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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지 4달 째. 읽어주세요.

글쓴 |2016.02.18 23:22
조회 11,102 |추천 115
판에서 보기만 하다가 직접 글을 쓰는 건 처음입니다.다른 게시판에 올릴까 했지만 가장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하는 게시판인 것 같아 카테고리 달아 올립니다 주제에 맞아 죄송합니다.저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 동생은 2살 터울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갑니다.저희 엄마는 작년 말, 제가 17살 때에 돌아가셨습니다.갑자기 생각나는게 돌아가시는 날 이모가 평소와 같은 침착한 목소리로 엄마 병원에 잠깐 들렸다갈래?라고 전화가 오셨는데 평소같으면 주중 주말에도 자주 가고 학원이 있는 날은 별로 없기 때문에 저 학원이 있어서 내일 아침에 갈게요! 하고 그래 그러자 그럼~하고 끊는데 그날은 오늘따라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학원 다 빼고 갔는데 제가 도착하기 30분 전 돌아가셨습니다. 딸이라서 그런 느낌이 본능적으로 왔던건가 싶기도 해요.세상이 무너지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장례식장 앞에 엄마 이름, 내이름 이렇게 걸려있는게 정말 꿈이 아닌걸까 왜 그렇게 아프고 결국에 죽는건 우리 엄마여야만 했을까라는 생각과.. 몇번의 기절과 탈수를 반복하다가 친척분이 엄마 가는길은 지켜드려야지 라는 말에 후들거리며 웃는 엄마의 사진 옆에 서있었네요. 엄마는 웃는 것도 왜 그렇게 예뻤을까요폐암을 판정받으셨을 때는 제가 중학교 1학년, 14살 때입니다.어렸던 나머지 누구에게도 속상함을 얘기하지 못하고 고등학생이 되던 작년까지도 친구나 주변인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앓아왔습니다.작년에 슬픈 소식을 들으신 학교, 학원 선생님이나 친구들 모두 너무 밝게만 행동해서 집에 이런 일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겉으로는 절대 티 안나게요.저는 엄마에게 가족 어느 누구보다 의지했습니다.그래서 저는 사실 아직까지도 정상 생활이 힘든 편이고 평소에도 눈물이 많아 친구들이 주위에서 오늘 아침에 엄마가~ 이런 얘기만 들어도 혼자 숨어서 펑펑 우는 일도 잦습니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집에 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친가쪽 제사도 아빠는 불참한 채 항상 어린 저와 동생을 데리고 지하철을 이용하며 울산까지 갔다가 제사까지 다 하고 나서야 새벽에 도착하던게 생각나네요.짧게 말하자면 전 아빠와 함께 한 시간도, 애정도 매우 적습니다.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외도를 하다가 걸려 크게 싸우고 이혼할 상황까지 갔지만 엄마의 폐암 진단 후 아빠는 그 많던 일을 줄이고 병간호에 힘쓰셨습니다.하지만 제가 못된건지 이제와서 무슨..이라는 생각과 엄마의 병은 아빠가 힘들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아직까지도 있네요. 아빠의 그 화를 정말 못참는 성격도 제가 아빠에게 정이 잘 안가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네요.친구한테 친구 가정이야기를 듣다보면 저희 집은 그리 평탄한 가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앞에서 말했듯이 아빠의 외도. 그리고 중학교 3년은 누구에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엄마가 점점 아파만 가는걸 보는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하고 싶지 않던 3년이었습니다.엄마는 대학병원 머리가 빠져가고 아파만 가던 그 시간에서도 하루에 두번 세번 꼬박 전화해주시고 요양병원에 옮기셔서도 저희에게 치료 받을 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 저희가 무서워할까봐 자주 오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세요. 돌아가시기 딱 하루 전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가는 저에게도시락 싸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거 싸주고 학교 가는거 지켜보는게 엄마 행복이었는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라고 보내신 문자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자신이 곧 떠날 걸 꼭 알고 보내신 문자 같았아요 생각해보면..제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면 중학교 때 어쩌다가 학교에서 심리검사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불안증세가 꽤 높게 나와 상담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조차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마킹을 잘못한 것 같다 등의 핑계로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확한 검사결과였던 것 같네요.