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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하지마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기 위해 제 이야기도 풀어둘게요.

그저 소소한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이라면 아래로 쭉 내려가도 좋아요.

 

제 엄마는 어릴 적 아빠와 싸운 이후로 집을 나갔고 집에는 아빠랑 오빠랑 저랑 같이 살아요.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서부터 가족들이랑 얘기하는 일도 없고 혼자 있다보니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할 일은 게임이나 SNS 속에서 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어릴 적부터 학교에 가는 것은 별로 재밌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3학년 쯤? 부터 진로라던가 모든 고민들을 혼자 해야 했거든요. 애들은 조금 진지한 얘기만 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했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저를, 선생님은 학교에 나올 가치가 없는 학생으로 얘기했었어요.

2~3년 쯤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아빠는 제가 무슨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도 들어보지 않고 절 때렸었어요. 엎드려뻗친 채로 당구장 채로 100대 씩 맞아서 하체에 온통 피멍이 든게 생각나요.

아빠는 절 때리면서 "왜 미안하다 사과를 안해?" 라고 했습니다. 물론 전 사과하지 않았구요.

학교에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도 들어보지 않고 때리는 것을 저는 '내 사과를 받기 위해서 날 때리는 건가?' 라 생각 하였고, 학교에 나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이 아빠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였기에 사과하진 않았어요. 나와 진지하게 말을 나눠볼 생각도 없이 그냥 때렸었거든요.

생일이 되니 학교에서의 유일한 친구가 인형을 선물해 줬어요, 초등학생이 사기엔 비싼 물건이였는데 친구가 사준 것이기도 하고 유일한 선물이였기에 늘 아끼고, 늘 좋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빠가 버려버렸더네요. 늘 그랬듯 이유가 뭔지도 모르고, 이유를 묻고 싶어도 맞고 싶지 않아서 물어볼 수 없었어요.

집안 일을 분담해서 하게 되었을 때, 오빠는 청소를 하기로 하고 저는 빨래를 하기로 했어요.

오빠는 늘 저한테 개X끼라, 씨X년이라 얘길 하더라구요. 그게 8년 가까이 돼서 익숙해지니 익숙해졌다는 것 자체에 자괴감이 들어요.

초등학생 때에는 죽을 생각이 가득했어요, 앞으로 살 일이 막막했거든요.

이런 집안에서 내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 하고 싶은게 있다고 한 들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었거든요. 그 때엔 그냥 두고갈 수 없는 친구들이나, 온라인 상에서 나와 이야기 해 주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기 아까워서 하루를 계속 살았어요.

중학교는 늘 그렇듯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는 저와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 소외되는 감이 있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어요.

몰려 다니며 애들한테 욕을 하는,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애들은 그저 한심하고, 사람들 사이에 어울려서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기쁜 일이고 조금은 기적적인 일인지도 모르는 그런 애들이라 생각될 정도였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사건 때문이였거든요, 아무 짓도 안한 사람에게 피해주는 일이요.

분명 그 애들 중에서도 나와 같은 아이들은 있었을거라 생각해요, 부모님끼리 사이가 안좋다던지.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자존감은 있을대로 까내려져선 바깥에 나왔을 때에는 있는 자존심 다 부리는 것일 수도 있겠죠.

부모님은 역시 늘 그랬듯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어떤 고등학교에 갈 지도 얘기 하지 않았고 무엇을 하려는 건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조차 얘기하지 않았죠. 집에서 함께 있다면 모르는 아저씨가 집에 있는 느낌이였어요.

처음엔 사람이 왜 웃는지, 왜 우는지 조차 알 수가 없어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어떤 점에서 기쁘고, 어떤 점에서 슬퍼 하는지 그걸 알기 위해서 언제나 책을 가지고 다녔어요. 그럼에도 부족한 사람과의 대화횟수는 늘 발목을 잡았고, 전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위해서 상담소에 도움요청을 했어요.

상담을 하기 위해선 필요한게 보호자의 동의였죠.

물론 동의서를 보여준 적은 없어요, 동의해 줄리가 없으니까요.

상담을 하면서도 느낀 것은 상담사의 말들이 내가 알고 있는 해답들이였던 것이에요.

알면서도 내 상황이 바뀌지 않은건, 내가 그 해답들을 실천해도 내 일상이 바뀌지 않는 것은 내 자존감을 더 깎아 내렸네요. 결국 1년동안 긴 상담을 하다 일주일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짓말 하는 그 죄책감이 싫어져서 그만 뒀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정할 때 부모님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어느 고등학교에 간다도 제가 정했고 그 이야기는 물론 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였어요, 전 이것을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다 생각했고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가진 편이라 생각하여 처음엔 예고나 애니고에 갈 생각이였어요. 그런데 금전적인 이유로 갈 수 없게 됐죠.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선 나와 잘 통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즐길 수 있었고, 선생님도 나를 깎아내리진 않았죠. 난 내가 포기 안하고 계속 살았고 노력해 왔기에 이런 평범한 일상이 다가온 것이라 생각했어요. 집에서의 가족들은 나를 욕하기만 하고, 부조리한 일들의 이유를 알려주는 것도 없이 마음대로 정해버리는 것에 대해선 늘 이해할 수 없고 한마디로 말 해서 그냥 싫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주변에서의 도움으로 급히 병원에 실려갔고 부모님도 결국엔 오셨죠.

