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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미만 봐라-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14

제15장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비판


   1) 세대주의는 성경 계시의 근본적 통일성을 공평하게 다루는 데 실패했다: 세대주의 체계가 노출하고 있는 최대의 난점은 구속역사의 다양한 기간들 간의 차이점들이 그 역사의 근본적 통일성을 제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만일 누구라도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의 통일성을 공평하게 취급하지 않고 여러 다양한 시기(세대)들 사이의 심한 차이와 구별을 지으려고 한다면, 그는 신약 시대에 있어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종합적, 영원적 구속사역의 진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를 갈라놓았던 적대감 내지는 분리의 벽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제거되었다(엡 2:14~15)는 사실을 신약성경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아직까지도 천년왕국 시기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구별하여 다루고 있습니까? 왜 그때에 (천년왕국 시) 유대 인들이 더 호의적인 지위를 얻고 이방인들보다도 더 높아지게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들의 답변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세대주의적 틀의 요청 때문에 신약성경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이 제거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바로 신약성경 가르침 그 자체를 무시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점이다. 한 세대와 또 다른 세대 사이의 비연속성의 원리가 점진적 계시의 원칙을 묵살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한 서로 다른, 분리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세대주의 신학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원리들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는 근본적인 구별이 있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는 항상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이 이스라엘에 대해 말할 때는 그것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교회에 대해 말하는 경우 그것은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아직도 성취되지 않은 이스라엘에 주어진 구약의 약속들이 있기 때문에, 이 약속들은 아직도 미래에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온과 예루살렘이란 단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서 있는 언덕들 중의 하나를 구약에서는 종종 의미하고 있다. 신약은 이 용어들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여기서 “하늘의 예루살렘”이란 용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일군의 구속받은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음에 틀림없다. 또한 요한 사도가 본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은” “새 예루살렘”은 유대인 신자만을 포용하기에는 너무도 큰 포괄적 용어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란 단어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고 있으나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 교회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게 미래가 없단 말인가? 물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자들의 미래가 이방인 신자들의 미래와 분리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이 소망하는 미래는 동시에 이방인들이 소망하는 미래이기도하다. 즉 그들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궁극적 영화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미래는 일천 년 동안 계속되어질 팔레스틴 지방에서의 정치적 왕국으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영화롭게 새로워진 땅에서 함께 공유하고 나누게 될 영원한 축복 상태라는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구약은 장차 미래의 지상적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의 위대한 구절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미래적 천년기 통치가 있을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곤 한다. 사실상 구약은 이러한 천년통치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천년기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종종 해석되고 있는 성경 구절들도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결정체인 새 땅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4) 성경은 유대인들이 천년기에 그들의 땅으로 회복되어 돌아갈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한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여러 구약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이스라엘의 본토 회복에 관한 구약 예언들이 최소한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로운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세대주의자들과 서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영화로운 미래의 세계가 단지 천년기 에만 국한되는 것으로서는 생각지 않으며 오히려 영원한 상태로 계속된다고 주장한. 이 영화로운 미래는 이스라엘인들에게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받은 모든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예언들을 일천 년 동안 팔레스틴 지방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대주의적 민족주의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5) 왕국의 도래가 연기되었다고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은 성경의 뒷받침을 결여하고 있다.


   6) 교회는 괄호에 해당하는 세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르침은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 배척되어야 한다. 첫째로,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듯이 구약은 결코 교회를 예언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7) 그리스도가 다신 오신 후에도 사람들이 구원에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세대주의 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후에도 계속해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세대주의적 사고에 있어서 휴거가 그리스도 재림의 최종적 단계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십사만 사천 명)와 셀 수 없이 많은 이방인들이 칠년 환난기 동안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오직 중생한 사람들만이 천년기가 시작 되는 때에 이 땅에서 살고 있을 것이지만, 이런 사람들의 수많은 후손들이 천년기 동안에 개종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세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 교회(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가 완성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이후에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또한 구원 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8)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천년기는 요한계시록 20:4-6에서 묘사하는 천년기가 아니다. 요한계시록 20:4-6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신자들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다. 라이리는 이스라엘의 지상적 목적은 천년기 동안에 유대인들에 의해 성취될 것인데 그때 그들은 부활되지 않은 육체들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천년기 동안에 부활한 성도들이 하는 역할이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주요한 활동은 천년기 동안 공중 위에 떠 있게 될 새로운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세대주의자들은 가르치고 있다. 천년기 시대는 부활하지 못한 사람들, 즉 그때까지 자연 육체들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관계하고 있다고 세대주의자들은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4절)은 이런 사람들에 관해 한 마디도 내뱉지 않고 있지 않는가 라는 물음이 생긴다. 세대주의자들의 천년기에 대한 이해는, 가장 중요한 이 구절(계 20:4~6)에 대한 그들이 주장하는 문자적 해석에 마저도 기반을 두고 있지 않는다. 세대주의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년기의 목적은 다윗에게 약속되었던 지상적 왕국을 세우는 일이며 이 왕국에서 다윗의 자손인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있는 지상적 왕위에 앉아 개종한 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천년기의 목적이라면, 요한계시록 20:4-6이 유대인에 대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 팔레스틴 땅에 관해서 예루살렘에 관해서 등등 한 마디의 말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점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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