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방탈이라 죄송합니다~라고 쓰려고 보니까 결혼에 대한 얘기가 맞네요;;
우선 저는 올해 29세가 된 남자입니다.(작년에 결시친 남자는 들어올 수 없게 돼있어서 여동생이 쓰지 않는 아이디로 로그인 해서 눈팅하던 게 지금은 제 아이디처럼 쓰고 있어요, 죄송합니다ㅠㅠ 아니 미안해 동생아...)미혼이구요, 3년 사귄 애인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제인가? 남편 외도 알고도 애 때문에 이혼 안 하고 참고 살기로 했다고 올라온 글 보고 욱해서 글 남깁니다.
결시친 보니까 비슷한 글 자주 올라오더라구요.
남편이 다른 여자랑 잠을 잤거나/사업병 걸려서 빚잔치를 한다거나/폭력을 쓴다거나/등등 아무튼 개차반이라는 걸 알았는데 이혼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자식을 위해서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제발 헛소리는 여기까지..이럴 거면 제발 이혼하세요.님한테 도움이 안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식한테는 더더욱 도움이 안 됩니다.
제 경험을 얘기하자면,제가 중고등학교 때 저희 아버지는 다른 여자랑 7년간 외도하면서 두집 살림을 하셨습니다.상간녀한테 빠진 저희 아버지는 한 달에 두 세번 집에 들어오셨고 저희 어머니 매일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맥주로 잠을 청하고 울면서 잠에 드셨어요.그 와중에 저희 아버지는 헛바람만 들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돈 꿔서 사업하다가 망하고 빚쟁이들한테 쫓기기 일쑤였고, 저희 가족은 친척 및 지인들한테 평생을 죄인으로 살았습니다.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변하는 건 없었고, 지금까지 가정폭력, 도박, 외도 안 한 게 없이 개차반으로 반평생 사셨습니다.
그러면 저희 어머니는 대체 왜 이혼을 안 하셨느냐. 어렸을 때 저희 남매한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으셔도 저희 때문에 참고 산다는 걸 은연중에 내비치시곤 했습니다. 내가 이혼하면 너희가 엇나갈 것이다... 이혼 가정 아이로 손가락질 받도록 키우고 싶지 않다고.. 나만 참고 살면 너희는 엄마 아빠 모두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살 수 있으니 내가 참겠다...는 게 느껴졌죠.그래서 저랑 동생은 늘 가정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우리 때문에 엄마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한 번도 놓은 적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께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나한테는 저런 아버지 필요 없는데, 차라리 그때 이혼을 하지, 왜 이혼 안 하고 살아서 아버지 같지도 않은 사람과 계속 엮이게 만드나...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자신이 없는 거였더라구요.10년 넘은 결혼 생활 깨고 이 정글 같은 세상에 남편도 없이 오로지 자식 둘과 함께 내던져질 용기가 없었던 거였어요.그것도 모르고 저희 남매는 '엄마의 불행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는 죄책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겁니다.(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 감사하고 늘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네요.자식 때문에 이혼 안 하고 참고 살겠다는 분들..정말 자식을 위한 선택입니까?아니면 아직 남편을 사랑해서, 혹은 이혼녀라는 사회적 편견이라든지 지인들의 눈총에 혼자 내던져지기 두려워서 입니까?자식을 위해서라는 핑계는 비겁하니까 하지마세요.솔직히 그거 아니잖아요.자식들은 저런 아버지 밑에 있으면 더 악영향이나 받을 텐데, 당신이 진정 두려운 건 애들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이 무너질까봐 그런 거잖아요.
애들도 말 안 해도 엄마가 아빠 안 좋아하면서 억지로 사는 거 마음 속으로 다 느낍니다.그리고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그렇게 크는 아이들의 진짜 문제점이 뭐냐면, 겉으로는 불쌍한 엄마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성실하고, 뭐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인정 받아서 엄마한테 칭찬 받고 엄마 기쁘게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그래야 우리 엄마 안 미칠 것 같아서...
네, 겉으로 봤을 때는 개차반 아버지 밑에서 성실하게 잘 자란 것 같죠.그런데 속이 곪습니다.이유 없는 죄책감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리가 없죠, 정상인 척은 잘 할 수 있어도.증세는 다양하지만, 속에서 피해의식이 자란다든지, 질투가 커진다든지, 고집이 세진다든지, 그게 무엇이든 부작용이 생기긴 반드시 생긴다는 겁니다.
저는 성격이 위선적으로 왜곡되어 자란 경우에요.. 정말 나까지 속썩이면 엄마는 자살하거나 암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로 학창시절을 보내다보니, 무엇이든 엄마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고 칭찬 받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원래 공부 욕심이 많기도 했지만, 그 냄새나는 지하 단칸방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수석으로 입학했어요. 공부를 잘하니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통했고, 고등학교 선생님들, 대학 교수님들도 모두 좋아해주셨어요. 친구도 많았고 늘 사이도 좋았구요.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저를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네가 잘 자라줘서 이혼 참고 산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아요.제가 얼마나 위선자인지.. 겉으로는 착하게 살아왔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많고 가까운 사람도 잘 믿지 못하고.. 정말 못된 마음 많이 품었어요. 잘사는 친구, 나보다 공부 더 잘하는 친구, 잘생긴 친구, 자상한 아버지를 둔 친구 등등.. 피해의식도 많았고, 겉으로 내색은 안해도 경쟁심이 많아서 그 아이들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부도 더 잘하게 된 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안 좋은 일 생기면 은근히 속으로 좋아했고, 그렇게 행복했던 친구가 추락하는 걸 보면서 옆에서 위로해주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소름끼치고 혐오스럽더군요. 나는 정말 가깝고 친하다는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줄 수 없는 쓰레기같은 놈인가...내가 살고 있는 지옥을 같이 맞봐야만 속이 풀리는 싸이코같은 놈인가..이런 생각 때문에 매우 힘들었고, 죄책감 느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 간 심리학 관련한 책이라든가 강의 같은 걸 보는 과정에서 스스로 원인을 반추한 결과... 이렇게 가식적인 내 성격이 가난 혹은 아버지의 비행 못지 않게..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종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인 거죠..
이제서야 어머니가 가끔 원망스럽습니다..차라리 이혼할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셨더라면.. 우리 때문에 참고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해줬더라면..
그래서 다시 말씀드릴게요.자식 핑계로 이혼 참지 마세요.제발 그런 쓰레기와 이혼하세요.그래도 이혼을 못 하겠으면 최소한 자식들한테 분명히 하세요.너희들 때문이 아니라고. 나는 이혼녀가 되는 게 두렵다고.그게 진정 자식을 위한 길입니다.더 이상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가학행위에 동참하는 어머니가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그리고 그러한 가정에서 저처럼 상처받고 왜곡된 성장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도 없었으면 합니다.
어차피 쓰레기인 남편 색기는 포기하시구요, 본인부터 추스리시고, 아이들을 위해 진정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제 의견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어느덧 저 역시 결혼 적령기가 되었고, 애인과 제 나이가 부모님 결혼하시던 때의 나이가 되다보니 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는 제 머릿 속도 복잡합니다.게다가 제 과거를 떠올리며 쓰다보니 불필요하게 장황해졌네요..ㅠ그럼 이 글로 인해 또 한 번 상처를 입으실 여성분들께 죄송하구요, 힘든 고비 넘기시고 행복한 나날들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