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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미만 봐라-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10


제10장 재림의 기대


   신약 종말론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이며, 이러한 기대가 신약교회의 믿음을 지배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신약의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항상 그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재림의 지연”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 자신은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도시 전체를 두루 다니며 복음전도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 복음전도 여행이 끝마치기 전에 재림이 일어날 것이며 종말론적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자들이 전도사역으로부터 돌아왔으나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이것이 첫번째 “재림의 지연”이며, 예수께서는 그가 그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그 왕국을 도래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예수님은 이 경우에 마저도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고 결국 착각 속에서 죽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덜 진보적인 최근의 어떤 신학자들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조속한 재림을 예언함에 있어서 착오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오스카 쿨만이 이 그룹에 속한다. 그는 재림이 가까왔다는 초대교회의 기대는 “그 전망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전망은 “결정적인 전쟁이 이미 발발했다는 확신이 일단 있게 되면 그 전쟁은 그 전쟁의 종식 날짜를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과 같은 비유로 설명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자 할 때 먼저 기억해야 할 일은, 마가복음 10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그의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승천 후에 있게 될 제자들의 미래적 활동들에 관계된 교훈들과 나아가서는 교회 전체 역사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된 일이 있는 예언적 원근통시법(prophetic foreshortening)으로 이 구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구약의 선지자들이 종종 그랬듯이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그는 가까운 미래의 사건과 먼 미래의 사건을 함께 매우 인접해 있는 사건들로 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를 이해한다면 근접한 미래에 있게 될 핍박은 머나먼 미래에 있게 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핍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논의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구절들”은 주님 당시의 사람들의 생애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재림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에 일어 날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때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경성해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자신은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그의 재림의 징조들을 제시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재림을 위해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또한 이런 징조들에 대해서도 정신차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깨어 경성한다는 것은 준비함을 의미한다. 즉 항상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대비해 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 래드는 ‘주의하라’(watch)는 단어는 ‘...을 찾는다, 기다린다’ 는 뜻이 아니라 깨어 있다’ 는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의 불확실성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관계없이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의 사상에는 어떠한 변천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바울의 초기 서신들에서는 그는 곧 다가올, 지연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즉 너무나도 빨리 올 재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도 여전히 살아 있으리라 기대했다는 것이다. 후기 서신들에서는 그가 이러한 기대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중요한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그 재림을 대비한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도 여전히 살아 있기를 희망했다고 말하는 것과 바울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의 죽음 이전에 일어나리라고 가르쳤다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추정하려는 어떠한 흔적이 전혀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명심해야 한다.”(리덜보스) 


 바울도 비록 재림의 때는 불확실하지만 재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그때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그때를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늦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약 구절이 하나 있는데 베드로후서 3:3-4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 본문은 재림의 지연에 관해 말하는 자들이 기롱하는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베드로의 답변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사상은 하나님은 마치 그가 그의 약속을 잊어버린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늦추고 계신 것이 아니라 매우 사려깊게 죄인들을 향한 그의 사랑과 긍휼과 용서를 좀더 잘 나타내시고자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재림을 늦춤으로써 회개와 개종의 여지를 남겨두셨고 이는 어떠한 자라도 멸망케 되기를 그가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재림에 대한 우리의 대망은 여러 변에서 우리의 삶의 질에 대해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우리 주님이 미래에 나타나신다는 사실은 디모데에게 그랬듯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만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에 대해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법이다(눅 12:41-48). 


마태복음 25:3l-46에 묘사된 최후심판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재림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에게 계속적인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엣 것들을 추구 하는 최선의 길은 지금 여기서 주님을 위한 일에 분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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