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최후심판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이미 현세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3:18은 그리스도를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또한 역사의 종말에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도 말하고 있다. 이 최후의 심판 때에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 보좌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후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1) 심판의 뚜렷한 중요 목적은 각 사람의 최종적 운명을 나타내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이 최후심판 때까지 각 사람의 최종적 운명은 감추어진 바 되었으나 이제 그 운명이 나타난 바 되었다. 신앙을 가졌었는지 그렇지 못했었는지, 어떤 행위를 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행위들이 펼쳐질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통해 자기의 은혜를, 자기 원수들을 정죄하는 일을 통해서는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에 핵심이 되는 것은 개인의 운명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2) 두 번째 목적은 각 사람이 받게 될 보상과 형벌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정도의 다소는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질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최후의 심판 때에 해결되어야만 한다.
3) 세 번째 목적은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행사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제 각 사람에게 그들이 영원토록 지내야 할 장소를 정해주신다. 새 땅이든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든 말이다.
최후심판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가? “심판날”(마 11:22), “그 날”(마 7:22; 살후 1:10; 딤후 1:12), “진노의 날”(롬 2:5)에서 “날”이라고 쓰여진 단어는 종종 긴 시간을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여호와 증인들이 주장하듯, 심판의 날이 새 세계의 첫 천 년 동안 지속된 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모든 사람이 심판대 앞에 나타났다면 모든 신자들도 이 속에 포함되었음에 틀림없다. 신약은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고린도후서 5:10에서도 “우리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히 10:30)
무엇이 심판될 것인가? 이 현재의 삶 동안에 이루어졌던 모든 일이다. 심판의 날은 우리가 내뱉었던 말들도 다 심판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충만한 계시를 받은 자들은 그들이 이 성경 전체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의해 판단받게 될 것이다. 구약만을 갖고 있었던 자들은 그들이 구약성경에 반응한 정도에 따라 판단받게 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청중들에게 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도록 경고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인 평강, 행복, 구원을 추구하도록 권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약이나 신약에 나타난 계시들을 전혀 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가졌던 빛 아래서 판단받게 될 것이다.
로마서 2장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이 풍성한 계시를 받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 마음속에 쓰여진 율법의 사역”에 대해 그들이 취한 반응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분명한 사실은 사람은 그들이 받지 못한 계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었던 빛에 근거해서 판단받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특권들을 가졌던 자들은 많은 책임들을 갖게 될 것이요 적은 특권들을 가졌던 자들은 적은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버림받은 자들이 당하게 될 고통에도 “등급”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에 관해 예수님은 누가복음 12:47-48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 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풍성한 빛을 받은 자들에게 관해서, 즉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자들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옷입었느냐이다. 사람의 영원한 향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인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왜 성경은 그렇게도 끊임없이 최후심판은 행위들에 따라 판단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결단코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최후의 심판은 각자의 행위에 따라 집행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이유는 신앙과 행위간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다.
신앙은 행위들 속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야 하며 행위들은 참 신앙의 증거들이다. 요한 칼빈이 잘 요약했듯이, “의롭다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그러나 의롭다 하는 믿음은 혼자서가 아니다.” 행위에 따른 심판은 실질적으로 믿음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증거로 나타난 믿음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만일 믿음이 참이라면 그곳에는 행위가 있을 것이며,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은 참이 아닌 것이다.
상급(rewards)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상급을 얻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상급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상급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터 위에 사람이 어떤 재료들로 집을 지어 나가느냐와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장차 신자들에게는 그러한 상급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예수님도 종종 상급들에 관해 말씀하신 일이 있다(마 5:11~12; 6:19~21; 녹 6:35; 막 9:41; 마 25:33을 보라).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못박아 말씀 하시기를, 그러한 상급들은 인간의 행위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미래의 상급 사이의 관계는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악을 공부하여 어떤 음악기구를 잘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자. 그렇다면 그의 음악을 즐기는 능력 역시 크게 증가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위한 우리의 헌신과 봉사가 커질수록 지금과 미래의 그리스도의 왕국의 축복들을 향유할 수 있는 우리의 용량 역시 커질 것이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마음의 모두를 바치는 사람을 절반 정도의 마음만을 바치는 사람보다 더 큰 주님의 기쁨 알게 된다. 하늘에서만 그런 기쁨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보장해 주고 있지 않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심판의 날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1) 세상의 역사는 무의미한 원형의 끝없는 연속이 아니라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운동이다.
2) 구원과 영원한 축복 상태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각 개인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최후심판의 날은 최종적으로 나타낼 것이다.
3) 심판의 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게하며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우리 모든 각 개인들이 도덕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4) 심판의 날은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와 역사 속의 그의 구속사역의 최종적 승리를 의미한다. 즉, 그날은 모든 악에 대한 최종의 결정적 정복의 날이며 죽임을 당 하신 어린양의 승리가 최종적으로 제시되는 날이다. 심판의 날은 모든 의심의 그림자를 넘어서 세상 끝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