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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길 잘 했단 생각이 들게 해 준 남편-친정에 대한 생각

ㅇㅅㅇ |2016.03.31 12:32
조회 1,703 |추천 5

결혼하고 나니 친정부모님 사랑을 알겠다는 아니고요-

그냥 제 친정부모님에 대한 제 자부심에 대한 저희 신랑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져서 긴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지금의 전 34살, 지방사립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하여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장학생으로 마치고 취업하여  9년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고 소기업이지만 4년차 과장이고

설계분야연구원이며 연봉은 4000이 조금 안됩니다.

(저희 직종이 연봉이 높지않은 분야라 전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어도

 9년전에 연봉 2400만원에 시작했습니다.)

 

10년된 차지만 깨끗하게 수리해서 잘 몰고 다니며

대출이 반이지만 신랑과 살고 있는 집이외에 수도권에 작은 빌라도 하나가지고 있고

출산과 관련해서 쉬지는 못하겠지만 짤릴 염려도 없는

회사를 다니며 오히려 출산후, 육아휴직 대신 박사학위를 권해주는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단한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3D계열직종의 부모님의 팍팍한 경제상황에서

대학부터는 혼자 다니다시피하여 지금껏 살아온 부분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장하다고도 하고

좋게들 봐주십니다. 

 

저는 그런 제 모든 것이 제 부모님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모님의 고향은 모두 산골짜기와 섬이십니다.

아버지고향은 지금 가도 참 사방이 막혔고 굵직한 산맥들이 만나는 곳이라 물만 매우 맑습니다.

어머니고향은 외갓집 마루에 앉으면 그냥 바다만 보입니다.

 

형제가 많은 시골에서 각자 차남과 맏이로 태어나

서울에 상경해서 도장공과 계산원으로 고생하며 동생들을 키우는데 일조한

흔한 레퍼토리의 주인공들이십니다.

 

그나마 어머니쪽은 동생들이 제 앞가림을 잘하게 잘 컸는데

아버지쪽은 저희 아버지가 중간에 사업을 하셔서 돈을 좀 모으신걸 보고

다들 사업병이 들어서 아버지가 모으신 재산마저 다 탕진해주셨습니다.

(홀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니 동생, 니형 감옥 보낼순 없지않냐고 하면

  그때마다 80년대에 서울에서 아파트가 한채씩 날아갔다고 합니다...)

 

결국 제가 자라던 시기 90년대에는 저희집은 서울의 아파트들을 잃어버린채

수도권에서 10평대 전세를 전전하고 있었지요.

아빠 엄마는 여전히 맞벌이를 했고 저랑 동생은 손잡고 둘이 학교를 다니고

바쁜 아빠엄마대신 공과금내러 은행투어를 다니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항상 성실하시고 가족들에게 치여도 꿋꿋히 일하시면서

(아버진 결혼전에 사업을 정리하고 도장공이 되셨습니다.

 돈은 가족들 살만큼 모을만큼 모았고 이젠 평생일할 기술을 배우겠다는 생각이셨다는데-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않았죠-)

 

다시 수도권에 아파트도 사고 빚에 허덕이며 힘들기는 했지만

항상 아침마다 사춘기였던 시절에는 제가 경기를 일으킬정도로 출근뽀뽀를 하시면서

화목하려고 노력하시면서(정말 노력입니다. 싸우신 날들도 정말 많아요- 파손집기도 꽤 되고..)

저랑 제 동생을 열심히 가르치셨습니다.

 

동생이 저보다 한참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걸 보면 제 유전자는 아마 제가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더 잘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지금보다 더 잘 못된건 제 탓인대

제 결점 중 가장 큰 결점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귀차니즘입니다...

 

여하튼 제가 대단한 사람이 못되고 여기까지인건 제 탓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라도

온 건 부모님덕분이죠. 하지만 전 그다지 효도를 하겠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나름 이면의 사정도 있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군식구같이 형과 오빠를 뜯어먹고자하는 하이에나 숙부2과 막내 고모1이 있었고

먼저 세상떠난 형의 식구들도 큰 일이 있을땐 보살펴야하는..어깨가 무거운 남자였습니다.

 

너무 어깨가 무거워서 너무 힘들게 사셔선지 하늘에서 그만 고생하라고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 아파트 대출빚을 근 1억을 남긴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이후에는 제가 가장이 되어 살았고 어머니는 평생 꾸준히 일을 하셨지만

한달에 백만원이상 벌 수 없었고 어린시절 대부분의 부부싸움의 원인이었던....

큰 씀씀이가 여전하셨습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고요-

 

두 사람이 뭐 몇천 몇억씩 사고를 치거나 하진않았지만 

엄마는 한번은 2천만원, 한번은 천만원, 두번은 오백만원정도 소소한 금전사고를 치시면서

그 뒤 수습과 대출금과 기타등등의 스토리를 깨알같이 남기셨습니다.

 

뭐 버시는건 그전이나 지금이나 본인버는 것만큼 다 쓰시면서 사십니다. 이래저래-

 

동생은 어려서 졸업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긴했지만...ㅍㅅㅍ;;

세상이 취업난이라 한 3년을 취준생으로 놀았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1년전까지

그러다가 지금은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딱히 무언가 이벤트성 효도라기보다는 그냥 엄마랑 동생의 최소생활보장정도가

제 최선이되었습니다.

 

전 그렇습니다. 이면의 사정을 아는 친구들은 절 더 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그냥 혼자 사는게 답이라고 생각들할겁니다.

