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정세는 이슬람 종파싸움으로 외교적 국제협력관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고 이란과 외교관계를 끊었다.또 이란이 국제사회와 약속한 핵 협상 이행조건을 충족하면서 핵 관련 모든 금융, 경제 제재에서 벗어났다. 곧 “동결자산 120조원 되찾아 곧바로
민항기 114대를 사겠다”, “원유 하루 50만 배럴을 수출하겠다” 발표를 했다.
이란은 인구 8천만 명이며 선거를 하는 이슬람공화국으로 왕 독재의 주변국에 무서운 존재이며, 또한 이번 조치로 미국과 손잡고 ‘IS격퇴’에 전면전을 할 가능성이 크며, 우호 시아파 진영에 지원을 강화할 때는 사우디와 패권싸움이 격화할 듯 보인다.
IS의 테러행위로 세계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중동에 긴장감이 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이슬람의 양대 종파가 있다. 사우디는 수니파의 중심국가이고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다.
이슬람교는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고 무슬림의 85%를 차지하는 다수의 수니파가 세력을 휘두르고 소수인 시아파는 800년간 억압을 당해 왔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이란 등으로 시아파세력이 커지자, IS 등 수니파가 무참한 테러를 벌여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수니파는 순나(sunna, 무함마드와 그 동료들이 걸었던 길 혹은 전통을 의미)에서 나온 단어이다. 수니파는 전 세계 16억 무슬림(이슬람 신자)의 약 85% 정도가 믿는 주류로, 이슬람 창시와 관련된 사람들 모든 업적이 올바른 것이라 믿는다. 시아파는 시아 알리( shia Ali, 알리를 따르는 파)의 줄임 말이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으로, 무함마드 죽음 이후 초기 이슬람 지도자 4인
가운데 유일하게 무함마드의 혈족인 사람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 지역을 통일해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누군가 그를 통치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가 유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함마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632년 무함마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후계자에 대한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원로동료들은 논의 끝에 59세의 덕망 높은 아부 바르크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당시 32세에 불과했던 알리는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634년 1대 후계자 아부 바르크가 죽자, 2대 후계자 우마르와 3대 후계자 우스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선출됐다.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가문이 권력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특히 3대 후계자 우스만은 원래 무함마드에 적대하던 가문 출신이었다. 결국 우스만은 암살당하고 알리가 4번째 후계자가 되어 권력을 잡았지만 더 큰 비극이 이어졌다. 우스만의 가문 사람들이 알리를 암살 배후로 지목하고 알리를 암살했다. 알리의 큰아들 하산도 독살하고, 군사를 모아 저항하던 둘째 아들 후세인을 무참히 처형했다. 그 후 시아파는 이라크지역으로 쫓겨나 핍박 받았다.
지금도 시아파 사람들은 종교행사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혀 피를 흘리는데,
이 관습은 알리의 둘째 아들 후세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란다.
1501년 이란의 사파피드 왕조가 시아파를 국교로 삼을 때까지 시아파는 거의 800년 동안 억압을 받았다. 그러면서 수니파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직자제도를 만들었다. 쫓겨 다니다 보니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다. 현재 이란에서는 최고 성직자가 대통령보다 높다. 반면, 수니파에는 성직자가 없다. 원칙적으로는 아무나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수 있다.
사우디의 최고 종교지도자는 정부의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다. 또한 시아파만 구세주(마흐디, Mahdi) 사상을 믿는단다.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사상이다. 이외에도 순례, 단식, 기도 등 세세한 관습이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전반적인 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수니, 시아파 간 큰 충돌이나 전쟁은 거의 없었다. 시아파가 일방적으로 당해 왔다. 하지만 시아파 세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976년 이란은 이슬람혁명을 통해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국 체제를 확립해 ‘시아파 이슬람공화국’으로 출발했고, 그 후 사우디와 갈등하게 되었다. 2003년 이라크도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정권이 물러나자 국민 65%가 믿는 시아파 나라가 되었다. 시리아 정부도 시아파의 분파이다.
중동에서 시아파의 존재감이 커지자 끔직한 테러세력도 나타났다. 수니파 IS(이슬람 국가)는 이라크, 시리아 정부 등을 상대로 무참한 테러를 벌이고 있다. 시아파 세력이 강해지면서, 사우디가 이란과 마찰을 빚고 IS가 날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쉽게 구별하는 방법***
1) 시아파 성직자만 앞부분이 불룩한 터번을 쓰고 다니나,
수니파는 터번을 쓰지 않고, 머리 장식도 국가마다 다르다.
2) 시아파는 예배 중 서있는 시간에 팔짱을 끼지 않으나,
수니파는 팔짱을 끼고 서있다.
3) 시아파 국가 이란은 최고 성직자가 대통령보다 위에 있지만,
수니파 종교지도자들은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도 있다.
4) 시아파는 알리, 하산, 후세인의 성화를 가지고 다니거나 벽에 붙이나,
수니파는 종교적 성화를 금지한다.
5) 시아파 종교행사 ‘이슈라’에서는 처형된 후세인을 기리며 등을
채찍으로 때려 피를 내는 의식이 있다.
