.

한없이 보고 또 본다.




" 창민아, 어디 보는거야? "

" 유노형, 저기 저 달빛 봐봐. "

" 싫은데.. 창민이 너만 볼래. "




그래도 한번은 봐주지.

끝까지 나만 보는 유노형




" 창민이, 얼굴 빨개졌다. "

" 유노형, 그러니까 저 달끝을 "




유노형은 내 볼에 입술을 댄다.

그리고 점점 더 깊게 꾹 누른다.




" 유노형, 으아... 침 "

" 창민아, 내 침도 못 닦아? "




땀은 닦지만

침은 어쩌지?




" 유노형, 어쩔 수 없어!! "




각오하라구




나도 유노형이 말하는 사이

내가 그 틈에 들어가 입술을 댄다.




난 유노형의 볼이 좋다.

그 볼에 입을 맞추면 푹신하다.




" 창민아, 침은 흘리는게 아냐. "




유노형이 못하게 내가 더 입술을 누른다.

그런데 유노형은 너무나 좋아하는것 같다.




" 창민앙, 계속해!! "




유노형은 끝까지 저 달끝을 보지 않는다.

달을 보며 유노형을 안고 살며시 눈을 감는다.




유노형,

저 달 끝을 봐.




여. 름. 안. 에. 서.




시아




달이 꿈을 꾸는 밤이다.

달빛은 어둠에 녹아 내린다.




쓸쓸하다.

저 달빛처럼




나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고 싶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보았지만 보이는건

홀로 서있는 전봇대뿐.. 그 아이는 없다.




없다는걸 알면서도

한번 더 눈으로 찾는다.




내일 태양이 떠오르면

그 아이도 저 곳에 오겠지.




그때까지 나는 언제나

쓸쓸하고 괴롭기만 하다.




이 쓸쓸한 밤하늘 아래에

내가 기다릴 수 있는건 없다.











------------------------------------------------------------------------------------------- 10




















믹키




눈을 뜨자마자 다시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울고 있었다.




" 흐.... 흑.... 흑..... 흐.. "




" 죽... 고.... 싶다.... "




이대로 죽고 싶다.

내 길을 잃은지 오래




" 죽긴 왜 죽어. "




익숙한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내 옆에 그 사람이 날 바라본다.




" 너도 먹을래? "




김재중..

그 사람은 쨈이 듬뿍 담긴 빵을 내게 보인다.

배가 고팠는지 우물우물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또 울고만다.




" 흐....... 흑........ 흑.... 흐..... "




" 울지마.... 라.... "




내가 잘못 본걸까..

그 사람의 눈이 반짝거린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된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걸거야.




여. 름. 안. 에. 서.




재중




이름을 묻고 싶었다.

아니면 욕이 나올거 같아서




그 아이는 내가 준 빵을 몸을 일으켜 앉은 후 먹는다.

울면서 그 빵을 안으로 삼키고 또 씹어 안으로 삼킨다.




" 형.. 이라고 부를께... 요. "




울음을 그친 후 그 아이가 내가 한 말




" 이 우유도 마셔. 여기 먹을거 많으니까.. "




그 아이는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건네준 우유와 많은 빵들을 씹어 삼킬 뿐




" 너.. 나랑 살자. "




여. 름. 안. 에. 서.




창민




덥다.

그저 침만 삼킬 뿐




앞머리를 올리면 다시 내려오는걸 반복하고

결국에는 한 손으로 앞머리를 올리고 놓지 않는다.




" 창민아!! "

" 유노형.. 이 앞머리 때문에.. "

" 불편해도 그렇게 모두 쓸어 넘기면 안되지. "

" 유노형.. 정말 불편해. "

" 창민아.. 그러면 집에 가서 조금만 자르자. "

" 치.. 그러면 또 금방 불편해 질텐데.. 눈에도 찔려서 그래. "

" 창민아.. 앞머리라도 눈을 가리지 않으면 저 태양이.. "

" 알았어. 유노형.. 무슨 말인지 알아. "




또 이 두 눈이 문제다.

하루라도 더 유노형을 보려면

앞머리라도 내게는 필요하니까




" 유노형.. 근데 고개를 들수가 없는거 알아? "

" 창민아.. 고개 들어봤자 눈만 부시잖아. "

" 유노형.. 그럼 이제 집으로 가자. "




덥지만 유노형이 나를 와락 끌어 안는다.

그래서 내 눈을 감싸던 우울함은 모두 녹아 내린다.

겨울에는.. 저 전봇대 앞에서 눈을 기다려야 할텐데..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유노형을 기다려야 햐는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불안하게 삼키는 이 약들이

그때까지 나를 데려갈 수 있을지




" 유노형.. 나 살고 싶어. "




유노형은 내 MP3 이어폰을 뺏어서

아까부터 귀에 꽂으며 나를 이끈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오늘도 어김없이 그 아이가 서있다.

바로 저 전봇대에 기대서 입술을 움직인다.




저 입술에 흘러 나오는

저 노래를 들을 수만 있다면




아니지.. 내가 또

욕심내고 말았어.




오늘도 이렇게 내 눈에 들어와줬는데

가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한숨만 흘러.




언제나 멀리서 달려오는 한 남자는

그 아이를 향해 숨차게 달리고 웃는다.




그리고 내 눈에 담긴

그 아이를 데리고 간다.




조금씩 밀려드는 후회가 깊다.

저 아이를 보지 않았으면.. 그랬다면

어쩌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을것을




눈이 아프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

오로지 아파서 흐르는 눈물이






-------------------------------------------------------------------------------------------- 11














믹키




" 너.. 나랑 살자. "




우유와 빵을 다 먹은 후

무엇이 서러운지 또 울고만다.




" 흐..... 흑.... 흑.... 흐........ "




나.. 모든걸 다..

버릴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럴수만 있다면 날




" 흐.... 흑..... 도와.... 줘... "

" 그래. 이 형이... 다 도와줄께. "




그럼 이제

내게 저 사람은

형이 되버린건가




" 형.... 재... 중... 중... 이 형.. "




대답은 없고

나를 쳐다볼 뿐




그래서 나도

말없이 바라본다.




" 알거 같아. 그러니까 울어. "





울고 또 운다.

그러면서 조금은

행복해짐을 느낀다.




" 나.... 다시 시작... 할거야. "




그리고

눈물을 훔친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역시 젊은 놈이라서 다르다.

혼자 알아서 몸을 일으키고 신발을 신는다.




" 저기.. 형.. 나 돈이.. 없는데.. "

" 그러니까 같이 살자고 했잖아. "

" 혀.. 엉.. 형은 돈 있어? "

" 나 그때 그 호텔 나오고 바로 돈부터 벌었어. "

" 정말? 다 쓴건 아니구? "

" 너가 아직은 날 모르니까.. 잠깐만.. "




점퍼 안의 깊숙한 주머니 속에서

꽤 두툼한 봉투를 꺼내어 쑥 내민다.




" 어때? 우린 이제 인생역전이야. "

" 형.. 난 그렇다쳐도 형은 왜? "

" 나.. 사실 아직 집도 없거든. 그래서 이제.. "

" 그럼 나도 이제 거기서 사는거야? "

" 당연하지. 너라면 재밌을거 같은데? "




점퍼 안의 깊숙한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니

답답하기도 해서 잠시 편한 곳에 찔러 넣었다.




" 형.. 나 많이 달라졌지? 처음에 나 기억해? "

" 음.. 사과머리 말하는거야? 지금도 괜찮은데? "

" 형은 정말 좋은 사람같아. 지금의 내가 괜찮다고 말하는걸 보면.. "

" 왜 그래. 너 사정이 많구나. 조금은 눈치챘지만.. "

" 정말? 눈치챈거야? 아까 나 마주쳤을 때? "

" 아니.. 너 공항에서 너랑 말다툼하고 다시 돌아서는 뒷모습보고.. "




호텔에서 너의 지갑을 만져 보았을 때

그 안에 담겨진 너와 어느 여자의 사진

아직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게 참




" 너.. 한국에는 왜 온거야? "

" 그냥.. 이제 이유도 잊었어. 형은? "

" 나도 모르겠다. 나도 잊었나봐. "

" 뭐야.. 형도 나처럼 바보구나? "

" 그래. 바보라서 참 편하기도 했지. "




욱!!!!!!!!!!!!!!!!!!!!!!!!!




모든건 순간이였다.

내 등을 내리치는 무언가에

내 몸은 모든 힘을 잃어갔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 괘.... 괜.. 찮아? "




나를 감싸는 이 아이를 느낀다.

이 아이는 너무도 힘겨워서 나를

제대로 안지도 못하고 떨기만 한다.




부들부들




" 어... 없어. 내.... 돈이.. "




아픈것도 모두 잊었다.

내 돈을 알고 난 당한것이다.




" 형.. 그럼 아까.. 소매치기.. "

" 아무래도.. 그런거 같아. "

" 형.. 그럼 그 돈 못 찾는거야? "




너도 알잖아. 가망 없는거

내 등을 쑤신 그 얼얼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두려워진다.




" 이제.. 어쩌지? "




그 아이가 아닌

내게 묻고 또 묻지만




"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겠지. "




내가 내게 답한다.

그리고 그 아이를 힘껏 안는다.

내 품에.. 더이상 울지 않도록




여. 름. 안. 에. 서.




유노




창민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난 달리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들어

따가운 태양을 쏘아보지만




그 곳에는 없다.

내 것이였던 재중은




" 끝났잖아. 바보같이.. "




한순간이라도 걸음을 멈추면

그때마다 재중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다시 달려야 한다.

날 기다리는 창민이에게로




툭.. 툭..




" 유노형.. "




어서 웃어야 하는데..

창민이가 불안하지 않도록




그런데 웃음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더 그런거 같다. 이상한 하루




" 유노형.. 힘들어? "

" 뭐.. 가? "

" 아니. 그럼 피곤한거야? "

" 아.. 니. "

" 그럼 뭐지? 졸려? "

" 으.. 응. 졸려. "

" 그럼 어서 가자. 내가 가서 재워줄께. "

" 그래. 우리 창민이 품에서 자야지. "




겨우 웃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태양을 향해




웃음 짓는다.




이제 저 태양을 보면

재중이의 모습은 흩어진다.




재중이의 미소도

슬픔도.. 눈물도..

이제 떠오르지 않아.




재중아..

너도 그런거니..




너도 나처럼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정말 잊어서 눈물도 사라진거니




" 유노형.. 그렇게 졸려? "




창민이는 모른다.

아직 너의 자리가

완전하지 못하는걸




" 미안하다. 창민아.. "

" 갑자기 왜.. 졸린게 무슨 잘못이야? "




나.. 잊었는데

김재중 버렸는데




털썩!!!!




" 창민아!!!! "

" 유노형.. 나 눈이.. "

" 잠깐... 야.. 약.. 약이 어딨지!! "




처음이다.




한국에 와서

창민이의 이런 모습은




" 창민아!! 너 그 약 어딨어!! "

" 집에.. 놓고 왔어.. 흐.. 흑... "

" 창민아.. 어때? 아프기도 한거야? "

" 아픈건 보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

" 괜찮아. 이건 잠깐이야. 아주 잠깐이니까.. "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어.




" 유노형.. 나... 그 약.. 이 필요해. "

" 기... 기다려. 아주 잠깐이야!! "




내게 필요한건 창민이 뿐이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 어서.. 빨리




창민아..

넌 내 심장이야.

너가 죽으면 나도 죽어.




여. 름. 안. 에. 서.




시아




오늘은 이상하다.

내 눈에 보이는게 맞는건지




그 아이에게 다가가는

한 남자는 매우 슬퍼한다.




아무리 봐도

눈물을 부르는 표정




그 이유가 그 아이 때문은

아닌것 같은데.. 내 착각일까




그 아이는 태양에 부서지는 미소만큼이나

포근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애써 걱정한다.




항상 그랬잖아.

볼때마다 가슴 아픈거

그런데 오늘은 더하다.




질투라면 질투겠지.

정말 사랑이라면 그럴거야.




그러다 갑자기 그 아이는 주저앉아

얼굴을 움켜쥐고는 손을 뻗으려 한다.




그 아이를 걱정하는 그 남자는

그 아이를 전봇대 아래에 두고는

항상 향하던 그 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참다못한 나는

결국 밖으로 나가는데




" 아............ 악!!!!!!!!!! 죽을거 같아.. 흑... 흑.. "




난 분명 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그 소리는

내 심장을 찌르기에 충분하다.




처음 듣게 되는 저 아이의

소리가 날 울릴 줄은 몰랐다.




" 아......... 악..... 유.... 노형.... 나 죽기 싫어. "




그 남자 이름이 유노.. 유노형이면




" 나... 흐.. 흑... 창민이 죽기... 싫어. 흐.. 흑.. "




그리고 그 아이 이름은 창민.. 창민이

나도 그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고만다.




하지만 내 흐느낌은 가까이 있는

내 두 귀에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저기 멀리서 누군가 달려온다.

이 아이가 찾는 사람.. 저 사람을 보고

나는 황급히 내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밟는다.




어서 3층으로 들어가

창 밖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 창민아!!!!! 정신 차려봐!!! "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죽음도.. 이제 생각할 힘도 없이




" 창민아... 어서 입 벌려.. 빨리!!! "




내 입 속에 알약이 들어오고

미지근한 물이 입술에 부딪힌다.




" 창민아.. 힘내서 삼켜봐. 응? "




눈을 어렵게 뜨고는

유노형을 눈에 담고서




꿀꺽..




힘겹게 삼키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나.. 정말..

죽는줄 알았어.










----------------------------------------------------------------------------------------------- 12
















재중




나보다 더 울고 있다.

그 아이의 울음은 언제 그칠지




" 언제까지 울거야? "




그 아이는 내 품에 나와

나를 한번 보고는 기댄다.




" 형.. 나 버리지.. 않을거지? "

" 누가 널 훔쳐가지 않는다면.. "

" 걱정마. 형이 벌써 훔쳐 갔으니까.. "

" 일어나. 어디든 가야지. 같이.. "




그 많은 돈을

소매치기 당했어도

슬프지 않은게 이상해.




" 형.. 화나지 않아? "

" 왜.. 화난거 같지 않아? "

" 응.. 나보다 더 아파 보여. "

" 그럼.. 가슴이 쓰리지. "




그게

어떤

돈인데




유노를 향하는 길을 비추던

태양은 이제 내게 없다는걸 알아.





" 형도 어서 일어나. "




이제 내가 그 아이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다.

그리고 느껴지는 등의 통증.. 욱씬거려 화가난다.




" 이제 환자는 형이야. "

" 아.. 프다. 잘 좀 잡아봐. "




그 아이는 어쩔줄 몰라하는 두 팔로

날 안아보지만 내 몸은 더 아프기만 하다.




" 형.. 나 때문에 더 아프지? "

" 그걸 말이라고 해? 더 아프다. "

" 형.. 어디 가서 쉴래? "

" 어디.. 갈 곳이라도 있어? "

" 있다면.. 같이 가줄거야? "




대답도 하기 전에 인상부터 찌푸린다.

이런 아픔 쯤이야. 기대지 않아도 되는걸




그런데 이상하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걸

조금씩 알아가는것 같다.




" 어디 가는거야? "

" 형.. 말하면 아프니까 쉿.. "

" 불안하니까 그렇지. "

" 이제 앉아봐. 아프지 않게.. "

" 야.. 여기는.. 아까.. 너.. "




정말 바보인가.. 순진한걸까..

아직은 멍청하다고 밖에 표현을




" 형.. 난 여기가 편해서.. "




그 아이가 날 데리고 온 곳은

아까 전에 마주쳐 내가 턱을 다친 곳




왜 이 곳에 날 데려 왔을까..

너라는 아이가 갈 곳이 있다는게

바로 이 곳이라니.. 할 말이 없다.




" 난 여기가 정말 편하고 좋은데.. 형은 어때? "




내 눈에 어느덧 눈물이 고인다.

제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 형.. 그거 눈물이야? "

" 눈물이면.. 너가 닦아 줄거야? "

" 바보.. 형은 바보야. "

" 바보는 너야. 너는 정말.. "




어느새 그 아이가 내 눈물을 훔친다.

그 아이와 나는 냄새나고 더러운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고 그렇게




" 형.. 아픈거 어때? "

" 냄새가 너무 심해서 아픈것도 모르겠다. "

" 이 냄새가 어때서.. 난 반갑기만 한걸.. "

" 내가 너처럼 바보가 아니라서 그건 모르겠다. "

" 형은.. 모르는것 투성이네. 그러니까 바보.. "




눈을 감고 눈물을 삼킨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본다해도

눈을 뜨지 않으면 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감고 또 감는지





여. 름. 안. 에. 서.




믹키




바보같은 말만 늘어 놓았다.

나 버리지 말라고.. 우습기만 해.




나는 바보도 아니고..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다.




다시 이 곳에 오게 되다니

한심하고 비참할 뿐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웃을 수 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다시 도와줄 수 있으니까




" 재중이형.. "




형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

분명 창피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만큼 편하고 슬픈 곳도 없는건 사실인데




" 나.. 때문에 창피한거지? "

" 아... 니.. "

" 그러면 눈 좀 떠 봐라. 응? "

" 이제 여기 냄새도 아무렇지 않네. "

" 그렇지? 그것 봐. 그럴 줄 알았다니까.. "

" 뭐가 그럴 줄 아는데.. "

" 나중에 분명 그리워질거야. "

" 치.. 겨우 이까짓 이 냄새가? "




이때까지도 형은 눈을 뜨지 않는다.

하지만 보았다. 흐트러진 속눈썹의 촉촉함을




" 형.. 여기서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하자. "

" 그래. "

" 정말? 여기서 잘 수 있어? "

" 너도 자는데.. 내가 왜 못 자겠어. "

" 정말? 정말.. 정말이야? "

" 그래. 사실 졸려서 눈 감은거야. "

" 정말 그것 뿐이야? "

" 그렇다니까.. 너.. 좀 피곤하다. "

" 그럼 자. 정말 자는건지 모르겠지만.. "

" 정말 피곤해. 너라는 아이가.. "




분명 보았다.

참았던 눈물을

조금씩 쏟아낸다.




" 형.. 나도 눈 감았어. "




대답이 없다.

형의 목젓이 떨려온다.

그리고 입술까지도 심하게




" 눈 감았더니 잠이 쏟아지네. "




포개어진 입술이 점차 떨어진다.

그러다 다시 입술을 굳게 다문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소리내어 걷는다.

그래서 형은 아주 작은 소리를 흘린다.




" 흐.... 으.. "




아프게 입술을 깨물고 씹는다.

힘겹게 등을 기대는 모습이 슬프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불쌍한 주먹

그 주먹을 감싸 잡아 줄 자신이 없다.




" 윽..... 으.... 흐... "




형이 내게 기댔으면 좋겠다.

내 어깨 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여. 름. 안. 에. 서.




창민




내 볼을 간지럽히는 손길에

잠시 움찔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 창민아.. 지금 눈 뜨지 않아도 되니까.. "




유노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무겁고도 따끔거리는 눈꺼풀을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올리지만




" 창민아.. 그냥 감고 있어. 응? "




아까 너무 흐느껴 울었던 탓일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배에 힘을 많이 주지 않는 한 아직은




알. 았. 어.




입모양으로 말은 해보지만

분명 유노형이 알았을거라 봐.




" 이럴 줄.. 몰랐어. 이렇게 아플줄은.. "




유노형이 말한다.

그리고 내 볼에 떨어지는

액체 하나.. 한 방울이 아프다.




" 내가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얼마나 아플까.. "




나 하나도 안 아파.

유노형을 생각하면

아픈것도 다 사라지는데




" 미안하다. 내가 신경을 못 써서.. "

" 아.. 아니.. 야. 유노.. 형.. 사랑해. "




갑작스런 내 고백에

유노형은 크게 울고 말았다.




내가

유노형을

울려 버린거다.




" 사랑하니까 울지마. 유노형.. "

" 차.. 창.. 민아.. 나도 너.. 사랑.. 해. "




아직까지 내 눈은 뜨려하지 않는다.

난 뜨려 하지만 내 눈은 허락하지 않는다.




" 유노형.. 조금 있다 아프지 않게 눈 뜨고 싶어. "

" 그래. 초조하게 생각하지 말고 같이 기다려보자. "

" 유노형.. 나.. 내 눈에 뽀뽀해줘. "




유노형은 내가 아플까봐

아주 조심스레 입을 맞춘다.




달콤하다.




내가 공주가 된것처럼

아주 조금씩 세상을 본다.




" 창민아.. 아프지 않아? "

" 아프지 않아서 이렇게 눈 뜬거야. "




유노형은 내 눈을 바라보다

눈을 깊게 감고는 내게 입을 맞춘다.




너무 좋아 웃으려는데

순간 눈이 아프다. 많이




" 창민아.. 괜찮아? "

" 유노형.. 나 너무 놀랬어. "

" 그래. 나도 정말.. 많이 놀랬다. "

" 유노형.. 나 또 이럴텐데.. 어쩌면 좋아. "




유노형은 대답을 겨우 찾았는지




" 그 약.. 왜 집에 두고 나간거야? "

" 유노형.. 그게.. 내가 날 믿고 싶어서.. "

" 그 의지는 좋지만.. 너도 알면서.. 왜 그랬어. "

" 이제 안 그럴거야. 유노형.. 나도 슬프니까.. "




유노형이 이렇게 많이 우는건 처음이다.

무엇이 유노형을 이렇게 울리는건지 속상하다.




" 그 약.. 먹으니까 어때? "

" 정말 이상해. 그 약.. 무서워. "




유노형에게 전부 하지 못했지만

그 약을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만큼

소름 끼치게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다.




" 그 약을 먹으니까 머리가 깨질거 같았어.

아프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약을 먹은 순간 그 두가지를 뛰어넘는

아주 무서운 어떤 두려움이 날 때리더라. "




유노형은 눈을 감지 않아도 눈물이 굵게 떨어진다.

그 앞에서 울지 않는 내가 바보같이 싫고 미운건 왜일까




" 그 소름끼치는 기분에 크게 정신을 잃은것 같아.

그래서 아픈 것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도 느끼지 못할만큼 "




유노형은 절대 눈물을 훔치지 않는다.

알고 있는데.. 슬프게 떨어지는 저 눈물이

내 눈을 흐리게 한다. 안개처럼 뿌옇게 차가운




" 그런데 이렇게 깨고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처음에 눈을 뜨려고 하는게 힘들었지만 이제 괜찮아. "




유노형은 바닥을 한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 창민아.. 약이 독하다는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줄은.. "

" 유노형.. 형 탓이 아니잖아. 내게도 잘못은 없어. "

" 창민아.. 다음에도 또 그러면 그 약 먹을 수 있겠어? "




유노형의 눈물을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끄덕..




" 유노형.. 이 약을 받고 일년이 지나서 먹게 된거잖아.

그러니까 또 일년은 지나야 먹게 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해. "




그런데 이미 예상은 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걸




" 창민아.. 너도 그렇고 나도 이겨낼거야. 혼자서는 안되는거 알지? "

" 유노형.. 나 여기 와서 너무 좋아. 꿈 같아서.. 유노형이라서 좋아. "

" 창민아.. 이제 한 알 먹었을 뿐이니까.. 곧 이 꿈에서 깨어날거야. "

" 아니.. 깨어나지 않아도 좋아. 내 곁에 유노형이 있어준다면 어떤 꿈이라도.. "




유노형의 눈물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내 입술에 가져간다. 그리고 서로를 확인한다.




" 유노형.. 사랑하니까.. 이길 수 있어. 얼마든지.. "




그래.

꿈 속이야.




여. 름. 안. 에. 서.





시아




해는 기울이고

쓸쓸한 달이 반긴다.




내 일기장에는

창민이라는 이름만

손이 아프도록 쓰여진다.




창민창민창민창민창민창민

이렇게도 써보고




창민 창민 창민 창민 창민 창민

이렇게도 써보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다.

너무 울었던 탓인가




유노라는 남자가

창민이라는 아이에게

물을 먹이려는걸 보았다.




아파하는 절규의 소리는 사라지고

그 남자는 창민이라는 가냘픈 소년을

업어 들고는 항상 향하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이가

걱정되지만




내일도

볼 수 있겠지?




난 정말

욕심쟁이다.




그렇게 아파하는 그 아이를 보고서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절규를 듣고서도




내일은 그 아이를 보지 못한다면

정말 내가 죽어버릴 것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뭘까




창민이라는 이름이 씌여진

일기장을 한 장 찢어 비행기로 접는다.




그리고 힘껏 바람에 날려 보낸다.

내 뜻대로 전봇대에 부딪혀 추락한다.




자려고 침대에 누운 것도 잠시

불안한 마음에 1층으로 내려가

안절부절 못하며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가 던진 비행기를 찾아

어둠 속을 헤맨다. 시리도록








------------------------------------------------------------------------------------------------ 13
















믹키




재중이형의 흐느낌에 어느덧 잠들어 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이 간지러워 부비고 비빈다.




벌써

밤이네




하늘에 촘촘이 박혀있는 별들을 세어보기도 전에

내 옆에서 들리는 힘없는 숨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별보다도 반짝이는

재중이형의 눈빛에

잠시 움찔거리지만




" 깼어? "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저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내 곁에

있어주다니




" 형.. 은 안 잤어? "




대답이 없다.

복잡해 보여.




" 너.. 이 곳에 있으면서 무슨 생각했어? "

" 응? "

" 너.. 이 냄새나고 더러운 거리에서 얼마나 있었냐고.. "




왜 다 지나간 얘기를 들추는지 모른다.

아마도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그래.




아직까지도 재중이형은 다른 곳을 본다.

그래서 나 혼자 재중이형을 보기로 했다.




" 너.. 얼마나 여기에서 버틴거야.. 말해봐. "





아무 말도 하기 싫다.

바람이 살랑거리는게 좋다.




" 한.. 달? "




그래도 대답이 없다.

대답을 하면 강해질까?




" 아니. "

" 그러면.. 얼마나 많이.. "




아직까지도 재중이형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내게 관심있는 소리로 들렸던건 내 착각인걸까?




" 이.. 일.. 일 년.. 안되게 있었어. "

" 줄곧.. 이 바닥에서? "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런데 눈물이 떨어진다.




내가 재중이형을 보고 있다는거 알텐데

재중이형은 내 시선에는 상관없는 듯해.




" 난.. 그 호텔에 나와서 줄곧 돈버는 짓만 해왔어. "

" 응. "

" 그런데 그렇게 한순간에 그렇게 사라지고.. "




재중이형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후회도 없는 듯하다.

응.. 이라는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는데 떨림은 없었다.




" 단..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꾹 참고 열심히 했는데.. "

" 응. "

"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일까.. 다 끝났음을 나도 아는데.. "




내가 눈물을 멈추자

재중이형이 울고 있다.




" 너가 옆에서 편하게 자고 있는동안 내내 울었어.

이렇게 너가 들리는 흐느낌도 이제 다 그만둘거야. "




그때 재중이형은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수 놓아진 별들은 어느새 재중이형의

눈물로 변해 쉼없이 흐르고 눈부시게 반한다.




" 그럼 이제 내가 말할 차례네. "




재중이형은 다시 시선을 거두고

별을 향해 미소 지으며 웃으려 한다.




" 여자에게 채여서 어쩌다 보니 내가 이곳에 있더라구.

다니던 학교도 정리하지 못한채 무작정 한국으로 왔어.

내 첫키스 상대라서 내 첫사랑이라고 믿으며 사랑했는데

이제는 그 누나 얼굴도.. 그 누나를 위한 눈물도 흐르지 않아. "




재중이형은 잠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을 그린다.




" 내가 있던 버지니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 곳은 날 그 곳으로 보내주지를 않아.

이상하지? 이 더럽고 먼지 많은 거리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 여기서 낯설은건 이제 없다고.. "




재중이형은 내 얘기를 듣고나 있는건지..

아직도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을 써내려간다.




" 이제 버지니아로 간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것도 아니고

이 거리로 오기전에 나도 형처럼 돈을 벌었지만 그건 적은 돈이였어.

난 형보다도 어리고 부족한게 많아서 어디서 일을 해도 혼나기가 일쑤고.. "




나도 재중이형을 따라

손을 뻗어 바닥을 쿡쿡 찌른다.