 

말은 다들 집을 떠나 너 좋은 삶도 살아야지 하지만 이 이면을 알 정도의 사이인 친구들은

손에 꼽고 그 친구들은 제가 못 떠날 성격인 것도 알거든요.

(제 결혼식에 온 지인은 친척빼곤 150명이 넘었지만 사정을 반이라도 아는 건  5명입니다.)

 

근데, 결혼을 했습니다.

 

아버지 생전부터 제 곁에 있어준 착한 남자친구는 제가 아버지사후에-

가라고가라고해도 제가 모진말을 제대로 잘 못해선지

다음날이면 의레 치킨 좋아하는 제동생 치킨사주러왔다고 좁은 집에 와있고

조금 지나면 아버지제사라고 집에 와있고

(신랑은 연하라 대학생이었고 전 야근이 많은 직종이었습니다.)

 

시간 지나고 사회생활시작하고- 좋은 사람들도 보다보면 나같은 사람떠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어영부영 10년 찍고 기어이 결혼까지 했습니다.

 

신랑은 연애를 하기 전에 학교선배의 아버지로서 저희 아버지 얼굴을 본 적만 있습니다.

 

본인 군생활중에 돌아가셔서 장례식도 참석하지못했다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만

뭐 여자친구 아버지돌아가셨다고 휴가를 낼 수 는 없잖습니까? 저도 연락도 안했고요.

 

여하튼 신랑은 제 모든 이면의 사정과 저희 집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앞에 언급한 것 처럼 나름 열심히 사는 거 하나 보고 제게 필사적으로(?) 장가를 왔습니다.

 

신랑네 집은 저희 집에 비하면 아주아주~ 먹고 살만합니다.

누님들이 있긴하지만 아들은 하나라 돌쇠취급은 당했어도 여하튼 귀한 아들로 자랐고요.

 

부모님은 원룸임대업을 하시고 지금도 연 수입이 두분 각자 5천만원은 되실겁니다(순수익은 아니겠지만).

 

관심있게 계산해보지않아서 정확하진않지만 원룸이 각자 방수로 20개이상 되시니

아무리 지방이래도 그정도 이상은 되시겠죠. 놀러오라는 말도 많았고 데리고 다니시는 것도

좋아하셔서 5년정도 들락날락거리다보니 자연히 보이는게 있긴하더라고요.

(아버지사후, 이래저래 결혼반대(결혼하겠단 말 안했었음)도 심하게 하셨었고해서-

헤어졌다가 얼마후에 헤어졌다고 하고 몰래 만나던거라 연애기간은 10년이 넘는데 결혼 2년포함해서 집에 들락날락한건 5년정도밖에 안되네요.)

 

여하튼 결혼 못할 줄 알고 신랑이 이제는 결혼을 하자면서 자기가 집에가서 얘기하고

승락받겠다길래 이제는 한번쯤 거하게 아파볼 나이기도하고 내가 보내서 안 갈 사람이면

이렇게보내게 될 수도 있고 더 늦기전에 부딪혀 아프는게 낫겠지라는 생각에

네 생각대로 부모님께 얘기해봐라했었는데-

 

덜컥...결혼을 했습니다.

 

솔직히 결혼생활은 모르겠습니다.

나이만 많았지 결혼할 마음의 준비도 경제적준비도 안되었던터라..

 

결혼후, 늘어난 식구에 정신도 없었고 좀 익숙해질만하니

신랑에게 자잘한 사고가 좀 있어서 병원에 두어차례 입원하느라 정신이 나가고-

 

그래도 부모님이 자동으로 세팅해주신 제일 앞에 언급한 저는 그대로 굴러가더라고요.

이렇게 정신없고 겨를없는데 회사일이나 주변지인들과의 관계는 자동으로 셋팅된

프로그램마냥 잘 굴러가는 걸 느낀 어느날, 문득 신랑에게

 

"난 정말 우리 부모님께 감사해.

이 모든게 부모님이 만들어준 "나"가 있어서 버티고 있는 것 같아.

내 안의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고 지금도 너무 힘들고 못 버틸거같은데-

부모님이 세팅해준 나는 참 세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라고 하니 신랑이 그러더라고요.

 

"진심으로 부러워-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이 대단하신거 같아. 우린 형제가 4명인대도

아무도 그렇게 진심으로, 아니 빈말로도 그렇게 얘기안하거든."

 

..여기에 또 혼자 울컥해서 이래서 결혼을 하는거구나..하고 글을 올립니다.

이런사람이라 감동을 받고 결혼도 하는거구나...했습니다.

 

뭐, 연애중이래도 저렇게 말해줬을 수 있겠지만 남편이 저렇게 말해주는건 다른 거 같아요

 

34살인대 회사밖만 나오면 아직 자라야할 게 너무나 많네요.....^^

 

* 참고로 신랑은 아직 소기업사원이고 저희는 달리 시댁에서 무언가 재산을 받아서

  결혼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어머님이 패물은 주셨습니다.).

  빚도 여전히 있고 신랑이 현재 직장 2년도 안되어 결혼한 탓에 모은 것도 없었고

  저도 예단예물보내고나니 돈이 없어서 혼수도 다 카드로 사서...ㅎㅎ-

  제가 산 부동산에 대한 빚과 각자의 기존 카드값과 혼수카드값등을 조금씩 줄여나가며

  아옹다옹 살고 있습니다. 그냥 시댁에 용돈 안 드려도 되고 시부모님 아파도 병원비걱정안해도

  되는게 제 시댁복입니다^ㅁ^ 그이외에는 일단 아직 남의 집이라 쉽지는 않은거라고

  생각해봅니다만...저도 나름 버라이어티합니다.

 

추천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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