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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용기내서 말할게.. 볼 사람은 와줘

이 많은 글들 중 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불행한 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라고 과장 보태거나 거짓 일화를 꾸며내는 것도 아니야
익명이라는 일종의 방어막 뒤에 숨어서 솔직하게 말하는 거거든
나 말재주도 없어서 중간에 맥락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어
그래도 못 배운 애구나 하고 넘겨주라
내가 또래에 비해 마인드에 있어서 차이가 커서 그런지 친구가 없는데 친구 딱 한 명 있어
그 친구한테도 말 못한 건데 너희한텐 언젠간 털어놓고 싶었어
긴 글이지만 봐주면 고마울 것 같아
나 어릴 때 막내로 태어나서 넉넉하진 않아도 그냥 사랑 받으면서 태어났어
사실 태생부터 불행했던 게 IMF 터진 그 해 근처에 태어나서 경제적 부담이 아무래도 크셨겠지
부모님께서는 나의 태동조차 달갑지 않아 하셨고 심지어 지우려고 하셨어
낙태를 결정하시던 찰나에 부모님이 생각을 바꾸셔서 내가 태어나게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탄생함으로써 집이 더 힘들어지기 시작해
아버지의 수입은 끊이게 된 지 오래고 엄마는 여자 홀몸으로 자식 셋을 위해 일을 시작하셨지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집안일, 엄마는 바깥일을 하다보니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셔서 성격대로 꼼꼼한 일을 하시는 거고 엄마가 그 역할을 대신 하는구나 했지.
그러던 중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왕따를 심하게 당해
성격상 모든 이들이 행복했음 좋겠어
그로인해 피해 주는 걸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고 부딪히는 건 최악으로 여겨
그래서 남들 앞에서 기는 내 모습이 속된 말로 찌질해 보였던 거야
무시를 하고 심지어는 삼 년간 날 악랄하게 괴롭혀
일화를 말하자면 가슴 속에 한이 맺힌 게 끝도 없어서 이 글 안에 전부 작성을 못하지만 기억하기로는 선생님께서 팀 짜서 우리 팀이 우연히 우승해서 받은 소량의 먹을 거를 바닥에 던져서 준다든가 더럽게 여긴다든가 물건을 뺏고 돈을 가져가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였어
사실상 가장 괴로웠던 건 불쌍하다는 타인의 시선이었어
왕따 당해본 애들은 알겠지만 사실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보다 왕따로 보이는 게 가장 괴롭잖아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싸운 걸 날 사이에 두고 내 탓으로 돌려 때린 적도 있었지
결국 샌드백 역할이 필요했던 거지
그러다보니 친구가 없어서 급식은 늘 안 먹었고 키가 작은 것도 있는데 몸무게가 30대 중반까지 빠졌어
체력도 떨어지고 텐션이 늘 낮아있으니 늘 무기력할 수밖에
그래서 우울증도 걸리고 불안 장애에 정신적인 고통이란 고통은 다 받았어
집에 오면 늘 커텐 치고 방에 빛 들어오는 것도 싫어서 이불 뒤집어 쓰고 늘 울고 그 패턴의 반복이었어
그러니 당연히 꿈도 뭣도 없고 학교 생활은 날날이 최악일 수밖에
그러던 중 나쁜 음지의 길에 빠지게 되었지
그 나쁜 길은 바로 원조 교제를 하고 술을 따르고 전화로 음담패설 다 받아주고 그런 거 해서 돈 벌었어
집 안에 돈 버는 사람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는데 그 곳을 가면 비록 중간 과정에 돈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된 사이긴 해도 즉 가짜 사랑이래도 사랑 받는 느낌이었거든
처음이었어, 내게 웃어주고 안아주고 날 만져주는 사람들이.
그들은 내가 무슨 실수를 해도 받아줬거든
학교나 가정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 학교나 가정에선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싫다고 하는데.
