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조희팔 소재로 한 웹툰, 드라마 긴급 제안 (3)

강가딘 |2015.10.12 17:14
조회 91 |추천 1

윤비서.

2013년 서울 병원.

 

나는 윤비서다.

내 이름은 윤순옥이 아닌 조순옥이다.

조팔돈의 큰 딸 조순옥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밀이다.

특히나 내가 모시고 있는 남용한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십년 전 아버지는 당신 친구의 딸로 속여 남용한에게 나를 비서로 추천했고, 중국으로 도피한 후에도 남용한을 감시하는 미션용으로 나를 그의 곁에 남겨두었다.

그러나 강산도 변할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버지로부터의 연락은 뜸해졌고, 이미 나는 남용한에게 있어 수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용한에게 있어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비서로서, 부하 직원으로서, 딸 보라의 보모이자 감시인 역할로서, 그리고 와이프 역할까지.

 

그러나 지금 어쩌면 내가 남용한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남용한이 내게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용한.

2013년 서울 병원.

 

윤비서를 앞세워 보라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왔다.

저만치 정원 한가운데에서 환자복을 입은 보라가 날 보고 불안한 눈빛으로 엉거주춤하니 서있다.

다행이다.

이렇게 봐서는 많이 다친 것 같지 않지만 담당 정형외과 의사를 만나봐야겠다.

저 녀석은 아버지를 만나도 반가운 기색은커녕 도망갈 궁리만 하는 것 같다.

가만! 우리 부녀가 얼굴을 마주보는 게 얼마만일까?

윤비서에게 물어보면 대답해 주겠지.

이참에 아예 그놈의 보험사조사원인지 뭔지를 그만두게 하고 싶지만 말을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다.

사실 지금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문제는 문제다.

보라가 집을 나간 후, 윤비서가 거의 대부분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본인 소유의 주소를 갖고 있긴 하지만 집 안에서 윤비서가 유일하게 눈치가 보인다던 목포댁까지 구실을 잡아 내보낸 다음 그녀가 아예 내 침실 킹사이즈 침대의 반을 차지한 것이다.

녀석이 집에 돌아와 윤비서와의 관계를 눈치라도 채게 된다면 아버지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딸이 집에 들어와 살아도, 나가 살아도 문제라니, 이래서 자식은 애물단지라고 하는가 보다. 보험감독국 쪽에 압력을 넣어 어떻게든 수를 내 보도록 해야겠다. 설마 저러다 죽지는 않겠지만, 시집도 안 간 딸 얼굴에 상처라도 난다면 남들이 뭐라 하겠는가?

다 나를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닌가?

저 녀석은 알까?

내가 퇴직하기 전에 저 녀석을 멀쩡한 얼굴로 멀쩡한 자리에 시집보내는 것이 이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인 것을!

 

윤비서.

2013년 금융감독원.

 

출근하자마자 남용한 수석 부원장님이 지시를 내리셨다. 어젯밤부터 서재에 박혀 골똘히 궁리하던 새로운 기획안이라는 것이 이 내용인 듯싶다.

 

보험감독국 직원들을 불러 수사권이 없는 S.I.U. 조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2인 1조 유닛으로 보험 범죄 소탕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일명 I.S.U.를 조직해보라며 직접 가이드라인까지 제안하며 독려한 것이다.

이래서 낙하산이 무섭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개인적인 필요성을 공공의 필요성으로 둔갑시켜 버젓이 공론화시킨 것도 모자라 없던 조직까지 뚝딱 만들어버리다니 그야말로 든든한 낙하산이 아닌가?

딸에 대한 애정을 질투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슬금슬금 질투가 난다.

 

그나저나 까칠한 보라와 함께할 경찰은 어떤 인사가 적당할까?

여경도 생각해 봤지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배제했다.

경찰 내부 자료를 좀 받아봐야겠다.