진료를 받을 때 들은 이야기는 치료하러 오지 않았었으면 뼈가 뼈 사이로 뚫고 들어가 못걸었을 수 있단 얘기였어요. 입원은 힘들테니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쉬라는게 의사선생님의 말씀이셨죠.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나오니 얘기 하더네요. "이런 데에 돈 아깝게 뭐하러 와?" 라고.

당시 병원비는 10만원 쯤 나왔었는데, 돈이 아깝다란 얘기를 들었을 때.

저 사람에게 내 가치는 그정도 밖에 안된다라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난 참았어요, 부모님은 여전히 자신이 자녀에게 충분한 애정과 배려를 해주고 있다라 생각하고 있고 그게 아니다라 얘기 했다 혼난 것에도 늘 참았어요.

오래 전부터 받은 내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에 대해 법적으로 고발할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번다고 하여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걸 알기에 지금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어요.

그래도 만일 정말 나를 가족으로서 생각하고 있다면, 내 심리적 안정은 책임질 수 없더라도 어른으로서 내 진로문제를 같이 생각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얘기했어요.

난 대학교에 가서 공부할 거라고 얘기 했죠.

돌아온 얘기는 역시 돈 아깝게 뭐하러 대학교에 가냐는 얘기였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갈 그림 실력이면 취업이나 하란 얘기였죠.

제가 고등학교에 간 것도 사무직, 공장 기술계를 배우러 그 학교에 간 줄 알고 있더네요.

전 분명 그림을 그린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에요.

그래놓고 제가 그것을 무관심이라 얘기하면 화내는 것이죠.

대학교에 들어갈 그림 실력이면 취업을 하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였어요.

뭐던지 간에 그냥 가지 말란 얘기 뿐이더군요. 그래서 대학교도 결국 내가 모든 등록금을 마련하는 대신 갈 거라고 얘기했어요. 결국엔 전 부모에게서 아무런 조언도 얻지 못했어요.

결국 내가 가족에게서 얻은 정은 없다만 바깥에서의 기회는 내가 잡는 것이라 생각하고 난 계속 살아있어요. 내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예요.

 

-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 말해요. "너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니가 우울한 건 니가 나약해서다."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내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우울한게 나약해서라고만 말하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대놓고 표현하고 있더네요. "난 심리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라고 말이죠.

최근의 필리버스터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야기 해요.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이 있습니다. 왜 헌법에 불가침의 자유, 행복할 권리 같은 게 있겠습니까. 인간은 그런 존재 입니다.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되며 어떠한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은 어긋난 이야기를 들고왔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꼭 생각해줬으면 해요.

당신의 행동이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딜 가서든 존중 받아야하고, 누군가에겐 사랑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특히나,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제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물론 당신에게 놓여진 상황은 나와는 다를테고, 어쩌면 당신이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만일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해낼 권리는 꼭 되찾길, 계속 가지고 있길 바랄게요.

이 글에서의 이야기나 말투가 누군가에겐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우습게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도 감동받고, 위로 받는 사람이 있길 바라요. 나 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내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닌 이유는 내 상황을 좋게 만들 기회를 가진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어서예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의 기회를 당신이 붙잡아요.

세상엔 부조리한 일들이 많아요, 언론은 사실을 숨기고 사람은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요.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준 상처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구별하고 끝없이 행복해지길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에요. 당신이 사소하게 누군하게에 베풀어주는 것이 그 사람에겐 오늘 하루를 살아갈 구실이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요.

 

우린 늘 정신적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미래가 밝은 것은 아니예요, 내 손엔 수저가 있는지 어떤지. 있어봤자 흙수저 정도 밖에 안되겠지만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지금 당장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도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불안감을 접어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해요.

그리고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 또한 행복해지길 바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원한다면, 흔히 남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면.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일 어른이라면 꼭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요.

아이들은 어른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자신이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 하지만 아직은 미숙해요.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만큼의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줘요.

이 나라가 수 많은 부조리 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이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길 원하는 어른이라면 사고로 인해 떠난 아이들이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던 수 많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요, 그리고 아이들 곁에 있어주세요.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던지 간에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이 보는 글쓴이인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단순하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당신이 힘들어 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뉴스에서 보이는, 사실 뉴스조차도 숨기고 있는 슬픈 사건들에 눈살 찌푸린 적이 있다면 그런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기회를 잡아주세요.

아직 청소년인 나나 다른 아이들이 이 거지같은 세상에 대해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온라인에 글을 쓴다던지 아는 애와 헬조선 탈주 해야겠다란 얘기를 하는 것 밖에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어른인 사람들이면 다르잖아요?

나는 나 처럼 가족의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고, 이 나라 어딘가에 있을, 자신과 같은 성을 사랑하는 동성애자들도 자신의 사랑이 부끄럽게 이야기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친구나 가족들을 수 없이 떠나보낸 노년층 분들의 슬픔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에게 주어져 있는 기회를 남들 때문에 버리지 말란 얘기예요.

나도 끝없이 노력할 거니, 당신도 오늘 하루를, 내일 하루를 계속 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힘들어 하지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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