학교에선 성적은 안 나와도 그래도 꼬박꼬박 출석 찍는 무존재감인 학생에 하교 후엔 화장 진하게 하고 힐 신고 야한 옷 입는 술집 여자가 되는 거니까 이중 생활을 교묘하게 했지
누군가가 아는 것도 두려웠어, 무엇보다 그 당시에 미성년자의 원조 교제 등 아동ᆞ청소년 보호에 여성부였나 국가 내에서의 기관에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들어서 내 친구는 걸려서 그만 두게 되고 돈 줄 끊기고 이게 가장 무섭고 두려웠어
다신 돈맛 못 볼까 봐 그리고 아저씨들 못 만날까 봐
이런 식으로 살기를 몇 년 반복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렸구나 싶어, 그 나이에 뭘 안다고 남잘 웃게 하고 만지고.. 참 오기도 끈기도 대단했구나 싶었어.
지금보다 더한 것 같아ㅋㅋ
아무튼 그렇게 지내고 고등학교를 일반고에 가게 됐어
내가 내신은 안 나왔는데 막판에 출석 덕분인가 그래서 일반고에 가게 됐지
물론 엄마는 무조건 일반고를 고집하셨고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관심도 없었지ㅋㅋ
일반고를 가고 1학년 동안은 속히 말해서 음지의 생활을 끊으니 학생다움을 되찾아 갔던 것 같아
애들은 입에 달고 사는 말이ㅋㅋ 대학 가기만 해 봐 혹은 성인 되기만 해 봐 술 얘기에 화장 얘기에 남자 얘기 많이 했지ㅋㅋ
하지만 난 이 모든 것들을 미성년자 때 그것도 아주 어린 십대 중반이란 나이에 다 해봤으니 기대가 되진 않았어
그러나 난 다 숨기고 학생다운 척 했지
그러니 다들 몰랐고 그렇게 순탄하게 지내는 듯 하다가 우리 아버지에 관련해서 일이 터져
아버지에 대해 잠깐 말해보자면 아버지가 앞서 말했듯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셔서 집안일 하셨어
일이 터지기 전까지도 자존심 때문에 일 안 하시다가 주유소 알바 하셨거든
난 창피하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가
그 어떤 부모가 안 그러겠냐마는 우리 아버지는 특히 내리 사랑이 심하셔서 막내인 나를 아주 예뻐하셨어
여기서 아버지 소개 좀 잠깐 하자면 그런 아버지가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성격이었어
집안 내력 자체가 다혈질 끼가 있는 것도 있는데 우리 아버지와 엄마는 특히 부부 싸움을 자주 하고 이혼 서류가 나뒹굴었기에 익히 있었던 일이야
아버지가 화가 나면 사람을 엄청 패셔
때리는 정도가 아니고 목 조르고 폭행 강도가 좀 심하셔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만 나는데ㅋㅋ 초등학생이란 어린 나이에 칼 들고 목 조르고 죽이겠다고 한 아버지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 야밤에 경찰서에 신고하려 했던 내가 기억 나
어린 마음에 차마 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나 아직도 기억나거든
아무튼 그런 아버지가 일이 터졌어
쓰러지셨어 그것도 아주 좋은 기념일 날
더 이상은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 못하지만 그 뒤로 중환자실에서 계시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거든?
근데 중환자실에 계실 때 의식 있으셨던 며칠, 내게 했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ㅇㅇ아, 밥은 먹었어? 누구랑 먹었어? 누가 줬어?

우리 아버지는 막내가 어디서 굶고 다닐까 봐 당신 오늘 내일 하시는 순간까지도 걱정 되셨나 봐
그리고 저게 마지막 대화였고

난 우리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거였어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어야 했고 금방 나아질 거라고 무조건 무지하던 막내의 아빠, 소리에 바로 눈 감으셨어.

1:23

난 아직도 내 행실 똑바로 못해서 받은 죗값이라고 생각해

긴 글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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