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카르포크라테스
바실리데스와 동시대 인물은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는 영지주의에 분명히 속하는 자이다. 그는 시몬 마구스의 후계자들인 바실리데스와 사투리누스와 같은 자이며 영지주의자들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Carpocrates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보다 못한 천사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다. 비록 강하고 순수한 영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게 보인다. 또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그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빈부나 귀천, 어리석은 자나 총명한 자, 남자나 여자, 주인이나 종, 그리고 백성들이나 통치자 간에 아무런 구별이 없다고 했다. 그가 자유방임하는 운명주의를 지향한다고 했다. 유대 학자 필로 (Philo, c. 20 B.C.-A.D. 50)에 의하면, 율법의 신비들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업신여기고 있는 어떤 자들은 “A.D. 40년에 이르러 자유사상(libertinism)이 알렉산드리아 유대주의 내에서 지성적으로 존경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세기 후 그 사상은 카르포크라테스 운동을 통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영지주의의 원리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카르포크라테스에게는 Epiphanius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17세에 죽었다. 그러자 Samos라는 섬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Pythagoras, Plato, Aristotle, 그리고 Christ를 숭배하고, 그들을 위해 전을 건축했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Secret Gospel of Mark”에 대한 클리멘트의 서신에서는 카르포크라테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어느 장로로부터 비밀 복음서(secret Gospel)의 복사본을 받았는데 그것을 그는 참람하고 육욕적인 교리에 따라 해석할 뿐만 아니라 흠도 없고 거룩한 말씀들을 오염시키고 혼합시켰다“고 되어있다.
1.7. 마르시온
2세기의 다른 어떤 이단보다 기독교에 위협을 주었던 것은 마르시온(Marcion, d. 160)과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가 쓴 작품들도 현존하지 않지만 그를 비판한 자료들을 통해 그에 대한 것을 사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특별히 터툴리안의 작품에서 잘 엿볼 수 있다. 마르시온은 약 85년에 Pontus의 Sinope (흑해 근교)에서 부유한 선박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역시 그는 감독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감독이었다고 한다.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를 물어 부친은 그를 교회로부터 추방시켰다. 그는 135-140년에 로마를 방문했다. 그 곳에 있는 교회에 200,000 sesterces를 헌납했다.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영지주의 교사 Cerdo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그에게서 그는 이사야 39-66장의 말씀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Marcionites-을 거닐었다. 그 결과 그는 장로들에게 의심을 받아 144년 출교를 받았다. 하지만 계속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확산시켜 나갔다. 저스틴 마터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그리스도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폴리캅은 그를 가리켜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했다. 마르시온은 약 160년경에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3세기까지 지속했고,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마니교에 연합되었다.
마르시온의 사상은 영지주의임이 틀림없다. 그의 사상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구약성경을 자체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역사이고 조물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바울만이 진실한 사도이기에 그가 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제외한 서신들만 성경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또 그는 누가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서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인용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하나님이지만 높으신 하나님과는 구별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 외에는 그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조물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매우 엄격하고 힘들게 하는 신이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새로운 왕국을 선포하셨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조물주가 행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일들을 수행했다. 조물주를 믿는 자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도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조물주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 결과 그는 가현설주의자가 되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과 조물주, 복음과 율법을 대치시키는 그의 이원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아야만 한다.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 결혼했던 자들은 헤어져야만 한다. 먹고 마시는 것에도 절제해야만 한다. 순교를 즐겼다.
