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네가 싫어했던 마지막 술잔을 비워냈다. 또다시 빈 술잔을 채운 건 그리움이었다. 그냥 처음처럼 너에게 지기만 할 걸 왜 난 끝까지 너에게 따지고 봤을까.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봉투마저 나를 동정하듯 바람에 쓸쓸한 소리를 내며 세상의 소음만을 남겼다. 나의 커다란 백지에 널 조금 덧칠했을 뿐인데 정신 차려보니 왜 벌써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는 걸까. 널 이렇게 쉽게 그려도 되는 건지. 어쩌면 너와 난 핸드폰일지도 모른다. 떨어지면 소리도 없이 고장 날 걸 그런 우리를 나도, 너 역시도 잘 알잖아? 지금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공허한 내 세계는 너의 체취만이 날 온전하게 만들어 어서 날 안아줘
너의 작은 품, 너의 따스한 온기, 너의 향기로운 마음마저 다시 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지금 이 순간 환상처럼 펼쳐진 따스한 꽃 향기 바람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너의 미소같은 저기 하늘도
그 이후로 다 모든 게 차갑고 저 맑은 하늘도 다 어둡게 느껴진다. 너 빼면 시체인 내가 무슨 숨을 쉴 수 있을까. 턱턱 막히는 숨에 아파 죽겠음을 몸소 느끼며 미치고, 지치는 느낌에 마치 약처럼 수시로 네 생각을 해 보지만 현실이 아니기에 다시 쓰러지는 날, 네 마지막 말은 끝내 날 울리고 만다. 기회가 있다면 널 잡겠지만 기회는 그게 끝이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혹시 널 안을 수만 있다면 네가 장미여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너를 마주한 난 너를 필요로 한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 보였고 차가워진 네 표정이 말 대신 모든 걸 대변했다. 이별이 끝끝내 찬 밀물처럼 내게 떠밀려오는 걸 대면했으며 곧 마지막이란 걸 알지만 이미 미쳐버린 난 널 놓을 수가 없었다. 더는 말하지 마, 더는 나를 떠나지 마. 조용히 나를 안아줘. 너는 장미. 나는 어린왕자. 그 투명한 벽을 벗어내고 나만을 바라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