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메카 불교
미개한 네팔의 왕자를 믿는 종교.
중들의 범죄는 이상하리만치 방송에 안나온다.
문화재관리비 + 문화재사업비지원 + 템플스테이 = 붓다도 부러워하는 직장
우리나라 부채 규모가 지난해보다 215조2000억원 증가한 1117조원으로 나타났다.
가게부채는 1천조, 자엽업자 부채가 1억씩이다.
그런데 국가세금은 불교로 쏟아붓고 있다.
현재 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하여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국의 사찰에 지원되는 예산만도 1년에 2,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전통사찰보존법에 의한 예산지원, 행정자치부의 교부세나 템플스테이 지원 등이 사찰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1년에 대략 500억원으로 추산되는 문화재관람료가, 그 규모와 사용처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징수되고 사찰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2001년부터 2012년 사이 불교계가 ‘문화재 보수 및 정비예산’으로 받은 금액이 무려 6620억 원이다 이는 전체 종교문화재 예산 중 96%로 이에 대한 중앙 감사도 없는 상황,
템플스테이 운영으로 매년 200여억 원 씩을 지원받고 있다. 템플스테이가 관광 문화 차원이라 하지만 실제는 불교 포교활동을 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원래 템플스테이는 10년 전 외국인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 불교계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약 90%가 내국인이 이용하고 있다
불교는 그 돈으로 대형불사를 하였다.
고려를 통째로 몽고에 넘긴 팔만대장경의 기적 ?
팔만 대장경을 만든 이유는 민심을 모으고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다. 1236-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이라 한글자 한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과연 몽골군을 물리쳤는가?
몽골3차 침입은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1년 전부터 해서 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었다.3차 침입은 이전의 패퇴에 대한 보복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어, 탕구[唐古]를 주장으로 한 몽고군은 고려에 화의를 교섭해 오는 일이 없이 경상·전라도까지 침공하여 전 국토를 성폭행, 약탈, 유린하였다. 우리는 청나라에 잡혀갔던 처녀들, 환향녀를 안다.
그들은 몸이 더렵혀졌다고 천대를 받았다. 전쟁은 성폭행이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점점 길어지는 전쟁에 식량도 떨어지고 백성들은 지쳐만 갔다. 결국 고종은 항복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1238년에 몽고의 3차 침입은 고려가 강화를 맺고 매년 몽고에 인질을 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었고, 고려는 인질을 보냄으로써 당분간은 형식적으로나마 몽고와 화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대장경을 만들고 있던 1247년에 몽고는 다시 침입해왔다. 이때도 여전히 군사훈련대신 팔만대장경을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강화 연안까지 쳐들어와 강화도 정부를 압박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몽고에서 구육이 죽고 칸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이 다시 일어나자 몽고군은 곧장 철수하였다.
이 짧은 부분이 대장경을 만든 불심의 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장경 완성의 기념인지 또 다시 몽고는 완성 2년 만에 1253년에 쳐들어왔다.
(대장경이 1251년에 완성되었다.)
고려의 치열한 항쟁에도 불구하고 몽고군은 전국 각지에서 약탈·성폭행, 파괴를 자행하였고, 고려의 피해는 날로 커지게 되었다. 결국 고려는 몽고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종이 강화도를 나와 승천부(昇天府)에서 예꾸의 사신을 맞이하였고, 뒤이어 왕자 안경공 창(安慶公 淐)을 몽고에 보내 국왕의 친조를 대신하게 하였다.
1254년 7월에 또 몽고군이 고려에 침입하여 전 국토를 유린하였다. 이때 고려의 피해는 실로 막심하였다.『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이 한 해 동안 몽고군에게 포로가 된 사람이 206,800여 명이었고, 살육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몽고군이 거치고 지나간 주·현은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다.
1256년 몽고군은 다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주로 서해안 지역을 공략하면서 강화도 갑곶(甲串)의 맞은 편에 군사를 집결시켜 강화도의 고려 정부를 위협하였다.
1270년에 다루가치가 다시 파견되었고, 봉주에 둔전경략사(屯田經略司)가 설치되어 몽고군이 고려에 주둔하게 되었다.
삼별초항쟁이 진압됨으로써 고려 내의 반몽세력은 완전히 제거되고 고려지배층의 몽고에 대한 의존적 자세는 심화되어갔다. 그 결과, 고려는 29년에 걸친 끈질긴 대몽항쟁에도 불구하고 이후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자주성을 크게 침해당하게 되었다.
우선, 정치면에서는 원의 부마국으로 전락하여 관제나 의전 등이 모두 제후국으로 격하되었고, 만호부(萬戶府)나 홀치[忽赤] 등 몽고식 관제가 들어왔다.
사회적으로는 이후 80여년 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몽고의 풍속, 즉 몽고풍의 영향을 받아 몽고식 의복과 변발이 유행하는 등 고려의 풍속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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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말아야할 종교인별 범죄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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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통계청에서 조회하시면 나옵니다.
1990 년 부터 2010 년 까지 11 년간의 대한민국 범죄자 수 와 그에 따른 종교
총 범죄 수 : 1,986,319
종교별 분류
종교 무 : 1,547,306
불교 : 158,902
기독교 : 131,686
천주교 : 32,619
원불교 : 2,220
천도교 : 1,320
기타종교 : 112,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