" 이 자리에 와서 사람들도 구경하고 밤에는 푹 자고

낮에는 가끔 누워 있기도 하고 그랬어. 푸훗.. 신기해. "




내가 코웃음을 흘리고 재중이형을 보았을 때

형은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묻고는 작게 중얼거린다.




" 유.............. 노.... 야........... "




흐느끼는 그 소리가 슬프다.

바닥에 쓰려던건 무엇이였을까




여. 름. 안. 에. 서.




시아




늦잠을 잤다.

내 손에 쥐어진건

어제 만든 종이 비행기




바보같이 펼쳐서

그 아이 이름을 본다.










잊지 않을걸 알면서도

혹시나 잊은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기억해.





혁재가 소포로 보내준

천하장사 소세지를 먹고




우물우물




공원을 향해 외출한다.

1층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하다. 눈부시기도




폴짝폴짝




누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조용한 화수동이라는

서울의 조그마한 동네는 내게

사랑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전봇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팔을 쭉 뻗어 전봇대를 스치고는

한바퀴 돈다. 가끔은 한바퀴 넘어도




뱅글뱅글

뱅그르르르




아!!

재밌다.




이 재미를

혼자 느껴야 하다니




전봇대를 지나쳐 건물 하나도 이내 스친다.

그 건물은 2층 건물이며 내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거 같아.

저렇게 쓸쓸한걸 보면 나와 다르니까




공원에 도착했다.

잡초들이 내게 인사한다.




난 쪼그려 앉아

주머니에서 하나 더 꺼낸다.




천하장사

소세지를




우물우물




아껴 먹어야 하는데

혁재가 또 뭐라 하겠어.




잡초 틈새에 자라나는

색색가지의 풀들을 뽑는다.




앗!!!!!!!!!!!!!

소세지를 떨어 뜨렸어.




울지 않고 강하게

소세지를 집어 들었지만

이내 무덤을 만들어 준다.




빠롱..

내 탓이 아냐.




이런저런 풀들을 손에 들고

하나로 묶어 팔을 높이 든다.




이 정도면

그 아이가 좋아할까?




꽃이라 부르길 원하는

풀들을 한뭉큼 들고 간다.




다시 2층 건물을 지나쳐

전봇대 앞에 다다르고 심호흡 한다.




후... 후... 후...




그 아이가 오면

직접 이 꽃을 건네는

내 모습을 흉내내며 상상해.




전봇대에 슬쩍 기대보고

고개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3층의 반짝이는 창을 찾는다.




너무도

잘 보이는데




왜 그 아이는

고개 한번 안 드는지




투덜투덜




오늘도 이내 그 꽃들을

내 품에 품고는 멀어져 간다.




내일은

꼭 줄께.




창민이에게

아직은 낯설어.




여. 름. 안. 에. 서.




창민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그래서 심심하기에 외친다.




" 유노형!!!!!!!!!!! "

" 뭐야.. 벌써 다 잔거야? "

" 유노형.. 나 착한 어린이지? "

" 아니. "




유노형은 눈도 전부 뜨지 못한채

내가 충분히 삐칠만한 말을 뱉는다.




" 창민아.. "

" 몰라. "

" 창민아.. "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너무 장난인게 보일수도




" 넌 천사야. "




이상하다.




이상하게

눈물이 흘러.




이유를 모르겠어.

유노형 때문이야.




" 창민아.. 나 더 자도 되지? "




끄덕끄덕




몰래 눈물을 훔치고

한참이 지나 고개를 돌려

유노형의 잠자는 모습을 훔쳐본다.




내가 죽어서도

천사가 될 수 있을까




" 유노형은.. 잠꾸러기.. "




설마하고 시계를 올려본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흠칫한다.




낮에 졸릴까봐 유노형 옆으로 가서 눕는다.

사실 낮에 할 일이라면 유노형 기다리는건데

그것뿐인데도..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졸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모습은

절대 유노형에게 보이지 않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천사가 되려는 나를








----------------------------------------------------------------------------------------------- 14












재중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그래서 더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었다.




" 혀... 엉... "




그 아이 한쪽 팔을 붙잡고 힘껏 일으킨다.

따라 올라오는 그 아이를 끌고 무작정 걷는다.




" 형.. 사람들이 쳐다보는게 싫어? "

" 그럼 넌.. 그게 좋다는거야? "

" 그런거 다 잠깐이야. 출근하는 사람들이니까.. "

" 너가 괜히 이 곳에 오래 있었던게 아냐. "

" 응? "

" 너의 그런 생각들이 널 이 곳에 잡아둔거야. "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갸우뚱 한다.

그런 모습 다 느낄 겨를도 없이 데려간다.




" 형.. 어디 갈데 있어? 나보다는 낫겠지만.. "

" 갈 곳은 없어. 그냥 따라 와. "

" 뭐야.. 그냥 무작정 걷자구? "

" 쓰러져 가는 너를 누가 병원에 데려갔지? "

" 아.... 알았어. 난 싫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가자구. "




이 아이의 손이 따뜻하다.

이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 형.. 나 배고프다. "

" 그래서.. "

" 말도 못해? "




나도 정말 배고프다.

돈도 없고 그런데 잠깐만




" 재중이형.. 뭐하는거야? "

" 기다려봐. 잘 찾으면 있을지도.. "





있다!!!!!!!!!!!!!!!!!!!!!!!!!




" 형.. 배부른 사람처럼 왜 그렇게 좋아해? "

" 여기.. 뒷 주머니에 돈이.. 있어. "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제 울었던 것도 잊은 채




" 와아아아아아... 신난다!!! "

" 형.. 그러니까 나보다 어린 애 같아. "

" 야.. 넌 안 기쁘냐? "

" 기쁘긴 한데.. 그 돈을 왜 이제 찾았어? 진작에.. "




이미 그 아이를 내 품에 끌어 안는다.




와락 -




" 형.. 뭐야. 힘 쓰지마. "

" 그래. 밥 먹을 힘이 필요하지. "

" 근데 얼마 있는거야? "

" 응? 이거.. 천원.. "




내 손에 들려진 천원을 보이기도 전에

그 아이는 내게 등을 돌리고 손짓을 한다.




" 형.. 그 천원은 나중에 쓰고 나 따라와. "




그 아이의 뒷통수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이미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태양이 파도처럼 부서져 내 몸을 때린다.

제일 좋은 날씨에.. 제일 한가한 시간에..

난 저 아이를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형.. 여기야!! "




그 아이를 따라 들어간 곳은 심하게 낡은 창고 안

그 안에는 줄을 서서 급식을 받는 사람들로 붐빈다.




" 형.. 왜 그렇게 놀래? "

" 너.. 이런데 어떻게 알았어? "

" 먹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알았지. "




그 아이의 입모양을 따라 움직인다.




바 보 -




그 아이는 내게 바보라고 중얼거린다.

내가 이 곳에 데려온것 같은 기분이 들어.




" 형!!!!! 여기서 줄 서는거야!! "




이 아이의 손목을 잡고 또다시 걷는다.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건지




" 너!! 내가 그런 곳에 가면 기뻐할 줄 알았어? "

" 재중이 형... 왜 그래... 화났어? "

" 이 바보야!! 앞으로 저런 곳에 가지마. 알겠어? "




으... 응...




그 아이의 대답을 끝으로 더이상 말걸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간 곳은 편의점.. 빵과 우유를 고른다.




" 형.. 왜 하나씩만 사는거야? "

" 나 혼자만 먹으려고 그런다!! "




삐죽삐죽




이 아이는 열심히 입술을 씰룩거린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는게 어렵다.




씰룩씰룩




" 그만 씰룩거려. "

" 형만 배고픈거 아니잖아. 나도.. 읍!!! "





재빨리 빵 봉지를 뜯어 그 아이 입에 넣는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 것은 남기지 않고 다 삼킨다.




" 야.. 그걸 너가 다 먹으면 어쩌자는거야. "

" 빵이 너무 작잖아. 나라도 배를 채워야지. "

" 농담이 너무 심한거 아냐? 여기 있어봐. "




아직 뜯지 않은 우유를 카운터에 가져가

똑같은 빵과 바꾼다. 남는 돈은 전혀 없다.




" 자.. 우유 없이 먹을 수 있겠어? "




끄덕끄덕




그 아이는 방금 먹던 빵과 같은걸 또다시 입에 문다.

정말 생각이 없는걸까.. 아니면 내가 배고픈걸 모르는걸까..

내게 한 입도 안주고 남은 빵마저 열심히 씹어 삼킨다.




아주 천천히

오물 오물 오물




" 형.. 잘 먹었어. 형.. 정말 멋있다. "

" 내가 좀.. 멋있지. "




다 먹고 나니까 또 갈 곳이 없었다.

천원은 그 아이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 형.. 이제 어디로 갈거야? 나도 데려가는거지? "

" 그래. 너가 말 잘 들으면.. "

" 말 잘 들을께. 그럼 또 먹을거 사줘. "

" 야.. 차라리 내가 말 잘 들을테니까 너가 날 사줘라. "




그 아이는 털썩 바닥에 주저 앉는다.

아무래도 이건 그 아이의 특기인듯 싶다.




" 넌.. 툭하면 앉아서 뭐하는거야. "

" 뭘 신경써. 배고프면 이렇게 앉는거지. "

" 야.. 넌 아까 빵 먹었잖아. "

" 아.. 맞다. 그럼 형이 여기 앉아. 내가 서 있을께. "




귀여워 보여서 참는다.

결국 편의점 앞에 앉아있는 우리




처량하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있어서 두려운건 없다.

마음이 점점 편해지는걸.. 이 아이도 알까?




" 너.. 공사장에서 일해볼래? "

" 응? "

" 내가 일해봤는데 돈도 많이 받고 밥도 많이 주거든. "

" 밥? "

" 해볼래? 같이 벌어서 작은 방이라도 구하자. "

" 방? "

" 너.. 자꾸 한 글자로만 답할래? "

" 알았어. 해보지 뭐.. 근데 기대는 하지마. "




비실비실해 보이는 가냘픈 몸이 걱정은 되지만

아니,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까짓것 해봐야지.




여. 름. 안. 에. 서.




믹키




" 형.. 나 못 하겠어. "




시멘트를 어깨에 짊어지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죽겠다.

그래서 벽돌로 바꾸어 지게에 싣고는 걸어가는데 죽겠다.

다른 아저씨들이 하는거 보고 제일 쉬운걸로 바꿔 보는데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정말 울고 싶은데 참는다.




" 정말 못하겠어? "




재중이형은 머리에 쓴 안전모를 잠깐 들어 올리고는 다시 쓴다.

들쑥날쑥한 형의 앞머리는 이마에 모두 달라 붙어있고 땀이 흐른다.

그런데 내 이마에는 땀도 별로 없고 앞머리도 이마와는 떨어져 있다.




" 아니. 할께. "

" 힘내서 참아봐. "

" 알았어. 형은 땀이나 닦아. "

" 치.. 내 걱정은.. "




내 이마에도 땀이 나도록 열심히 해보지만

땀은 커녕.. 입안에는 침도 마르고 먼지만 먹는다.




콜록콜록




" 야.. 이 수건으로 입 막고 해. "




재중이형은 목에 두른 수건을 내게 던진다.

정말 주저앉고 싶은데 그러면 일어서기 힘들듯




한껏 인상을 쓰지만 형은 봐주지 않는다.

재중이형은 정말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땀을 훔친다.




" 형.. 안 힘들어? "

" 너.. 그렇게 가만히 있을래? "

" 내가 뭘하면 좋을까? "

" 그러면.. 저기 삽 들고 모래나 걸러. 할 수 있지? "




어깨에 두른 지게를 바닥에 팽겨치고

삽이 있는 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지만




" 거기!!! 똑바로 못해? 밥 없을 줄 알아!! "




제일 무서운 아저씨의 소리에 움찔하지만

삽을 들고 열심히 모래를 거르면서 땀을 만든다.




아..... 나도

땀이 흐르잖아.





흐뭇흐뭇




" 야.. 이제 그만해. "

" 아니야. 더 할께. "

" 그럼 나 혼자 밥 먹으러 간다. "

" 형!!!!!!! 같이 가!! "




밥을 먹는데 머리가 무겁다.

내가 너무 무리를 했나. 자랑스럽다.




" 이 바보야.. 안전모 쓰고 밥 먹으니까 좋아? "




헉.....

이럴수가




" 형.. 밥 다 먹어가는데 이제 말하면 어쩌자는거야. "

" 난 재밌게 보면서 먹었는데.. 그러면 된거지. 뭐.. "

" 형.. 너무해. 근데 정말 배부르고 좋다. 나도 할 수 있구나. "




그래. 나도

할 수 있다구.




안전모를 벗으려고 손을 올리는데

그 전에 이미 형이 내 안전모를 들어 올린다.




" 시원해? "




시원하다.

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더운 바람이 흘러 스민다.




" 이제 또 다시 일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

" 응. 나만 힘든거 아니잖아. "




내 등을 토닥여 주는 재중이형이 좋다.

그런데 너무 덥다. 아이스 캔디가 그립다.




" 그럼 내일도 할 수 있겠어? "




도리도리




내 의지와 다르게

재빠르게 나온 행동




" 그래. 그럼 오늘만 열심히 해봐. "




여. 름. 안. 에. 서.




창민




눈을 떴을 때 이미 난 혼자였다.

시계를 봤을 때 벌써 오후였으니




제일 큰 창문을 활짝 열어 냄새를 맡는다.

더운 공기 냄새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어지러워.

많이 잤나봐.




팔랑팔랑




더운 바람에 종이 한장이 춤을 춘다.

난간에 올려놓은 그 종이는 아래로 추락한다.




창민아

깨우지 못했어.

일찍 올께. 기다려.




사랑해. 심창민

너만을 보는 유노




" 유노형.. 정말 나 사랑하는거지?

정말 나만을 보는거지? 나 모르겠어. "




크게 한숨을 쉬고 쪽지에 건네는 물음에

쪽지는 내 손에 빠져나가 다시 추락한다.




벌써 유노형을 마중나가야 할 시간이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너무 늦게 일어난 나




" 이런적 없었는데.. "




어제 먹었던 그 독한 약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 약을 먹고는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을 때

너무도 늦게 눈을 떠버린 것이다. 균형을 잃은 듯해.




어서 나가자.

유노형이 먼저

기다리는건 슬퍼.




급하게 나가려다 순간 멈추고

어제 먹던 독한 약을 몸에 품는다.




꾸준히 먹어야 할 알약은 그 자리에서 삼키고

신발 속에 발을 다 넣지도 않은 채 쓸쓸이 달린다.




헉.... 헉.... 헉




아직 유노형은 오지 않았어.

어제 아팠던건 전부 사라지고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잠시 고개를 들려고 할 때

내 어깨에 닿는 따스한 체온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버린다.




" 창민아.. 쪽지 봤어? "

" 그럼.. 쪽지가 내게 오던데? "

" 정말? 그럼 나 질투하는거 알면서.. "

" 아.. 취소 취소.. "




유노형은 내 볼에 힘껏 입을 맞춘다.

아무도 없다는걸 알지만 고개를 숙인다.




" 창민아, 그 약도 챙겼지? "

" 응. 오기 전에 꾸준히 먹어야 할 약도 먹었어. "

" 잘했어. 알아서 잘 챙겨 먹으니까 이쁘다. "

" 아.. 나 더 이뻐지면 안되는데.. "




유노형의 덧니에 한껏 행복하다.

유노형은 날 사랑하고 있는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할까




" 유노형.. 음악 들으면서 가자. "




유노형은 내 얘기를 듣고 있지 않다.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이 분명해.




아주.. 정말 아주 가끔은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어서 두렵다.




" 덥... 다.... "




유노형은 작게 말을 뱉는다.

무미건조한 그 말이 슬프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오늘은 그 아이가 늦게 나왔다.

내가 기다리는걸 모르니까 그럴수도




내가 태양이 되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건

지켜주고 싶어도 지켜줄 수가 없어서다.

한없이 바라만 보고 혼자 슬퍼하는 내 모습




그 아이를 보면

한없이 즐거워지다가도

갑자기 슬퍼질때가 있다.




근데 오늘은

갑자기 슬퍼진다.




그 아이가 기다리는 한 남자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다.




저런 모습

항상 봤는걸




새삼 가슴이 아프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그런건 없다.




다만 저 두 사람이

항상 행복하면 좋겠다.




저 안에 내 자리가 없어서 다행이야.

내게 빈틈을 보여주지 않아서 태양이 되었는걸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그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슬픈걸까




그 아이의 마음이 나와 같다면

어서 즐거워지고 싶다. 전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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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키




편의점 앞에서 항상 먹던 빵을 끝까지 먹는다.

우유도 없이 빵을 하나 더 사고 열심히 먹는다.




" 너.. 누가 두개 먹으래. "

"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




어느새 재중이 형이 내게 왔다.

형은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 형.. 힘들지 않아? 그만해. "

" 내가 그만두면 그 빵은 어떻게 살건데.. "




할 말이 없다.

고개를 푹 숙인다.




" 농담이야. 힘들지 않아. 전혀.. "

" 형.. 미안해. 미안하고 또 미안해. "




입에 넣은 빵을 다 삼키지도 못한채

무릎 사이로 숙인 고개 위로 두 손을 올린다.




쓱싹쓱싹




두 손바닥을 열심히 빌고 또 빈다.

나만 아니였으면.. 너무도 미안해서




" 그만해. 너 정말 매일 그럴래? "




내가 여기서 목이 메어 죽는다 해도

재중이 형에게는 할 말이 없다. 켁켁




" 너.. 이런 것도 말 안 듣는거야. "

" 알았어. 그러면 가만히 있을께. "

" 야.. 두 볼이 다 터지겠다. 천천히 먹어. "




오물 오물 오물

햄스터가 되야지.




" 형은.. 뭐 안 먹어? "

" 난 거기 식당에서 먹었지. "

" 그래도.. 우유라도 마시지. "

" 오늘은 거기서 우유도 줬다. "




재중이형은 품 속에서 우유를 꺼내 내게 준다.

우유가 굉장히 따뜻했지만 내게 필요한 우유였다.




" 고마워. 형.. "

" 다음에는 다른 것도 사먹고 그래. 항상 그 빵이야? "




그게 어때서?

건방지게 본다.




" 어쭈!! 너 생각해서 한 말인데.. 그렇게 보면 어쩔거야. "

" 난 이 빵이 좋아. 아톰 스티커도 있고.. 많이 모을거니까.. "




재중이형은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온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나는 안보고 고개를 쭉쭉 올린다.




" 형.. 그렇게 고개 들면 피부에 안좋아. 날도 더운데.. "

" 그래도 아주 조금은 바람이 분다니까.. 너무 더운것도 아냐. "

" 힘든거 아니지? 내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힘들어. 난.. "

" 알았다니까.. 이 햄스터.. 어서 삼켜라. 우유 마시면서 같이 삼켜. "




내 부풀어 오른 두 볼에 불만을 갖는다.

재중이형은 매일같이 공사장에서 일을 한다.




나 때문도 아닌

형 자신 때문도 아닌

그냥 하는거라고 말한다.




난 처음 하루만 하고는 다음날부터 공사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재중이형은 내게 아무 소리도 안하고 혼자 묵묵히 나간다.

아침에 나갈 때마다 내 손에 쥐어주는 천원짜리 몇장에 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제일 싸고 큰 빵을 두개씩이나 먹고 돈을 모은다.




밤이 되면 근처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에 쪼그려 잔다.

난 거의 일년 동안 거리에서 지낸 경험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재중이형은 막노동으로 고단한 몸을 이끌며 나를 챙겨주며 잠든다.




어느 날은 몰래 공사장 식당에 가서 재중이형과 밥을 먹었다.

그런데 그만 걸리고 말아서 나보다 재중이형이 아주 혼이났다.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머리도.. 내 두 볼도 터질거 같아.




"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지? "

" 무슨 날인데.. 무슨 날일까.. "




곰곰이 생각하는 척 하지만

나는 절대 모른다. 모를거다.




" 바로 바로 바로 오늘이!!!! "




재중이형이 저러는거 보니까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거 같다.

제발 내게도 떨어지는 좋은 소식이였으면 더욱 더 좋겠지만




" 말로 하기 보다 이것부터 봐봐!! "




재중이형은 열심히 자신의 몸을 뒤진다.

내 두 볼은 이미 홀쭉해 졌고 우유도 없다.




" 어때? 놀랍지 않아? "




난 처음에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내 손으로 만져 보고야 그것이 돈봉투라는걸 알았다.

저번에도 한번 자랑하면서 보여주다 소매치기 당했지.




"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

" 뭐가? "

" 난 그 봉투를 보니까 그때가 생각나서.. "

" 이 바보.. 그런거 왜 기억해. 난 잊은지 오래야. "




재중이형은 강하다.

나와는 정말 다르다.




아.. 생각해보니

형이 공사장에 나간지

한달이 조금 넘은거 같다.




" 형.. 그거 공사장에서 받은 돈이지? "

" 응. 여기 너 일한 하루치 돈도 있다. 몰랐지? "

" 그거 형 가져. 난 필요 없어. "

" 헉.. 내가 줄거라고 생각했나 봐? "




이제 우리 헤어지는건가

왜이렇게 가슴이 답답한지




" 형.. 그 돈 어떻게 할거야? "

" 어쩌기는.. 정말 몰라서 묻는거야? "

" 정말 몰라서 그래. "




내가 괴로운 표정을 짓자

형은 재빨리 나를 안심시킨다.




" 약속했잖아. 같이 살자고.. 잊었어? "

" 잊고 있었어. 내가 무슨 주제로 형이랑.. "

" 야..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빵도 두개나 먹으면서.. "




형은 내 마음도 모르면서




" 형.. 근데 그 돈으로 방 구할 수 있어? "

" 어떨거 같아? 너 생각엔? "

" 부족할테지. 이제 내가 벌도록 할께. "

" 바보야.. 그 말은 지나가는 사람도 안 믿어. "




그런 말을 내게 하다니

충격에서 벗어나 겨우 호흡한다.




훅.. 훅..




" 내가 형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모르면 속상해. "

" 농담이야. 내 걱정 해주는 너가 있어서 얼마나 힘이 나는데.. "




정말?

정말 정말?




" 나도 이제 제대로 쉬고 싶어서 당장 방 구해 보려구. "

" 좋은 생각이야. 나도 형이랑 같은 생각!! "

"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한번 알아보러 다닐까? "




내 오른쪽 주머니 안에 있을 돈을 생각한다.

나중에 형에게 내밀면 형이 놀래겠지? 궁금해.




" 어!! 저기 부동산 문 닫는다. 닫기 전에 빨리 뛰어가자. "




형은 자기 혼자 말하고 혼자 열심히 뛰어간다.

그런 형의 뒷모습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한장 두장 세장 네장 다섯장

한달동안 모은 돈이 고작 만원




별 도움이 될거 같지 않지만

그래도 힘있게 주머니에 넣는다.




" 안 들어오고 뭐해!! "

" 알았어. 가 ~~ 간다구."




처음 들어가 보는 부동산이다.

그게 중요한건 아니지만 신기하네.




여. 름. 안. 에. 서.




재중




하마터면 하루 더 밖에서 밤을 지샐뻔 했다.

다행히 문을 닫으려는 부동산에 가서 사정을 말한다.




" 급하게 싼 방을 하나 구하려고 하는데요. "




온 몸이 땀으로 젖어 힘들어 보이는 내게

부동산 아저씨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는다.




" 얼마나 지낼 수 있어요? "

"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는데.. "




이번에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서 많이 다쳤다.

그 아이에게 숨기려 얼마나 참았는지 모르지만

밤이면 다친 곳이 아파서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 급하게 싼 방을 구한다면 잠깐 사는거 아니였어요? "




아니다.

다시 방을 구한다면

또다시 돈을 모아야 하고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안된다.




" 아니에요. 이번에 구하는 곳에서 쭉 지낼 생각인데요. "

" 그래요? 그럼 잠깐 기다려요. "




부동산 아저씨는 컴퓨터로 무엇을 검색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부동산 안에 있는 쇼파에 누워 자고 있는 녀석을 본다.




" 죄송한데.. 그냥 놔두시면 안될까요? 저 애가 잠을 못자서.. "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다.

저렇게 쭉 뻗어 자는 모습은

당연히 처음 보는 모습이였고

굉장히 평온해 보여 흐뭇했다.




" 돈이 얼마나 되요? "




잠시만.. 이라고 대답을 한 후

한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본다.




오는 길에 지폐를 한장 한장 세어 보았지만

한장이라도 빠뜨리지 않았는지 다시 세어본다.




" 백.. 만원 뿐인데요. 꼭 좀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사실 그 두 배 이상은 있어야 할 돈이였다.

그런데 틈틈이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약들과

결국 참지 못해 근처 의원에 가서 치료도 받았다.




그 돈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백만원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저 아이와 오래도록

함께 편히 쉬어야 한다면 아픈 것도 참고

한달은 죽어라 공사장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 여기서 떨어진 동네인데 상관없죠? "

" 네. 그럼요. 어느 곳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




다만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차비만 있으면 되는거다.

우선은 내가 쉬어야 하고 저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





그것 뿐이다.

그 어느 것에도 욕심이 없다.




욕심 없는 곳에서

유노를 그리워하면

아무 걱정도 없을테지.




" 어... 여기 한 집이 있네요. "

" 집이요? 방 하나면 되는데.. "

" 여기 와서 이 사진 좀 봐요. "




부동산 아저씨 앞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로 향한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볼품없는 집 한채가 눈에 들어온다.




" 저 집이 지금 백만원 하는데.. 사겠어요? "

" 사다니요? 전세면 충분한데.. "

" 얼마 후면 없어질 집일지도 모르니까 잘 봐요. "

" 아.. 그래요? 또 다른 곳은 없나요? "




부동산 아저씨는 요구하는 내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곳 뿐인것 같다.




" 사실 백만원으로는 방 한칸은 물론 발도 들여놓지 못해요. "




그런데 아까 그 집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은데




" 더이상은 없는거 같은데.. 급하다면서요. "




쇼파 위에서 축 늘어져 자고 있는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채

입맛을 다시고 있다. 가서 깨울 수도 없고.. 시간은 없는것 같고




" 계약은 어떻게 하면 되죠? "

" 여기서는 다 안되고 아까 그 집 근처 부동산으로 가서 하면.. "

" 그러면 지금 무엇부터 하죠? "

" 백만원 지금 갖고 있으니까 바로 주세요. 입금 시킬테니까.. "




급하게 들고 있던 돈봉투를 건넨다.

부동산 아저씨는 천천히 돈을 세고




" 여기에 싸인 하시고 이 계약서 가져가면 되요.

가져 가서 그 근처 부동산에 보여주면 끝나요. "

" 네. 고맙습니다. "

" 그러면 그 집은 김재중씨 이름으로 주인이 되는거니까

거기서 지내고 싶은만큼 지내면 되는거고.. 나중에는.. "




부동산 아저씨는 조금은 웃어 보이며




" 아마 파는건 안될거에요. 살 사람이 없을테니까..

아까 봤다시피 2층 건물인데 1층만 사용할 수 있어요. "




어서 쉬고 싶었기에 거기까지만 듣고

쇼파에 몸을 맡기고 잠에 빠진 아이를 흔든다.




" 깨우지마. 정말 편하단 말이야. "

" 야.. 일어나. 우리 집 구했어. 그러니까.. "




벌떡 일어나 나를 와락 껴안아 당황했다.

정말 편하게 잠깐이라도 잤는지 좋아 보인다.




" 형.. 정말이야? "

" 그래. 어서 그 곳으로 가자. "




아무런 짐도 없는 우리는

부동산 아저씨께 꾸벅 인사한다.




" 김재중씨!!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

" 네? "

" 복비 내는거 몰라요? "

" 복... 비요? "




큰일났다.

돈 없는데




" 이 돈이면 될까요? "




이 아이가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더니

부동산 아저씨께 불쑥 꺼내서 모두가 놀랬다.




꼬깃꼬깃 구겨져 있는 돈은 다름아닌

내가 빵이랑 우유 사먹으라고 준 돈인데




" 그 돈에서 절반만 줘요. 돈도 없는거 같은데.. "




그렇게 오천원을 복비로 내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차를 탔다.




" 형.. 택시 타니까 좋다. "




그것도 잠시 이 아이는 또 잠에 빠져든다.

