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onth Festival4> 아레끼빠를 떠나 리마 USEL 대학교회에서
@Arequipa의 아침
Juan Torre Blanca(후안 또레블랑까:하얀 거탑) 교수네 집에서 New York Hudson 문화재단 대표이며 피아니스트인 김자혜 대표와 현지에서 나와의 인연으로 소개받아 줄곧 김대표를 따라 다니던 Luz(루스: 빛, 그래서 한국이름도 명)는 전날 밤 같이 이 집에서 유숙했다.
명은 원래 라틴 이름이 그런 뜻이기도 하지만 전에 통일교가 남미에 주력할 때 그때 선교사가 한국이름으로 문선명 교주의 이름 뒤를 따 ‘명’이라 명명한 뒤부터 녀석은 줄곧 자신을 소개할 때 명이라 고집했다 한다.
안 주인이 Cuba에서 수녀로 있는 하얀 거탑의 누이가 방문해 Cusco 여행 안내를 하고 있어 우리끼리 조촐하게 아침을 나누었다.
이틀 전 우리 UNSA 공연 사회를 봐줬던 그의 여식 Rosalena는 아침 일찍 두 손주를 아빠에게 맡기고 나갔는데 작은 손주녀석은 뭐가 그리 맘에 안든지 식사 내내 뽀로통한 표정이 압권이다.
그를 바라보는 도토리 키 재기 식의 연상 형 녀석은 정 반대로 고조되어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여기 4층 만들 계획 있어요?”
:”당연하지, 하지만 아직 용도를 못 정했어.”
후안교수네 집 1층은 부부와 10년을 동고동락한 견공이 살고 있고 2층은 장녀가 결혼해 피아노 교습소 겸 살림방으로 쓰고 있는 중이다.
3층은 나보다 더 키가 큰 아들이 솔로 생활을 만끽하며 혼자 전 층을 사용하는데 드럼 셋트까지 그곳에 갖춰져 있다.
“오케이, 그러면 여기 4층은 한국 문화교류센터로 합시다. 어떠신가요?”
“적극 찬성, 한국 여행자들 쉼터도 겸하게 만들어 보자구.”
우리는 즉석 의기투합했지만 사실 이곳의 일 진도로 봐서는 언제 진행될 지는 모른다.
그래도 단층집에서 자녀의 결혼이 코 앞에 떨어지자 2,3층을 뚝딱 만들었듯이 4층도 필요에 의해서 예상외로 일찍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집 앞에는 그 구역 사람들이 거닐만한 작은 공원이 있고 제2도시 Arequipa의 양대 산인 Misti(5,822m)와 Chachany(6,075m)가 눈에 들어온다.
후지산 외형처럼 삼각형인 미스티 산은 이름처럼 그리 신비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겨울이면 제법 눈 모자를 쓰고 있다.
@Adios Arequipa
점심을 콘서트 주축들끼리 만나서 간단히 하였다.
버스 시간을 계산하니 이름난 음식점을 찾을 엄두가 안 났는데 잘 한 판단인 듯 하다.
Plaza de Armas에서 이틀 연속 같이 노래하였던 Adriana를 불러내고 내 또래 동갑내기 Juan교수까지 만나 바로 근처에서 점심을 든 후 이어 바로 터미널로 이동하여 거기에서 2박 3일간 동행한 그네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대표는 아마 최소 2-3주의 시간을 그들과 나눈 듯 하다 했으니 생전 처음 와본 남미 페루에서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표현이었으리라.
그러나 오는 길과 달리 가는 길은 아마도 그니(녀)에겐 상당히 버거웠나 보다.
처음 180도 침대버스를 탔을 때의 감탄사와 달리 경제적인 사정에 맞춰 급을 낮췄더니 Lima까지 오는 17시간 내내 불편했다니 말이다.
하필 시야조망이 좋을 거라 제일 앞자리를 끊었는데 기사의 무지막지한 추월은 물론 안전띠가 작동 안돼 고쳐달라 하자 천연덕스레 도착지에 이르러 조치하겠다는 차장의 대응이 더 불안을 가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뒤 남는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달라 요구해 조치를 취했지만 애초 처음의 침대버스에 대한 대비심이 줄곧 떠나지 않아 보인다.
@Lima USEL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집에 들러 짐만 내려놓고 연이어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New York에서 오는 화백님을 영접하였다.
만나 뵐 수 없는 분을 김대표를 통해 소개받고 이후 며칠간의 시간을 같이 나누게 되었으니 내게는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인 묘사는 여기에서 딱히 의미 없으니 1Month Festival이나 묘사해야겠다.
약칭으로 USEL이라는 대학은 2014년도에 신학교에서 갑작스레 일반대학으로 승인이 난 학교이다.
아마 페루에서 선교사로는 가장 오랜 시간 거주한 한국인 선교사분이 부이사장이며 영구 이사인 관계로 교민회장을 통해 인연이 되었던 곳이다.
그 선교사님이 오전 중 매주 강당을 빌려 직접 설교를 하는 시간에 여유가 있다 해 주일 오전에 잠시 본인의 창작곡 <그의 이야기> 10분짜리를 선보였다.
한국말로 된 창작곡이라 Peru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우려와 달리 음악이 주는 공감의 언어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달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사실 연주만 하는 게 낫지 않을 까 하는 권유를 은연중 계속 해서 부담은 되었는데 난 가사보다 느낌으로 전달되는 음악의 효용성을 믿었다고 할까?
이어 김자혜 대표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크로매틱 하모니카와 내 오래된 플륫으로 <Amazing Grace>를 연주하는 것으로 예배 찬조 치고는 긴 시간을 배당 받아 연주하였다.
끝나고 나니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기를 청하는데 이미 90세에 들어선 한 노신사와 통번역 공부를 한다는 그의 Venezuela 손녀와 더불어서 포즈를 취한 게 기억에 남는다.
2015년 7월 전 세계에서 같은 동일한 테마로 1 Month Festival 남미 Peru에서는 이리 종지부를 찍었다.
기획자인 박창수 음악가는 <하우스 콘서트>를 2002년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가는 열정의 사람이다.
지하철예술무대나 공항, 철도, 터미널 공공장소에서 실행해온 <Rail Art>도 2000년 초봄부터 지금껏 진행은 되고 있지만 내가 잠시 야인이 되어 남미를 떠돌 때 많이 시들해진 동안에도 그는 내내 더 흥하게 일을 끌어가는 사람이다.
지금에야 본인이 한국에 이리 예외적으로 오래 머무는 이유가 다시 공공전문 공연예술법인을 다시 맡아 새롭게 재정립을 하러 왔다는 것을 조심스레 발표할 수 있지만 예전과 달리 지하철 예술무대 Rail Art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아니던가.
어쨌든 당초 예상되었던 지역도시, 예를 들면 잉카의 수도 Cusco같은 곳은 정작 연주 장소에서 정작 핵이 되는 피아노가 없어 끝까지 진행을 못 한 것이 내내 걸리지만 남미 Peru에서 작은 부분에 참여한 행사는 이리 끝난 듯 하다.
문화의 레일
관계의 레일
Rail Art 박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