1.8. 발렌티누스
시몬, 바실리데스, 그리고 마르시온 이후 영지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는 이집트 델타(Delta)에서 태어난 발렌티누스(Valentinus, ca. 100-ca. 175)였다. 그는 이집트 종교 철학가이며, 영지주의 로마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창시자이고, gnōsis 또는 ‘신비한 지식’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진 종교적 이원론의 체제를 만든 자이다.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된 발렌티니안 공동체는 2-3세기 기독교 신학에 큰 도전을 안겨다 주었다. 발렌티누스는 헬라 문화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 근교에서 철학을 배우면서 바실리데스를 만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바실리데스는 그 곳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플라톤주의에 매력을 느꼈고, 성경에 대한 헬라적 유대 해석을 가미하였다. 그 후 교사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면서 아마도 책을 출판했을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사도바울의 제자인 Theudas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3세기 파편으로 된 신학자들의 문서들에 의하면, 발렌티누스는 약 136년 로마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로마감독 히기우스(Hygius, c.136-140) 아래 가르쳤고, 로마감독 피우스(Pius, ca 150-155) 아래서 눈부시게 활약했고, 그리고 로마감독 아니케투스(Anicetus, ca. 155-160) 때까지 활동했다. 기독교 영지주의 가르침과 동방 영지주의 가르침의 종합을 상술하면서 25년 동안 그곳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로마감독이 되려는 열망을 품은 그는 약 140년 감독직을 넘겨받았으나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정죄를 받고 기독교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약 160년 Cyprus를 위해 로마를 포기한 발렌티누스는 지속적으로 신비적으로 유래된 종교 철학에 대한 자신의 체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모든 사상들은 플라톤과 Pythagoras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Gospel of Truth의 저자였다. 그 책은 영지주의 원리들이 담긴 기독교 바울신학과 혼동될 수도 있다. 또 그는 설교집, 서신들, 찬송, Treatise of the Three Natures와 Revelations 또는 Visions를 썼을 것이다. 더욱이 4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인 Jung Codex(1946년 발견)는 발렌티누스의 본문의 Coptic 역본으로서 자신의 교리에 대한 것이다.
발렌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제력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리고 들을 수도 없는” 최상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무한하고, 시작도 끝도 없고, 그리고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기원이다. 그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의 있는 것은 그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단일성을 유지하시면서 존재의 다수성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혼합된 남성과 여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남녀성의 이원 일위(dyad)이시다. 아버지가 본질을 우주에 제공하시는 측면은 여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침묵, 은혜, 그리고 사상으로 불린다. 침묵은 평정과 자기 인식에 대한 하나님의 원시적 상태이다. 침묵은 창조적이다. 사상은 본질적인 이온의 모든 연속적인 상태를 말한다. 우주에 형태를 주는 하나님의 남성적 측면은 형용할 수 없는 ‘심연’(abyss)과 최초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심연은 너무 깊어 불가해적 존재며, 신성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심연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다. 그의 여성인 사상에 의해 행동되어질 때에만 그는 우주에 형태를 준다. 히폴리투스에 의하면, 아버지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신성의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격 안에 있는 존재로서 동시에 존재한다. 물과 축축함과 같거나 동전의 두 면과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분리될 수도 없으며 둘 중에 하나가 없을 수도 없다.
· 우주의 기원은 신격에서 나온 존재의 연속적인 상태의 발산과정으로 묘사된다.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비활성적 존재로 계셨다. 우주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한다. 창조의 과정은 신격 편에서의 자기 제한이 필요하였다. 이온들의 연속적인 상태가 그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아버지는 제한이나 한정을 창조하셨다. 모든 것을 견고케 하고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함 밖에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은 제한의 능력이다. 제한은 두 가지 기능을 행한다. 아버지로부터 ‘영적 세계’ (충만, Fullness)를 분리시켜 힘을 제공한다. 그 이후 아버지는 발산의 과정을 통해 가해적인 형태로 자신을 명시하신다. 아버지는 자신을 알 수 있는 자신의 사상을 통해 지식의 영을 낳았다. 그 영은 지식 안에 있는 ‘독생자’(Only-Begotten)이다. 그 독생자도 하나님처럼 남녀성의 이원일위로서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독생자의 이온 또는 독생자의 남성적 측면은 마음이다. 그의 여성적 측면은 진리와 모든 것의 모친이다. 그것들은 어떻게 진리가 진실한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독생자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아버지와 독생자는 이따금 기원적인 넷, 즉 심연, 침묵, 마음, 또는 진리로 언급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독생자는 이원일위이기 때문이다. 독생자 (예를 들면, 마음과 진리)는 하나님의 불가해적 측면들의 가해적인 형상이다. 우리가 최상의 신을 알 수 있는 것도 독생자의 중재로 말미암는다. 독생자와 아버지의 관계는 인간의 마음과 무의식의 관계와 비교될 수 있다. 독생자는 아버지께 안겨 있으며 그분 안에 있다.