이 아이 도움으로 택시비도 해결 할 수 있었다.




" 다 왔습니다. "

" 여기에요? "

" 네. 여기가 화수동입니다. "

" 여기 돈 받으세요. "




그 아이의 손에 살포시 쥐어진 돈을 빼내 드렸다.

그 아이를 힘겹게 꺼내 들고 우리는 화수동에 왔다.




" 너.. 눈 안 뜰거야? "




여. 름. 안. 에. 서.




창민




" 무슨 생각해?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채

그렇게 한달이 금새 지나가다.




" 유노형.. 오늘도 뛰어왔어? "

" 창민아.. 무슨 생각하냐고 물어봤잖아. "

" 그냥.. 항상 하는 생각.. "

" 내 생각? 나도 너 생각하면서 왔는데.. "




아주 작은 변화가 있다면

자주 피곤하고 말수가 줄어든점




" 창민아.. 아파 보인다. "

" 아프지 않아. 유노형.. "




그리고 조금 기뻐할 수 있는건

이런 나를 더 걱정해주는 유노형




" 창민이 웃는거 오늘 한번도 못봤어.

이제 음악도 듣지 않고.. 재미없고 심심해? "

" 아니. 그냥 웃음이 나오지 않고 피곤하기만 해. "




유노형은 큰일이라면서

오늘도 그렇게 걱정을 한다.




" 그럼 어서 집으로 갈까? "




유노형에게 간단한 대답은 이미 사라졌다.

약을 매일 먹어서 그런 탓일까.. 울렁거린다.




" 유노형.. 속이.. 안좋아. "

" 창민아.. 집에 가면 약 있을거야. "

" 나.. 걸으면 어지럽고 그래. 못 걷겠어. "

" 큰일이다. 업으면 괜찮을까? "

" 아니. 업는것도 안되겠어. 잠깐만.. "




털썩




이러면 안되는데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 창민아.. 이런데에 주저 앉으면.. "

" 나도 모르겠어. 가만히 있고 싶어."

"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집에서 약 가져올께. "




이번에도 내게는 대답이 흘러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눈 때문이 아닌 전혀 다른 아픔으로

유노형은 속이라도 뻥 뚫리는 약을 가지러 간다.




어지럽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제일 죽겠는건 울렁거리는 속




유노형은 내 표정을 보고도

무엇 때문인지 금새 알아 차린다.




그런 유노형을 기다리며 등을 기대기 위해

몸을 일으켜 다시 전봇대로 기어 가다시피

몸을 움직이고는 주저앉아 등을 편히 기댄다.




한 숨 좀 돌리고

고개를 들어보지만




순간 눈이 아파서 그만둔다.

눈은 아프지 않은데.. 괜찮은데

왜 다른 부분이 속을 썩이는지 몰라.




저기서

유노형이

달려온다.




그리고 난 어느새

눈을 감고 고개를 올려본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일기장에 적어놓은 최근

한달의 얘기들을 읽어본다.




창민이가 웃는다.

창민이가 또 웃는다.




그리고 난

점점 슬퍼진다.




그 아이에게서 표정이 없는거 같다.

그 아이에게서 표정이 사리지고 있다.




내 일기장은

이미 얼룩져 있다.




그 아이가 웃지 않는다.

그 아이는 전혀 웃지 않는다.




내 입술이 떨린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항상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음악을 듣지 않는다.



차오르는 걱정에

우선 눈물을 훔치고




답답한지 자꾸 가슴을 친다.

그러다 점점 세게 때리고 있다.




나도 같이

그때 그 아이를 생각하며

조용히 숨쉬는 가슴을 친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한채 그 남자에게 기댄다.

그 다음 날은 그 남자에게 기대어 쓰러질 뻔하다.




숨이 조여온다.

나도 아파온다.




그 아이가 이마에 손을 올린다.

눈을 지그시 감고는 인상을 쓴다.




나도 그 아이를 떠올리며

그때와 같이 같은 행동을 해본다.




그러다 바로 오늘

그 아이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시 전봇대 곁으로 힘겹게 걸어 오더니

그곳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아 고개를 들었다.



약을 가져온 그 남자는 그 아이에게 약을 먹인 후

그 아이를 업어들고 빠른 걸음으로 내게서 멀어간다.




왜 저렇게 아파하는걸까

무엇을 바라는 내 마음에

저 아이가 대신 벌을 받는걸까




그러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께.

악몽같은 이번 한달은 지나갈거야.




그리고 더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밤을 새며 모든 하늘에 기도할께.




이유없이 내 목소리를 뺏어간 저 하늘도

분명 내 기도라면 반드시 들어줄거라 믿어.




그래도 고마워.

아픈 몸으로 내 눈에

항상 들어와 있어준걸





매일 매일을 그렇게

감사하며 행복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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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




" 너.. 아직도 졸려? "




도리도리




그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심히

그리고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




" 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잔거야? "




대답이 없다.

입맛을 다신다.




" 너.. 배고파? "




끄덕끄덕





" 너.. 그러면 아까 빵은 왜 먹었냐? "

" 그건.. 빵이 날 부르거든. 먹어달라고.. "

" 조금만 참아. 빵도 이제 그만 먹고.. "




그 아이의 입가에 묻어있던 빵가루가 생각난다.

밥풀이라면 이렇게 속이 아프지는 않을텐데 속상해.




" 형.. 그 말은 이제 밥 해준다는 뜻? "




대답 대신 그 아이를 흘겨 보지만

그 아이는 너무도 기뻐서 폴짝 거린다.




" 야.. 밥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




그 아이는 대답도 없이 열심히 총총 뛴다.

무릎을 굽혔다가 점프해서 높이 솟기도 하고




" 그만해. 정신 사나워. "

" 아 ---- 싸 !! 밥!! 밥!! "




찾았다.




" 너.. 여기 있을래? "

" 왜.. 나 놓고 도망가려고? "

" 재미없어. 여기서 기다려. "




조금은 멀리 떨어져 보이는

부동산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 어서.. 오세요. "

" 여기 화수동에 2층 건물인데.. 1층을 샀는데요. "

" 아.. 잠깐만요. 거기 앉아요. "




부동산 아줌마는 분주히 쪽지를 찾아

메모된 글자를 눈으로 한번 훔치고는




" 김재중씨? "

" 네. 제가 김재중인데요. "




내가 건네는 계약서를 받고는

책상 서랍을 열어 반짝이는걸 잡는다.




" 여기 열쇠 받아요. "

" 네. "

" 근데 저 아이는 일행인가요? "




부동산 아줌마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몸을 뒤로 돌리는데 그 아이가 있었다.




" 너.. 언제 들어왔어? "

" 이거 대게 푹신하다. 형도.. "




그 아이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그냥 무시해 버리고 묻기 시작한다.




" 저희가 지낼 집은 어디에 있죠? "

" 그전에.. 여기 어떻게 왔죠? "

" 택시타고 화수동에서 내린건데.. "

" 그러면 내렸던 곳으로 다시 가서.. "




부동산 아줌마는 내게 설명하면서

아주 잠깐은 그 아이를 무섭게 흘긴다.




" 아주 작은 동네라서 쉽게 찾을 수 있을거에요.

혹시 1층 건물을 보게 된다면 지나쳐 큰길로 가요.

가다보면 그 동네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전봇대가 보여요.

그 전봇대 옆에는 3층 건물이 있는데 그 집도 지나쳐요. "




아주 자세한 설명으로 순간 머리가 가볍다.

아주머니도 그 아이를 노려 보는게 지치신 듯




" 다시 큰길로 걸어가면 공원이 나올텐데

공원은 지나치면 안되고 공원 가는 길에 있어요. "

" 2층인데 저희가 1층에 살면 2층은.. "

" 거기 부동산에서 못 들었어요? 2층에 살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




농담으로 들리는 말을 흘리는데

전혀 즐겁기도 웃기지도 않는다.




" 찾는거 어렵지 않을거에요. 그 동네 건물이 세개뿐이니까.. "

" 그러면 수퍼나 그런건 없는거에요? "

" 없어요. 다시 이쪽으로 나와서 장 보는 수밖에.. "

" 혹시 그 건물 세개는 모두 사람이 살고 있나요? "

" 그럼요. 댁들처럼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닌가? "




기분은 나쁘지만

아는게 없으니까

물어보는 수밖에




" 1층 건물에는 두명이 살고 3층 건물에는 3층에 한사람 살아요.

거기 1, 2층은 사람이 살곳이 못되지만.. 3층도 아주 좁고 작아요.

1층 건물은 제일 평수도 넓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제일 괜찮죠. "

" 그러면 우리가 살 곳은 어떠나요? 텅 비어있죠? "

" 아.. 그건 걱정 말아요. 짐도 없어보이는데 잘된거 같네요. "

" 무.. 무슨 말이죠? "

" 그 안에 조금은 필요한 것들이 있을거에요. 먼지가 쌓였겠지만.. "




아주머니는 고개를 쭉 빼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 거리기도 하다가 내게




" 아까 그 아이가 안 보이네. 나갔나? "




분명 저 아주머니의

흘김에 아마 나갔으리라.




" 다행이네요. 필요한게 아주 없는게 아니라서.. "




내가 부동산에 나가려 하자

갑자기 생각난 질문을 뱉는다.




" 이 곳에서 돈 벌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

" 이 근처에 미용실하고 댄스 아카데미가 있는데.. "




꾸벅 -




정중히 인사를 마치고

부동산을 나와 눈을 찌푸린다.






너무

따갑네




" 형.. 형도 따갑지? "




햇살이 너무 강하다.

나도 그 아이를 따라

손등을 이마에 댄다.




" 야.. 아까 택시타고 내리던 곳으로 가자. "

" 알았어. 빨리 가자. "




한참을 걸어 아까 그 곳으로 가서

주체하기 힘든 땀들을 열심히 훔친다.




뚝 뚝 -




그 아이와 내 몸에 흐르는 땀은

아스팔트 바닥에 검게 떨어져 마른다.




" 형.. 나 힘들어. 얼마나 가야해? "

" 저기.. 1층 건물 보인다. 어서 가자. "

" 형.. 우리 집 저기야? "

" 아니. 더 걸어가면 있어. "




이렇게 덥다니

길에 아무것도 없어.




" 형.. 저기 전봇대에 그늘 있는데 잠시 쉬자. "

" 시간 없어. 지치기 전에 빨리 가자. "

" 형.. 저기 저 3층은 뭐야? 저기는 아니지? "

" 아니야. 근데 대게 작아 보인다. 창은 무지 큰데.. "

" 그러면 대체 우리가 살 곳은 어디야. 힘들어. "

" 이제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까 참아. "




투덜거리는 그 아이의 얘기는

더운 바람에 흘려 보내고 간다.




" 다 왔어. 저기 저 2층 건물이야. 보이지? "

" 아.. 힘들어. "




그 아이의 대답과 동시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아까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너무하다. "

" 형.. 이건 아닌데.. 너무하잖아. "

" 어서 들어가자. 우선은 더우니까.. "




어 -

이상해.




" 형.. 형도 느꼈어? "

" 시.. 시원하다. 여기.. "




외형으로는 볼품없기 짝이 없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우선은 시원했다.




다만

조금은

어두울뿐




" 햇빛이 들지 않아서 그런거 같은데.. "

" 형.. 나 여기 좋아. 좋아졌어. 방금.. "

" 그래. 나도 그래. "




거실도 넓고 방은 좁지만 두개다.

쇼파도 있고 침대도 있고 부엌도




" 야.. 나 힘드니까 너 여기 다 청소하고 있어. "

"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

" 난 나가서 먹을거 사올테니까.. "

" 어디부터 청소하지? "




따로 지갑에 들어있는 십만원을 확인하고

그 건물에 나와 아까 왔던 길로 돌아간다.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그리워.

너라는 유노가




" 나.. 아무래도 너 못 찾을거 같다. "




혼자 중얼거리며

태양을 무섭게 본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눈을 뜨니 집이다.

유노형은 다른 곳을




본다.




" 유노형.. 무슨 생각해? "

" 응? "




몸을 일으켜 유노형을 본다.

유노형은 내게 시선을 돌린다.




" 응.. 너 생각하지. "

" 거짓말.. "

" 진짜야. 창민아.. "

" 나.. 약 먹은거야? "

" 응. 너 약 먹이고 데려왔어. "

" 유노형.. 나 얼마나 잔거야? "

" 밖에 봐봐. 벌써 밤이야. 꽤 잤지. "

" 그동안 형은 뭐했어? "

" 너 생각 했다니까.. 계속.. "




거짓말이다.

그 사람 생각 하지마.

그러면 나 죽기 싫어져.




" 창민아.. 물 마실래? "




대답도 하지 않은채

유노형을 바라보지만

유노형은 몸을 일으킨다.




팔랑 팔랑




종이처럼 보이는 얇은 무언가가

유노형에게서 아래로 추락한다.




" 차.. 창.. 미.. 민 아.. 그.. 건.. "




사진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홍콩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바로 여기




" 창.. 민아.. 차.. 앙.. "

" 버려.. 당장.. 지금.. "




지금 당장 버려.

용서는 못하니까




" 나.. 그 사진 봤었어. "




한달 전에




" 유노형.. 물 마시고 싶어. "




그때부터

난 내가 아닌거야.




" 아.. 알.. 았어. 기다.. 려. "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유노형은 날 떠날지도




모른다.




나.. 창민이만 사랑해줘.

심창민.. 나만 생각해줘.




눈물이 흘러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유노형이 없는 거실에 홀로 남아 두렵다.






잠깐

나갈께.




여. 름. 안. 에. 서.




시아




ㅊ ㅏ ㅇ ㅁ ㅣ ㄴ




종이에 끄적끄적

적어보지만 아프다.




그 아이가 잠시나마 머문

전봇대 앞으로 어슬렁 간다.




괜히 한번

전봇대도 쓰다듬어 보고

피식 - 웃기도 하면서 혼자




바보같이

고개를 든다.




하늘에는 곧 깨져 버릴것 같은

무수한 별들이 내게 웃어 보인다.




나도 따라 웃지만

이런 날 보기나 할까




내가 여기 있는데

저기 저 3층에서 항상

너를 향해 바라보는데




내일도 볼 수 있을거란 기대를 품은채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3층 건물 안으로




하늘에게서

나를 숨긴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청소를 했더니 힘들다.

무엇을 해도 모든게 힘들어.




재중이형은 또 돈이 있던걸까..

먹을걸 사온다니.. 나 몰래 돈을




오랜만에 열심히 움직인 몸에

피로가 몰렸지만 기다리기 심심해서




문도 잠그지 못한 채

낯설은 집을 잠시 나온다.




벌써 밤이네.

눈을 크게 떠볼까




아까 왔던 길로 걸어가 본다.

그런데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이.. 있잖아.

뒷모습이지만 사람




눈을 크게 뜬다해도 소용이 없지만

눈에 힘을 주고 뚫어져라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사람은

전봇대 한 곳을

꾹 누르고는 살며시




미소 짓는다.




미소 짓는 옆모습에

나는 순간 입을 막는다.




탄성이라도 나올 뻔 했을까

시원한 바람에도 땀이 흐른다.




나는 어렵게 뒷걸음 치고

그 사람은 그 곳을 떠난다.




계속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도록

그 사람이 알지 모르게 피해가며




바로 옆의 3층 건물 안으로 가는걸

눈으로 쫓고는 무섭도록 도망친다.




내 마음을 들키기가 싫어서

시선을 좁혀가며 두렵게 달린다.




쉽게

잊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걸




여. 름. 안. 에. 서.




유노




낮에 아픈 창민이를 데리고

집으로 데려와 쉴 수 있도록




눕힌다.




거실이 넓어서 마음도 차분해 진다.

나도 모르게 창민이에게 등을 돌린다.




내 지갑 안에 깊숙이 눌러붙은

작은 사진을 꺼내어 손에 펼친다.











아직도

너의 이름을

기억하는 나




나와 함께 홍콩에서

백일을 기념하며 찍었지.




그리고나서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서로에게 이유없이 지쳐가고 있을 때




내가 창민이를 만난거야.

난 가끔 창민이에게 너의 얘기를 했어.

너와 곧 헤어질거라는 얘기를 했던거야.




그리고 3년 8개월이 지나는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너에게 헤어지자고 했어.

너는 셀 수 없을만큼 내게 헤어지자고 했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너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




너가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창민이와 바로 이 곳으로 왔어. 왜




너와 헤어지려 했던걸까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너라는 녀석은 아마도

날 잊고는 열심히 살겠지.




어쩌면 나보다 강한 너

그래서 너가 무섭기도 했어.




" 유노형.. 무슨 생각해? "




창민이의 부름에 너무도 놀랬다.

내가 이렇게 놀랠 수 있다는게 싫었다.




팔랑팔랑




결국 바보같이도

그 사진을 떨어 뜨렸다.




어서 지갑 안의 제자리에 넣었어야 했는데

내 몸에 겨우 붙어있는 그 사진을 잊고 있었어.




" 나.. 그 사진 봤었어. "




홍콩에서 한국으로 오기 위해

일부러 모든걸 버리고 왔는데




정말.. 나도 정말 몰랐어.

나도 정말 한달 전에 알았어.




한달 전이라는거 말해봐야 소용없지만

우리가 여기에 있으면서 일년이 지나도록

난 그 사진의 존재로 전혀 모르고 지내왔는데




창민이에게

큰 상처를 줬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어.




" 유노형.. 물 마시고 싶어. "

" 아.. 알.. 았어. 기다.. 려. "




내 생각을 미쳐 정리하지 못한채

창민이에게 한없는 오해를 주었다.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물을 유리컵에 붓고는 잠시




재중이와 있는 사진에 시선을 멈춘다.

순간 내 손에 들려진 유리컵이 흔들리고




" 버릴께. 창민아.. "




내 손에 쉽게 떨어지길 바라며

사진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태운다.









-------------------------------------------------------------------------------------------- 17

















재중




밤이 뜨겁다.

덥지만 시원해.




두 손 가득히 큰 봉지를 손가락에 걸고

어슬렁 어슬렁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가는 길에 조금은 으리으리하고 번쩍거리는

건물 안을 비추던 불빛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댄스 아카데미




저 곳에서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춤을 가르키는 거라면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아직도 팔 다리가 쑤시고 저리는데

춤은 무슨.. 춤은 유노지. 유노.. 정윤호




이런

제길




걸음을 멈췄다.

모든 힘을 잃었다.




나를 데려가줘.

유노에게.. 별들아




내일 다시 와서 한번 물어 봐야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돈도 모으고

춤 추는 사람 보면서 유노를 떠올리겠지.




벌써부터

울고 말다니




그래도 내일 한번 가보자.

청소라도 시켜준다면 할테니




밤하늘은 보이지 않는 소리로 나를 위로해.

두 팔에 가득 힘을 싣고는 눈물에 한숨쉬어.




여. 름. 안. 에. 서.




믹키




" 재중이형.. 언제 들어왔어? "

" 방금.. 너는 언제부터 나간거야? "

" 나도 방금.. 진짜 방금 전에.. "

" 알았어. 우선 밥부터 만들어 먹자. "




꼬물 꼬물




" 왜 꼬물거려. "

" 나.. 밥 못 하는데.. "

" 그러면 저기 찌그러져 있어. "

" 그럴.. 까? "




재중이형은 못하는게 없다.

그런데 너무 늦게 온거 같아.




" 형.. 지금까지 뭐했어? "

" 장 보고 조금 헤맸지. 뭐.. "

" 조금은 예상했었어. 먹을거 많이 샀어? "

" 예상은 무슨.. 내가 먹을거만 잔뜩 샀다. "




정말?

그러면

안되는데




" 어.. 정말 빵이 없네. "

" 이제 빵 같은거 먹지마. "

" 먹을거 많네. 무거웠겠다. "

" 그래. 그러니까 다 먹어야해. "




형의 음식 만드는 솜씨를 보다가

갑자기 해야 할 말이 밖으로 나온다.




" 재중이형.. "

" 왜.. "

" 나.. 사람 봤다. "

" 그래서? "




그래서 라니..




" 형.. 다시 잘 생각해봐. 사람을 봤다니까.. "

" 여기서 사람을 봤다는거야? "

" 그렇다니까.. 너무 놀랍지 않아? "

" 너 몰랐구나? 아까 본 건물마다 사람들 살아. "




나만

몰랐잖아.




" 근데 형은 아직 한 사람도 못 봤지? "

" 내 생각에는 절대 못 볼거 같은데.. 그냥.. "

" 근데 나는 봤다니까.. 왜 이렇게 좋을까.. "

" 정말.. 너 왜 그렇게 좋아하냐.. 여자야? "




맞다.

남자다.




" 형.. 남자였던거 같아. "

" 큰일이네. 남자를 좋아하고.. "




그때 형은 생선 머리를 향해

반짝거리는 칼을 내리친다. 탁 -




" 그렇지? 남자 좋아하면 이상한거지? "




좋아하면

안되는거지?




" 응. 이상해. 그러지 마라. "




가라앉은 형의 목소리에

잠시 움찔하다 거실로 간다.




기억을 해보려 해도

그 사람 실루엣만 떠오른다.




그 라인이

잊혀지지 않아.




설마 여자는 아닐거야.

마르긴 했지만 남자였는데




" 야!! 밥 먹어!! "




잠시 기억을 묻어두고

형의 부름에 순간 이동을




" 음.. 생선 냄새.. 맛있겠다. "

" 먹고 죽어라. "




형의 농담에 잠시 젓가락을 놓는다.

형은 내게 웃으면서 생선을 발라준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달리고 보니

공원에 와있다.




내 힘에 소리지르는 풀들을 느끼며

힘겹게 그네 의자에 몸을 붙이고는




고개를 올려

마음껏 감상해.




내 마음처럼

하늘은 어둡지만

눈이 아프지 않아.




답답한 것도 잠시

눈동자가 떨려 와.




흐.... 흐... 흑.... 흑.... 흐.....




내가 이렇게 슬퍼하는데

유노형도 나만큼이나 슬플지




나도 그 사람 얼굴은 알고 있었어.

곧 헤어질거라면서 내게 보여준 수많은 사진들

그게 쉽지만은 않다면서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까 그 사진에 다른 사람이였다면 나았을거야.

그런데 겨우 잊으려는 그 사진을 왜 보인거야.

차라리 내가 없는 곳에서 보고 또 보란 말이야.




그 사진을 버렸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

하지만 형이 후회하고 있다는건 인정할 수 없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 준다면

다시는 그러지마. 다시는 보이지마.




그래도 나 믿고 싶어.

내 눈이 되어줄 형을




"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을 때

유노형은 내게 다가와 있었다.




" 다시는 그러지 않을께. "




울지 않는 유노형이 좋다.

내 눈물을 유노형이 닦는다.




" 울지마. 나 죽을거 같으니까..

그 사진 버렸어. 그게 왜 있었을까.. "

" 유노형.. "

" 나 알았어.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건.. 바로 너야. 창민이 너를.. "




사랑해.

유노형




" 창민아.. 너는 내 전부야.

이 세상 모든 것으로 너를 대신할 수 없어. "




그네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유노형은 내 앞에 서서 나를




포옹한다.




내 얼굴은 유노형의 가슴에 묻고

유노형의 떨리는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쿵.. 쿵.. 쿵..

콩닥.. 콩닥..




" 유노형.. 지금 떨고 있는거야? "

" 아마도.. 세상이 우리를 보고 있는거 같아서.. "




유노형은 나를 힘껏 품에 앉는다.

나도 두 팔을 올려 유노형을 감싼다.




" 정말.. 사랑해. "




우리 둘의 같은 소리가

밤하늘에 떠올라 빛난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이 동네에는 가로등이 없다.

그래서 이 곳의 밤은 까마득해.




별들이 토해내는

빛으로만 물들 뿐




온 세상이 죽은 듯 고요해.

나 혼자 지쳐가는 숨 막힘




내게 숨을 불어 넣어주는

그 아이를 또 기다리는거




언제까지

계속될까




가끔씩

힘들어져.




그럴때마다

날 다시 잡아주지만




또다시 지쳐 쓰러지고

또한번 원하고 기다려.




오늘은 일찍 잠들고 싶다.

이런 어둠은 언제나 그랬다.




조금씩 오늘과 멀어져가며

내일 만나게 될 숨을 기다려.




내 호흡은 바로

창민이라는 아이




저 하늘의 별도

그 아이를 대신해 주지 못할만큼

이미 그 아이에게 빠져 버리고 말았어.




나의 끝이 되버릴

사람이 되었다는거

내가 분명 알려줄테니




고개 들어

한번이라도

나를 바라봐줘.




나는 바로

태양 아래에

있을테니 제발








------------------------------------------------------------------------------------------------------- 18













재중




" 형.. 아침부터 어디 가? "




자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녀석은

슬금슬금 방에서 기어 나와 말한다.





" 형.. 또 먹을거 사러 가? "

" 아니. 어디 좀 가보려고.. "

" 어디? 운동이라도 할거면 나하고 같이 가자. "




횡설수설

그 아이는

혼자 떠들어.




" 형.. 그럼 언제 밥 먹는거야? "

" 너.. 배 고파서 깬거야? "

" 온 몸이 근지러워. 목욕이나 할까? "




너무 편하게 잤나보다.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

변하다니




" 재중이형.. 나 깨우지마. "




거실에서 밤을 보낸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내게 조잘조잘 떠든다.




" 방이 좁아서.. 나도 이제 형이랑 같이 잘래. "




넓다고 느끼는 거실에

좁디 좁은 방 두개지만




이 곳의 창문은 너무도 작다.

아침이란걸 시계를 보고 알았으니




" 그만 떠들고 다시 자. 정신도 차려 가면서.. "




음냐음냐




" 금방 올께. 먼저 밥 먹지마. "




벌써부터 혼자 입맛을 다시는 아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정말 내 동생같다.




집을 나와 고개를 한번 들고는

태양에 한번 미소짓자 눈이 부시다.




얼굴이 타겠는걸

아침에도 이러니




한 손을 가볍게 쭉 피고는

내 얼굴에 그늘을 만든다.




타닥타닥 -




어젯밤에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잠시 지나친 댄스 아카데미로 향한다.




삐걱 -




" 어서오세요. "

" 안녕하세요. "




이른 시간인데 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엔 아직 한사람 뿐이다.




" 실례하겠습니다. "

" 어떻게 오셨나요? 등록 하시러? "

" 드.. 등록.. 이요? "

" 네. 이 곳은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니까요. "

" 그.. 그건 아닌데.. "

" 아.. 아니면 배우고 있는 분이세요? "

" 그.. 그것도 아닌데.. "

" 그러면 어떻게 오셨어요? "




순간 부끄러워진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무래도 아닌거 같다.




" 실례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두 팔로 얼굴을 감싸듯이

댄스 아카데미 문을 열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




으 아 ...




더위가 가시듯

온 몸이 불안해.




사실 춤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까




" 저.. 이 근처에 미용실이 어디 있죠? "




겨우 지나가는 사람을 찾아

미용실의 위치를 듣고 몸을 돌린다.




그래.




자격증도 있으니까

거기서는 용기 있게

밀어 붙이는거야. OK?




" 어서오세요. "

" 안녕하세요. "




자신감이 어디서 생겼는지

난 한번에 대화를 마치고는

그 곳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 오늘은 돌어가고 내일부터 시작하는거 어때요? "

"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미용실을 나와




두 팔을 벌리고

태양과 마주한다.




유노야

너도 잘 지내지?




너의 춤 추던 모습이 생각났어.

내가 응원하고 환호하던 너의 모습

너에게 그때 춤이라도 배울걸 그랬나봐.




"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




아주 작게 중얼거리지만

괜히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내가 눈을 떴을 때

방이 아닌 거실에 있었다.




" 내가 왜 여기.. 있지? "




분명히 재중이형은 여기서 자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잤었는데




이상하다.

가물가물




오싹해지는 소름을 느끼고

그대로 신발을 신고 나선다.




와 아 -

아침이네.




근데 왜 집 안은 어두운건지

밖은 이렇게나 눈이 부시는데




터벅터벅 -




두 손을 번갈아 가며 흔든다.

여기저기 걸어가며 세상을 훔친다.




" 좋아. 좋다구!! "




거리에 아무도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




무섭지 않은걸

혼자가 아니니까




어느 섬에 떠밀려 온것처럼

이 세상에는 나 뿐인것 같아.




