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 문호 똘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행해야 하는 행위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세상에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떠한가?
입으로, 머리로 얼마나 허구적인 가식적이며, 입에 발린 말을 지껄여 대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가슴 한 칸에도 사랑을 두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10년 후 20년 후 희망을 보장해 주는 듯한 언어를 난발하면서도 당장, 지금 이 시간 최선을 다함도 못하며 공약의, 언약의 남발을 통하여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아픔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사랑은, 선정(선으로 온정을 줌)은 거창하게 생각하면 허구성이 강하고 실천이 어려우며. 사랑을 아주 작은 것으로 실추시켜 보면 가슴으로, 진정으로 하기 어렵다. 배려가 과식과 자신의 수단을 위한 행위가 될 때면 천박해 보이나, 정성과 진실로 가슴으로 행하면 귀족적 분위기를 주는 순수함으로 느껴지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천박함으로 드러난다. 반면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가슴이 닫혀 있는 사람이 자애로움과 배려함으로 다가오나, 오히려 자격지심의 마음으로 거부하거나, 부정적 시야로 받아들일 때에는 그 역시도 아름다운 순박의 모습은 사라지고 천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순수는 귀족적 아름다움이라면, 순박은 서민적 아름다움이다. 이 둘이 동시적 아름다움을 수용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의하여 둘 다 천박의 나락의 길로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방송이나, 공공연한 장소, 연말이나, 선거철, 어떠한 명분의 시간만 주어지면, 떠들어 대는 소리들. ‘지 마음속에 이리 새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말은 안하고‘ 오로지 남의 탓, 지 좋은 일만 내세운다. 개판이 따로 없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길거리에 지나면서 아이를 업고 구걸하는 여인을 보고 눈길의 따뜻함조차 없는 군상들이, 일명 노가다(노역장), 3d업종(위험, 어려움, 더러움 이란 의미를 지닌 업종)에서 한 번도 종사해 보며, 그들의 아픔을 경험 해 보지 못한 자들이 머리와 입만 살아서 그들의 입장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가간인 세상이다.
부처님이, 예수님이, 공자님이, 땅속에서 벌떡 일어나 살아온다면 “머리와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인간들은 망치로 쳐 죽이라고”할 것만 같은 “머리 검은 짐승 믿지를 말라”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니 자연 환경이 오염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개념 타령으로, 정의 타령으로, 도덕 타령으로, 법 타령으로 오염 되어 버렸다.
아니, 사람은 죽으면 당연히 몸덩어리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판에 “인간의 신성한 존엄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 자체”를 오염시키는 바이러스가 되었으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고, 짐승이 짐승을 인도하니, 결국 종국은 구렁텅이에 빠져 죽는 꼴이 아닌가?
인간이 사는 세상에 이성과, 신앙과, 신성함과, 규범과, 도덕이 파괴가 되어 인간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숙주가 되면 그것이 인간 세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이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진정 사람 냄새가 나고, 머리는 생각만하라고 달고 다니는 악세사리가 아니요, 입은 말만 하라고 얼굴에 붙어있는 살덩어리가 아니라, 한마디 하기 전에 깊이 생가해라고 달고 다니는 것이요, 입으로 말하기 전에 충분하게 생각해서 발설하라고 적당한 위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오늘을 살아가는 먹물깨나 뭍히고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머리가 무거우면 입이 가볍고, 입이 무거우면 머리가 가볍다. 너무나 가볍거나 너무나 무거우면 정상이 아니다. 아니, 병자다. 이 둘은 발전을 저해 하는 요소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할 말이 너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말하지 않는 침묵’이 금이다.
지성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누구나 지식인을 될 수가 있다. 그러나 통찰을 가지고 시대의 주역이 되며 이끌어 가는 지성인은 ‘누구나’가 될 수가 없다. 자기가 태어난 강토를 아끼고, 보존해야 할 책임을 지고, 또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당연한 의무를 지니기에 그는, 희생을 감내하고 옥토를 만들기 위한 손과 발의 땀방울을 당연시 여긴다. 그가 지성인이다. 그 지성인은 머리가 입만 살아 있는 ‘말하는 앵무새’가 아니다. 그의 머리와 입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으로 하는 것이기에 ‘말해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며, 침묵해도 말하지 않음이 아니다.’ 그의 모든 행동은 사인(sign)이다. ‘상징성’을 지닌다. 시대의 메신저다.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리드자의 절규하는 목소리이다.
바야흐로 ! 이제는 개인 개인 모두가 깨어나야 할 시대이다. 아니, 젊은이의 정신으로, 아니 어린아이 순수로, 건강한 피부가, 건강한 정신이 회복되어 추수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말하자면 완전하게 물가리를 해야 할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제멋에 외치고 있는 구습의 리드자라고 차처 하는 ‘고개숙인 생각의 건강성을 잃어버린 늙은이’는 물러나야 한다. “새 술은 새푸대에 담듯” 피갈이를 해야 한다. 수혈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수혈이야 말로 온 세상의 막혀 있는 벽에 ‘문’을 만드는 일이다.
머리를 들고 둘러볼 때 사방이 벽의 투성이다. 그 벽에 맨땅에 해딩하여 머리가 깨어지듯, 그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피를 흘리지 말고, 통하는 문의 통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삼팔선이라는 분단의 벽이 문이 열릴 때 비로소 우리의 국토가 통일이라는 금수강산의 몸을 회복하듯이, 우리의 몸이 피가 순환되지 않고 막히면 죽듯이, 사방에 놓여 있는 벽을 뚫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이제라도 될 때로 되어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라며, 아름다운 자연에 낙서만 하지말고, 산은 나요, 물은 나요, 우리가 돌아갈 고향이라는 깨침의 명제를 하루라도 빨리 알아 경화(경직화)되어 가는 내 마음, 내 정신, 내 이웃, 내 사회, 내 국가를 위하면서 ‘머리와 입만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마음이 깃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하루라도 장수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 “인간은 죽을 때 정신 차린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한 시라도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가 태어난 이 땅에서. 왜냐하면 모든 행위가 내가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의미가 있지, 내가 죽어 이루어진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 하운 김남열 -(브레이크 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