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게 익숙하진 않지만 털어놓고 싶어 써보려고 해요.
19살을 며칠 앞두고 있는 어린애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 어렸을 적에는 아빠와 친하게 지냈어요.
항상 제 말에 대답도 잘 하지 않는 아빠에게 하루 일과를 종알종알 말했고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랐었죠.
하지만 그랬던 저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많은 게 달라지게 됐죠.
가난하고 벗어날 수 없는 집안 사정, 이혼이란 말이 오가고 아빠의 심한 폭력과 말들은 항상 오빠와 저, 엄마께 너무 큰 상처로 다가왔어요.
오빠의 사춘기가 왔을 때에는 부모님이 없을 때 오빠는 게임이 안 되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절 심하게 때리고 하는 게 반복됐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이라 몰랐어요 그게 힘들다라는 것을.
제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오빠는 얌전해졌으나 엄마는 우울증에 약을 드셨고 초등학교에 이어서 전 은따에 시달리게 됐죠.
지옥같은 일상을 견디다 사춘기가 되고 많은 방황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죠.
아빠의 모든 폭력과 막말, 엄마의 끓어오르는 화, 오빠의 이간질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지옥뿐이었어요.
아빠께 심하게 맞고 학교도 못 가기도 했고 얼굴 한 쪽이 부어올라 학교를 간 적도 있었죠.
아무도 절 걱정하지 않고 뒤돌아 욕하고 방관했죠.
믿었던 사람도.
가짢은 행동이지만 손목도 매일 밤 그어가며 울었고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침대 속에 틀어박혀 떨었어요.
고등학교 올라가기 직전 진학 문제로 큰 다툼이 있었고 역시 저희 아빠는 아무런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어요.
늘 그랬지만 큰 상처로 다가왔고 전 더 반항을 할 기회였고 계기였어요.
원하는 학교로 왔지만 심한 은따, 많은 차별, 또 늘 혼자여야 되는 두려움이 저를 미치게 만들었어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겉돌며 심한 방황을 했어요.
여전히 아빠의 심한 폭력과 말들은 깊은 상처로 다가왔고 심지어 몸을 팔았냐 하는 말까지 들어가면서도 저는 남자를 바꿔가며 만났고 익숙한 수건라 하는 욕들, 비하, 비꼼 등도 남자를 만나며 무시해왔던 거 같아요.
믿었고 많은 말을 했던 친구에게도 큰 배신을 당했으면서 첫사랑이란 사람에게 비참하게 차이면서도 전 자존심 하나로 모든 것을 버티고 무시했죠.
그렇게 힘든 와중에 저희 아빠는 변했어요.
엄마의 끝없는 노력으로 진짜 우리 집이 생겼고 옛날부터 엄마한테 꽃과 선물을 했지만 그 횟수가 늘었고 폭력과 막말은 거의 안 했어요.
그리고 늘 방에 틀어박혀있는 저에게 밥은 먹었냐며 매일같이 물었고 저는 마음이 많이 닫혀있어 대충 대답하고 무시하거나 했지만 첫눈 오는 날, 얼마 전 크리스마스엔 남친도 없냐며 장미 한 송이도 쥐어줬어요.
많이 변한 아빠만으로도 저는 학교를 겉돌고 욕먹고 무시받고 제 마음을 말하고 기댈 사람이 없어도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버티고 있던 저에게 무엇보다 힘든 말을 들었어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있을 적에 지나가듯 한 말이었죠.
"6년 전 6개월 안에 죽을 거라 했다."
예전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울고 욕했겠죠.
그런 저를 부모로써 오빠로써 잘 알았기 때문에 몇 년간 저에게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았겠죠.
그랬지만 아빠는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생각조차 못하고 흘리듯 말해버렸겠죠.
이마가 찢어져도 실 뽑으러 가는 돈이 아깝다며 집에서 족집게로 직접 뽑아달라 하는 독하고 안쓰러운 우리 아빠니까 티 안 내는 게 제일 힘들면서 쉬웠을 거에요.
그런 아빠가 얼마 전 팔이 부러졌어요.
그 날 전 아빠 전활 일부러 받지 않았어요.
그냥 뭘 사오라고 하는 전화겠거니 하면서요.
뭐하나 잘난 것도 없으면서 하는 행동 참 못났죠.
반깁스를 한 아빠는 매일 밤 귀가를 해서 간지럽다며 깁스를 풀어달라고 하고 말없이 누워계시다 주무셨어요.
솔직히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어요.
마사지도 거부하셨고 저 역시 많이 다가가기 힘들었죠.
그런 아빠가 오늘 집에 귀가해서 팔이 너무 아프다며 뭐라도 해달라고 간곡히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맨소레담(?)이라도 조심조심 발라주다 싸가지 없게 ㅋㅋㅋ 괜찮아? 라고 물었어요.
아빠는 고개도 잘 못 드시고 엄청 뜨겁지 우리 딸이 해주니까 참는 거지 라 하셨어요. 하..
그러다가 못 참고는 얼음찜질이라도 하라고 하셨고 전 맨소레담(?)을 닦아내며 아빠가 말하고 아프단 부위에 얼린 떡(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을 문질렀어요.
고개도 못 들며 아파하던 아빠는 얼굴을 완전히 파묻으시고 조심조심 말했어요.
"팔꿈치 뼈가 다 부서져서 5주동안 통깁스를 하랬고 그걸 해도 붙을지 모른다 했는데 가족들한테 잘해준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이걸(반깁스) 했다. 그리고 니가 알 지 모르겠지만 6년 전에 수술(신장암으로 한 쪽 신장을 제거)하고 6개월밖에 못 산다 했다. 엄마랑 오빤 알고 있었지만 너한테 말을 절대 안 했을 거고 많이 힘들었을 거다.."
계속 말이 없었지만 유난히 더 큰 정적이 흘렀고 아빠는 말을 이었어요.
"내가... 미안하다"
죽도록 힘들어도 이제는 울음도 잘 나오지 않고 싸이코패스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변했지만 그냥 눈물이 흘렀어요.
"눈물 흘리는 거 아니야 아빠 딸은 그러는 거 아니야"
아빤 보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어요.
소리도 내지 않고 눈물만 조금 떨구다 무덤덤하게 찜질하던 팔을 피하는 아빠께 그만해도 되는 거냐며 묻고 들어가서 자라는 아빠의 말에 저는 그냥 방에 들어왔어요.
저 많이 못 됐죠.
아빠는 노력하는데 저 혼자 상처 받은 척 외로운 척 한 거 맞죠..
뭐라 끝내야 될 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 봐주시고 진심으로 느껴만 주시면 그 것만으로도 많이 고마울 거에요.
아빠, 내가 더 많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