어머머머머머머머머 -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조금씩 비벼본다.

눈물이 나올만큼 누르기도




분명

어제






사람

같은데




맞을까?




그런데

이번에도

뒷모습이다.




한번

돌아보겠지?




말똥말똥




난 함부로 눈을 감지 못했다.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릴것 같아서




휘리리리릭 -




순간 바람이 내 몸을 스치더니

그 사람은 그대로 건물에 들어간다.




가지마!!






한번만

봐주지.




쳇쳇쳇쳇 ..




그저 단순한

호기심 같다.




어젯밤에 흐릿하게 보고는

재중이형에게 잠깐 말한것 뿐




그 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어.




3층 건물 안으로 사라진

그 사람은 이제 내 눈에 없다.




살랑살랑




여름에 불어오는 바람이

꽤 싱그럽다. 달콤하기도




여. 름. 안. 에. 서.




시아




이제 곧 그 아이가

저 곳으로 올 시간




나도 모르게 그저 궁금해서

잠시 신발을 신고 내려간다.




전봇대로 향하면서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 혼자만 있어.




한 손으로 전봇대 한 부분을 누르고는

그대로 한 곳을 응시한다. 이제 오겠지.




아직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그때 불어오는 바람이 내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아직은

아니니까




3층으로 올라가 내 자리를 찾고

가만히 조용히 창 밖을 응시한다.




어..

근데




창 밖으로 보이는 곳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가 있다.




누구지?




그대로 가만히 서 있는 한 사람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이 시선을 피한다.




이제 올텐데

얼굴이 뜨거워.




태양을 향해 한 손으로 얼굴을 꾹 누르고는

내 얼굴이 달아올랐음을 느낀다. 굉장히 덥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유노형은 오늘

댄스 아카데미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 유노형.. 그렇게 빠져도 되는거야? "

" 나.. 오늘 하루만은 너랑 쭉 있고 싶어. "

" 새삼스레.. 왜 이래. "

" 창민아.. 이리 가까이 와봐. "




일년이 넘도록 빠짐없이 다니던

댄스 아카데미를 오늘 하루 쉰다.




" 유노형.. 그러면 오늘은 집에만 있을거야? "

" 창민아.. 더운데 우리 오늘은 집에만 있자. "

" 알았어. 그럼 계속해. "




쪽 쪽




유노형은 내 얼굴 전부에 입 맞춘다.

난 눈을 감기도 하고 때로는 바라본다.




" 유노형.. 내가 그렇게 좋아? "




유노형은 내게 부딪히던 입술을 잠시 떼고

내 눈에 시선을 맞추며 아주 짧게 대답한다.




" 사랑해. "




유노형의 뜨거운 사랑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 둘은 미치도록 감싸며




" 저 태양보다 내 사랑이 더 뜨거워. "




유노형은

나만의 태양




오늘은 외출하지 않아.

태양이 날 찾는지 몰라도











------------------------------------------------------------------------------------------------ 19

















시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시간이면 항상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오늘 하루 보이지 않아.




밤은 깊어만 가는데

정말 오늘은 없는건가




뚝 뚝




눈물이 책상위로 떨어진다.

눈물은 어느새 차갑게 식는다.




책상에 팔을 괴고 밖을 향한다.

밖에는 아직도 한 사람이 있다.




아까 낮부터 계속 가만히 있어.

누구를 기다리는걸까.. 아니면




툭 툭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내일이면 멈출지도 몰라.




오늘 내 일기장에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내 작은 서랍 속에 일기장을 꺼낸다.

그리고 그 곳에 차가운 눈물만 채운다.




내일은 꼭

볼 수 있게 해줘.




잠도 오지 않는 밤

눈물로 기도하며 지샌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정말 호기심 일까

그런데 발이 안 떨어져.




배 고픈것도 잊은채 3층 창 안으로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에 잠시 정신을 잃기도 한다.




어질어질




왜 이럴까

그저 사람인데




태양은 내게 등지고 있기에

3층을 보는데 눈이 아프지 않다.




태양은 거리에 서 있는 내가 아닌

저 건물 안에 있는 사람에게 쏟아져.






그런것만 같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대로 편하게 갈 수 있을지는




" 눈.. 부.. 셔.. "




태양 때문일까

저 사람 때문일까




잠시 고개를 내리고 다시 올리는데

3층 안의 사람이 나를 보는것 같다.




어떻게 해야하지?

고개를 돌릴까.. 피할까




그런 생각도 잠시

나 혼자만 보고 있어.




내게 아무런 관심도 시선도 없는거야.

내가 아무리 태양을 피해 바라보고 있어도




난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거리마저 익을대로 익은 뜨거운 여름에

아스팔트 거리가 식을때까지 바라만 본다.




그래도

이런 날

안 볼거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꼭 너의 앞에서 웃을거야.




환하게

눈부시게




그 사람도 나처럼

방긋방긋 웃을 수 있게




여. 름. 안. 에. 서.




재중




미용실에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놀라움에

집에 오는 내내 길을 잃고 온종일 태양이 뿜는 땀과 싸웠다.




" 아직도 자냐? "




거실로 들어와 푹신한 이불을

발가락에 걸어 한껏 들어 올린다.




" 없네. 밥 먹나? "




내가 늦게 와서 화가 났을지도

혼자서 분명 잘 차려 먹었을거야.




없잖아.

안보여.




혼자 있는거 못 참고 나갔을지도

근데 밥 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아.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 아니겠지?




" 재중이형.. 왜 이제 와. "

" 너.. 어디 있었어. 왜 이제 들어와.. "

" 밖에도 어두운데 여기는 진짜.. "

" 지금 밤이잖아. 아주 깜깜하다. 집이.. "




아침에도 환하지 않아 걱정이였는데

낮에 있어도 꽤 어두울 것 같은 이 곳




" 형.. 형은 왜 이제 오는데? "

" 일 자리 구하러 다녔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

" 여기에 일할 곳이라도 있대? "

" 부동산에 물어 봤었어. 그 얘기 듣고 찾아 간거지. "

" 형.. 그러면 또 돈 버는거야? 왕창? "

" 왕창 벌어서 뭐하냐. 너 뱃속으로 들어갈텐데.. "

" 아니야. 형은 내게 밥만 해주면 오케이야!! "




이상하게 오늘따라 이 아이가 안쓰러워 보인다.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 너.. 밥 안 먹었지? "




갑자기 그 아이의 표정이 어둡다.

이 집만큼이나 어두워 걱정스럽다.




" 형.. 난 안 먹을래. 형이나 먹어. "

" 왜 그래.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

" 밖에서는 무슨.. 밖에 뭐가 있다고.. "




아.. 알겠다.

알것 같기도




" 혹시.. 너가 말한 남자 찾으러 다녔는데 못 본거 아냐? 맞지? "

" 땡.. 틀렸어. 찾으러 나간건 아니였지만 보긴 봤는데.. 그냥.. "




그렁그렁




그 아이의 눈에 무언가 차오른다.

나는 애써 못본 척 하지만 힘들다.




" 형.. 나 이상해. 아주 많이.. "

" 그래. 내가 보기에 너 그런거 같다. "

" 아직은 단정짓지 않을래. 그저 관심 뿐일지 모르니까.. "

" 그래. 그것이 관심으로 끝나길 나도 바랄께. "




그 아이는 입에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조심스럽게 내게 뱉는다.




" 형.. 내가 대체 바라는게 뭘까.. 사랑은 아니지? "

" 사랑이란거 쉽게 말하는거 아냐. "

" 형은.. 사랑 같은거 해봤어? 어땠어? "

" 사랑? "




사랑?

사랑이 무엇인지

잠시 찾아 보지만




" 사랑 같은거 느껴보지 않았다면? "

" 형.. 그걸 사실이라고 말하는거야? 형이라면 아마도.. "




아마..

아마도?




" 여자 몇은 울렸을거 같은데? "

" 너는 지금 농담할 기분이야? "

" 아니. 아니지. 사랑이 아니야. "




그 아이는 뭔가를 알았다는 듯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문다.




" 그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그럴까.. "




대답이 없어 나도 같이 뜸을 들인다.

아무래도 지금은 단단히 빠진것 같다.




" 어디에 사는지 알아? "

" 알아. 전봇대 앞에 보면 3층 건물 있잖아. "

" 아.. 3층에 사는 혼자 사는 사람? "




그 아이의 커다란 눈이 빛을 발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와 어깨를 잡는다.




" 어떻게 알아? 정말 혼자 사는거야? "

" 부동산에서 너 못 들었어? 난 들었는데.. "

" 왜.. 혼자 살까..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

" 그건 나중에 친해지면 물어 보든가 해. "

" 친해지면.. 친해지는거 좋다. 그걸로 결정했어. "




혼자 확신에 찬 미소로

주먹을 쥐며 날 올려본다.




" 형.. 밥 먹자. "




여. 름. 안. 에. 서.




창민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유노형도 내 옆에 마찬가지




" 유노형.. 쉬니까 좋아? "

" 응. 창민이 옆에서 쉬니까 좋아. "

" 유노형은 쉬기만 하고.. 나는 심심해. "

" 심심했어? 그럼 잠깐 나갈까? "




유노형은 몸을 일으키고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 창민이.. 앞머리 잘라야겠네. "

"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눈 찌른다고.. "

" 그래도 너무 짧으면 안되잖아. 눈에 그늘이 있어야.. "

" 이미 눈은 찔릴데로 찔리고 햇빛만 피하면 끝인거야? "

" 창민아.. 이런거 참을 수 있다고 했잖아. "

" 몰라. 내 앞머리 어서 잘라줘. 저번처럼 삐뚤게 자르지 말고.. "

" 창민아.. 며칠 전에 보니까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 미용실 있더라. "

" 정말? 그러면 당장 거기로 가자. 이쁘게 잘라야지. "

" 그건 안되는데.. 너무 이뻐지면 나 내일도 일하러 안 갈거니까.. "




유노형이 제대로 쉬긴 쉬었는지

곧잘 농담도 하면서 많이 웃는다.




" 유노형.. 그럼 이제 나가는거야? "

" 그래. 나갈 준비하자. 약부터 챙겨. "




잊고 있던 약

정말 잊고 싶다.




후 아 -




밖에 나왔더니 정말 어둡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이 손을 뻗으면

내 손 안으로 한웅큼 잡힐 것처럼 가까이




" 창민아.. 잘 보이지? "

" 응. 이 앞머리 좀 걷으면.. "




유노형이 대신해서 내 앞머리를 걷어준다.

걸으면서도 유노형의 손은 내 이마에 있다.




" 창민아.. 낮보다는 밤이 낮지? "

"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게 잘 보여. "

" 근데 나 때문에 낮에 나와서 기다리니까.. "

" 집에만 있는거 안 좋다고 같이 얘기 들었으면서.. "

" 그래도.. 매일같이 낮에 나오면 안 좋지 않을까? "

" 유노형.. 그래서 내가 크게 나빴던적 있어? 없잖아. "

" 걱정되니까 그러지. 내 마음도 몰라주고.. "




유노형은 내 볼을 살며시 꼬집는다.

아프기 보다는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 유노형.. 밤이지만 참 맑은 밤이지 않아? "




유노형은 몸을 뒤로 젖히며 고개를 든다.

별들이 유노형의 눈 위로 쏟아질 것 같아.




" 그래. 여기는 낮과 밤.. 전혀 다른거 같아. "

" 유노형.. 그래도 난 눈을 찌르는 낮이 좋아. 이상하지? "

" 아니. 나도 사실은 낮이 더 좋은걸.. 태양이 부서지는 여름의 낮이.. "

" 유노형.. 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신기해. "

"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있어야 하는거야. 몰랐어? "




콩 -




유노형은 내 이마에 꿀밤을 놓는다.

나도 같이 해보지만 실패로 끝났다.




" 어라? 문이 닫혔네. 창민아.. "

" 우리가 너무 늦게 왔나보다. 근데 괜찮아. "

" 그럼 어쩌지? 집에 가서 내가 잘라줄까? "

" 아.. 아.. 니.. "




말을 너무

더듬어 버렸다.




" 창민아..그럼 내일 다시 올까? "

" 응. 내가 일찍 가서 자르고 올께. "

" 그래도 되겠어? "

" 그럼.. 놀랄 준비 미리 해. "

" 알았어.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집으로 간다.

화수동의 시작을 알리는 1층 건물이 보인다.




바로 이 곳이 유노형과 창민이가 사는 집

화수동의 중간에는 작은 3층 건물이 있으며

화수동의 끝을 알리는 어두운 2층 건물이 있다.




그건 유노형에게서 들은 얘기

낮에 밖에 있으면 건물을 올려 볼 수 없으니까

이런 밤에나 볼 수 있는걸.. 하지만 바로 집이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집들을 볼 수 있겠지.

낮에 가까이 느껴지는 집들을 볼 수 없으니까

언제 밤이 되면 유노형과 천천히 둘러 볼거야.




" 창민아.. 거리가 조용하다. "




낮에도 조용하지만

이런 밤은 감각마저 잃는다.




" 유노형.. 내 입술 보이지? "




보인다면 뽀뽀해줘.

아무도 볼 수 없도록






---------------------------------------------------------------------------------------------- 20












시아




온 몸이 따끔거릴만큼 태양이 내 주위를 맴돌아.

엎드린 몸을 일으켜 보니 내 앞에 보이는 책상은




그대로 잠들어 버린건가

기도하다 잠들어 버리다니




어제 그토록 기다린 그 아이를 눈에 담을 수 없어서

그런 내 바보같은 두 눈을 없애 버리고 싶을만큼 그만큼




절규하며

외치고 싶다.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내 입 안에서만 맴돌아.




죽도록 괴롭고 힘든것도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어.




그러니까 어서

그 아이를 데려다줘.




아니면 이 창을 부수고

저 아래로 추락할지도 모르니




바닥에 떨어져 유리조각들이 내 몸에 박히면

너무 아파서 소리 지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나를 쳐다 볼거라 믿는 그 아이에게 말하고 싶어.

기다렸다고.. 내 삶의 전부였다고.. 고마웠다면서




태양이 유리조각처럼 부서진다.

내 앞의 창을 두드리지만 소용없다.




힘차게 내 앞의 창을 힘껏 치고는

어서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울부 짖는다.




내 삶이 되어버렸어.

그 아이가 내 심장이 되어

내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데




곧 있으면 숨이 끊어질거 같아.

오늘은 그 자리에 꼭 있어줘. 꼭




하얗게 일렁이는 아침 안개가 사라지고

내 눈물만이 태양에 노크하며 기도한다.




내 기도를 들어줘.

그 아이가 필요해.




뜨거운 여름이 슬프다.

이런 내가 있어 슬프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오늘은 아침에 눈을 뜨고서

그 남자의 미소가 떠오른다.




왜 갑자기

생각난걸까




도리도리




힘차게 고개를 돌린다.

어제까지 있던 자신감은 없다.




내가 그 남자 앞에서

웃음지어 보일 수 있을지




기회라는거 내게 있을까

한없이 떠올라 슬프잖아.




" 너.. 꼭 울거 같다. "




울지도 모르지.

울고는 싶은데




" 너.. 아직도 그 남자 생각하냐? "




끄덕끄덕




더이상 숨기면

눈물이 흐를지도




" 너.. 아주 심각하네. 두번 봤다면서.. "




누가 내 속에 들어와

내 마음을 읽어줬으면




" 처음 볼때 이미 내 마음은.. 빼앗겼어. "




울지 않으려 했는데

이유없이 반짝거린다.




" 참.. 정말 할 말 없어지게 만드네. "




재중이형은 고개 숙인 내 얼굴 아래로 몸을 숙인다.

형은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만 더 흘러.




" 그 사람은 너 이러는거 모르잖아. 아직은 이러지마. "




형의 엄지 손가락이 내 눈물을 훔친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그 날 밤이 떠올라.




" 형.. 그 날 밤에.. 밤에 보았던 그 모습이 자꾸.. 잊혀지지가 않아. "




형의 한숨 소리가 무겁다.

아침인데도 이 곳은 어둡다.




" 다시 잘 생각해봐. 너의 마음은 그게 아닐거야. "




갑자기 생각나서 이러는거야.

그 날 밤에 보았던 그 실루엣이




어제 보았던건 낮이였는데

밤에 보았던 그 모습과 닮았어.




그 모습이 점점 내 안에 박혀지고

너무도 아파서 힘주어 뽑을 수 없어.




" 형.. 이거 다 꿈일까? "

" 그래. 넌 꿈을 꾸고 있어. "

"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

" 나도.. 그런 꿈을 꾼적 있어. "




형은 몸을 돌려 신발을 신는다.

오늘부터 일을 한다고 했으니까




" 형.. 일하러 가는거야? "

" 응. 어떤 곳인지 안 궁금해? "

" 아.. 궁금해. "

" 너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것도 내가 먼저 말해줘야 하다니.. "




형은 끝까지 내게 고개를 들지 않았다.

형도 꾸었다는 그 꿈을 찾아 헤매일 수도




" 미용실이야. 자격증이 있거든. "




작은 소리로 말을 남기고

형은 그대로 집을 빠져 나간다.




이제 이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온통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얼굴은

찾아낼 수 없어.




어둠 속에서 보게 된 뒷모습과

고개를 약간 올려 짓던 그 미소




어제 낮에는 뒷모습만 보았는데

그리고 집 안에 있는 모습을 올려

보았을 뿐.. 얼굴은 볼 수 없었어.




얼굴이라도 보기 전에

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자.




" 깨어나야.. 해. "




내 몸을 감싸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

소리도 질러보고 땅을 주먹으로 친다.




이건

아니야.




깨어날 수 없는걸

깨어나면 난 죽어.




여. 름. 안. 에. 서.




재중




정말 꿈을 꾸었던걸까

그 아이가 사랑에 빠졌어.




사랑에 아파하는 모습을

벌써부터 보게 될줄이야.




허무하다.




사랑은

한 순간에

빠져 버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유노에게 그랬던 것처럼




처음 유노를 만난건

아니, 유노를 보았던건




홍콩 번화가 쇼핑 거리의 좁은 무대 위에

유노는 몇몇 사람들과 힘든 춤을 추고 있다.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눈을 감아 다시 뜨게 되면 꿈으로 사라질까봐




내 귀에는 내 숨소리만이 전해져 오고

세상에 나와 유노만 남아있는것 같았어.




유노도 춤을 추다가 나를 보았고

이내 내게 시선을 맞추며 움직였어.




같이 세상에 남아 호흡하는 별들처럼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반해 버렸지.




춤에 빠져 있던 유노는 내게 깊이 빠지고

나는 내 주위의 여자들을 정리하며 유노만을




유노만을

내 심장처럼

내 품에 넣었어.




너무 사랑해서 헤어지자고 했을 때




" 흐..... 흑..... 흐.. 흑............ "




더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심장은 소리없이 멈춘다.




" 유............. 노.... 야..... "




내 소리를 들어줘.

내가 있다는걸 알아줘.

내 사랑을 제발 느껴줘.




나 아직도 제자리인거니..

그래도 조금은 가고 있는데




언젠가는

유노 너를

만나게 될거야.




그런날이 나를 무심코

지나쳐 가지 않을거라는걸




알아.

아니까




그때까지 나

재중이 잊지마.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널 한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줘.




너의 숨을 느끼고 싶어.

너의 숨이 곧 내 심장이니까




" 유............. 노.... 야.... "




나.. 다시

힘들어지고 있어.




정말 어렵게 눈물을 훔쳤다.

미용실로 들어가 손님을 기다린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어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온 몸이 근질거려 나가려 한다.




" 창민아.. 너도 나하고 같이 나가자. "

" 지금 같이 가려고 나가는거 안보여? "




유노형은 잠시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옷을 입어도 밥을 먹어도 신발에 발을 넣어도

언제나 나를 향해 있고 나를 살펴보며 웃는다.




유노형의 덧니




유노형을 사랑하던 그 남자도

저 덧니에 같이 웃고 그랬을까




유노형이 가끔 내 앞머리를 잘라줄 때

조금은 능숙한 손 놀림이 싫을때가 있다.




유노형이 사랑하던 그 남자에게

배웠다던 미용 기술이 내게 상처니까




" 창민아.. 왜 신발 안 신어. 발 들어봐. "




유노형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신발에 내 한쪽 발을 쏙 넣는다.




" 창민이.. 발도 예쁘네. "




날 사랑하니까 다 예뻐 보이는거야.

언제까지나 형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어.




" 창민아.. 약 챙겼어? "




아침인데도 거리는 뜨겁기만 하다.

그 거리에 우리의 사랑을 아낌없이 쏟는다.




" 유노형.. 여기.. 약 보이지? "

" 중요한 그.. 약도 잘 챙긴거지? "

" 응. 여기.. 이건 안 먹었으면 좋겠어. "

" 그럼.. 벌써 하나 먹었으니까 먹을리 없어. "




정말 그럴까

그런건 상관없어.




" 유노형.. 눈이 참 부시다. "




유노형은 재빨리 손등을 내 이마에 갖다댄다.

그러려고 한 말은 아닌데 괜시리 미안해진다.




" 그냥.. 좋아서 해본 말인데.. 유노형은.. "

" 창민아.. 앞머리 아주 조금만 잘라아해. "

" 알았어. 이 앞머리가 내게는 중요하니까.. "

" 그래. 불편한거 알아. 하지만 낮에 나오려면.. "




그렇다. 낮에 나오기 위해서는

저 태양을 이겨 내려면 그늘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전봇대

앞에서 기다리는 이유도 그거야.




" 창민아.. 미용실까지 같이 갈까? "

" 아니. 저기가 형이 일하는 곳이구나. "




댄스 아카데미

화려하지만 작다.




" 그럼 나 먼저 가도 되지? "

" 응. 유노형.. 조금 후에 봐. "

" 그래. 거기서 기다려. "

" 알았어. 어서 들어가봐. "




유노형은 내게 두 손을 흔든다.

내게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 유노형.. 그러다 다쳐. "




미용실로 걸어가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 하루 푹 쉬었더니

한달동안 앓았던게 씻겨졌어.




" 어서오세요. "




내가 잘못 본걸까

잘못 본걸거야. 분명




무언가

떠오르려 해.




유노형부터

천천히 그리고







--------------------------------------------------------------------------------------- 21




















재중




" 어서오세요. "




드디어 손님이다.

오늘.. 내게 첫 손님




굉장히 맑고 귀엽게 생겼다.

그런데 나를 보고 움직이지 않아.




" 뭐 하실거에요? "




나를 보고 있기는 한데

무엇도 전해지지 않는다.




" 아.. 앞머리 좀 자르려구요. "

" 네. 여기 앉으세요. "




방긋방긋




손님에게는 친절하게

상냥하고 편하게 보여야지.




" 어머.. 뒷머리도 잘라야겠다. "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건가

그럴땐 내 웃음을 한방 날리면




" 그럼.. 뒷머리도 알아서 잘라주세요. "




슬슬 시작해볼까

머리칼에 물을 적신다.




조금씩 조금씩

듬뿍 듬뿍 듬뿍




미용실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손님의 머릿칼의 물방울을 감싼다.




" 뒷머리는 잘랐으니까 이제 앞머리 자를께요. "

" 근데.. 앞머리는 조금만 잘라줘야 되요. "

" 네. 앞머리는 뒷머리보다 천천히 자라니까.. "




싹둑 싹둑




내 능숙한 솜씨에

나도 모르게 좋아져.




" 자.. 이제 드라이 해드릴께요. "

" 잘 보이게.. 해주세요. "

" 네. 이쁘게 해줄께요. "




이미 내 솜씨에 반한거야.

그럼 마지막으로 만져볼까




" 다 했어요. 마음에 드세요? "

" 네. 아주 마음에 들어요. "




짝 짝 짝 짝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어울리지 않는 박수를




" 얼마죠? "

" 7천원입니다. "




귀엽게 생긴 첫손님은

바지 주머니 안에서 손을

꼼지락 하다가 내게 내민다.




" 어쩌죠? 5천원 밖에 없는데.. "

" 아.. 그러세요? "

" 내일.. 꼭 갖다 드릴께요. "

" 그.. 그러세요. 내일 꼭 갖다 주세요. "




헉.. 이럴수가

나 짤리는거 아닌가




" 저.. 이거 받으세요. "




손님이 내게 내민 쪽지에

손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다.




" 여기 적힌데로 제 이름은 심창민이구요.

화수동에 1층 건물에 살아요. 내일 꼭 드릴께요. "

" 아.. 화수동에 사시는구나. 저도 거기 사는데.. "

" 죄송합니다. 이만 가볼께요. "




내 말이 마치기도 전에

내 첫손님은 황급히 나간다.




내일 또 볼 수 있는거네.

동네에서 마주칠지도 모르지.




다시금 텅 비어버린 미용실 안에서

수퍼에서 사온 감자깡 봉지를 터뜨린다.




포 옹 -




역시 과자는 감자깡이야.

혼을 쏟았더니 기운 빠지네.




찬란한 햇살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너무도 수고했다고.. 그렇게만 하라고




여. 름. 안. 에. 서.




창민




아니다.

아닐거야.




유노형과 헤어지고

저렇게 밝게 웃다니




" 7천원입니다. "




바지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정확히 내게는 8천원이 들어있다.



" 어쩌죠? 5천원 밖에 없는데.. "

" 아.. 그러세요? "

" 내일.. 꼭 갖다 드릴께요. "

" 그.. 그러세요. 내일 꼭 갖다 주세요. "




테이블 위에 놓여진 종이 위에

내 이름과 주소를 적어 건낸다.




" 아.. 화수동에 사시는구나. 저도 거기 사는데.. "

" 죄송합니다. 이만 가볼께요. "




제대로 들었다.

분명히 화수동




미용실을 나오자 어지럽다.

내게 향하는 태양이 울렁거려.




잠시 몸을 뒤틀어

미용실 안을 살폈다.




우물우물




무슨 과자를 먹고 있는데

굉장히 즐겁고도 밝아 보여.




정말 저 사람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내일 다시 와서 살펴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지도 몰라.




" 그럴.. 리 없어. "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기분에 따라 약해지고 있어.




유노형을 기다리기 위해

전봇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이런 내 모습

들키지 않겠지.




여. 름. 안. 에. 서.




유노




" 어제 아침에 한 사람이 왔다 갔었어. "

" 그래요? 등록한거에요? "

" 아니. 그냥 왔다가 둘러보고 가더라구. "

" 네. 뭐..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




그때 내가 있었으면

꽉 잡아서 등록시켰을텐데




" 이제 가봐야지. 유노군.. "

" 네. 먼저 가보겠습니다. "




오늘은 댄스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이쁘게 머리 손질한 창민이만 떠올렸다.




너무 이뻐서

몰라보면 어쩌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민이는 전봇대에 몸을 기대고 있다.




왜 고개를 숙이고 있을까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랐나




" 창민아!! 머리 이쁘게 잘랐네. "

" 응. 유노형.. 나 이쁘지? "




창민이의 질문에 아무런 힘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도 이쁘고 눈부신데

창민이 마음에는 들지 않는건가.. 아닌데




" 창민아.. 아주 아주 이뻐!! 잘 어울려. "

" 유노형.. 여기 오면서 나만 생각했지? "




창민이의 얼굴이 온통 그늘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럴리 없을텐데




" 창민아.. 무슨 일 있었어? "

" 내 생각만 한거지? 아무데도 가지 않을거지? "




창민이의 소리가 태양을 찌른다.

내 몸을 힘껏 끌어 당기며 울고있다.




" 유노형.. 아무데도 가지마. "

" 창민아.. 왜 그래. 난 항상 너와 있어. "

" 유노형.. 아무도 보면 안되는거야. 나만 눈에 담아. "

" 그래. 내 눈은 항상 너를 쫓고 있어. 걱정하지마. "




떨고 있는 창민이의 등을 쓸어 내린다.

왜 이렇게 불안해 하는걸까..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 잘 생각해도 모르겠어.




" 유노형.. 난 오로지 형만 보고 있어.

내가 형을 생각하지 않아도 형은 내 생각만 해야하고

나와 잠시 떨어져 있어도 나만을 그리워 해야해.

그리고 어느 곳에도 가지마. 내 허락 없이는 안되니까.. "




창민이의 갑작스런 말에 놀랬다.

