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박희아 기자]
“‘빨간바지’가 주인공인 뮤지컬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엑소와 시청자 듀엣이 만든 무대를 본 가수 한희준이 남긴 소감이다. 어떻게 엑소가 ‘조연’이 되고 아마추어 시청자 듀엣이 주인공일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5월 8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듀오(이하 ‘판타스틱듀오’)’에서 재미있는 광경이 목격됐다. ‘밀리언셀러’ 그룹 엑소가 조연 자리를 자처한 것. 보통 엑소가 꾸리는 무대에선 각 멤버 한 사람 한 사람당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데 애를 쓴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모든 멤버가 시청자 듀엣을 위해 기꺼이 주연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놨다.
이날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한 엑소 멤버들은 첸, 디오, 찬열, 백현, 시우민, 수호 등 총 여섯 명. 이 멤버들은 백댄서가 되고 서브 보컬, 서브 랩퍼가 됐다. 자신들과 함께 제2대 판타스틱 듀오 자리에 도전할 시청자 안은비 씨를 위해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 물러났다. ‘슈퍼스타’ 엑소가 철저히 조연 역할을 해낸 셈이다.
특히 돋보인 멤버들은 엑소 내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첸, 디오, 백현이었다. 평소 풍부한 성량과 로킹한 보컬, 능숙한 애드리브를 자랑하는 첸은 ‘전라도 빨간바지’ 안은비 씨를 위해 무대 내내 기본 멜로디 라인을 부르는데 충실했다. 그러나 무대 말미에 이르러 본인 특유의 폭발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애드리브를 선보였다. 디오는 안정적인 발성이 가장 장점인 만큼 곡 초반 및 브릿지 파트에서 안 씨와 완벽히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고음을 들려줬다. 백현은 따뜻한 음색이 돋보이는 멤버지만 이날만큼은 발랄한 샤우팅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제각각 무대에 어울리는 역할을 해냈다. 수호는 곡 내내 안 씨가 돋보일 수 있게 화음 베이스가 되어줬다. 또 시우민은 독특한 목소리로 2절 도입부를 이끌며 엑소 특유의 경쾌함을 살리는데 한몫했다. 더불어 흥미로웠던 것은 찬열의 역할. 찬열은 엑소 메인 랩퍼 역할을 평소처럼 해내면서도 안 씨가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는 역할을 했다. 멤버 중 유일하게 댄서, 보컬, 랩퍼로서의 역할을 모두 해내느라 다소 힘겨운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그만큼 에너제틱한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그 덕분일까. 결과적으로 드러머 강수호가 지닌 폭발력을 엑소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궁금해할 재미난 콜라보레이션 무대가 탄생했다.
한편 짧게 공개된 연습 영상에선 엑소 멤버들이 안 씨를 중심으로 퍼포먼스를 정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첸은 안 씨에게 직접 안무를 가르쳐 준 뒤, 주도적으로 퍼포먼스 대형을 조정했다. 백현도 첸과 함께 안 씨의 호흡 타이밍까지 세세하게 신경썼다. 이는 분명 평소 엑소가 갖고 있던 톱스타 이미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방송에선 엑소에게 의외의 면모를 발견케 하는 지점이 여러 개 존재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이 시청자와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은 흔치 않았던 일이다. 여기에 톱 보이그룹이 과감히 아마추어 여성 출연자와 듀엣을 시도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보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이를 엑소가 시도했단 점이 매우 신선했다. 팬들의 반발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으로 남성 듀엣을 선택할 것이란 예상을 빗나간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엑소는 이날 1등을 거머쥐진 못했다. 보통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승패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톱’ 자리에 있는 엑소가 자신들의 무게를 내려놨단 사실이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수차례 가요대상까지 수상한 그룹이 시청자 듀오를 위해 기꺼이 주연 자리를 내놓는 모습. 무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주목할 만한 부분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어쩌면 ‘판타스틱 듀오’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단 엑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보다 더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선희, 변진섭과 같은 가수들이 여태 자리를 지킨 이유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또 한 번 강조됐다. 자신이 거둔 성과를 빛내주려 마련된 자리에서 ‘잘난 척’ 대신 아낌없이 배려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가수들은 시청자를 좀 더 설레게 한다. 즉, 아마추어 듀엣을 위해 기꺼이 주연을 포기하고 한 발짝 물러나는 모습이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한단 소리다. ‘판타스틱 듀오’ 막내 엑소도 선배들이 롱런해온 비결을 익혀가고 있다.(사진=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 엑소 캡처)
뉴스엔 박희아 m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