아버지에 의해 영감 받은 남녀성을 가진 독생자는 자신의 인격 내에 내재하는 에너지를 명시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는 4개의 이온들을 발산한다. 첫 번째 짝은 말씀(남성)과 생명(여성)이다. 그것들은 심연과 침묵의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두 번째 짝은 인류(남성)와 교회 (여성)이다. 그것들은 마음과 진리의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또 교회에 결합된 인류의 자연적 상태를 나타낸다. 본래의 기원적 4개의 이온들과 그것들에서 나온 4개의 이온들은 모든 것들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이 ‘8인조’(ogdoad)의 이온들에 미치지 못하는 이온들이 탄생하게 된다. 말씀과 생명에서 10개의 이온들, 인류와 교회에서 12개의 이온들이다. 이리하여 모두 30개의 이온들 또는 신적 속성이 완성된다. 이것을 가리켜 ‘플레로마’(pleroma)라 부른다. 이것들은 모두 독생자의 본성의 다른 측면들을 명시한다. 신적 충만의 자기 계시과정은 씨앗에서 나무로 자라나는 것으로 비교될 수 있다. 또 태양에서 나오는 빛의 관성과 같은 것이다. 독생자가 아버지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이온들의 충만도 독생자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온들의 다수성 안에 신격의 단일성은 유지된다. 발렌티누스가 쓴 Gospel of Truth 안에서 독생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묘사된다. 개인적으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완전한 이름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온들은 함께 신격의 완전한 충만을 구성한다. 마르쿠스 (Marcus)에 따르면, 30개의 이온들은 나름대로 수많은 이온들을 가질 수 있다. 마치 글자와 같아서 글자들이 합쳐 또 다른 단어들을 만드는 것과 같다.
독생자만이 최성의 아버지의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다른 모든 이온들에게 여전히 불가시적이고 불가해적이다. 이온들은 독생자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이온들은 자신들이 나온 분을 알기를 갈망했다. 이것을 발렌티누스는 자신의 Gospel of Truth에 묘사하고 있다 : “모든 것은 자신들을 낳으신 분을 찾고 있다. 모든 것은 그 안에 있다. 불가해적이신 그 분은 모든 사상보다 훨씬 뛰어나신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이온들의 갈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절망적이다.
그래서 발렌티누스는 지혜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아버지를 알고자 하는 바람이 지혜에 넘쳐났다. 지혜는 12개의 이온들 중 제일 어리다. 완전한 충만을 위해 지혜는 최성의 부모를 알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는 독생자의 중재가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되어 오류와 고통의 상태로 처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창세기의 이브의 타락과 흡사하다. 그 결과 지혜는 아버지와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빚어진 낙태를 가리켜 지혜의 결핍된 생각이라고 한다. 이러한 부족 속에 지혜는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슬픔 속에 그녀는 회개하고 도움을 청한다. 다른 이온들도 역시 슬퍼하며 그녀의 청원에 관심을 갖는다. 제한 또는 두 번째 한계의 도움을 받아 지혜는 더 높고 더 낮은 수준으로 나눠진다. 더 낮은 수준 또는 낙태는 고통을 가지면서 충만에서 배제되었다. 더 높은 지혜는 강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분이심을 확신하고 되돌아온다. 지혜의 이런 행위는 충만에 있는 결핍을 분리시켰고, 밖으로 향하게 했다.