난 언제나 너의 곁인데.. 갑자기 왜




" 나.. 유노형 뺏기기 싫어. 날 꼭 잡아줘. "




창민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눈물은 이미 두 볼에 녹아 내렸으며

얼굴 곳곳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긴다.




" 난 너 밖에 없어. 창민아.. 사랑해. "




나.. 확실히 알았어.

언제나 그랬듯 너야.




여. 름. 안. 에. 서.




시아




가슴을 때리는 태양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창 밖을 한없이 응시한다.




분명

올거야.




두근두근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게

너무도 황홀할만큼 아득해진다.




올거라 믿었어.

내게 와주다니




그런데 조금씩 힘들어 보인다.

숙여진 고개가 자꾸만 숙여지고




어제는 왜 나오지 않았는지 더이상

태양에게도.. 별에게도 묻지 않을께.




그 아이가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 남자는 그 아이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언제나 그랬듯

저 두 사람이 만날 때

내 시선은 잠시 거둔다.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내 욕심이 가끔 싫기도 해.




내 기도에 그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저런 힘겨워 하는 모습까지도 보며

내가 미소지을 수 있다는게 가슴아파.




다음에는 꼭

같이 웃을 수 있게

더 많이 기도할테니




싱긋 -




태양이 나를 향해 웃는다.

나도 태양을 따라 수줍게 웃어.




여. 름. 안. 에. 서.




믹키




오늘은 이불 속에서 먼지만 날린다.

움직이기도.. 무얼하기도 귀찮아진다.




조금이라도 그때 그 남자를

잊어보려 하지만 더 깊어진다.




나 혼자

착각하는거야.




" 나.. 왔다!! "




재중이형이다.

일을 끝내고 온 듯




" 너.. 계속 이러고 있던건 아니지? "




내게 형이 있어 다행이다.

내 마음을 들어줄 형이 있어서




" 형.. 일은 어땠어? 힘들지 않아? "

" 완전 아니야. 손님이 한명이였어. "




쿡 쿡




재중이형은 뭐가 그리 신난지 웃는다.

그런 형의 모습에 나도 잠시 웃어본다.




" 형.. 어떤 손님이였는데? "

" 글쎄.. 이 동네 사람이더라. "

" 정말? 그럼 혹시 그.. 사람은 아니지? "

" 아쉽게도.. 1층 건물에 사는 아이야. "

" 와.. 벌써 그런 사이야? 대단한데? "

" 아니. 사실은 돈이 모자라서 이름하고 주소 적어주더라. "

" 그랬구나. 얘기는 해봤어? "

" 얘기는 무슨.. 내가 좀 친절하게 했지. "




재중이형은 또 한번 수줍게 웃는다.

일이 힘든걸로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 형.. 미용실에서 뭐했는데 돈이 모자라? "

" 그냥 커트.. 앞머리만 자르러 왔더라구. "




잠시 내게로 다가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두 손가락으로 가위질 흉내를 내며 내게




" 너.. 내일 할 일 없지? "




고민고민




" 내일 나하고 미용실 같이 갈래? "

" 형.. 나는 가서 뭐하라구. "

" 내가 너 머리 잘라줄께. "

" 싫어. 나.. 내일 찾아봐야 해. "




누구를?

그 사람




" 너.. 너무해. "

" 형.. 나 오늘 계속 집에만 있었어. "

" 그러면 내일 찾을거 찾고 미용실로 와. "




아무렇지 않은 내 모습에

형은 내가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벌써 잊은건가




" 형.. 여기 근처에 가볼만한데 있어? "

" 너.. 오늘 집에서 꽤나 심심했구나. "

"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

" 그러면 너.. 춤 배워볼래? "

" 형.. 춤이라니.. 갑자기 무슨.. "

" 내가 일하는 미용실 근처에 있거든. "

" 형은 이 곳에 대해 너무 많은걸 알고 있어. "

" 그게 어때서.. 댄스 아카데미가 있던데 생각해봐. "

" 알았어. 생각은 해볼께. 미용실 가는것도.. "

" 내가 한가지 말해두겠는데 미용실에 먹을거 많아. "




내 약점을 찌르다니

그래도 우선은 찾아야해.




" 그리고.. 우리 집 바로 옆에 공원있다. "

" 그걸 왜 이제 말해. 놀이터도 있는거야? "

" 나는 아직 안 가봐서 모르지. 너가 가봐. "

" 형.. 그럼 지금 혼자 갔다 올까? 답답한데.. "

" 너 좋을데로.. 난 이제 밥이나 해야지. "




우선은 밥을 선택

공원은 내일 가야지.




----------------------------------------------------------------------------------------- 22














재중




알람 시계에 맞추어 눈을 뜬다.

분명 아침인데 집 안은 어둡다.




그 아이는 벌써 일어나 가만히 앉아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 보니 아무래도 그




" 너.. 그 남자 생각하지? "




그 아이가 살며시 몸을 돌린다.

알면서 자꾸 묻지 말라는 듯이




" 왜.. 생각하면 안되는거라도 있어? "

" 아니. 적당히 해. 너.. 보기 안좋다. "




그 아이는 다시 몸을 돌린다.

더이상 나와 말하기 싫다는 듯이




" 너.. 오늘은 뭐 할건데? "

" 나.. 그냥.. 있을거야. 형은 안 나가? "

" 나갈거야. 너.. 정말 같이 안 갈거야? "

" 안 간다니까.. 나.. 혼자 있고 싶어. "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인다.

왜 숙이는지 알거 같기도




" 너.. 울지는마라. 나까지 슬프다. "




그 아이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온다.

안타깝지만 그 어깨를 잡아줄 수 없어.




" 형.. 나.. 아직도 꿈 속이야. 힘들어. "




어두운 거실 안에서 그 아이는 울음을 삼킨다.

억지로 삼키며 가슴 속으로 꾹꾹 눌러 담듯이




" 형.. 나.. 나갈 수가 없어. 또 볼까봐. 괴로워. "




그래서 어제

집에만 있던건가




" 형.. 그 사람도..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

" 너..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거야. 정신차려. "




내 마지막 네 글자가 너무했나

그 아이는 온 몸을 작게 감싼다.




" 왜.. 이렇게 생각나고 아픈거지. 왜 그런건지.. 형은 알아? "




차마 그대로 볼 수 없을만큼 불쌍하다.

저렇게 순수하고 맑디 맑은 고운 아이라니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아무것도 몰라. "

" 형..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온 몸이 부서질거 같아. "

" 너.. 잠은 제대로 잔거야? 언제부터 깬거야.. "

" 형.. 나하고 같이 공원에 갈래? 나.. 숨쉬고 싶어. "




어느새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 아이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진다.




유노가

그립다.




" 나가자. 공원으로 가자. 어서.. "




한없이 쓰러져 있는 그 아이를 일으킨다.

집 대문을 열쇠로 잠그고는 밖으로 향한다.




" 어때.. 조금은 괜찮아? 밖에 나오니까 좋지? "

" 형.. 너무 눈 부셔서 또 눈물이 나오려 그래. "

" 그래. 나도 눈물이 나오려 그런다. "




그렁그렁




이 아이는 내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그 아이를 끌고 공원에 도착하니 힘에 겹다.




" 형은 이제 가. 일하러 가야하잖아. "

" 그래. 가봐야지.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

" 오래 있지는 않을거야. 그건 걱정하지마. "

" 너.. 아까 계속 울었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

" 알았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거니까 안 울거야. "

" 그래. 집에 가면 잠도 푹 자고.. "




아쉽지만 그 아이를 공원에 두고 멀리한다.

그 아이는 그네 의자에 앉아 고개만 숙인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봐.

왜 그렇게 울고 있는거야.




눈물이 천천히 떨어질 수 있도록

눈물이 천천히 흐를 수 있도록 고개를




조금만

들어봐.




너를 위로해 줄 태양이

바로 너의 위에 있는데




여. 름. 안. 에. 서.




시아




태양이 내 눈을 두드린다.

그 부름에 눈을 뜨고 웃는다.




아침이구나.




하암 -




하품을 하고 팔을 위로 쭉 핀다.

눈에 고인 눈물을 확인하고 닦는다.




헤헤 ^^




어제 내 눈에 담은 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지나고 보던 모습이라 너무도 소중해.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데 눈물도 함께 나온다.

눈물은 부른적 없는데도.. 내 눈에서 자꾸만 흘러.




언제까지.. 언제까지

정말 힘들다. 오늘도




공원으로 나가볼까

그네나 타고 놀아야지.




그네를 타면 내 볼을 찌르는

내 머리칼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아.

그런 내가 태양으로 달려갈 수도 있어.




냉장고에서 시원한 딸기 우유 하나를 집어들고

위 아래 하얀색 츄리닝으로 옷을 고쳐 입고 나간다.




빨대는

필요 없겠지.




츄리닝 소매 부분을 팔꿈치까지 한껏 올린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내 두볼은 어느새 뜨겁다.




한 손에 들고 있던 딸기 우유의 한 부분을

내 한쪽 볼에 대고는 그 시원함을 한껏 느낀다.




그네 타면서 마실까

타고 나서 마시는게




혼자서 작은 것에 고민하던 중

어느새 공원 앞에 가까이 와있다.




저기.. 저 곳에

사람이 있잖아.




눈을 가늘게 뜨고는 힘주어 다시 살핀다.

분명 사람이다. 그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왜 움직이지 않지?

그러면 재미 없는데




아쉽게도 공원에는 그네가 하나 뿐

저 사람이 그네 타는걸 그만둘때까지

이 자리에 서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다니

그럴거면 차라리 나에게 양보하지.




그런데 아직 내가 있음을 모르는것 같다.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까.. 안 보일테지.




기다리기 지루해 딸기 우유를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우유 주둥이를 열고 내 입가에 가져갈 때




터벅터벅




그네에 앉던 사람이 의자에 일어선다.

그런데 내 쪽으로 당당히 걸어오고 있다.




" 저도.. 딸기 우유 주세요. "




그 사람은 딸기 우유와 같은 입술 색을 가졌다.

그런데 내 것인 딸기 우유를 달라고 하는건 뭐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똑똑히 쳐다본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꿋꿋이 내 두 눈에 들어있다.




" 주세요. 저도 딸기 우유 좋아해요. "




갑자기 그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울기 시작한다. 어쩔줄 몰라 결국 준다.




불쑥 -




딸기 우유를 들고 있던 한쪽 팔을

그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하여 뻗는다.




그러자 그 사람은 딸기 우유를 잡고 있는 내 손가락들을

조금씩 살며시 스치며 내 딸기 우유를 손에 쥐고서 간다.




저 사람은 뭐지?

생각하다 그만둔다.




공원에 혼자 남겨진 나는

공원을 한번 둘러 보고는




잽싸게 그네 의자에 올라탄다.

오늘은 서서 그네를 타보는것도




쌩 쌩 -




아.. 시원해.

바로 이거야.




여. 름. 안. 에. 서.




믹키




꿈이 아니지?




이미 내 두 손에 꼭 쥐어진 딸기 우유 하나

그 우유 곳곳에 입을 맞추며 한없이 웃는다.




" 으... 으.. 하.. 하하하하... "




너무 웃어서일까

눈물이 찔끔 흘러.




딸기 우유 주세요.. 라니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런데 불쑥 내게 내미는 그 모습은

정말 날 앞으로 힘들게 할 것만 같았다.




아까 그네 의자에 앉아 울고 있을 때

겨우 눈물을 모두 날려 보내고 눈을 떴어.




그리고 내 몸을 휘감는 기분좋은 느낌에

시선을 돌렸을 때 바로 그 남자가 있다니




꼭 나를 보기 위해 이 곳에 온것처럼

그런 대단한 착각 속에 점차 빠지면서




" 저도.. 딸기 우유 주세요. "




푸훗 -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게 웃기지만

그때는 정말 그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 같아서

가까이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를 피하지 않았고

내 시선을 그 눈에 맞춰 주었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겨우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였다니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런 표정없이

내게 딸기 우유를 내밀었을 뿐이다.




더이상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 주세요. 저도 딸기 우유 좋아해요. "




푸훗 -




또다시 웃음이 흘러 나온다.

내가 딸기 우유를 좋아했던가




그때는 너무도 떨리고 긴장해서

웃음이라는 것과는 너무도 멀었다.




이렇게 기뻐서도 눈물이 흐르는구나.

이런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흘릴 수 있어.




그런데.. 다시 또 보고 싶어져.

그 사람이 생각나서 견딜 수 없어.




꿀꺽꿀꺽




정말 안 마시려 했는데

너무 울고 웃어서 목말라.




이번에는 눈물과 딸기 우유의 액체가

내 볼을 타고 내 옷에 떨어져 스며든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한 숨도 못자다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창민아.. 너 자고 있는거야? "




절레절레




" 창민아.. 어디 아파? "

" 아니. 아프기는.. 유노형.. "




유노형을 힘없이 부른다.

유노형이 내 곁으로 온다.




와락




" 왜.. 창민아.. "




유노형은 댄스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

나갈 준비를 마치고 다시 내 곁에 오고




" 말해봐. 창민아.. 그냥 부른거야? "




누워있는 내 옆으로 다가와 눕고는

내 한쪽 어깨를 감싸며 가까이 있다.




" 사랑해. 유노형.. "




유노형의 덧니가 보인다.

점점 불안해지며 슬퍼진다.




말해야 할까..

나.. 본거 같다고




" 창민아.. 기분 안 좋아? "




절레절레




그런거 아냐.

한숨만 뒤섞여.




후 우




" 창민아.. 나.. 가지 말까? 창민이 옆에만 있을까? "




절레절레




" 창민아.. 나도 너랑 떨어져 있기 싫어. 그런데 어렵게 참는거야. "

" 알았어. 어서 가봐. 갑자기.. 그냥.. 그래. "




유노형은 잠시 다른 곳을 보며 눈에 힘을 준다.

나도 내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그만둔다.




" 창민아.. 그럼 먼저 나갈께. "




아침이 오고 처음으로 웃었다.

유노형을 보며 웃을 수 있는건




" 행복해.. "

" 응? 창민아.. 뭐라고 했어? "

" 아냐. 아무것도.. "




지금 행복하다고 다시 말하면

다시는 행복하지 못할것 같아서




" 창민아.. 오늘 힘들면 나와서 기다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

" 아니. 나갈거야. 그게 내 행복인데.. 뺏어가지마. 제발.. "




정말 아침부터 이러는 내가 싫다.

그런데 자꾸 어제 보던 그 얼굴이




내 눈 앞을 가로 막는다.

정말 그 사람이 맞을까?




" 아.. 알았어. 꼭 나와. 알았지? "




유노형에게 미용실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늘 남은 돈을 주러 간다는 얘기도 역시




" 그럼 갈께. 약 꼭 먹고.. 창민아.. "





알았어.

사랑해.




유노형이 나가고 한참 뒤에 몸을 일으켜

컵에 담겨진 물을 찾고는 약을 집어 삼킨다.




꿀꺽




꾸준히 먹고 있는 약이 이제 지겹다.

서서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옷을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간다.




분명 닮은 사람일거야.

그 사람에 비춰 떠오른거야.




그러니까 급한 생각은 아직 일러.

분명 홍콩에 있어야 할테니까 아마




혹시 유노형이 한국으로 갈거라고

그 사람에게 말했을까.. 그건 모르겠어.




" 어서오세요. "




또 한번 확실해진다.

그 사람이 확실하다고




" 저.. 아시죠? "

" 그럼요. 어제 오셨잖아요. "




날 알아본다.

불안해진다. 점점




" 여기.. 2천원이요. "

" 네. 고맙습니다. "

" 안녕히 계세요. "




어서 그 곳을 나가고 싶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느끼며




" 잠깐만요. "




역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건가

불길한 예감에 온 몸이 떨린다.




" 드라이 해드릴께요. 시간되시면 잠깐 앉으세요. "




털썩




결국 앉아 버리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것일까.. 정말




" 화수동에 사신다고 했죠? 저도 거기 살아요. "




대답대신 눈을 마주친다.

드라이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 저는 2층 건물에 사는데 혹시 알아요? "




이번에도 대답대신 눈을 마주친다.

하지만 내 대답을 모르겠다는 듯이




" 공원 가기 전에 있는 건물인데.. "




짧게 들릴 듯 네.. 라고 대답해 보는데

내 입술을 보고는 들렸다는 듯이 끄덕인다.




" 아직 공원에도 안 가봤지만.. 공원에 가본적 있어요? "




그때 드라이가 끝나고

소리없는 열이 피어난다.




"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

" 저도 안 가봤어요. 가봐야 하는데.. "




이번에도 들리지 않는 대답으로

네.. 라는 짧은 소리를 보여준다.




" 드라이 끝났는데.. 괜찮죠? "

" 네. 어제처럼 괜찮아요. "




내 대답에 굉장히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저렇게 밝을 수 있는.. 모습에 다시 한번 슬프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걸

미워하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 저.. 바쁘세요? "

" 네? "

" 바쁘지 않으면 이거 같이 먹어요. "




부스럭

부스럭




그 사람은 갑자기 카운터로 걸어가

그 안에 서랍을 열어 소리나는걸 꺼낸다.




" 같이.. 먹을거죠? "




내가 원하는건 이게 아닌데

점점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 23
















재중




" 같이.. 먹을거죠? "




다음에도 한번 더 와달라는 의미로

투철한 내 서비스 정신에 뿌듯하다.




아삭 아삭




감자깡을 너무 많이 샀나

다음에는 고구마깡이라도




" 감자깡 좋아해요? "




그저 말없이 묵묵히 먹네.

내 서비스가 부담스러운걸까




" 사실 제 첫손님이에요. "




한 손에 과자를 쥐고 고개를 끄덕인다.

괜히 힘 얻었다는 생각에 계속 이어간다.




" 그래서 다음에도 또 들렸으면 해서.. "




희미하게 웃고 있다.

역시 내 서비스가 최고




" 맛있네요. "

" 맛있죠? 어제도 먹었는데 또 먹어요. "




나와 지내는 그 아이와 다르게

이 손님은 수줍음도 많고 조용하다.




" 아.. 제 이름은 재중이에요. 김재중.. "

" 네. 제 이름은.. "

" 창민.. 심창민 맞죠? 어제.. "

" 네. "




기억하길 잘했어.

이름일 뿐이라도




" 학생이에요? "

" 아뇨. 아픈 곳이 있어서 쉬고 있어요. "

" 아.. 미안해요. "




아파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 곳으로 온건가




" 이 동네가 꽤 조용하죠? "

" 네. 그런거 같아요. "

" 저는 우연히 이 곳으로 왔는데 아직은 모르겠어요.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아무것도 없으니까 두려워요. "




나도 모르게 말을 길게 늘어 놓는다.

이런 내 말을 잠자코 귀 기울여 준다.




" 다음에 염색하러 와요. 잘 해줄께요. "

" 저.. 이만 가볼께요. 갈데가 있어서.. "

" 그래요. 그럼 다음에 또 와요. "




내게 한번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는

나를 천천히 바라보며 멀어져간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재중

김재중




유노형이 수백번.. 아니 수천번은 불렀을 그 이름

그 이름을 나도 이제 부를 수 있게 알아 버리다니




아무래도

그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담담한건지

화도 내고 소리도 질러야 하는데




어제 처음 보고 나서 유노형에게

전달되지 않는 여러 말들만 늘어놓고

감정이 더 격해질줄 알았더니 아니야.




오늘 다시 만나서 어제보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보니까

유노형이 왜 그 사람과 사랑했었는지 조금씩 알것 같기도




정이 많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밝기도 해.




유노형은 나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도 사랑했다는 사실이




점점 자신이 없다.

곧 들켜버릴까봐 더




내가 유노형과의 인연이라면

그 사람은 유노형과 운명인걸까




나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깊은 바닥 속으로 추락한다.




내 생각을 어서 끌어 올리자.

유노형은 날 사랑한다고 했어.




" 창민아!! "




불안하던 내 생각은 순간 씻겨 내려간다.

유노형이 내 품으로 달려와 나만을 담는다.




" 창민이 보고 싶어서 죽는줄 알았어. "

" 정말? 내가 여기 있어서 다행인거네. "




유노형은 내게 뜨겁게 키스한다.

밖에서 키스라니.. 너무도 놀라서

눈을 크게 뜨지만 눈이 아파 감는다.




" 사랑해. 창민아.. 정말 보고 싶었어. "




나는 행복하다.

분명 행복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태양의 빛이 우리 품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힘껏 부서질 듯 안는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공원에서 실컷 그네를 타고

온 몸에 힘이 빠져 집으로 간다.




어린애도 아니고

땀까지 흘리며 타다니




그러면서 잠시

그네타던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지어.




흐뭇하게




곧 있으면 그 아이를 보겠지.

벌써부터 온 몸이 떨려오잖아.




이미 3층으로 올라온 나는

냉장고 안에 우유를 꺼낸다.




아까 그 우유가

마지막 딸기 우유




흰우유를 입안에 솟는다.

너무도 시원해 땀이 식는다.




벌써 왔네.

바로 저곳에




그 아이가 그 자리에 있다.

우유도 마저 삼키지 못한채

그렇게 그 아이를 바라본다.




와락




또 예상대로 둘이 껴안는다.

그런데 그전에 키스도 함께




안 보려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그런걸로 화내지 않는다.

그 키스와 포옹으로 그 아이가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미소 지으면




그것으로 된거다.

그것으로 거기까지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그 아이를 보는걸로 오늘도

기분좋게 행복하게 마감한다.




내 일기는 오늘도

고맙다는걸로 시작해.




그리고 사랑한다고

끝을 마무리 하지만




아직은 모르겠어.

그것이 사랑인지




여. 름. 안. 에. 서.




믹키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한다.

그 남자가 건넨 빈 우유통을




어디까지나

우유통인데




" 너.. 바보처럼 뭐하냐? "




재중이형이 언제 온거지?

벌써 시간이 빨리도 흘렀어.




" 보면 몰라? 이거 보고 있잖아. "

" 그게 뭔데? 겨우 우유통이잖아. 비어있네. "

" 이게 그저 흔한게 아니야. 형은 모를테지. "




비웃음 섞인 자신감을 나타내며

짧게 웃고는 형의 행동을 살핀다.




" 아.. 짜증나. 확 밟아 버릴까보다. "

" 그러면 나 기절해. 안 그럴거지? "

" 왜 다 먹은 우유통을 뚫어져라 보는데? "

" 이거 어디서 난건지 알아? 맞춰봐. "




형은 두 손가락을 턱 아래에 누르고는

냉장고를 슬쩍 한번 보고는 대답한다.




" 어디기는.. 냉장고에서 꺼냈겠지. "

" 아니야. 그게 아니라구. "




너무 좋아서 말이 나오지 않을만큼

잠시 정신을 잃다가 겨우 집중하고




" 그.. 그 남자를 공원에서 만났어. "

" 만나기는.. 말을 제대로 해. 약속이라도 했어? "

" 지금 태클거는거야? 아무튼.. "

" 어서 속 시원히 말해봐. 나 좀 쉬자. "

" 아침에 형이랑 공원 갔었잖아. 형 가고나서 나 혼자 있는데

그 남자가 글쎄 공원에 있는거야. 그래서 무작정 가까이 가버렸지. "

" 흐음.. 흥미진진한데.. "




형은 눈이 반쯤 풀린 듯

어서 끝내라는 말투였다.




" 그런데 한손에 딸기 우유를 들고 마시려 하는거야. "

" 알겠다. 너가 그거 뺏어 왔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좋아하지. "




왕 태클에도 여유있게

웃어 넘어가지만 어렵다.




" 가까이서 얼굴을 봐서 좋았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것 같아서

무작정 그 우유를 달라고 했어. 그런데 순간 내 목소리를 들려준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마구 나오는거야. 이상하게 창피하다기 보다 어서.. 앞으로 나가고 싶었어. "

" 그래서.. 조금 진행은 된거야? "

" 그런데.. 내게 별 관심 없는 듯 우유를 주고 그게 끝이였어. 허무하게도.. "

" 그것으로 된거야. 잘했어. 잘했네. 잘한거야. "




형은 내게 다가와 내 등을 쓸어준다.

막상 말하고 나니까 괜히 쓸쓸해진다.




" 너.. 아무튼 잘되서 좋다. 헤어질 일도 없잖아. 어떻게 보면.. "

" 무슨 말을 그렇게.. 아직도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떨리거든. "

" 그래.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가 좋은거야. 계속 그렇게 해. "

" 싫어. 그럴 수 없지. 더 다가갈거야. 내게 관심을 보이게 될테니까.. "

" 오늘 그 일로 완전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우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




형은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신다.




" 그 남자.. 분명 딸기 우유를 좋아하는거겠지?

그런데 이제는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거야. 두고 봐. "

" 그래. 두고 볼테니 꼭 그렇게 만들어라. 그보다 청소 좀 해라. "

" 알았어. 밥 먹고 할께. 오늘은 기분이다. "

" 기분대로 행동하지마. 너.. 그러다 한대 맞아. "




지금 같아서는 한대 맞아도 기분 좋을거 같아.

두대는 아니더라도.. 벌써 밤이구나. 달빛이 고와.







-------------------------------------------------------------------------------------------- 24


















재중




아침이다.

그리운 지금




" 형.. 나 오늘도 일찍 일어났어. "




그 아이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은 뜨지 못한채 하품만 연거푸




하 암 -




" 너..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 정신 차릴때까지 잠이나 자. "

" 뭐야. 나 오늘은 형 따라 가려고 했는데.. 가지 말까? "

" 아.. 아니. 그럼 같이 가자. 거기에 먹을거 많아. "

" 그래서 가는거 아니야. 집에도 먹을게 넘쳐 나는데 무슨.. "

" 그게 아니면.. 나하고 계속 있고 싶구나? 짜식.. 밝히기는.. "

" 왜 저래. 형 때문에 남아있던 잠이 확 달아났잖아. "




두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보인다.

애써 외면하지만 투명한 두 눈이 이뻐.




" 내가 정말.. 이쁘게 머리 해줄께. "

" 당연하지. 그런데 정말 머리만 잘라줄거야? "

" 너.. 염색도 하고 싶어서 그러지? 너 하는거 봐서.. "

" 아잉.. 형 왜그래. 내가 형 사랑하는거 알면서.. "




이제 알았다.

왜 이뻐지려는지




" 너.. 그 남자한테 보여주려고 그러는거지? "

" 어.. 어떻게 알았어. 부끄럽게 그런거 말하지마. "

" 싫어. 너만 부끄럽지. 내가 부끄럽냐? "




그 아이는 옷 좀 갈아입는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옷을 챙긴다.




" 너.. 뭘 그렇게 꾸며? "

" 나.. 머리 다하면 바로 그 남자 찾으러 다닐거야. "

" 확.. 못 만나 버려라. 그러면 재밌겠다. "

" 형.. 이래뵈도 나 진지하다고.. 알면서 그래. "

" 와.. 이러다 머리 이쁘게 못하면 큰일나겠네. "




온 몸으로 공포감이 몰려든다.

그러면 이제 내 두번째 손님이네.




" 손님.. 빨랑 가자. 늦겠어. "

" 하하.. 나 벌써 손님 된거야? "

" 그럼.. 그러니까 꼭 돈 내야해. "




설마 설마 설마

혼자 중얼거린다.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작은 것에 크게 상처 받겠어.




" 형.. 나 어때? 반해 버리겠지? "

" 제발 그래야 할텐데.. 어서 가자. "




어두운 집을 벗어나

따뜻한 아침에 안긴다.




" 형.. 아침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

" 여기라서.. 따뜻할 수 있는거 같아. 그렇지 않아? "

" 형.. 여기 참 이상해.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

" 그래. 모르고 와서 지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




아침을 말하는 태양은

이미 우리 둘을 반긴다.




" 형.. 저기가 댄스 아카데미야? "

" 응. 이제 조금만 가면 미용실이야. "

" 형.. 차라리 저기서 일하지. 멋있잖아. "

" 아니. 나.. 더이상 멋져 보이기 싫어. "

" 우웩.. 사실 형이 춤추는거 이상할거 같아. "

" 너.. 어떻게 그런 말을.. 너 집으로 돌아가. "




갑자기 내 한쪽 팔을 잡아 당기며

매달리는 모습에 미용실로 들어간다.