☞후계자 갈등이 결별의 시초
현재 이슬람권의 90% 정도가 수니파이고 10% 정도가 시아파다. 하지만 두 종파로 구분하기 애매한 소수 종파도 적지 않다. 시아파는 지금의 이란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는 반면 수니파는 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다. 시아파의 최대 종주국은 이란이고, 시아파가 다수를 접하고 있는 나라는 이라크와 오만, 예멘, 레바논, 바레인 등이다.
시아는 ‘시아트 알리’의 약칭으로 이슬람의 4대 칼리프(정교일치의 최고 통치자) 알리를 추종하는 종파 집단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기본적인 차이는?
→무하마드와 알리, 후세인으로 이어지는 혈통 중심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그 후손만이 진정한 칼리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시아파는 873년 시아 계승권자인 12대 이맘(종교적 지도자) 알 아스카리가 적통을 이어받은 지 4일 만에 사라진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그때 아스카리의 나이는 4세. 엄청난 충격을 받은 시아파들은 도저히 그가 죽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단지 알라의 뜻에 따라 일정 기간 은둔해 있는 것이며,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것이 시아파들이 믿는 ‘숨은 이맘’의 교리가 생겨난 배경이다.
시아파는 너무나 오랜 동안 ‘숨은 이맘’의 회귀를 갈구해왔다. 하지만 수백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고 이에 시아파를 이끌 영적인 지도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12명으로 구성된, 최고 권위와 명망을 가진 울라마(종교율법학자) 그룹이 이맘을 선출하기로 했다.
그 좋은 예가 20세기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이다. 그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완벽한 인격체로서 신의 말씀을 전하고 해석할 수 있는 영적인 최고 지도자로 추앙받았다. 사실 초대 이맘 알리를 제외하고는 후계 이맘들 중 누구도 정치일선에서 국가를 직접 통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맘 호메이니는 신의 뜻을 지상에 펼치는 최고통치자로서 활동했고, 이는 현재 이란에서 실시되는 신정정치의 근간이 됐다.
호메이니의 사후 이맘은 아니지만, 그의 권위와 존재에 버금가는 마르자(대 아야툴라)로 꼽히는 몇 사람의 정신적 지도자가 시아 세계를 이끌고 있다. 이라크 나자프 성지의 아야툴라 시스티아니,
레바논의 아야툴라 파드룰라, 이란의 아야툴라 시라즈 등이 바로 그들이다. 시아파의 이맘은 통치권과 조직의 위계질서를 관장한다는 측면에서 가톨릭 교황과 닮은 점이 많다. 이에 비해 수니파의 이맘은 단순한 예배인도자의 기능에 머물고 있다.
*이 두 파의 분열은 마호메트가 죽고 네명의 후계자들중에 두명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나머지 두명의 대립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칼리프의 자리를 놓고 우스만과 알리가 대립을 하는 상태였는데요. 아직 패를 갈라서 전면전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우스만이 어느날 암살된 사건을 두고 그 의심이 알리에게 들어왔고 알리는 아니라고 주장을 했지만, 우스만에 대한 복수에 차있는 옴미아드가의 한 사람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이 옴미아드가문은 곧 나라를 세웠고, 알리의 세력도 역시나 여기에 맞서서 투쟁을 하였지요. 알리를 따르는 자들이 시아파이며,우스만과 원래의 마호메트의 행적을 따르는 자들이 수니파입니다.
수니파들은 주로 종교성에 충실한 편이며, 정세적인 것에는 주로 평화적인 편입니다. 그래서, 친서방국가들과 석유를 팔고 물을 사들이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약 90% 정도입니다. 바로 이점이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안 그랬으면, 벌써 세계대전이 났을 것입니다.
시아파들은 종교성보다는 정세성이 좀 강한 편입니다.
서방세계에서 성전이나 회교의 유적지 그리고, 민족.신념등등을 훼손하는 일에는 성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서 테러를 비롯하여 군사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회교국이나 반정부게릴라들을 보면 바로 시아파세력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칼리프…무함마드 대리인이자 승계자
칼리프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이자 승계자를 뜻한다. 무함마드의 종교·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 통치자다.
이슬람 공동체는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하자 그의 친구인 아부 바크르를 지도자로 삼았고 칼리프로 불렀다. 2대 칼리프는 우마르로 비잔틴 제국의 반격을 물리치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로 이슬람 세계를 확장했다.
3대 칼리프인 우스만 시절엔 이슬람 경전인‘꾸란’을 정리했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40세 때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은 이후 23년간 전한 어록을 모은 것이다. 이슬람 신앙과 사회질서, 경제, 생활의 근간을 이룬다. 4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며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남편인 알리였다.
알리 시절 시아파가 생겼다. 시아파는 무함마드 일족이 칼리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후계자를 이맘으로 부르며 칼리프와 구별했다. 무함마드 이후 4대 칼리프까지는 협의를 통해 칼리프를 선정했으나 알리가 칼리프에 오르자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이 속한 우마이야 가문이 반란을 일으켜 661년 알리를 암살했다.
시아는 ‘분파’라는 뜻으로 이란이 종주국이다. 전체 이슬람교도의 20%에 해당하며 나머지는 수니파다. ‘수니’는 무함마드의 순나(관행, 범례)를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수니파는 시아파를 이교도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