이런 위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독생자는 자신을 그리스도(남성)와 성령(여성)이라는 형태로 다른 이온들에게 자신을 명시했다. 그리스도가 된 독생자는 다른 이온들에게 아버지가 불가해적이고 자신을 통해서만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음을 계시했다. 성령은 그들에게 감사를 가르쳤고, 모두가 동등하게 창조되게 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세례이다. 이것은 인간 교회만 아니라 이온들에게도 해당되었다 :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다. 이제 그의 사랑은 성령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계시하신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독생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비로 인해 이온들은 그를 알게 되고 아버지를 찾는 수고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안에서 쉼을 얻게 되었고, 그리고 안식을 취하게 된다.” 모든 이온들은 함께 뭉쳐 구세주라 불리는 독생자와 연합하게 되었다. 모든 이온들에게서 나온 완전한 이름을 구세주만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아멘이라고 부른다. 구세주는 역시 제한 밖에 있는 타락한 지혜의 동반자가 되기로 되어있다.
타락한 더 낮은 지혜는 또는 낙태당한 생각은 고통이 있는 더 낮은 영역에 갇히게 되었다. 부족 또는 더 낮은 영역은 물질적 우주이다. 충만이 독생자의 산물이고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부족의 영역은 충만의 산물이고 그 안에 있다. 부족은 지식에 관해서 충만 밖에 있다. 부족은 무지의 결과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헛수고를 계속하는 지혜는 제한으로 인해 충만에 상승하지 못한다. 무지의 결과로 인해 그녀는 슬픔, 두려움, 그리고 혼돈을 경험한다. 세상이 환각임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실재인지 무엇이 환각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 지혜는 회개하게 되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쁨을 다시 회복한다.
지혜의 회개로 인해 구세주는 자신을 비워서 충만 밖으로 나와 천사들의 수행원과 함께 부족으로 하강했다. 그와 지혜는 함께 이온들의 짝처럼 결합했다. 영원한 영역을 알게 되므로 지혜는 환각과 고통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지혜는 구세주와 천사들의 수행원을 보고 기뻐하고 자신의 형상으로 영적 씨앗들을 낳는다. 이런 씨앗들은 모든 기독교인들 안에 있는 영적 요소가 된다. 이런 이유로 씨앗들은 교회에 맡겨진다. 씨앗들은 충만한 가운데 있는 선재한 교회의 형상으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지혜에서 나온 세 가지 존재 상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나는 무지와 고통에서 나온 세속적인 존재를 특징짓는 환각, 다른 하나는 무지와 지식 간에 있는 중간 상태를 말하는 회개와 기쁨, 마지막은 영적인 씨앗이 지혜의 지식에서 나오는 것 등이다.
영적 씨앗이 아직도 성숙하고 훈련을 받기 위해 물질세계가 필요하게 된다. 지혜가 이 세상을 직접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장인을 통해 지혜는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장인은 자신의 모친을 모르고 자신 혼자 행했다고 생각한다. 장인은 7개의 천사적 존재 또는 하늘들을 창조하여 그것들 위에 군림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일곱 번째라 불린다. 장인의 7개의 천사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7일을 의미한다. 장인의 모친인 지혜와 구세주는 8번째 하늘에 있어 그보다 위에 군림한다. 이런 8가지 하늘들은 충만 가운데 있는 8개 이온들의 형상이다. 지혜와 구세주는 비밀적으로 장인에게 영향을 끼쳐 물질우주를 완전의 형상으로 만들도록 했다. 그래서 진리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현현한다. 사람들은 장인에 의해 선재하는 인류(Humanity)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사람들은 귀신적 요소, 물질적 몸, 이성적 영과 영적 씨앗으로 구성한다. 영적 씨앗은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의 지식 (영지)을 얻을 수 있다. 지식을 받은 각 사람은 부족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고 신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세상의 종말은 영적인 모든 것이 지식으로 채워질 때 오게 된다. 영혼들은 동물의 영들을 버리고 자신들의 모친인 지혜와 더불어 충만으로 들어간다. 지혜는 새 예루살렘이 되고 신랑, 즉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가 된다. 영혼은 천사들에 가입하게 된다. 세상에 감추어진 불은 모든 물질을 활활 태워버리고 무로 나타난다. 육체적 세상은 사라진다. 부족도 사라져서 회복의 과정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