" 너.. 두리번 거리지 말고 여기 앉아. "

" 형.. 나 머리 안 감았는데 괜찮아? "

" 알고 있어. 우선은 염색부터 해볼까? "

" 형이 알아서 해줘. 엄청나게 이쁘도록!! "




지금도 이쁘다.

귀엽게 해볼까?




" 너.. 지금 보라색이 약간 있는데 갈색으로 해줄께. "

" 나.. 미국에 있을 때 갈색으로 많이 해봤는데.. 피.. "

" 그런 갈색이 아니야. 아주 부드럽고 반짝거리는 색이야. "

" 정말? 내 얼굴보다 빛나면 곤란한데.. 좋아. 그걸로 해. "




머리 하기에 앞서

가볍게 꿀밤을 준다.




" 대체 뭐가 빛난다는거야.. 어이없어. "

" 형.. 나 오늘 그 남자 못 보면 어쩌지? "

" 어쩌기는.. 집에 가서 발 닦고 자야지. "

" 정말 진지하다니까.. 나한테 반해야 하는데.. "

" 너.. 꿈도 크다. 고개 그만 올리고 좀 숙여봐. "




나만의 비법이 담긴 비율로

염색약을 만들어 머리에 바른다.




" 으.. 차가워. 제대로 하는거야? "

" 흐흐흐흐.. 조금 있으면 따끔할걸? "

" 뭐.. 뭐야. 나 겁주지마. "




이제 1차 염색을 끝내고

뿌리 부분 염색을 시작한다.




으으악악악악악 -




" 조금.. 따갑지? 곧 끝나. "

" 형.. 눈까지 따끔거린다. "

" 그러면 눈 감고 있어. "




머리칼을 염색약으로 듬뿍 적시고

그 아이와 함께 감자깡을 자근자근



깨문다.




" 형..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해? "

" 내일까지는 아니니까.. 먹기나 해. "




정말 손님이 없다.

내일도 지루하겠지.




" 형.. 근데 왜 손님이 없어? "

" 있잖아. 너.. "

" 아직 다들 형의 솜씨를 모르는구나. "




내 마음을 아는걸까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 머리 감자. 이쪽으로 와. "

" 와.. 신난다. 지겨워 죽는줄 알았네. "




쏴 아 -




말끔히 머리칼을 씻어 내고는

다시 의자에 앉혀 바람을 뿜는다.




" 기분까지 가벼워지는거 같아. 형.. "

" 그거를 못 참고.. 이제 조금 다듬자. "




싹둑 싹둑




" 형.. 꽤 진지해 보여서 좋아. "

" 아까는 날 사랑한다면서.. "

" 치.. 형도 어서 짝을 찾아. 나처럼.. "

" 농담하고 있어. 밀어버릴까 보다. "




갈색으로 물든 머리칼 끝부분이

바닥으로 춤을 추며 떨어져 간다.




" 이제 드라이만 하면 끝이야. "

" 형.. 이 일이 쉬운건 아니구나. "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

" 아무튼 형의 새로운 모습이였어. "

" 너도.. 너의 다른 모습을 보여봐. "

" 지금도 괜찮지 않아? 이 정도면.. "




그 아이는 혼자 거울 속에서 무아지경이다.

그런 아이를 내버려 두고 곳곳을 정리한다.




" 자.. 다 했어. 어때? "

" 당연히 굿!! 너무 좋아. "

" 그럼 어서 가. 찾아 봐야지. "

" 형.. 정말 지금 가도 되는거야? "

" 그래. 조금만 삐칠테니까.. "

" 미안.. 내가 어제 청소한걸로 봐줘. "

" 너.. 그것도 청소라고.. 내가 다시 한거 몰라? "




날 두고 그 아이는 미용실을 나간다.

저런 이쁜 모습을 보고 잘되야 할텐데




잘하고 와.




그 아이가 나가고 이 곳은 조용해진다.

웃음도 내게서 멀어지고 시선도 흐려진다.




유노도 내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기대를 아직도 버리지 못해.




이런 곳에서 바쁠 수 없게 되버렸어.

그래서 하루 하루 더욱 더 많이 떠올라.




" 유.... 노.. 라는.. 너... 가.. "




너는 어느 곳에 있는지

여기와 다른 바쁜 곳인지

난 너무도 너가 생각나는데




무엇으로 눈물을 닦아야 할지 몰랐다.

눈을 뜨면 거울에 비춰지는 눈을 꼭 감아.




소용없는 생각들로

내 눈물을 아프게 채워.




여. 름. 안. 에. 서.




믹키




오늘은 꼭

꼭 말할거야.




내 마음을 들어준다면

분명 받아줄거라 믿어.




재중이형의 솜씨로 내 모습은 달라졌다.

거울에 담겨진 내 모습에 낯설기만 했어.




그 남자도 이러는 내 모습에 낯설어 하겠지.

그런데 곧 익숙해 질거야. 내가 다가갈테니




그저 날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거야.

점점 이것이 사랑에 가까워짐을 느껴.




이런 느낌 처음이야.

자꾸만 자꾸만 깊어져.




첫키스가 내 첫사랑인줄 알았는데

내 첫사랑은 이제 곧 시작되려나봐.




떨리는 마음을 짓누르며 공원으로 간다.

내 마음을 알았을까.. 공원에 그가 있다.




공원에 놓여진 낡고 좁은 벤치에 앉아 있다.

두 무릎 위에는 책 한권이 펼쳐진 채로 있으며

그 남자는 책이 아닌 정면을 향해 깊이 응시한다.




털썩




그 남자의 좁은 옆자리에 살며시 앉는다.

내 움직임을 느꼈을텐데도 그대로인 모습




고개를 아주 약간 돌려 옆모습을 눈에 담는다.

심장이 따끔거린다. 옆모습을 어렵게 훔쳐보며

그 남자가 알아 차리기 전에 고개를 돌려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그대로 더 깊이 들여보게 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그도.. 그대로인 모습




어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 나를 봐줘.

내가 바로 옆에서 이렇게 보고 있잖아.




그 남자는 갑자기 고개를 살며시 숙이며

두 무릎 위에 올려진 책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무렇지 않게

내가 없다는 듯




그런데 바로 그 사이

그대로 고개를 내게 돌려.




흑.....




숨이 멈췄다.

죽은건 아닌지




맑고 투명한 두 눈이 나를 향해.

내 붉은 입술이 서서히 떨려 와.




아직도

나를 향해




보고 있다.

건조한 시선




" 우.. 우리.. "




어서 말해야 해.

이번에는 제대로




" 치.. 친하게.. 지내.. 자. "




내 입술이 심하게 떨리는데

내 입술을 보았을까.. 떨려서




더이상 입술을 부딪힐 수 없었다.

그렇게.. 태양은 내게 용기를 줬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눈을 떠도 감아도 그 아이 모습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내 안에 있다.










한번 불러보고 싶다.

듣지 않아도 좋으니까




집을 등 뒤에 놓아두고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 벤치 한곳에 등을 기대며 한숨쉰다.




집에서 가져온 책 한권을 첫장부터 펼친다.

내 두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다른 곳을 본다.




이미 그 책 안에는 그 아이의 모습이 있다.

떨쳐 내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지만




소용없다는걸

잘 알고 있는데




오늘은 그 아이를 기다리지 않을거야.

그래서 굳게 마음 먹고 책까지 가져 왔는데

이토록 힘들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지워갈래.




이 공원 곳곳에도 그 아이의 모습이 있다.

작은 풀 끝에서도 그 아이가 웃고 있는데




그 아이에게 주려던 수많은 풀들은

내가 사는 3층 창가에 놓여 죽어있다.

내 사랑을 뜨거운 태양이 말라 죽였어.




다시 집중을 하고 책을 읽으려 한다.

이 한권을 다 읽을 때까지 이 곳에 있자.




이제는 아무 것에도 느끼지 못해버린 나

병에 걸린 사람처럼 약을 찾지만 소용없다.




그 아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겠는걸

조금씩 힘내어 열병에 식어가는 내가 될래.




내가 앉아있는 벤치 옆쪽의 무게감을 느낀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고 눈에 보이는걸 찾는다.




" 우.. 우리.. "




그 아이 생각으로 다른건 눈에 담을 수 없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떨리는 음성이 다가온다.




" 치.. 친하게.. 지내.. 자. "




너무도 떨리는 음성에 눈 앞이 뚜렷해진다.

태양을 받아 한없이 반짝이는 머리칼을 본다.

이어서 내 코를 찌르는 염색약 냄새도 느낀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내가 그

우리인가




다시 고개를 숙여 책 속으로 글자를 찾는다.

방금 들린 말들로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그 아이의 모습은 잠시 태양 속으로 빨려간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여기까지 걸어 오다니

집착으로 변해버린건가




김재중이라는 남자에게

죄책감을 느낀다는게 좀




" 우.. 습.... 잖.. 아. "




아까부터 미용실 근처를 서성거린다.

혹시나 그 사람이 나를 보지는 않을까

신경을 쓰며 불안하게 걸음을 재촉한다.




유노형이 나를 몰랐다면

그 둘은 아직도 사랑했을까




생각에 끝이 없음을 느껴 버린다.

강렬한 태양의 몸부림에 지쳐간다.




유노형 때문이 아냐.

내가 지쳐가는 이유는




미용실에서 찾기 힘든 그늘진 곳을 찾아

무릎을 쭈그리고 앉은 후 태양을 피한다.




시원한거라도 마셨으면 좋겠는데




갈증이 내 입을 마비시킨다.

눈을 조금씩 감아보며 기댄다.




유노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금쯤 내 생각만 하고 있겠지.




유노형은 나를 정말 사랑할까

이제는 그런게 정말 중요한걸까




내 곁에 있는걸로 만족해야 하는지

온 몸을 감싸는 불안에 차갑게 떨린다.




오늘은 유노형을 기다리지 않을거야.

유노형이 나를 찾는다해도.. 오늘만은




유노형이 그때만큼은

정말 나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내가 그렇게 만들어 차지할거야.




" 거기서 뭐하세요? "





상냥한 말투에 이미 들킨걸 알았다.

어떤 것이 집착일까.. 바로 이런걸까







-------------------------------------------------------------------------------------------- 25













재중




미용실 안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낸다.

물기없는 내 입술을 적시며 몸을 차갑게 식히려는데




차갑지 않아.




벌컥벌컥




차가워짐을 거부하는 내 몸이 너무 힘들어.

다시 냉장고 문을 열어 얼음을 찾아 꺼낸다.




오드득

오드득




얼음은 쉽게 부서져 내 목안을 적신다.

어떤 것도 타오르는 그리움을 적실 수 없어.




비라도 내렸으면

눈물이라도 씻어줘.




이 곳에 오고서 비 내리는걸 볼 수 없었다.

비라는 것도 이 곳은 비켜가는 것처럼 느껴.




잠시 미용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게 내리쬐는 태양의 몸부림에 힘들다.




앞으로 조금씩 걸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쓸쓸하고 조용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 거기서 뭐하세요? "




내 목소리가 천천히 흔들린다.

내 소리에 살며시 눈을 맞춘다.




창민이라는 아이

내 손님이였던 그




" 왜.. 거기.. 있어요? "




내게 시선은 맞추지만 웅크리는 모습에

내가 그 아이 옆으로 걸어가 쪼그려 본다.




" 그렇게.. 있으면 불편하지 않아? "




너무도 어려 보여 말을 놓았는데

내 말에 살며시 미소 짓는게 곱다.




" 그냥.. 있는거라면.. 같이 들어갈래? "




내가 먼저 몸을 일으키고 몸을 쭉 편다.

내 모습에 이어 그 아이도 몸을 일으킨다.




" 더웠을텐데.. 그냥 들어오지. 왜 거기서.. "




나와 함께 미용실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살피고 의자 한곳에 앉는다.




얼마만큼 그 곳에 있었던걸까

다른 곳도 아닌 이 근처에 있었던건




왜일까





" 있어봐.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는게 좋겠어. "




그 아이의 모습이 갈증으로 베어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비가 아닐까




냉장고 문을 열고 제일 시원해 보이는

생수병을 그 아이에게 내밀며 지켜본다.




그 아이는 너무도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원한 물을 가슴 속으로 깊이 누른다.




" 더.. 마실래? "

" 얼음.. 있어요? "

" 응. 있어. 기다려봐. "




다시 냉장고로 걸어가 얼음통을 꺼낸다.

아까 내가 먹던 부분은 얼음없이 그대로




" 내가 아까 꺼내 먹어서.. 이것뿐이네. "

" 이걸로도.. 충분해요. 조금이면 되니까.. "




처음으로 길게 말을 뱉고는 그렇게

얼음을 하나씩 입안에 밀어 넣는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보아

아마도 녹여 먹는 것 같다. 하나 하나




이미 얼음통에는 얼음이 아닌.. 녹아버린

작은 양의 얼음 물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 아.. 시원해. "




시원해 하는 그 아이의 모습이 싱그럽다.

이 아이도 나처럼 만큼이나 지루해 하는걸까




" 이.. 근처에는 어떻게 온거야? "

" 그냥.. 어떻게 하다 걷는게 여기까지.. "

" 그러면 여기에 더 있다가 가. 나랑 얘기도 하고.. "

" 얘.. 얘기.. 요? "

" 응. 나하고 얘기하는거 싫어? 심심하지 않고 좋잖아. "




네.. 라고 들릴듯한 작은 말투로

내게 그러한 입모양을 보여준다.




" 저.. 형.. "

" 응. 말해. "

" 혼자.. 살아요? "

" 나? 아니. 너는? "

" 그럼.. 누구랑 살아요? "

" 음.. 동생이랑.. "




나를 편하게 봐주는것 같은데도

내게 무엇을 숨기듯이 불편해한다.




" 그럼.. 그 집에서 같이 사는거에요? "

" 응. 너도 혼자 사는거 아니지? "

" 저는.. 혼자.. 사는데요. "

" 그래? "




아닌데.. 내가

잘못 알고 있나봐.




부동산에서 들을 때 분명 1층 건물에는

두 사람이 산다고 했는데.. 혼자 남은건가




" 아프다면서.. 혼자 지내는거 괜찮아? "

" 많이 아픈거 아니에요. "

" 그렇게 혼자 지내고 그러면 더 아플텐데.. "

" 아니.. 라니까요. "




벌쭘




내 걱정이 그 아이를 화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프다던 그 아이의 말들을 조금씩 지워버린다.




" 비가 왔으면 좋겠는데.. 다른 곳에는 비가 왔겠지? "




대답이 없어 또다시 벌쭘해진다.

비를 그리워하는게 이 곳와 어울리지 않아서

그 아이는 내 질문이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 형.. 은 여기서 얼마나 있었어요? "

" 얼마되지 않았어. 내 첫손님이 너였거든. "

" 아니. 이 곳에서.. 얼마나 지냈어요? "

" 아.. 동생이랑 얼마나 있었냐는 말이지? "

" 네. 언제.. 부터.. 있었어요? "

" 그것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까와 같은 답.. "

" 네. 그런데.. 여기 불편하지 않아요? "

" 여기? 아직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처음부터 그런거 못 느꼈어. "




내가 잘못본걸까

실망스러운 표정을




" 아.. 그러면 너는.. 얼마나 있었는데? "

" 저는.. 조금 오래 있었어요. 일년이 넘었죠. "

" 그랬구나. 정말 오래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

" 형이라면.. 그만큼 이 곳에 있을 수 있어요? "

" 나?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언제까지 있을지.. "




잠시 침묵이 시간을 대신해 조심히 흐르고

어둠이 담긴 눈빛을 내 눈에 그늘지게 한다.




" 저는.. 갑자기 이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 갑자기? 그런 생각.. 가끔은 하지 않아? "

" 아닌데.. 처음으로 해봤어요. 며칠전부터.. "




그 아이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창밖을 보며 아주 슬프게 소리낸다.




" 비... 가.. 와... 요.. "




아니다.

비는 지금

오지 않는다.




" 어디? "

" 비... 가.. 올거에요. "

"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




내 눈에 그 아이도

이 세상의 모습도 조금씩

신비로워 보인다. 반짝이듯




후두둑




정말 맑은 이 곳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두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아이를 두고 미용실 밖으로 나온다.




쏴 악 -




하늘에는 구름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 곳에 비가 올 수 있지?




환상이다.

잘못본거야.




" 정말.. 비가.. 오네. "




그 아이의 소리다.

내 옆에서 올려본다.




" 너.. 비가... 오는거 어떻게 알았어? "




그 아이는 빗속으로 걸어간다.

쓸쓸하게 젖은 뒷모습이 사라진다.




회색으로 말라있던 아스팔트 거리는

어느새 어둠같은 색으로 비를 빨아들인다.




그래도 날씨는 밝기만 한걸

왜 이렇게 비가 퍼붓는걸까




" 유노도.. 비를 기다렸을까.. "




다시 미용실로 들어와 문을 굳게 닫는다.

빗소리는 점점 내 귀에 멀어져 희미해진다.




뭉클




내 발밑에 무엇이 밟혔다.

그 발을 위로 들어 옮긴다.




이게 뭐지?




가볍게 손에 쥐고는 몸을 일으킨다.

투명한 봉투 속에 들어있는 알 약이




" 중요한 약? "




그 봉투에는 그렇게 씌여져 있다.

약이라면.. 그 아이의 것이 아닐까




정말 중요한거라면

어서 갖다줘야 하는데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힘들게 찾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갈 수 없는걸




미용실에는 나 혼자이고

이 곳을 비울 수 없으니까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그 아이는 그 남자와 함께 있을지




어쩌면 이 비가

그 둘을 지켜줄지도




여. 름. 안. 에. 서.




시아




책 속의 글자를 찾으며 한없이 읽어 내려간다.

반 이상을 읽었을 때 한번 더 무게감을 느낀다.




아직도 그 아이는

내 옆에 있는건가




처음에 한번 고개를 돌려보고

지금껏 책에 시선을 쏟아왔다.




다시한번 느끼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리려 하지만 참는다.




그래도 방해되는건 아니니까

계속해서 책장을 천천히 넘긴다.




톡 톡




책장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내 콧등에 이어 손등에 떨어지는

빗물을 느끼고 빨리 책을 덮는다.




비가 오잖아.

참 오랜만이네.




어차피 비가 오니까

그 아이는 나오지 않겠지.




아주 예전에도 비가 왔을 때

그 아이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비를 맞고 있는 내가 우스워

내 두 눈이 가볍게 떨리자 슬퍼진다.




내일도 비가 오면 안되는데

내일도 못 보면 죽을지 몰라.




갑자기 참아오던 눈물을 토해낸다.

가벼웠던 눈물은 점차 격해지고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책은 바닥에 떨어진다.




얼굴을 감싸고 싶었지만

내 눈물을 보이고 싶었다.




내 눈물을 씻겨줄 비에게

함께 쏟아내자고.. 말하면서




가끔은 눈을 뜨며 비와 마주쳐.

공원에는 내 울음 소리가 아닌

허무한 빗소리만이 세상에 운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규칙적인 호흡이 어렵다.

입을 굳게 다물고 숨을 삼킨다.




그 남자는 내 옆에서 조용히

책에 시선을 거두며 읽기만 해.




그순간 그 책이 되고 싶을만큼

나를 봐주지 않는 모습에 힘겹다.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으니까

아직은 많은 기회가 내게 있어.




힘내자.

박유천




그 남자 옆에 가까이 있자니

온 몸에 땀이 흘러 끈적거린다.




내 몸에서 땀 냄새가 나지 않을까

내 몸에 코를 가까이 대고 싶지만




참는다.




서서히 내 얼굴에 솟은 땀은

주체하지 못한 채 미끄러진다.




이쁘게 만진 내 앞머리 사이로

땀방울은 내 콧등을 스치기도 해.




이제는 그 남자를 향해

무안하게 바라보지 않고

곁눈질로 열심히 찾는다.




힐끔힐끔




레몬빛이 감도는 머리칼과

매끈한 이마.. 미끈하게 솟은 콧날

아기새 같은 저 입술은 내 눈을 훔쳐.




저 입으로 듣고 싶어.

무슨 말이라도 좋겠어.




세상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그렇게 비는 우리 곁에 왔다.




비가 오니까 곧 가겠구나.

내가 싫어서 피하는게 아닌걸




쉬지 않고 눈길을 주던 내 시선은

잠시 비를 향해 눈을 감아보기도 해.




" 하... 자.. "




들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우선은 연습해 보는거야.




" 치.. 친... 구.. 하... 자.. "




한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 내린다.

이번에는 들렸을거라 믿고 기다린다.




그런데




순간 우리가 앉은 벤치의 진동을 느낀다.

의자는 잠시 떨리고 내 눈은 흔들림을 찾아.




울고 있다.

눈을 뜨고서




그 남자가 괴로워 한다.

울면서 한껏 괴로워 한다.




내 눈으로 그 남자의 눈물을 찾는다.

빗물보다 더 투명하고 아픈 눈물만을




그 남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책은

이미 빗물에 축축히 젖어 울부짖는다.




그 남자가 느꼈을지도 모르게

내 몸을 그 쪽으로 한껏 돌린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얼굴도 감싸지 못한 채

힘들게 울고 있다. 두 손을 미세하게 떨고서




가느다란 손가락은 허공을 향해 부들부들 떨리고

몸은 한껏 앞으로 웅크린채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갑자기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불안해.




HUG -




참을 수 없었어.

밀어내도 좋아.




내 품으로 그를 당겼다.

가볍게 내 가슴에 들어와.




그런데 그 남자는 내게 시선 한번 두지 않은채

나를 힘겹게 두 팔로 밀고는 앞을 향해 앉는다.




내가

그렇게

싫다면




그런데도 내 감정은 숨기지 못한 채

그 남자의 왼쪽 손등을 내 오른손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힘있게 쥐어 감싼다.




이번에는

뿌리치지 못해.

빠져나갈 수 없어.




이미 나는 울고 있다.

왜 울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알 수 없다.




힘들게 울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 하나는 힘들게 울지 않으려 해.




빗소리에 내 울음 소리만이

세상을 향해 흐느끼며 흘린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얼음이 아직도 내 목구멍에 걸려 있는것 같다.

얼음마저도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할 줄 몰랐어.




내게 생수병이나 얼음을 건네는 그 사람의 모습에는

아무런 악의도.. 불편도 주지 않는데 자꾸만 화가 나.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동생과 살고 있다는 말에 오히려 화는 부풀어진다.




내 마음이 들킬까봐 대답은 하면서 혼자 산다고 말했지만

그 말에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그 모습이.. 정말 애처롭다.




" 비... 가.. 와... 요.. "




작게 중얼거렸는데 내 소리를 들은 듯




" 어디? "

" 비... 가.. 올거에요. "

"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




형도.. 알거에요.

이 곳에서 지내다보면

언제 비가 올지.. 그 정도는




비가 내린다.

누구를 위해서




" 정말.. 비가.. 오네. "




쓸쓸해하는 내 모습과 달리

그 사람의 눈은 커지만 할 뿐




특별히 비를 향해

무엇도 들키지 않아.




" 너.. 비가... 오는거 어떻게 알았어? "




이미 미용실 문 밖에 나란히 서있다.

더이상 있을 수 없어 빗속으로 스민다.




형이 부르는 비에요.

유노형을 대신해 부른




" 비... 가.. 되고.. 싶어. "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비가 되고 싶다.

바보같은 내 생각을 한없이 적시고 싶다.




덜컹




집에 들어와 온 몸의 물방울들을 털어낸다.

빗방울은 소리없이 이곳저곳 튕겨가며 터진다.




거실로 들어와 옷을 벗어둔채

빗물을 씻기 위해 욕실로 향해.




내가 옷을 벗을 때

약을 어디에 뒀더라.




약을 꺼낸 기억이 없는데

옷 안에도 약이 잡히지 않아.




" 놓고.. 왔어. "




그 곳에

흘린거야.




이미 창밖의 빗방울은 더욱 더 굵게 쏟아진다.

이 작은 동네를 한번에 삼키듯 비를 토해낸다.




다시

이대로

갈 수 없어.




밤이 깊었는데 유노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도 밖에서 나를 찾고 있다면 어서 돌아와.




비가 그치지 전에 어서

나만을 생각하며 달려와.








---------------------------------------------------------------------------------------------- 26













시아




내 울음이 그치고 비도 소리없이

이 세상과 멀어지며 빛을 내린다.




" 우리.. "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말한다.

촉촉히 젖어있는 소리에 기분좋다.




" 친구.. 하자. "




내일도 비가 오면 볼 수 없을거란 생각에

너무도 불안했는데.. 모두 깨끗이 씻겨졌다.




내일은 창민이를 볼 수 있다.

비가 다시 오려면 시간이 필요해.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젖어있는 책을 한 손으로 잡는다.




" 미안.. 이제 손 놓을께. "




내 손등은 땀으로 베어있고

조금씩 차갑게 식어가려 해.




방긋




책을 들고 벤치에서 일어나기 전에

그 아이를 한번 보고 가볍게 웃는다.




이쁘게 한 머리 같은데

비에 젖어 물기로 엉망이다.




내 한 손을 뻗어 흩어진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려 했지만 그건 아니다.




" 내일.. 여기서 기다릴께. "




그 아이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어난다.




" 내일도.. 여기 올거지? "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을 위해 오는건 아닌데




그 아이는 부끄러운 미소를 보이며

공원을 빠져 나간다. 크게 소리치며




" 내 이름은!! 유천이야!! 박. 유. 천. 기억해!! "




유천

박유천




기억할께.

귀여운 아이로




나도 집으로 향한다.

전봇대를 스쳐 가는데




창민이와 항상 함께있는

유노.. 라는 사람이 보인다.




왜 이 시간에 혼자 저기 있을까

나처럼 비에 흠뻑 젖어 있긴한데

왜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지?




" 창민아!!!!!!!!!!!! 창민아!!!!!!!!!! "




분명 들었다.

왜 그 아이를




" 저.. 키 크고 이쁘게 생긴 아이 못 봤어요? "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내게 뛰어와

내 두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든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내 마음도 점점 불안해.




" 그럼.. 어디 있는거지? 대체 어디에.. "




힘주어 잡던 내 어깨에 힘을 풀고는

두 팔을 아래로 힘겹게 떨어 뜨린다.




그 사람은 내게 등을 돌리며 걸어간다.

곧 쓰러질 사람처럼.. 모든 힘을 잃은듯이




그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게 되어 걱정이 앞서.




어서

찾아야

하는데




내가 찾아볼까

나도 찾아볼께.




다리에 힘을 실어 힘차게 뛰기 시작해.

꼭 너를 찾겠다는게 아냐. 나를 위해서

나도 너를 찾고 있다는걸 하늘에 보일래.




비와 땀으로 흠뻑 젖은 내 몸은

한발 한발 디딜수록 무거워지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이것이 사랑이다.




여. 름. 안. 에. 서.




믹키




내 한 손안에 쥐어진

그 남자의 작은 한 손




꼬 옥




그 남자가 느끼지 못하게

살며시 힘을 주고 웃는다.




내가 울음을 그치고 그 남자도

흐르는 눈물이 어느새 말라있다.




그렇게

비도 말라가.




" 우리.. "




안 듣는거 같다.

그래도 끝까지는




" 친구.. 하자. "




말했다.

어려웠어.




그것이 끝이다.

내 희망은 사라져.




그 남자는 한쪽 팔만 기울인채

흠뻑젖은 책 한권을 한손에 쥔다.




" 미안.. 이제 손 놓을께. "





쥐어진 내 한 손에 힘을 푼다.

그러자 그 안의 손이 꿈틀거려.




그 남자의 손 등은 땀으로 얼룩져 있다.

그리고 내 손바닥에도 온통 땀에 젖었다.




내가 손을 놓기 전까지

그 남자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울지 않는다.

더이상 이렇게 우는 일은 없겠지.




방 긋




분명 보았다.

나를 향한 미소




너무도 놀라서 아무런 표정도 만들지 못했다.

미안해.. 내가 얼마나 기쁜지 보여줄 수 없어서




갑자기 그 남자의 한쪽 손이 내게 다가와.

흠칫 - 놀라며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쁘다.




내 헝클어진 머리 때문이였을까

이런 모습이라도 봐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게 다가오던 손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래도 속상하거나 슬프지 않다. 이것이 꿈이라도




" 내일.. 여기서 기다릴께. "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처음으로 똑똑히 말한다.




확신에 찬 듯한 내 말을 남기고

부끄러워 먼저 일어나고 말았다.