너무 정의감이 넘치고 융통성이 없는 경찰보다는 좀 말이 통할 것 같은 놈이 나을 것 같다. 필요에 따라 내 말이 먹힐 수 있는 그런 인물이라면 유사시 필요하겠지.

그래! 이놈으로 하면 어떨까?

브레드 박!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외국물도 좀 먹었고, 보라가 악세사리 겸 데리고 다니기에 인물도 빠지지 않고... 무엇보다 수뢰 의혹이 있다는 코멘트가 참 마음에 든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런 약점이 있어줘야 상황적으로 필요할 때 잡고 흔들어주기도 쉽고 말이다.

 

가만? 그러다가 이놈이랑 보라가 연애라도 하게 된다면? 손익을 좀 따져봐야겠지만 실보다 익이 많지 않을까 싶다. 사랑에 빠진 남보라... 아무래도 아버지인 남용한과 나에게 조금은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되도 않는 기대를 해본다.

 

장일도.

2013년 S.I.U.

 

나는 장일도다.

지금은 한 보험사의 S.I.U. 책임자이지만 남용한 부원장과 조팔돈, 강마담과도 안면이 있다. 그러기에 남용한의 딸 남보라가 낸 지원서를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남보라를 뽑을지 말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남용한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놈은 별다른 인사치레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꺼낸다. 여전히 싸가지는 바가지다.

누구냐고?

자기 딸 남보라가 귀사에 지원서를 냈다는데 신경 쓰지 말아주면 고맙겠다는 남용한 말이지 누구겠나?

그러나 나는 수화기에 대고 공손하게 대답한다. 유념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금감원은 우리에게 천외천, 갑 중의 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진심은 남용한에게 갑질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이래서 우리 마누라가 나를 ‘꼴통’이라고 부르나 보다.

 

결국 내 직권으로 남보라를 우리 팀으로 합격시켰다.

딸이 험한 일을 하는 꼴이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건, 직장 생활을 하게 만드는 게 싫다는 이유에서건,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에서건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할 일로 갑질을 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남보라는 내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타고난 정의감과 무대포 정신으로 예상보다 보험범죄조사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다른 직원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왜냐하면 남보라가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소문은 내가 퍼트렸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그 낙하산이 회사 관계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금감원 수석 부원장 딸이라는 디테일까지 덧붙여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만일 그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남보라가 왕따가 되기는커녕 회사 내에서 상전 대접을 톡톡히 받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험감독국에서 협조 공문이 내려왔다. 말이 협조지 사실상 지도 편달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 조사 중에 부상을 입은 남보라에게 경찰 나부랭이를 붙이겠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우리 업계에서 한정적이라도 좋으니 수사권을 달라고 애걸복걸했을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남용한 이 자식이 자기 딸 남보라를 지키기 위해 이런 꼼수까지 동원할 줄은 정말 몰랐다. 뽑아주기를 잘했다 싶다가도 한편으로 약이 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다.

남보라 인사 고과를 조져놓으면 속이 좀 풀리려나?

나는 그렇게 치사한 상관은 못되나 보다.

남용한처럼 한 자리 단단히 해 처먹으려면 치사한 짓도 잘, 많이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난 아무래도 그쪽으론 소질이 없어서 출세하긴 일찌감치 그른 것 같다.

미안하다 ‘꼴통’ 마누라!

 

브레드 박.

2013년 서울 경찰서.

 

나는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우리 어머니의 경찰이다.

그래서 지능범죄 1팀을 1지망으로, 지능범죄 2팀을 2지망으로 냈다.

지능범죄 2팀에 배치 받았다.

조팔돈 사건 담당부서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는데, 보이스 피싱 범죄 전담이란다. 초반부터 팀 업무는 근무 시간에만 하는 객기를 부린 결과, 상관들한테 줄줄이 다 찍혀버렸다. 시간 날 때마다 팀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조팔돈 사건을 기웃거렸더니, 조팔돈한테 뇌물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났다. 조팔돈 관련 수사의 진척 상황을 조팔돈 쪽에 빼돌려 알려주기 위해 담당 팀을 기웃거리는 거란다.

