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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음식 ! ‘보신탕’ 알고 보니... **

블랙비 |2015.12.15 14:41
조회 553 |추천 2

 

** 문제의 음식 ! ‘보신탕’ 알고 보니... **

 

우리나라 전통 보양식 중의 하나였던 보신탕은 아직도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문제의 음식’이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최고의 자성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견해는 어떠했을까? 조선 후기 실학의 최고봉 다산 정약용이 남긴 편지 글에서 당시 실학자들이 가졌던 개고기 요리에 대한 생각이 단편적으로 전한다.

 

몸에 좋다는 우리의 전통 보양식 중 보신탕, 즉 개고기만큼 유구한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단순한 시대착오적 혐오식품에 불과하다며 경멸에 가깝게 폄하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수술 후의 회복 등 소모된 기운과 허약해진 몸을 보호하는데 그만한 음식이 없다는 예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 시대의 지성인들은 개고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했을까? 조산 후기의 위대한 실학자로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이 개고기에 대한 단편적인 글을 남기고 있다. 물론 다산 쯤 되는 인물이 한가하게 개고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가 둘째 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글에서 개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 편지에 그런 글을 썼을까?

전조임금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다산은, 그러나 1801년 정조 임금이 갑작스레 승하하자 급전직하, 절망의 나락으로 덜어진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혐의로 무시무시한 신유박해의 회오리에 휘말려 가문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 버린 것이다. 큰형 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몰려 침수를 당하고, 둘째 형 약전과 다산 자신은 간신히 목숨만을 건져 기약 없는 귀양길을 올라야 했다. 약전은 아득한 섬 흑산도로, 다산 자신은 남쪽 끝고장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런데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다산은 그런대로 유배생활에 잘 적응을 했으나, 형 약전은 그렇지를 못했던 모양이다. 음식이 신통치 않아 잘 먹지를 못해 아마도 영양실조로 심한 고생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육류를 섭취하지 못해 기력이 쇠잔해졌다. 약전은 이런 사정을 강진에 있는 동생 다산에게 편지를 통해 하소연했다. 편지를 읽은 다산은 심히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형님에게 답장을 한다. 개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나온다. 그는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는 형님의 말에 섬 안에 산개가 엄청 많을 터인데, 이 개들을 잡아먹으면 육류 섭취는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고 장담한다. 여기서 ’산개‘는 어떤 개를 말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전후 맥락으로 보아. 이마 집에서 도망쳐 나와 산을 떠도는 개로 요즘 말로 치면 ’유기견‘쯤 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산은 이 산개를 덫을 이용해 잡는 방법에서 요리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이러주고 있다. 다산의 보신탕 요리법은 이렇게 이어진다.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메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되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말고 곧장 가마솥에 넣어서 맑은 물로 삶는다. 그리고는 일단 꺼내 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난다. 이어서 그는 이것이 자신의 독창적인 요리법이 아니라 어떤 이의 독특한 요리법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박초정의 개고기 요리법이다. 여기서 박초정은 다산의 선배로 당대의 유명한 실학자였던 초정 박제가를 말한다. <북학의>를 지은 진보적 실학자 초정 박제가가 개고기 요리의 달인 이었고, 당대의 최고 지성인이었던 다산 정약용이 그 요리법을 이렇듯 훤히 꿰뚫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개고기는 지식의 유무나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겼던 보양식이었던 것 같다. 옛 사람들은 개고기를 육류를 섭취할 수 있는 좋은 음식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생의 이렇듯 절실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손암 전약정은 얼마 후 흑산도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쩌면 지나치게 고고한 선배였던 그에게 개를 잡고 요리하는 일은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는지는 모른다. 개를 단순한 짐승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반려 동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보신탕은 용남하기 어려운 음식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우리네 삶에서 개를 결코 그런 위치에 있었던 적이 없다. 한마디로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은 개고기가 아니더라도 육류는 넘치도록 섭취할 수 있는 세상이고 개를 키우고 대하는 인식과 방법도 옛날과는 크게 달라졌다. 굳이 개고기에 집착할 일이 없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좋은건강) 블랙비

blog.naver.com/pjm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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