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1살 남자입니다. 30살 여친과 사귄지 갓 100일을 넘겼습니다.
도저히 머릿속을 맴돌고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어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우선 저희는 한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몇달을 쫓아다녀서 겨우 사귀게 되었죠.
쿨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오글거리는 사랑의 속삭임 따위는 정말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아직 절 사랑한단 얘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쉽긴 해도, 애초에 저희 관계 자체가 일방적일 거라는 걸 전제로 하고 간 것이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저라도 표현을 많이 하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좋아하는게 보이니 저도 행복했었습니다.
틱틱 대고 차갑게 굴다가도 한번씩 잘해주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조금씩 나한테 마음을 열어 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며 잘 사귀고 있던 찰라, 며칠 전 제 생일날 일이 터졌습니다.
정말정말, 그러면 안되는 걸 알고, 세상 찌질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친이 자는 새에 핸드폰 잠금이 열려있길래, 난생 처음으로 여친의 핸드폰을 살펴봤습니다. 그랬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카톡으로 저도 모르게 손이 가더군요. 그리고 최근 대화 목록에 떠 있는 모르는 남자..
홀린 듯 클릭해서 대화창에 들어갔습니다. 쭈욱 스크롤을 올리며 읽어 봤습니다.
사귄지 두달이 다 되어갈 시점에, 소개팅을 했더군요. 그리고 그 분과 쭈욱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땐 여친이 선톡을 보낸 적도 있더군요. 제가 못 봤던 사진들도 주고 받고...
제 톡과 비교 해 보며 봤습니다. 그 날 제가 뭘 했었더라, 기억 하려구요.
소개팅을 한 날은, 집 근처에서 언니를 보기로 했다고 한 날입니다. 그 때 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괜찮았습니다.
여친은 아직 제 존재를 주변 사람들에게 다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언니가 갑작스레 데려 나왔을 수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은지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만났더군요. 여친이 아는 동생과 술을 마신다고 한 날입니다.
그날 엄청 많이 마시고는 연락이 두절 되었어서 크게 싸웠던 날이었거든요. 제가 여친의 술자리 다 상관 없는데, 처음과 끝에 연락 한번만, 안되면 문자 하나만 남겨달라 했었는데
그게 도무지 잘 안지켜 지는 친구라, 그 날도 제가 연락만 애타게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네, 그 때 그 남자분과는 대화를 잘 이어 갔었더군요. 그리고 새벽 2시에 그 분을 부르더군요.
그 분이 택시 타고 날아 왔습니다. 셋이서 술을 마셨고, 동생은 먼저 들어 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5-6시 경 집에 들어 간 것 같더군요.
그 때 부터 둘의 대화는 존댓말에서 반말이 되었고, 급격히 친해졌더군요.
원래 쿨한 성격이라 장문의 친절한 문자는 거의 안 하는데, 저한텐 요즘들어 더더욱 톡 내용을 거의 읽지도 않고, 단답형식으로 대답만 하고 있는데
그 분한텐 (문자상으로라도) 잘 웃고 애교도 많아 보이더군요. 착잡했습니다.
무엇보다 저한테 거짓말을 두번이나 하고 그 분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덮어두자, 덮어두자... 생각하고, 아직 저한테 마음이 다 열리지 않았으니 사람이 한번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묻어두려 해도 불쑥불쑥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욱 하고 올라옵니다.
한번은 가족여행이 끝난 후, 둘이서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도 잡았더군요. 나중엔 피곤하다고 약속이 취소 되긴 했지만...
내용을 보다 보니 그 분 저하곤 다르게 안정된 직장에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분 같더군요.
사귀자고 제가 따라다니던 때에, 여친이 안정된 직장에 넉넉한 경제조건도 아닌 저를 나이도 많은 본인이 사귀기는 부담된다고 몇번 거절 했었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말로 정말 간신히 설득해서 사귄 거였구요.
그 때 생각도 나면서, 자신감 하나로 먹고 살던 저 마저도 의기소침 해 지더군요. 그렇게 제가 믿고 있던 여친이 저를 믿고 의지 하지 못하니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구요.
어쩌다 다른 대화를 하다 소개팅 얘기가 나와서, 농담 식으로 '나중에 소개팅이라도 하게 되면 나한테 꼭 미리 말해야 된다' 라고 은근 떠 봤는데 (서로 그런식으로 농담 자주 주고 받곤 했습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겁니다.
자길 어떻게 보는 거냐고, 그렇게 못 믿을 거면 왜 사귀냐고.
속에 천불이 끓어 오르더군요. 이걸 말도 못하겠고...
여친이 핸드폰 보는건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냥 핸드폰 보다가 킬킬 대면 뭐 봐? 하면서 슬쩍 고개를 들이 미는 것도 극혐하고, 나란히 앉아 있다가 문자 와서 걔가 볼 때 본능적으로 눈길이 가는 것 마저도 못참아 합니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 집착이 심했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병적으로. 그래서 싫어하는 것이라고 전 그동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다 그런 식으로 연관지어 지네요. 숨길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이걸 대 놓고 따지자니, 제가 핸드폰을 본 것 때문에 당당하지가 못합니다.
네, 저도 31살이고 연애를 어느정도 해 봤으니 답은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깨진 관계가 더 이상 길게 이어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믿고 싶습니다.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요. 사실 그렇게 까지는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친구들한테 이 얘길 털어 놓으면서 이별을 떠올려 보면
... 너무 아픕니다.
그냥 넋두리 풀 듯이 주절 거려 봤습니다.
답을 구한다기 보단...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풀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