뭐 상관없다.

뇌물을 먹었다고 소문이 나던, 비리 경찰로 소문이 나던 나는 오직 그 놈만 잡으면 된달까! 차라리 연락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조팔돈 쪽에서 그런 제안이 온다면 덥석 물 거다. 최소한 중국으로 튀었다는 놈의 연락처 하나만이라도 내 손에 들어올 거 아닌가?

 

조팔돈 사건을 담당했던 부서로 옮겨달라는 내용의 소원수리를 제출했더니, 거기에는 묵묵부답이고 대신 보험감독국에서 협조 공문이 왔단다. I.S.U.라는 조직이 생겼는데 보험범죄전담반이라고 한다. 나보고 보험회사 직원하고 한 팀이 되어 보험범죄만을 전담하라고 한다.

너무들 하는 것 같다.

그나마 보이스 피싱 쪽은 조팔돈이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과 어느 정도 관련이라도 있지만 보험 쪽은 영 취향에 안 맞는다. 선배들이 지들끼리 하는 말을 들어보면 범죄 수사라는 것이 원래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려운데 보험 범죄는 그게 딱 나와 있단다. 보험금을 타는 놈, 즉 수익자 쪽만 털어보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보험 범죄 수사는 수사 중에서도 하등한 수사에 속한다고 회식 자리에서 떠들다가 보험 담당 수사과장님한테 얻어맞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만? 그러면 아무래도 지금보다 더 시간 여유가 많아지는 건가?

그 보험사 직원이라는 사람한테 대충 떠넘기고, 남는 시간에 나는 마음껏 조팔돈의 전처 강정희의 뒤를 캐볼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마장호의 이웃집 여자.

2013년 서울 아파트.

 

나는 주부다.

크게 내세울 것 없는 중산층이 사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명한 주부다.

오늘 우리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 바로 옆집에서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으로 남자 하나가 죽었다.

아파트 여자들은 다들 망했다고 울상이다.

죽은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 어느 누가 좋게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거다.

 

석 달 전인가? 그러니까 초봄에 성깔 꽤나 있어 보이는 60대 어머니에 양아치 삘 충만한 40대 초반의 아들이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사 온 다음 날부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눈치였다!

복도에서 시도 때도 없이 쪽쪽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면 생뚱맞게 그 카리스마 할머니와 양아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샐쭉하니 서 있는 것이다. 뭐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윗집 선미네랑 저 아래 민기네도 그 모자가 좀 이상하다고 입방아를 찧어대는 것을 보면 내 촉이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거지!

복비를 챙긴 부동산 박씨에 따르면 양아들인 것 같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저 카리스마 할머니의 유산을 노린 양아치가 제비 짓까지 겸업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좀 아리송한 이웃집이다.

참! 그 아들이 친아들은 절대 아닌 것이, 저번에 그 할머니 딸로 보이는 여자가 한 번 와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 양아치와는 유전자 한 톨만큼도 담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 집에선 가재도구 부수는 소리가 나면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났다. 준법정신 투철한 내가 경찰서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했더니 글쎄! 5분도 안 돼서 우리 집 초인종이 울리는 거다.

경찰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수첩을 보여주니까 경찰이 맞기는 맞는 것 같은데 사복 경찰? 아니면 형사? 아무튼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옆집 얘기를 꼬치꼬치 묻고 돌아갔다. 거기까지는 별로 이상한 건 잘 못 느꼈지만 진짜는 바로 그 다음이다. 그 사복 경찰에 잘 생긴 젊은이가 돌아가고 5분도 안 돼서 또 우리 집 초인종이 울린 것이다.

