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를 때 만나서 긴 시간 연애를 하고 당연히 결혼을 했다.
십수년 부부로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믿었고 애들도 낳았지..
남편 폰 한 번 들여다 보지 않았고
아침에 출근해서 애들 잠들면 들어왔지만
그 직업이 원래 그런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워크샵도 많은데다 지방까지 일을 가면 자고 오는 일도 많아
숙박업소 서치앱을 깔았다며 말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소파에 앉아 카톡이니 밴드니 하는 것도
업무의 연속이라
나는 그저 옆에 앉아서 눈길 한 번 주길 기다렸고
가끔 내 얘길 조잘거릴라치면 돌아오는 건
폰에 눈길 박힌 당신의 영혼없는 리액션.
그래도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고
우리 가족 모두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기위해 일하는 거라
늘 얘기하고
사랑한다 해주고
시간만 나면 애들과 보내려고 노력하고
처가에 한결같이 잘하고
내게도 늘 같은 옷 입게해서 미안하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잘 살아보자고 그랬지.
친구들도 늘 당신같은 남편을 둔 나를 부러워했고
가끔 내가 일하는 곳으로 와서 점심도 사주고
보고싶다고 카톡도 보내고..
애들없이 고깃집이라도 가면 서로 쌈싸서 입에 넣어주며
남이 보면 우리 불륜인줄 알겠다며 키득거리기도 했었다.
몇 년 전부터 어려워진 집안 살림.
애들 낳고 키우느라 완전히 경력단절이 된 나는
딱히 일 할 데가 없었고돈 벌 데라곤 여름 땡볕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고
지금은 무릎 관절이 나갈 정도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일을 한다.
몇 개 안되는 결혼 예물을 팔러갔을 때 그 묘한 기분이란..
그래도 그나마 요즘 당신 일이 어느정도 자리 잡히고
이제 열심히 일해서 빚도 갚고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믿었던게
바로 어제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고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집에 도착해
얼얼한 눈두덩을 누르고 주차장에서 잠이 들었던 나는
당신의 전화를 받고 깼지.
할 말이 있다고. 올라오라고.
일요일 저녁이면 늘 나가던 사람이 집에 있으니 반갑더라.
그래서 냉큼 올라간 내가 들은 소식은
이제까지의 내가 와르르 무너지는 이야기..
에미가 뭐라고, 돈이 뭐라고..
당신 직장 지켜주느라 나도 피해자면서
그 여자의 남편에게 빌어야 했다.
직장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그날 나는 죽었다.
우리 부모님, 내 아이들 때문에 껍데기만 숨 붙여 살려두고
나는, 나라는 인간은 그냥 죽었다.
그 남자가 그러더라. 나 존경한단다. 어떻게 광분을 안하냔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내가 어찌한다고 없던 일이 되겠는가.
내가 옷 한 벌 못 사고 똑같은 옷으로 견디며 일하고
금은방 직원의 위로를 받으며 패물 팔아
밀린 관리비 가스비 낼 때
그 여자는 선물을 받고 행복 했겠지.
당신 없는 밤. 폰으로 영화 틀어놓고 그 소리에 위안 받으며 잠들 때,
오늘은 아빠 일찍 오시냐며 아빠 보고싶다는 애들에게
너희들 좋은 집에서 살게 해주려고 고생하시는 거라 달랠 때,
몇 주를 주말도 없이 일하고 앓아누웠지만
약 사줄 사람도 죽 끓여줄 사람도 없어 두통약 하나로 버텼을 때,
당신은 분홍빛 사랑에 행복해하며
그 여자와 알콩달콩 연애를 즐겼겠지.
둘이 사랑한 건 맞더라.
그 여자는 자기 남편한테서 기를 쓰고 당신을 보호했다.
오늘 그 여자에게 난 쌍욕 한 마디 안했고 털 끝도 건드리지 않았다.
왜 머리채 한 번 안 잡냐기에 난 비위가 약해서
더러운거 못 건든다고,
바람으로도 스치기 싫다고 했다.
그 여자는 내가 전화해서 난리칠꺼라 생각했는지
전화 차단해놨더라.
어제 집에 오래서 갔는데 없길래 전화해보려는데
당신 전화 안 받는다고 나보고 전화 해보라고 할 때 알았다.
그래서 그랬다.
그정도 나이 먹었으면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수습하고 해결해야지
무섭다고 도망부터 가냐고.
죄송하단다.
그말 한 마디 들었다.
나한테 그 여자 각서 받으라길래
난 저 여자한테 점 하나도 받기 싫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난 이제 저 둘이서 만나든 뒹굴든 관심 없다.
아침마다 애절한 눈빛을 나누고 아련한 맘을 나눈다한들
이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 이제 어떡하나 암만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너무 답답해서 나보다 불행한 사람 얘길 들으면 좀 나을까 하는 못된 심보로
여기서 서성거린다.
당신을 아들이라 생각하는 부모님이랑
당신을 믿고 따르는 내 동생 상처 받을까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일등 신랑감이랑 산다고 부러워하는 내 친구들에게도
넋두리 할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되고 보니 왜 사람들이 여기에 글을 쓰는지 알 것 같다.
담고 있다간 애써 죽인 내가 살아날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내 껍데기 마저 죽여버릴 것 같아서
여기에 토해놓고 간다.
나도 이해가 안 가는 심리지만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목 마저 아무도 안 읽길 바라며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