엄마라는 단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겼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게 방학 때였는데 학교에 가고 한 2주일 동안은 친구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곁에서 도와주곤 있지만 네달 다섯달이 되는데도 가족 중에서 가장 정상 생활로의 회복 기간이 더딘 것 같네요. 항상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해요.여기에 글을 올린 게 처음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하고 올린게 표면적 목적이었으나 사실은 이런 얘기들을 어딘가에 풀어놓고자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동생은 중학생이라 깊게 이야기를 나누진 못해요. 제가 무너지는 걸 보면 동생도 불안해하고 그 불안에 깊게 빠질까봐 장례식에서도 동생 앞에선 울지 못하고 동생 자면 밤에 나와 엄마 앞에서 계속 울고 그랬네요. 아빠와는 크게 유대감같은 게 없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끝을 흐리고 말아요. 이렇게 길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보는 건 처음이예요. 저를 걱정해주시고 고민있음 말해라 하는 분들, 좋으신 분들은 많지만 제가 말하지는 못했거든요.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괜찮으시다면 마음속에서만이라도 고생만 하다가 아프게 간 우리 엄마 명복, 저희 가족이 이제는 행복하길 빌어주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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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홧팅|2016.02.19 01:41
저는 중3때 엄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슬퍼하지마세요 우리 아주아주 나중에 엄마 만날수 있잖아요. 엄마가 너무아퍼서 멀리 요양하러 갔다고 생각하세요.그리고 남은 가족끼리 엄마에게 부끄럽지않게 열심히 인생살고 나중에 엄마 만나러가요. 그때가서 밀린얘기 많이하고 보고싶었다고 말하구 우리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구 칭찬해달라고 하면돼요. 엄마가 없어진거 아니구 좀 힘드셔서 우리보다 단지 먼저 간 것 뿐이에요^^ 언젠가 우리도 엄마가 간 곳 갈꺼고 다시만날꺼에요~내손에는 안잡히지만 분명히 엄마가 꿈에도 나타나고 내삶깊숙히 박혀있거든요 슬퍼할이유없어요 우리같이힘내요
베플앓이|2016.02.19 05:10
쓰니야ㅠㅠ 언니가 댓글 잘 안다는데... 마음이아파서 그냥 못지나가겠어서.. 만나면 안아주고 밥한끼 사주고싶다.. 언니인생도 순탄치만은 않았거든 나는 내가 희귀병 환자야.. 31살..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나잇값은 못하고.. 아프면서 집에 짐덩어리라... 항상 미안함과 죄책감이 크거든.. 대인기피에 2년은 몸사리느라 밖에도 안나가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극복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수있게됐어 언니병이 다른환자는 걷지도못하거든.. 나는 아직 걸을수 있으니까! 나를 불쌍하고 가엽게 여기지않고 오히려 인간극장 동행.. 휴먼다큐사랑 챙겨보고.. 봉사활동 가끔 가면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 만나다보니... 지금에 감사하면서 살려고 하다보니 시간은 흘러있더라구.. 조금만 기운을 내고 건강하니까! 동생이랑 이런저런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보고 서로 보듬어가며 의지하며.. (결국남는건 핏줄뿐이더라..) 힘이 되어주며 살아가길 기도해줄께 무지잘이겨내며 살고있어!!토닥토닥 ㅠㅠ 어머님도 더는 아프않은 하늘에서 꼭 지켜주실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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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안녕하세요|2016.02.19 01:04
올해 31살 언니에요. 저희집이랑 상황이 많이 비슷해요. 저 13살때 난소암 판정 받으신 엄마. 수술 하시고 완치되셨다가 15살때 재발하셔서 17살 되는 해 돌아가셨어요 벌써 14년전이네요. 2살 어린 여동생있고요. 아빠의 가정폭력, 툭하면 직장에서 싸우고 그만두고.. 여러가지 집안사정이 복잡했지요.. 저도 글쓴이처럼 아빠 원망 많이 했어요. 아빠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셔서 아프신거라고... 너무 글이 길어지는데..저도 엄마 돌아가시고 그랬어요. 엄마 얘기, 생각만 나도 눈물이 나고.. 그건 지금도 그래요. 다만 지금은 좀 참을수 있다는거.. 지금 동생이 어려서 얘기할수 없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저는 그당시 동생이 어리고 떨어져 있어서 엄마 얘기 둘이 한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동생 일기장을 봤어요 ' 엄마, 엄마가 돌아가신날 저도 죽었어요' 이렇게 적혀있는걸 보고 한참을 울다 동생이랑 그제서야 얘기했네요 동생도 누구한테 힘든거 엄마 얘기 못했다가 저랑 둘이 얘기하면서 서로 위로가 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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