그 다음은 말 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대문 앞에는 경찰관 정복을 입은 두 경찰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좀 전에 다녀간 젊은이 얘기를 했더니 황당해하면서 다시 나타나면 신고하란다. 뭐 막상 또 나타나면 어떻게 될 지 잘 모르지만 이웃집을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던 중 날이 밝았다.

우리 아파트는 주말이 분리수거 날이라 쓰레기봉투를 주렁주렁 들고 나가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카리스마 할머니가 내리기에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글쎄! 이 할망구가 나를 투명인간 보듯 쌩하고 그냥 들어가 버렸다.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다가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서있는데, 글쎄 옆집 문이 쾅하고 열리고 할망구가 나오는데 손에는 뻘건 피가 묻은 과도가 들려있었다! 에그머니나!

그 뒤로 어찌 어찌 구급차가 오고 경찰이 오고, 온통 노란색 띠를 두르고 난리가 나더니만, 저녁 뉴스에 우리 아파트가 떡하니 나오는 걸 보니 이 아파트 똥값 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뭐 무섭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다행인 건, 이 라인에서 유일하게 우리 집만 전세로 살고 있었다는 거! 그거지 뭐! 그동안 반상회 날만 되면 은근히 거만하게 나를 내려 깔고 보던 종기네랑 민기네!

보고 있나?

 

마장호.

2013년 서울 아파트.

 

나는 마장호다.

지금 나는 죽은 채로 검시실 안 냉장고 한 칸에 ‘수납’되어있다.

한번 뽀대나게 잘 살아보려고 늙은 강정희 꼬셔서 양아들로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는데, 결국 내가 먼저 당하고 말았다. 분하다.

하지만 뭐 내 인생이 다 그렇지!

내 생각대로 풀린다고 생각했을 때 짱구를 잘 굴렸어야 하는데..

그 할망구가 나보다 훨씬 고수였다. 그래도 설마 킬러까지 고용해서 나를 한방에 보내버릴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약육강식! 내가 강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남의 손을 빌릴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 위에 얹혀서 가는 놈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강마담.

2013 서울 아파트.

 

나는 강정희다. 알만한 사람들한테 강마담이라고만 하면 다들 안다. 잘 안다.

내가 지금은 그냥 그래 보여도 대한민국을 뒤흔든 조팔돈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조팔돈이 바로 내 남편이다! 전 남편!

그 인간한테 위장 이혼하자고 제안을 했던 건 난데, 이 인간이 글쎄 남편 앞에 ‘엑스’가 붙고 나더니 몇 년 째 감감 무소식이다. 다 좋은데 그 많은 돈을 다 인 마이 포켓하고 이 전 남편 놈이 지 혼자 꿀꺽한 모양새니 그게 문제지만 지가 튀어봐야 벼룩이고 숨어봐야 중국이기에 몇 년 째 두고 보는 중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차 저차 만난 마장호란 스무 살 연하남이 적극적으로 대쉬하길래 받아줬다. 사람들 눈이 있으니 양아들로 호적에 올려달라고 깝죽거리는 것도 못 이기는 척 그러자고 했다. 뭐 어차피 이 놈 속셈이야 내 돈이 목적일 테고 세상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싶어 하자는 대로 해줬다.

처음에 얼마 동안은 나쁘지 않았다.

아파트 복도에서도 뽀뽀를 해대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들이대는 바람에 좀 남사스럽지만 그래도 연하가 좋긴 좋더라. 요즘 왜 연하남이 유행인지 피부로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요새 트렌드에도 맞고 그 덕에 피부도 좀 탱탱해지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뭐해먹고 사는지 모르던 딸년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표정이 영 똥 씹은 얼굴이 되어 현관 앞에 서있었다.

저 마장호란 양아치 뒷조사 해온 걸 내미는데 그 동네 골목대장 같은 놈 속이야 뭐, 사실 내 추측대로라 놀랄 것은 없었지만, 이 집과 내 앞으로 나 몰래 이십억이 넘는 보험에 가입해 놓은 게 좀 의외였다.