" 내일도.. 여기 올거지? "




조금 더 자신있게 용기내어 말했는데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어. 기다려볼까




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믿기지 않을만큼 편안한 모습으로




너무 기뻐하고 행복해 쓰러지려는

내 몸을 바로 세우고 들키지 않도록




공원을 빠져 나가며

세상에 대고 외친다.




" 내 이름은!! 유천이야!! 박. 유. 천. 기억해!! "




그 남자의 다음 행동을 살피지 못하고

무조건 앞만 보고 집으로 뛰기 시작한다.




내가

해냈어.




여. 름. 안. 에. 서.




창민




비가 그쳤는데

유노형은 없다.




아직도 날 찾고 있는걸까

아무래도 나가서 찾아야겠어.




걱정만 앞서는 유노형을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서며 헤매인다.




" 유..... 노... 혀.. 엉.. "




유노형은 바로 집 앞

집 앞에 주저앉아 있다.




" 유... 노.. 형.. "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불렀다.

하지만 유노형은 움직이지 않아.




" 유노형.. 창민이야. "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유노형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 내가.. 내가 잘못했어. 정말이야. "




뒤에서 유노형의 어깨를 잡고 안는다.

내 두 무릎은 바닥에 닿았고 흐느낀다.




" 창민아.. 너 어디에 있었어.. "




유노형의 목소리가 많이 쉬었다.

쇠소리도 들리고.. 눈이 아파온다.




" 나.. 계속.. 집에 있었어. 왜.. 집에는 안 들어왔어. "

" 나.. 난.. 그런줄도 모르고.. 밖에서만 널.. 찾았어. "




유노형은 울고 있지 않다.

내가 마르게 한것이다. 내가




" 울지마. 창민아.. 슬프잖아. "

" 이 바보야.. 비가 그렇게 왔는데.. "

" 비가 와서.. 더 걱정했어. 비 맞을까봐.. "

" 내가 비를 왜 맞아. 바보.. 유노형.. "

" 그래. 나 바보야. 너 하나 찾지도 못하고.. "

" 그런거 아니잖아. 왜 자꾸.. 나 울려. "




유노형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유노형을 뒤에서 안으며 실컷 울어.




" 나.. 유노형 때문에 우는거니까 말리지마. "




저번에도 비가 왔었다.

그때는 밖에서 유노형을 기다리다

비 소식에 저절로 집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찾았던걸까

나를 향한 마음을 이제 느끼다니




" 유노형이.. 나.. 사랑하는거 알아. 내가 모를거 같아? "




내 눈물이 그치자

유노형은 몸을 돌린다.




" 창민아..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어. "

" 이미 보고 있어. 유노형.. 다음에는 이러지마. "

" 알았어. 우리.. 비는 맞지 말자. 함께이면 몰라도.. "




유노형이 나를 일으킨다.

나는 유노형을 집으로 데려간다.




비에 너무 젖었어.

이것이 눈물이라면




다시는 안 그럴께.

유노형을 믿으니까




" 유노형.. 추울텐데 뜨거운 물로 씻고 자. "




유노형은 피곤한지 불편하게 앉아있다.

그런 유노형을 힘있게 일으키고 데려간다.




" 창민아.. 너가 나.. 씻겨 줄거야? "

" 응. 그러니까 힘빼고 가만히 있어. "




유노형의 바람 섞인 목소리가 가슴 아프다.

내 이름을 불렀을 그 소리에 잠시 움츠린다.




" 미안해. 유노형.. "

" 아니. 내가 원한거야. "




유노형은 힘겹게 눈을 뜨지만

더이상 나를 보고 있지는 않다.




그렇게 유노형은 깊은 잠에 빠진다.

그리고 그런 유노형을 살며시 닦는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 입는다.

비에 많이 젓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갈아 입어야지.

우산도 없었어.




뜨거운 물로 차가운 비를 녹인다.

갑작스런 비가 사실 무섭기도 했어.




그 아이는 이 시간까지 어디에 있는건지

우산도 없었을텐데 머리 다 망가졌겠다.




조금은 그 아이를 걱정하며

원하던게 잘 되었길 바란다.




" 재중이형!!!!!!!!! 들어온거야? "

" 그래. 나 씻는다. 너도 씻어야지? "

" 지금 내가 씻는게 중요한게 아니거든!! "




그 아이의 목소리가 꽤나 높게 들린다.

분명 그 남자와 좋은 일이라도 있는건지




재촉하는 그 아이를 위해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거실로 나와 살핀다.




" 너.. 머리꼴이 그게 뭐야. 너 거울 봤어? "

" 놀려도 소용없어. 오늘 내가 해냈다니까!! "

" 왜.. 말이라도 제대로 한거야? 했구나? "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건 포기하고

옷만 겨우 갈아입고 대화에 귀 기울여.




" 내가 친구하자고 했어. 잘했지? "

" 그 말 잘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 "

" 아.. 뭐라고 했지?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 "

" 뭐라구? 그러면서 해냈다고 소리치다니.. "

" 그런데 내가 다시.. 내일 기다리겠다고 했어. "

" 어디서? 그리고 기다리겠다고 말한게 다야? "

" 공원에서.. 머리하고 공원에 갔는데 거기 있었어. "

" 그래서? 무슨 소리 들었는데.. "

" 또.. 아무 소리도 못 들었지만 웃으면서 고개 끄덕였어. "

" 대답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다니.. 그래도 웃었다니 다행이네. "

" 뭐가 다행이야. 아주 잘된거지!! "




자꾸 웃음이 나온다.

너무 젖어버린 머리칼




" 너.. 어서 머리부터 감아라. "

" 내가 그렇게 이상해? "

" 응. 다른 곳은 볼만한데 머리는 전혀.. "

" 형.. 염색하자마자 비에 젖었는데.. "

" 몰라. 너가 알아서 해. 이제 못해줘. "

" 치.. 그리고 내 이름도 알려줬는데.. "






맞다.




" 뭐라고 알려 줬는데? "

" 뭐기는.. 유천이라고 알려줬지. "

" 너 이름이 유천이야? "

" 형.. 내 이름 몰랐어? 내가 말을 안했나? "

" 난 너가 죽을때까지 말 안할줄 알았는데.. "

" 하하.. 내가 그랬나? 정말 미안.. "

" 기분 안좋네. 그 남자 아니였으면 너 이름 언제 알았을까.. "

" 박유천이는 머리 감으러 갈께. "




박유천

못된것




" 형에게는 특별히 하나 더 알려줄까? "




삐침




" 내 미국 이름은 믹키야!! 기억해. "




믹키

뭐야.




" 형은.. 홍콩에서 왔다고 했지? 거기서 이름이 뭐였어? "

" 내가 가르쳐 줄거 같아? 절대로 안 가르쳐 주지. "









무섭게 화장실 문을 닫는 녀석은

지금쯤 커다란 거울을 보고 있겠지.




" 머.. 머리가 이게 뭐야!!!!!!!!!! "




그 남자도 분명 보았을테지.

너무 슬퍼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네.




으엉 으엉 으엉




그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그 소리를 줄이기 위해 드라이기를 찾는다.




" 유천이.. 라고? "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이름




" 심... 창민.. "




그 아이도 어울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 유노.. 정... 윤호.. 너도.. "




나.. 재중이도

잘 어울리려나




" 형.. 나 머리 말려줘. "

" 너가 해. 나도 방금 내 머리 말려서.. "

" 아잉.. 형이 어서 해줘. 응? "

" 너.. 내 직업으로 이용하려는거지? "




웃는 유천이

유천이 유천이




" 유천아.. "




드라이기 소리로 안 들리나 보다.

그래서 잠깐 끄기로 하고 부른다.



" 유천아.. "

" 왜..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고.. "

" 그냥.. 한번 부르고 싶었어. "

" 분위기 잡지마. 내 이름 괜히 알려줬네. "









드라이기로 결국 맞았다.

한대만 맞은걸 감사해라.




" 왜 때려. 아프잖아. "

" 너.. 왜 그 남자 이름은 말 안해? "

" 아.. 맞다. 나도 그건 모르는데.. "

" 잘한다. 혹시 말 못하는거 아냐? "

" 무슨 그런 말을 해. 내가 못 물어봤어. "

" 그래. 너 잘났다. 다음에 꼭 알아와라. "

" 싫어. 알아도 형에게는 안 알려줄거야. "




알려줄거면서

바보.. 박유천




" 바보.. 박유천.. "

" 형.. 지금 뭐라고 했어? "




드라이 소리에 안 들렸나보다.

짧게 들리지 않는 한숨을 쉬고




" 재밌다.. "












-------------------------------------------------------------------------------------------- 27


















재중




어제 정말 비가 왔는지

집안은 한층 더 어둡다.




" 유천아.. 벌써 일어났어? "

" 으.. 응... "

" 더 자라. 난 나가볼께. "

" 혀.. 엉.. 잠깐.. 만.. "

" 왜? "

" 나도 데려가. 나 머리 해야해. "

" 무슨 머리를 해. 어제 했잖아. "

" 나.. 오늘도 그 아이 만나려면 더 이쁘게.. "




지금 모습도 이쁜데

잘 보이고 싶어하니




" 해줄테니까.. 더 자고나서 찾아와. "

" 정말.. 그러면 더 잘께. 지금.. "

" 밥은 저기 차려 놨으니까 꼭 먹고 와. "




이불 위에 엎드려 잠들어 버린 유천이를

그냥 그렇게 놔둘 수 없어 내가 덮던 이불로

그 아이를 덮어주고 어제 입던 쟈켓을 찾는다.




있다.




어제 창민이가 놓고 간 약 한웅큼이 담긴 봉투를

손에 담아 꺼내 눈으로 확인한 후 다시 집어 넣는다.




아침이구나.

아침이 맞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집안의 공기와 너무도 다르다.




밖은 아침을 알리는 햇살로 가득한데

어제 정말 비가 내렸을까.. 믿기지 않은




아침이다.




비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태양은 그렇게 이 동네를 힘껏 감싼다.




정말 이상한 곳이야.

이렇게 다시 빛나다니




딩동 딩동




1층 건물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빠른 걸음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 누구세요? "




여. 름. 안. 에. 서.




창민




유노형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온 몸에 끓어 오르는 열과 몸살




" 창민이.. 계속 울면 형은.. 더 아파할거야. "

" 알았어. 울지.. 않을께. 흐... 흑.. 흑.. 흐.. "




또 울고 말았다.

유노형을 아프게 해.




" 창민아.. 넌 어서 자. 난 열이.. 내려가고 있는거 같아. "

" 내가 어떻게 잘 수 있어.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




내 눈물을 계속 닦아주는 유노형

내가 유노형을 힘들게 하고 있어.




" 유노형.. 나 자면.. 형도 잘거야? "

" 그럼.. 곧 잠들거 같아. 그러니까 너도.. "

" 아.. 알았어. 나도 울지 않고 잠들께. "




이른 새벽에 안개가 피어 오른다.

오늘은 어제보다 안개가 짙은걸 보아

너무도 맑은 태양이 내려올것만 같아.




딩동 딩동




누구지?




유노형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다.

유노형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히




" 누구세요? "



문을 열고 동시에 내가 말한다.

그리고 문 앞에 서있는 한 남자




" 아.. 안녕.. 놀랐지? "

"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기는.. "






온거야.




뒤적뒤적




무엇을 찾는다.

괜히 미안해하며




" 이거.. 미용실에 있어서.. 갖다 주려고 왔어. "

" 네. 제가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고마워요. "

" 내가 방해된거 아니지? 너무 이른 시간이라.. "

" 아니에요. 제게 정말 중요한 거였는데.. "




그 남자는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서 아침을 느낀다.




" 오늘도.. 괜찮으면 오지 않을래? "





망설이는 내가 우습다.

아파하는 유노형이 있어.




" 아뇨. 다음에 갈께요. "

"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

" 네. 그럼 가세요. 이거.. 정말 고마워요. "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약 봉투를 보이며 흔든다.




이렇게 찾아올줄은 몰랐는데

앞으로는 정말 조심해야겠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약을 제자리에 놓고

유노형의 품 속으로 파고 들지만 힘들다.




" 창민아.. 이러면 안되는데.. 너까지 열 올라. "




유노형은 눈도 뜨지 않은채 중얼거린다.

할 수 없이 유노형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유노형과 같은 깊은 잠에 새근새근 잠든다.




오늘은 유노형과 쉬어야겠어.

유노형이 푹 쉴 수 있게 해줄께.




여. 름. 안. 에. 서.




시아




조금 어지럽다.

비를 맞아서 그래.




비 맞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 일본에 있을 때는 비 맞으면서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다.




어제는 공원에서 그렇게 비를 맞고

창민이를 찾아 어둠 속을 달려야 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기에 돌아서야 했다.




오늘은 그 아이를 못 볼것 같다.

그 아이가 아닌 그 아이를 찾았던

남자가 오늘 하루는 지쳐있을지도




어젯밤에.. 어둠 속에서 나를 보며

창민이를 찾는 모습에 느낄 수 있었다.

초점을 잃은 채 어렵게 내 시선을 맞춘




그 모습이

힘들어 보였음을




천하장사 소세지를 다섯개를 들고

공원으로 향한다. 날씨가 굉장하다.




태양이 너무나 뜨거워.

유리처럼 부서질 듯해.




공원에서도 비가 온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공원에 놓인 벤치도.. 그네 의자도 반짝인다.

하지만 쉽게 그곳에 앉지는 못하고 쪼그린다.




풀들이 싱그럽다.

초록색이 한결 빛나.




풀들을 손끝으로 느끼며 간지럽힌다.

내 손안에 조금은 베어있는 촉촉함이




느껴진다.




따스한 바람이 그리워 그네에 올라탄다.

힘있게 그네를 타며 소세지를 베어문다.






맛있어.




우물우물




천천히 그 다음 소세지를 한입 깨문다.

그렇게 하나 둘.. 내 입을 즐겁게 한다.




여. 름. 안. 에. 서.




유천




얼마나 잤을까

느끼기 힘들어.




어젯밤과 다르지 않는

집안의 습기과 어둠이




나를 한없는 공간 안으로

내 모든걸 밀어넣고 있다.




머리가 깨질것 같아.

어제 맞은 비 탓인가




내 머릿속에 어떤것이 크게 울리고 있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부딪히고 있어.




나처럼 약해 보이는 그 남자도 분명

지금쯤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을거야.




오늘은 재중이형이 있는 미용실에도

공원에도 가지 않겠어. 미쳐버릴거 같아.




스르륵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내 정신은 소용돌이가 되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생각하기 힘들어져 포기해.




" 아무 곳에도.. 가지.. 마... "









-------------------------------------------------------------------------------- 28















시아




햇빛에 눈이 부시지만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먹었다.




소세지를 다 먹고 그네에서 내려온다.

그네를 타서 그런지 어지러운게 더하다.






그네를

탔을까




손에 쥐어진 소세지 껍질들을 떨어 뜨린다.

줍기 위해 몸을 굽히려 하지만 어지러워 그만둔다.




다음에 오면

꼭 주워야지.




갑자기

귀찮아져.




쓸쓸이 공원을 등지고 집으로 향한다.

태양은 거리를 조용히 쓸어가고 있다.




어서 자야겠어.

아직도 어지러워.




여. 름. 안. 에. 서.




유천




꿈을 꾼다.

혼자가 아닌 둘이서

그 남자와 꿈에 있다.




" 유천아.. 날 잡아줘. "




내가 손을 뻗어 그 남자에게 향한다.

잡히지 않는 그 남자는 안개와 같이

가만히 웃고 있으면서 내게 다가온다.




" 유천아.. 내가.. 싫어? "

" 아.. 아니. 너가.. 잡히지 않아. "

" 유천이.. 넌.. 내가.. 싫구나. "






아니

아니다.




" 아니야!!!!!!!! "




꿈에서 깨고 눈을 떴다.

안개같던 그 남자도 없이

허공을 향해 시선을 쫓는다.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달려간다. 공원으로




헉 헉




숨이 차 오른다.

토해낼 것 같아.





공원에는 아무도 없다.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린다.




이건

뭐지?




몸을 웅크려 한 손에 집어든다.

먹다 버린 소세지 껍질로 보이는데




누가

버렸을까




설마 날 기다린건 아니겠지.

그럴리 없어. 나도 몸이 힘드니까




" 내가 널.. 붙잡지 못했어. "




태양의 반짝임에 속이 일렁거린다.

어지러운 머리에 한 손을 올려놓고

재중이형에게로 갈까 하지만 관둔다.




여. 름. 안. 에. 서.




재중




미용실에 말하고 조퇴한다.

어제 비를 맞은것 때문은 아냐.




그런데

어지러워.




터벅터벅




거리에 쓸쓸한 발소리를 스민다.

태양은 이런 내가 반갑지 않은듯




전혀

따뜻하지 않아.




집으로 들어가 유천이를 본다.

유천이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 너.. 자는거야? "




자세히 보니

자는게 아닌데




" 형.. 나 어지러워. "

" 나도 어지러워서 지금 들어왔어. "

" 지금 몇신데? "

" 아직도 낮이야. 저녁같아 보이겠지만.. "




침침한 어둠이 어지럽게 집안을 떠돈다.

유천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다.




" 그럼 형도 쉬어. 나는 더 자야겠어. "

" 그래. 우리 같이 잠이나 자자. "




유천이와 떨어진 곳에 내 몸을 눕히고

유천이와 같이 이불을 끌어올려 보지만

숨이 막힐듯 괴로워 다시 내려 버린다.




" 유천아.. 그렇게 자면 숨 막히지 않아? "

" 숨 막히지 않아. 나 다시.. 꿈속으로 가야해. "




꿈이라니

꿈속으로




" 나도 꿈속으로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

" 왜.. 형도 만날 사람 있어? 나처럼? "




있을까




" 형..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자. 나처럼.. "

" 그래. 어서 자자. 힘들다. "




꿈 속으로 가고 싶다.

유노의 꿈 속으로 내가




여. 름. 안. 에. 서.




창민




눈을 떴을 때 밤이 찾아왔다.

달빛에 잠든 유노형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제 나를 찾느라 힘들었는지

아직도 유노형의 모습이 낯설다.




" 어서.. 기운 내. 유노형.. "




깜짝이야.




잠들었다고 생각한 유노형의 한쪽 팔이

누워있는 내 한 쪽 어깨를 힘껏 감싼다.




" 유노형.. 나 때문에 깬거야? "

" 아니. 힘이 넘쳐서.. 깼지. "

" 치.. 내 눈에는 아직도 아파 보이는데.. "

" 아닌데.. 왜 창민이 눈에는 그렇게 보일까.. "

" 사랑하니까.. 너무 사랑해서 그래. "




유노형은 내 어깨를 감싼 팔에

힘을 주어 나를 가까이 끌어 당겨.




" 창민아.. 나 이제 열 내렸어. "

" 유노형.. 내가 그렇게 안고 싶었어? "

" 응. 너무 많이.. "

" 유노형.. 힘들게 웃지 않아도 되니까.. "




유노형이 내 위에서 나를 안았다.

유노형과 나는 그렇게 밤을 보낸다.




" 유노형.. 간지러워. "









-------------------------------------------------------------------------------------- 29













재중




" 유천아.. 오늘은 미용실 올거야? "

" 아니. 그냥 안갈래. 머리하는거 재미없어. "

" 귀찮은거지? 알았어. 나 갔다올께. "




유천이를 집에 두고 미용실로 향한다.

그런데 미용실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듯




창민인가




신경쓰지 않고 미용실 문에 열쇠를 꽂아

그 안으로 들어가니 그 사람도 따라 온다.




" 염색하러 왔는데요. "




서로가 피하던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난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수 없었다.




" 기... 김.. 재.... 중.. "




유노다.

아무리 봐도




유노였다.




" 머리 하실거면 이쪽으로 앉으세요. "




침착하게 말하는 내가 싫다.

유노는 내 이름을 기억했다.




" 안할거면 나가!! "




내가 지금 유노에게 뭐라고 한거지?

왜.. 내가 이러는거야. 가버리면 어떡해.




덜컹




유노는 내게 건네는 흔들리는 시선을 버리고

얼음처럼 변해버린 시선을 내 눈에 던지고 간다.




가지마.

유노야




정말 유노였을까?




" 정윤호!!!!!!! "




뒷모습의 유노는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알겠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눈물따위 흘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쁘게 웃지도 않아.




나보다 더 흔들린

유노를 보았기에 난




" 알아.. 넌 못 벗어나. 나를.. "




여. 름. 안. 에. 서.




창민




" 유노형.. 오늘은 늦게 간다고 그래. "

" 창민아.. 나 이제 완전히 나았어. 너랑 있어서.. "

" 그래도.. 밤에 잠도 못 잤으면서.. "

" 너하고 그거 하려고 우리 같이 낮에 잠만 잤잖아. "

" 유노형도 참.. 그거라니.. "




부끄럽게 웃는 내게 유노형이 웃는다.

지금 다시 봐도 아파 보이지 않아 좋아.




" 유노형.. 그러면 오늘도 가서 열심히 하고 와. "

" 그래. 알았어. 오늘은 꼭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 "

" 당연하지. 난 그 시간만 기다리는걸.. "

" 너만 기다리는거라고 생각해? 내가 더 해. "




유노형은 내 볼에 깊은 입맞춤을 남기고

댄스 아카데미를 향해 가는 모습을 본다.




시계를 힐끔 보고

고개를 움직이다가




다른 날보다 일찍 나가네.

어제는 못 가서 그럴지도




유노형과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불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몰라.

몰라.




여. 름. 안. 에. 서.




유노




오늘은 조금 빨리 나왔는데

창민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검은 머리 지겨운데 염색이라도 해볼까

창민이도 같이 염색하러 가면 좋겠는데




창민이를 놀래켜 주고 싶어서

혼자 미용실을 향해 분주히 가.




어라?

안 열었네.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는지도 모르고

그저 미용실 문 옆에 등을 기댄채 있는다.




딸칵




미용실 주인이라도 되는 듯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는데




" 염색하러 왔는데요. "




말을 뱉고 내 말을 들을 곳을 찾는다.

한 남자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 기... 김.. 재.... 중.. "




내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걸 보았을까




" 머리 하실거면 이쪽으로 앉으세요. "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재중이의 한국어 말이




낯설고도 멀다.

그대로 멈춘채




" 안할거면 나가!! "




내가 가길 바라고 있어.

나 같은거 보기 싫으니까




그래.

가줄께.




재중이가 내게 달려와

나를 안아주길 바랬다.




바보같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댄스 아카데미로 몸을 돌리는데




" 차.. 창.. 민.. 이..... "




창민이가 미용실에 갔었을텐데

머리 자르던 날.. 봤을까.. 분명




보고 놀랐을거야.

내게 말도 못하고




" 창민아..... "




댄스 아카데미를 지나쳐 집으로 간다.

달리는 동안 온통 창민이 생각뿐이지만




재중이가

간절하다.




여. 름. 안. 에. 서.




시아




너무 오래 잤더니 또 머리가 아프다.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오늘 하루




이 곳은 언제나 따뜻한 바람만이

이 주위를 감싸고 맴돌아. 한없이




그래도

나가볼까




망고 쥬스를 한 손에 들고

아무도 없을 공원으로 간다.




그런데

한 남자가

쪼그려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것 같이 조용한 모습에

나도 그 남자 옆으로 다가가 쪼그려 본다.









그 사람이 너무도 당황해한다.

풀 위로 털썩 주저앉아 나를 보며




" 나... 누군지.. 알지? "




누구지?

누구였더라.




" 나.. 딸기 우유.. "






딸기

우유




" 모르겠어? 내가 손도 잡았는데.. "




수줍어 하는 미소에 피식 -

웃는다. 내 모습에 당황한듯




" 아는거지? 나.. 어제 너.. 기다렸는데.. "




나를 기다려?

대체 왜 나를




" 기억 못 하는구나. "




실망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주저앉은 몸을 일으킨 후 내게 손을 내민다.




벌떡




무안할지 모르는데 그 손을 잡지 않고

그냥 내 힘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다.




" 내가.. 싫어? "




왜 내게 이러는걸까

무엇을 위해.. 내게..




" 나.. 친구가 될 수 없을까? "




너무도 간절하다.

친구가 되고 싶어해.




망고 쥬스를 내밀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그것뿐




" 이거.. 나 주는거야? 고마워. 잘 마실께. "




그 아이는 내가 건넨 캔을 받고서

한쪽 볼에 열심히 문지른다. 귀엽게




"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알지? "




유.. 천이였던가

말해주고 싶은데



슬쩍




그 아이의 한쪽 손목을 내가 잡아 끈다.

힘이 풀려버린 그 아이의 손바닥에 대고










라고 크게 쓰지만 과연 읽었을까?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이것뿐인데




" 주.. 준... 수? "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한번 웃는다.

내 이름을 이렇게 듣게 되다니 이상해.




" 내... 이름.. 기억해? "




또다시 그 손바닥에 조심히 적는다.

아니, 조심히 손가락 끝으로 누른다.










" 기... 기.. 억하는.. 구나. "




귀여운 아이다.

유천이라는 아이는




여. 름. 안. 에. 서.




유천




그 남자가 있지 않을까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간다.




아쉽게도 공원에는 없는걸

반짝이는 풀들이 나를 부른다.




" 나.. 만큼이나 반짝이는구나. "




자뻑은 안되는데

내 사랑과 같은 빛




우정이라고

해야 한다면




후 우




길게 한숨을 뱉고는 풀들의 감촉에

조금씩 즐거워 지려는데 누군가 옆에




털썩




주저앉아 나를 보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고는




나는 더 아래로 주저 앉는다.

너를 놓치기 싫어 말을 하는데




나를 기억하는줄 알았더니

별로 반응이 없어 당황한다.




조금이라도 들키지 않으려 먼저

몸을 일으키고는 손을 길게 뻗는데




벌떡




나를 더 무안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기에




없는 용기까지 끌어 모아 말을 건낸다.

내게 돌아오는 소리를 잡을 수 없지만




불쑥




내게 건네는 시원한 캔 음료를 받을 수 있었다.

델몬트 망고 쥬스.. 긴장한 내 한쪽 볼에 갖다댄다.




차가워.

나와 달라.




내게 가끔 가끔 보이는 그 아이의 미소에

내 얼굴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감출 수 있어.




저 태양이

날 물들인다고




얼마 남아있지 않은 용기를 모아

이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는다.




" 주.. 준... 수? "




왜 이 아이는 이렇게 알려줘야 했던걸까

그리고 계속되는 소리없는 대답을 본다.




이 아이는

말을 못한다.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아이의 뒤에 떠오른

태양을 한번 바라보고 뜨겁게 미소지어.







------------------------------------------------------------------------------------ 30















창민




오후가 되어 유노형을 기다리기 위해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한다. 약도 챙기고




이 곳이 내 눈을 맑게 해주고 있어.

어쩌면 유노형이 내게 빛일지도 몰라.




" 창민아!!!!!! "




유노형은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채

내게로 달려와 나를 품에 가득 안는다.




" 유노형.. 벌써 온거야? "

" 창민아.. 창민아.. 창민아.. "




유노형이 떨고 있다.

차갑게 식어가는 목소리




" 창민아.. 나.. 그만 둘거야. "

" 그만두다니.. 유노형.. "

" 댄스 아카데미.. 이제 나가지 않아. "

" 갑자기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




유노형은 품에서 나를 떨어 뜨리고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차갑게 감싼다.




" 유노형.. 왜.. 그래.. 응? "

" 창민아.. 난.. 너밖에 없어. "




유노형이

이상하다.




" 유노형.. 왜 그래. 무섭잖아. "




결국 울어버린건 나

유노형은 울지 않는다.




" 창민아.. 너.. 이제.. 가지마.

어디에도.. 가지마. 밖으로 나가지마.

너가 저번에 말했지? 꼭 잡아달라고.. "




유노형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 눈동자를 내가 바로 잡아 줄 수 있을까




" 창민아.. 나 믿지? 나 사랑하지? "

" 유노형.. 왜 그래. 정말.. 나 우는거 안 보여? "

" 어서 대답해!! 그리고 나도.. 잡아줘. "




유노형은 내 대답도 듣지 못한채

그대로 주저앉아 창밖에 눈을 비춰.