액수가 좀 그랬다.

내가 겨우 이십억 짜리 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내 나이를 감안하면 그것도 큰 액수이긴 해도 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물러날 수 없다 싶어 딸년한테 마장호 앞으로 된 36억 원짜리 생명보험 증서를 보여줬다.

당연히 수익자는 양어머니인 나이고 마장호가 불의의 사고, 즉 재해로 죽는 경우, 특히 이 아파트에서 주말에 죽는 경우에는 십오억 원을 더 받는 특약 두 개를 보너스 삼아 추가로 걸어 놓았다.

겨우 딸년을 돌려보내고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저 아랫동네 CCTV가 없는 공중전화 박스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남용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남편이 없는 동안 기댈 남자는 이 인간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남편과 상관없이도 이 정도 부탁 정도는 들어주는 게 사람 사는 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변호사.

2013 한국보험사 사무실.

 

주말 저녁 뉴스부터 노파 살인 사건으로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이 시끄럽다. 처음에 나는 노파가 죽은 사건 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노파가 40대의 아들을 죽였는데 그 아들이 양아들이고 수십억대의 사망보험에 들어있다는 게 LTE급 뉴스 속보의 내용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사무실에 나온 김에 알아보라고 시켰더니 역시나 우리 회사와 관련된 보험 계약 건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미쳐 날뛰는 건지 모르겠다. 이젠 뭐 한 두 번도 아니라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노파가 피보험자를 죽인 게 밝혀진다면 법령에 의해 그 수십억 원을 수령하지도 못할 텐데 왜 양아들을 살해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보험료’는 보험가입자가 내는 돈이고, ‘보험금’은 사고 시 탈 수 있는 돈이다.

추측컨데 이런 보험료와 보험금의 의미도 헷갈리는 노파가 벌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저 노파의 법적 상속인이나 죽은 피보험자의 다른 법적 상속인이 나타난다면 그 땐 애먼 우리 한국보험사만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만 할 테니 영 짜증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노파 치곤 의외로 재해사망특약과 주말사망특약까지 빵빵하게 들어놨으니 말이다! 설계는 누가 해놨는지 몰라도 진짜 오지게 타먹게 만들어놨다.

 

브레드 박.

I.S.U. 서울

 

I.S.U. 배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거절했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 전산망으로 조팔돈의 가족 사항을 확인해 본 적이 있었다.

조팔돈에게는 조순옥이라는 큰 딸이 있고, 피라미드 사기 사건이 터지고 행방불명되기 직전에 이혼한 전처가 있다. 조순옥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전처 강정희가 거주하고 있는 주소까지는 알아낼 수가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으로 가서 잠복을 되풀이하던 중 1층에 사는 민기 엄마라는 분과 친해졌고 강정희의 옆집 여자가 경찰에 그 집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회다 싶어 이웃집 여자를 만나 조순옥이 다녀갔다는 사실까지는 알게 되었지만, 팀에서 보이스 피싱 출금자를 특정했으니 출동 나가야 된다고 호출이 왔고 그리고는 바빠져서 더 이상 잠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 뉴스에서 조팔돈 전처 강정희가 아들을 죽인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언론에선 시시때때로 보험금을 노린 노파가 잔인하게 양아들을 살해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라고 채널마다 매시간 떠들어댔다. 한국에선 한 가지 뉴스에 집중도가 참 높은 것 같다.

 

아무튼 I.S.U. 근무를 받아들이면 조팔돈의 전처 사건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I.S.U.는 원래 Insurance Special Unit의 약자이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I See U!

조팔돈아! 기다려라!

 

우리 팀에서도 어지간히 나를 내보내고 싶었나보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일도 과장님과 I.S.U. 파트너인 남보라씨를 만나게 되었고 사무실을 옮기라며 발령이 떨어졌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잠시 헷갈렸다. 왠지 우리는 아주 좋은 업무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