" 창민아.. 나 잠깐 나갔다 올께. "

" 갔다와. "

" 내가 어디 가는지 안 물어 볼거야? "

" 어디.. 가는데? "

" 댄스 아카데미.. 그만둔다고 말해야지. "

" 유노형.. 왜 그만두는지 말해주지 않을거야? "

" 그건.. 너.. 아무데도 안 보내려고.. "

" 내가 갈 곳이 어디있다고 그런 생각을 해. "

" 아니. 이 곳에도 갈곳은 있어. "

" 유노형.. 더이상 묻지 않을께. "

" 창민아.. 나 올때까지 여기에 있어. 알았지? "

" 알았어. 걱정마. 아무데도 가지 않을께. "

" 금방 갔다 올께. 어쩌면 조금 걸릴지 모르겠다. "

" 알았어. 내가 같이 안가도 될까? "

" 괜찮아. 잠시 혼자서 생각할게 있어. "

" 유노형.. 지금 굉장히 이상한거 알아? "

" 창민아.. 내가 늦더라도 나오면 안된다!! 알았지? "




유노형에게 더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유노형은 불안한 듯이 눈동자가 얼어가고 있어.




보고 만거야.

유노형이 그를




" 창민아.. 사랑해. "




이번에도 유노형은 내게서 대답을

기다리거나 들으려 하지 않고 간다.




내가 누군데

왜 모르겠어.




유노형이 그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내가 더 잘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에 미용실에 갔었나봐.

아무래도 내일은 내가 한번 가봐야 할것같아.




나... 와...




" 유노형을.. 위해서.. "




그 사람을 위해서도

지금의 내가 필요해.




여. 름. 안. 에. 서.




준수




유천이와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유천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게서

소리가

없는걸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느껴지는건 없지만 편하다.




유천이는 자기 소개를 짧게 하고

내게도 짧게 부탁하며 나를 향해.




처음에는 그 아이의 손바닥에 손끝으로 꾹꾹 눌러

대답을 하고 그 아이의 목소리로 다시금 확인했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니

조금씩 힘들어지기도 해.




톡 톡




유천이는 자신의 한쪽 볼에 손가락을 두번 친다.

내가 준 캔 음료의 온도로 차갑게 식어버린 그 볼에

내 손가락 끝을 눌러 천천히 조금씩 짧게 대답한다.




내가 유천이의 볼에 손가락을 건들기 시작하면

유천이는 두 눈을 위로 한껏 올리고 웃기 시작해.




방긋방긋




태양과도 같은 미소에

깜찍한 애교를 마주해.




길게 뻗은 속눈썹이 말아 올라간다.

그렇게 유천이의 얼굴을 살피게 된다.




" 준수야.. 손가락 아프지? 그만할까? "




웃는다.

알았어.




" 준수야..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께. "




공원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유천이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 준수야.. 나.. 니 손 계속 잡을거야. 잡고.. 싶어. "




태양에 쉽게 부서질 듯한

여리고 착한 영혼을 본다.




" 지금 지나치는 저 2층 건물에 내가 살아.

음.. 정확히 말하면 나하고 형이랑 살아. "




둘이서

두명이서




" 나.. 사실 너.. 어디 사는지 알아. "



어디?




" 저기.. 전봇대 지나서 저 3층 건물이지?

너는 저 3층에 혼자 살고 있고.. 나 스토커 같다. "




어떻게 알아?




이번에는 유천이의 뒤로 가서

등에 대고 질문을 짧게 해본다.




" 형이 집 구할 때 부동산에서 들었대.

저 3층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고.. "




그렇구나.




쉬운 대답은 내 눈을 보고서도

유천이는 하나 하나 많이 알아가.




" 준수야.. 난 너의 표정만 봐도 알겠어. "




이미 3층 건물 앞에 우리가 있다.

어느새 우리가 되어버린 너와 나




" 준수야.. 어서 들어가. 이거 정말 잘 마실께. "




유천이는 내 손가락 사이에 끼어 넣은

자신의 손가락을 풀어 내게 들어가라고




손짓해.




" 준수야.. 빠롱!! "




나도 그 인사 아는데

모른척하고 들어간다.




흔들흔들




서로가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유천이가 가는걸 3층에서 본다.




이제 창민이가 오겠지.

그런데 기분이 이상해.




여. 름. 안. 에. 서.




유천




준수의 손끝이 내 몸 곳곳에 묻어있다.

비록 볼이며.. 손바닥이며 등뿐이지만

내 가슴에 말하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 아.... 부끄러워. 준수가 알면 안되는데.. "




준수를 데려다 주고 집앞에 다다르자

이대로 그냥 들어가기가 재미없었다.




재중이형에게 갈까?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미용실로 향하며 준수가 건네준

캔 음료를 입 안에 마음껏 붓는다.




어,

준수다.




다시 전봇대를 지나칠 때

쥬스를 말끔히 마시기 위해

고개를 한껏 드는데 준수가




보여.

보인다.




" 준수야!! 너무 맛있어!! "




준수는 내 목소리가 컸는지

들었다는 듯 손을 흔들며 웃어.




" 준수야!! 내가 다음에 놀러가도 되지? "




준수는 말없이 웃는다.

오직 이 곳의 나를 위해




믿어지지 않는다.

꿈 속을 걷는다해도

준수와 함께라서 좋아.




멀리서 보이는 미용실 앞에

재중이형은 담배를 물고 있다.




" 형.. 뭐해.. "




분위기가 좋지 않아.

내 기분을 급히 감춰.




" 보면 몰라.. 담배피고 있잖아. "

" 형.. 표정이 어두운데.. "

" 너는 안 온다면서 왜 왔어. "

" 그럼 갈까? 내가 가면 편할거 같아? "

" 너.. 마음데로 해. 나 복잡하니까.. "




후 우




재중이형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 연기는 색을 잃으며 세상 틈 사이로 숨어.




" 아무 생각도 하기 싫다. 방금 전도.. "




재중이형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걸 안다.

언제나 베일에 쌓인듯 내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이제는 내게 조금씩 보일지도 모른다.




" 유천아.. 넌 이만 가라. 내가 지금.. 아니다. "

" 알았어.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 기다릴께. "

" 그래. 너 얼굴 보니까 좋아 보인다. 잘가라. "




재중이형은 타다 남은 담배를 땅에 비벼끈다.

내가 가는 모습은 보려 하지 않은채 사라진다.




알았어.

나 갈께.




형은 내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나는 형에게 관심이나 있었던걸까




형에게 너무 미안하다.

옆에 있어줄 수 없다는게




미안해.

앞으로는 잘할께.




여. 름. 안. 에. 서.




재중




이제와서 유노를 만난다고

달라지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담배 연기만이 내 앞에 아른거려.




" 형.. 뭐해.. "




내 주위에 유천이가 내게 말한다.

현실을 알리는 유천이의 부름이 꼭




달라지는건 없다고

달라질건 없다고 말해.




내 얘기는 한마디도 뱉지 못한채

아무것도 모르는 유천이를 보낸다.




미안하다. 너는 모를거야.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너는




후 아




미용실로 들어와 숨을 뱉는다.

더이상 담배 연기도 내게 없다.




유노가 내게 빠져 나갔듯이

담배 연기도 내게 멀어진다.




아프다.

심장이란게




방금 전 유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나의 모습에 밉거나 증오스럽지는 않아.




너무나 기뻐서 울고 웃을거라 믿었는데

그런데 현실은 꿈 속이 아니라는걸 알아.




지금 이 현실을 내가 받아들인다면

너도 이런 나를 잊고 방황하지 말아줘.




너의 흔들리던 눈동자만이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어.

그런 너도 언젠가는 이런 현실에 눈물을 쏟게 되겠지.




하지만

너도 알거야.




그때는 너무도

늦어버린 너란걸




다시 시작한다는 환상은 꿈이였어.

꿈에서 너를 찾아 방황하면서도 너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 나니까.. 포기할께.




너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좋겠어.

그러면 그 사람과 너를 축복해줄께.




정말 너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나 깨끗이 돌아설 수 있을거 같아.




널 볼 수 있어 행복했어.

더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아.




" 이것이.. 사랑일까.. "




이것이 사랑이라면 좋겠어.

너를 위해 현실을 내가 안을께.




" 아직도 사랑했어. 이런 내가.. "




바보같은 나를 이 곳에 버려두고

미용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문다.




너를 위해 이 세상을 살았는데

이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만 할까

너에게서가 아닌




" 어렵다. 너를 버린게.. "








---------------------------------------------------------------------------------------- 31








재중




입안에 물린 담배가 달다.

담배 꽁초는 바닥에 떨어지고

내 한숨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이리 저리 방황하며 떠돈다.

여지껏 지켜오던 내 사랑도




내 마지막 사랑도

이제는 보내야 할까




" 김재중.. 나도 하나 줘. "




내 옆에 앉아있는 유노가 있다.

그런데 전혀 기쁘지도 슬프지도




" 저번에.. 앞머리 자르러 온 애 기억나? "




창민이

창민이다.




" 내 애인이야. 착하지? "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지 않다.

검게 타버리는 담배에 시선을 둔채




" 그 애는 너 알아. 사진에서 봤거든. "




담배를 바닥에 떨어 뜨린다.

다시 줍기 위해 손을 뻗어 보지만




" 참.. 착한 애야. 너보다도.. "




힘이 들어가는 손끝에 어렵게

떨어진 담배를 주어 입에 문다.




" 나보다도 더 아파하겠지. 지금도.. "




유노는 몸을 일으키고 나를 내려본다.

정말 못 볼것 같아 마지막으로 말한다.




" 너.. 정말 나.. 사랑했어? "

" 사랑했다면? "




창민이가 생각난다.

갑자기 떠오르는 미소




" 사랑.. 하지마. 이제.. "




유노는 내 곁을 떠난다.

이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여. 름. 안. 에. 서.




창민




유노형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댄스 아카데미를 관두고 왔어.




" 유노형.. 춤 좋아하잖아. "

" 그만큼 췄으면 된거지. 뭐.. "

" 정말.. 아무렇지 않아? 쉽게 포기하는거? "

"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만 내곁에 있으면.. "

" 유노형.. 담배 냄새 난다. "




유노형은 한 손으로 가볍게 입을 막고

베란다 문을 열어 나 사이에 창을 둔다.




유노형은 한국에 오고 담배를 피지 않았어.

나를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아닌걸까.. 지쳐.




" 창민아.. 목욕하고 올께. 같이 할래? "

" 아니. 난 아까 했어. 나 먼저 잘께. "

" 그래. 우리 오늘은 일찍 자자. "

" 응. 아무것도 하지 말고.. 유노형.. "




유노형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집안은 밤의 소리를 불러온다.




슬픈 소리야.




유노형은 지금쯤 울고 있을거야.

그렇게 담배 냄새를 버릴테니까




슬프도록 아름다운 밤에 달빛이 뜬다.

별들도 소리없이 내 눈에 하나 둘 쏟아져.




여. 름. 안. 에. 서.




시아




별들과 함께

달이 울고 있다.




오늘 그 아이가 오지 않았다.

비도 그치고 다른 날과 같은데

창민이는 내 기다림을 몰라준다.




그 아이 이름을 적어놓은 노트에

시선을 내려 계속 읽어내려 간다.




창민
창민
창민
창민
유천




유천?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이름이 눈에 띈다.




그 이름 하나로 오늘 창민이를

보지 못했던 하루를 위로 받는다.




냉장고에 망고 쥬스를 하나 꺼내어

시원하게 마시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여. 름. 안. 에. 서.




유천




밤이 늦었는데 재중이형이 오지 않는다.

일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라고 말했는데




어디에 있는걸까

오고 있는 길일까




집을 나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간다.

내게 걸어오는 어둠 속에 한 사람을 찾는다.




" 재중이.. 형.. "

" 유천아.. 나 기다린거야? "

" 너무 안오니까.. 찾으러 나왔지. "

" 어서 들어가자. 힘들다. "




온 몸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지럽힌 재중이형의 괴로움을 잡아주고 싶다.




" 재중이형.. 일하는거 힘들어? "

" 아니. "

" 오늘도.. 손님 없었어? "

" 아니. "

" 손님 있었어? 근데 무슨 일 있는거야? "

" 아니. "

" 어떤 손님이었는데.. 저번에 왔던 사람? "

" 아니. "

" 그럼 누구? "

" 내가 사랑했던 사람.. "




잘못들었다고 생각했는데




" 내가 기다린 사람이.. 손님으로 왔더라. "




재중이형은 아주 희미하게 웃고 있다.

그 희미한 웃음에 많은 슬픔이 숨어있어.




" 그런데.. 왜 그렇게 우울한 모습이야. 좋을텐데.. "

" 나도 좋을줄 알았는데.. 모든것이 마비된거 같아. "

" 형.. 마비라니? "

"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줄 몰랐는데.. 잘못본것처럼.. "

" 그 사람도.. 형 알아본거야? 좋아해? "

" 나 좋아하는거 아냐. 나 버리고 다른 남자랑 갔었는걸.. "

" 형에게 미안하지만 참 못된 여자네. "

" 여자? "




우리는 아직도 집 앞에 있다.

선뜻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 형.. 그럼 남자야? 근데 다른 남자 때문에 형을 버렸다고? "

" 몰라. 그만해. "

" 어.. 어떻게 그런 사람을 여기서 만날 수 있어? "

" 괜히 본거 같아. 내 눈을 찢고 싶어. "




형은 울고 있다.

참으려는 눈물이 아닌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그렇게 흘려 보낸다.




" 형.. 그 사람 만나니까 싫어? "

" 모르겠어. 알 수 있다면 좋겠는데.. "

" 잘 생각해봐. 정말.. 기다렸다면.. 보내지 말아야지. "

" 정말.. 보내지 말아야 할까? "

" 재중이형.. 형의 진심을 받아들여. "




형의 한쪽 팔을 집으로 끌어 당긴다.

형은 힘없이 내가 이끄는데로 들어온다.




" 형.. 그럼 쉬어. 내일 다시 생각하자. "

" 유천아.. 나.. 다시 잡는다해도 자신없어. "




더이상 울지 않으려는 형의 모습이

더없이 투명한 달빛에 비춰 속삭인다.








--------------------------------------------------------------------------------- 32














창민




소리없는 아침에 눈을 뜬다.

유노형은 깊이 잠들어 있다.




" 유노형.. 아침이야. "




아무런 움직임도 뒤척임도 없어.

다만 살며시 눈동자가 반짝인다.




" 유노형.. 나.. 나가고 싶어. "




유노형은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내 질문은 듣지 못한 표정을 해.




" 유노형.. 나.. 나가면 안되지? "

" 어디.. 가고 싶은데.. "

" 염색이 하고 싶어서.. 같이 가자. "




내 속에 악마가 있다.

서로가 눈치채고 있어.




" 창민이.. 너 혼자.. 갔다와. "




유노형은 눈을 깊이 감는다.

아무런 떨림도 속삭임도 없이




" 유노형.. 그럼 갔다올께. "




유노형이 나를

내가 유노형을

서로가 시험해.




유노형은 내가 어디를 가는지 알고 있어.

염색하러 미용실에.. 그 곳에 있는 그 사람에게

내가 가려는걸 알고 잠자코 보내주는 유노형이




점점

싫어져.




날 사랑하는게 아냐.

날 사랑한다면 못 보내.




" 절대.. 보낼... 수.. 없지. "




유노형의 마음을 알게되어 싫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힘이든다.




김재중.. 그 사람이 아닌

유노형이 나를 힘들게 해.




그래.




그 사람에게 잘못이 없다.

처음부터 잘못은 유노형이




했으니




이런 비극을 낳아 버렸으니




" 어서.. 오.. 너는.. "

" 염색하러 왔어요. 형.. "

" 그.. 그... 래. 여기 앉아. "




미안해 하는건

유노형 때문일까




" 오늘은.. 내가 그냥 해줄께. "

" 아뇨. 돈 가져 왔어요. 많이.. "

" 그래? 그러면 아주 잘 해줄께. "




부르르 떨리는 저 사람의 손이 싫다.

저 손으로 유노형의 머리도 만졌겠지.




" 어떤.. 색으로 할래? "

" 저에게 어울리는거면 다 좋아요. "

" 그러면 갈색으로 해볼래? "




내 대답을 기다린다.

초조해 하는 모습도 싫어.




" 네. 그 색으로 해줘요. "




내가 모르고 있을거라 생각하나봐.

유노형이 이 곳에 다녀간거 아는데




" 더.. 덥지 않아? 쥬스 마실래? "




사실,

덥긴 해.




모든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게 건네는 말투, 친절함이




" 아뇨. 싫어요. "




기분 나쁜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못된 내가 하는 말에도 언제나

내게 웃음지어 보이는 저 표정이 싫다.




" 그.. 그래. 필요한거 있으면.. 말해. "




유노형은 왜 헤어진걸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잘 어울리는데

결국 깨진거잖아.




" 물이나.. 줘요. "




여. 름. 안. 에. 서.




재중




" 물이나.. 줘요. "




그 아이는 내 곳곳을 살핀다.

내 곳곳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어.




내가 지금 이 물을 마신다면 이상할까

목에 넘쳐나는 갈증으로 입안이 답답해.




갑자기 이 아이의 말투나 행동이 낯설다.

두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 사이 달라졌어.




유노가 말한걸까

유노가 말했을까




나도 유노를 조금은 아는걸

이런 아이에게 말 못한다는걸




정말 애인일까

날 버리게 된 이유




" 물.. 다 마셨네. 더 줄까? "

" 화장실 가기 귀찮으니까 그만 마실래요. "

" 그래. 나도 한잔 마셔야겠다. "




쨍그랑




우선은 그 아이가 마신 컵을 치우려 했다.

내 손에 잡힐듯한 그 컵은 내게 미끄러진다.




그런데

내가 운다.




내 심장이 깨진 소리 같았어.

결국 깨져버려 죽은줄 알았어.




" 뭐.. 하세요? "




유리조각에 내 손가락을 찔러본다.

아프다. 하지만 왜 눈이 더 아픈걸까




" 손에서 피가 나요. 가만히 있어요. "




그 아이가 의자에 일어서 내게 다가온다.

이런 눈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 형.. 우.. 울... 어.. 요? "

" 아.. 아파서.. 내가 엄살이 심해. "

" 빗자루 같은거 없어요? 그걸로 쓸어요. "

" 그.. 그래야.. 겠다. 그게 낫겠어. "




몸을 일으켜 빗자루를 찾아 헤매인다.

순간 빗자루가 놓인 곳을 찾지 못한다.




" 형.. 왜 그렇게 못 찾아요. 저기 있잖아요. "




그 아이가 구석으로 다가가 빗자루를 들어 보인다.

내 손가락에서 맴돌던 피는 더이상 흐르지 않은데




눈물은

왜 자꾸

흐르는지




" 그냥 계세요. 제가 쓸어 담을께요. "




이미 나를 보았을거야.

내 마음을.. 내 진심을




그러니까 너가 유노를 꽉 잡아.

유노가 내게 다시는 오지 않게




오지 않는다면

내가 찾지않아.




더이상 찾지 않을께.

너도 힘들게 하지 않을께.




" 야.. 약... 속.. 해. "




그 아이는 부서져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쓸어 담는다.

이어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빛나는 조각들을 털어낸다.




" 형.. 방금 뭐라고.. 했어요? "

" 아.. 아니. 나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

" 형.. 거기에 약 발라야 하는거 아니에요? "

" 아니야. 겨우 이 정도로.. 약은 무슨.. "

" 형.. 엄살 심하다고 했잖아요. 방금.. "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데




" 저.. 그냥 갈께요. 염색 안할래요. "

" 왜.. 왜 그러는데.. "

" 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어서 가봐야해요. "




유노가

기다린다.




" 내가.. 빨리 해줬어야 하는데 꾸물거려서 어떡하지? "

" 사실 염색보다도 그냥 들린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잖아요. "

" 너.. 또 올거지? 염색하러.. "

" 모르겠어요. 저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해줄수도 있거든요. "

" 그래? "




유노도 내게 염색해 줬는데

저 아이에게도 그동안 해줬겠지.




이제 내 차례는 없는거야.

너무 자세히 떠올라 슬퍼.




" 저.. 갈께요. "

" 또.. 올거지? "

" 못 올거.. 같은데요. "

" 그래? "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 또 인연이 있다면 보겠죠. "




그 아이가 빛을 보이며 나간다.

인연이 있다면.. 또 한번 있다면




" 잘가. 유노와.. 행복해. "




내가 이루지 못한 그 행복을

너는 꼭 버리지 말고 붙잡아.




담배를 향해 손을 뻗어 보지만 멈춘다.

더이상 시원한 물 한모금도 삼킬 수 없는




나.




" 아.... 흐..... 흐... 흑... 흑.. "




모든걸 되돌리고 싶어.

그럴수만 있다면 나도




유노와 행복하게 사랑하고 싶어.

유노와 함께이던 그 날 그때처럼




여. 름. 안. 에. 서.




유노




창민이가 염색을 한다며 나갔다.

잡아주길 바란다는거 알고 있는데




너에게 솔직해 지고 싶어.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너도 알고 있기에 보내준거야.




나.. 너는 안되나봐.

여기서도 재중이만을




그리워 하며 이러는거

이미 소용없는거 알지만




이미 확인했잖아.

재중이도 날 버린걸

내가 버렸던것과 같이




창민아.. 이제 널 잡을 수 없다.

더이상 아무도 내가 가질 수 없어.




이제 다 끝났어.

어렵게 붙잡고 있던

나와 창민이의 사랑도




재중이를 힘들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모두를 부정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 들고 있음을 이제야 알았어.




그래도 창민아..

이런 나를 잡아준다면

너만은 버리고 싶지 않아.




어제도 말했듯이 이제 너가 날 잡아줘.

너.. 불안하지 않도록 내 마음 죽일테니




" 유노형.. 일어났어? "

" 창민아.. 벌써 온거야? "




창민이는 아침에 나갔던 모습 그대로였다.

염색을 한다기에.. 다른 모습을 기다렸는데




" 창민아.. 염색은? "

" 염색하러 가다가.. 그냥 돌아왔어. "

" 왜.. "

" 그냥이라니까.. 뭐가 궁금한거야.. "

" 아니. 아무것도.. "




창민이는 나를 위해 가주지 않았다.

내가 가라고 했어도 창민이는 가지 않았어.




" 고마워. 창민아.. "

" 뭐가.. 고마워. 유노형.. "

" 사랑해줘서.. 나 사랑해줘서.. "




아직도

이런 나를

사랑해줘서




" 그럼 나도 유노형한테 고마워해야 하는거네? "

" 아니. 넌 그러지 않아도.. "




와락




창민이는 내게 달려와 나를 덮친다.

조금 놀라기는 해도 그대로 눕는다.




" 유노형.. 지금처럼만.. 우리 사랑하자. "




창민이의 힘있는 키스에 녹아 버린다.

태양은 창민이의 눈부신 머리칼을 흔들어.




" 창민아.. 너 염색하지 않아도 이뻐. "




김재중

포기할께.




다시 시작할 수 없잖아.

나를 받아준 창민이에게




" 고.... 마.. 워. 심... 창.. 민. "




여. 름. 안. 에. 서.




준수




오후가 저물어 가는데

태양도 저물어 가는데




창민이가 오지 않았다.

내 마음을 모르고 있어.




" 준수야.. 준수야!!!!!! "




깜짝이야.

유천이다.




" 나.. 왔는데 기쁘지 않아? "




웃지만

힘들어.




" 여기 올라 오는데 너무 덥더라. "




냉장고로 걸어가 시원한 콜라를 꺼낸다.

몸을 돌리고 유천이를 주려고 향하는데




꿀꺽꿀꺽




이미 유천이는 콜라를 꺼내 마시고 있다.

어떻게 된건지 몰라 고개를 기울이며 살펴.




" 아.. 이거? 내가 먹을것 좀 가져 왔지.

어? 그런데 준수도 콜라 꺼냈네. 우리 통했어!! "




유천이 주려고 꺼낸 콜라를 내 입에 쏟는다.

서로 열심히 콜라를 뱃속에 채우며 입을 닦아.




쓰윽




" 준수야.. 이것 봐. 먹을거 많지? "




이 많은걸 다 먹자구?




종이에 적어 유천이에게 보인다.

유천이는 대충 훑어보며 날 본다.




" 다 못 먹으면 여기에 놓고 내일 또 오지. 뭐.. "




내가 너 없을 때 다 먹을 수도 있는데?




" 그런가? 그러면 내가 다 먹고 가야겠다. "




유천이.. 너.. 여기서 자고 가면 안되는거 알지?




" 뭐.. 침대가 작고 좁긴 하지만.. 꼭 껴안으면.. "









다 마신 콜라 캔 끝으로 유천이 머리 위를 누른다.

하지만 거대한 유천이의 머리 뽕(?)에 더 눌러야 해.




" 준수야.. 그러면 내 머리 망가져. 어렵게 드라이 했는데.. "




이번에는 한 손을 쫙 피고서

유천이의 머리를 만지작 거려.




만지작

만지작




" 준수야.. 내 머리 뽕이 너무 컸나? 그럼 잘 눌러봐. "




유천이가 시키는데로 한다.

잠시 슬펐던 무엇이 사라져.




" 준수야.. 여기서 밖에 보니까 너무 잘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많이 심심하지 않을거 같아.

이제 심심할 수도 없잖아. 내가 있는데.. 안그래? "




그래.




" 밤에도 이쁘겠다. 그렇지? "




대답대신 웃어 보인다.

이 아이와 있으면 웃게 된다.




대답 대신 웃기도 어렵지 않고

계속 웃다보면 슬픔도 멀어진다.




" 준수야.. 이제 이거 먹을까? "




유천이는 과자 한 봉지를 꺼내고 터뜨린다.

그 안에 서로의 손을 넣어가며 과자를 든다.




" 준수야.. 너도 두개씩 먹어. 한개씩 먹으면 별로야. "




또 유천이가 시키는데로 한다.

유천이처럼 한번에 두개를 집어.




"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욕심 없이.. "




유천이는 과자를 입 안에 한껏 넣은채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이 웃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꽤 반짝거린다.




너도 창민이처럼

반짝일 수 있구나.




여. 름. 안. 에. 서.




유천




눈물이 나올것 같아 눈을 감았어.

과자를 삼키면서 눈물도 삼키는데




나, 준수를

사랑하나봐.




사랑해도 될까?

친구는 되기 싫어.




" 준수야.. 우리.. 친구지? "




준수가 맞다고 한다.

이제 친구로 남는건가




" 나.. 너.. 좋아하는데.. "




나도 너 좋아해.




준수의 재빠른 대답에

조금씩 희미한 웃음이

떠오르지만 곧 사라져.




" 나.. 진짜 너.. 좋아하는데.. "




준수는 말없이 창밖을 본다.

이미 물들어버린 달빛이 들어와.




" 나.. 가기 싫은데.. 준수야.. "




형이 걱정하겠다. 이제 가봐야지.




" 형이 아니라.. 준수 너가 걱정하는거 아냐? "




그것도 그래. 이거 안 먹고 놔둘께.




" 아니야.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내일은 여기서 자도 될까? "




음.. 그럼 낮에 와서 자고 가.




" 알았어. 낮잠이라도 여기서 실컷 자야겠다. 그럼 가볼께. "




정말이야.. 정말 낮에 와서 자고 갈거야?




" 아니. 낮에 와서 자고.. 그리고 또 놀다 가야지. "




준수가 웃는다.

굉장히 아름다워.




" 준수야.. 저기 저.. 앞에까지 같이 걸어가자. "




내가 먼저 준수의 손을 잡고 이끈다.

좁은 계단을 함께 빠져 내려가는 지금이




너무도 행복하다.

사랑을 하고 있어.




내가






박유천이




" 준수야.. 여기부터 혼자 갈께. 고마워. "




빠롱!!




" 준수야.. 너도 이 인사 아는구나. "




그냥




" 그럼 유천이도 준수에게.. 빠롱!! "




나도 준수처럼 전봇대에 손끝으로 써본다.

빠롱!!이라고.. 준수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처음 너를 이런 달빛 아래에서 봤을 때

이제 너 없이는 안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거 같아.

정말 그럴것 같이 깊이



아주 깊이

너에게 빠졌어.




그런데 전봇대 앞에서 준수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내가 잘못 본걸까.. 괜히 물으려다 이내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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