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여러 선택을 하고 산다.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하더라나는 아마 그때 그 전화를 받아 들였던 대가로 그리 힘든 경험을 해야했는지도 모른다.
수화기 저 너머에는 내가 알던 사람의 목소리가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한눈에 그녀가 많이 울고난 직후였음을 알아차렸다.목소리만 듣고도 상황을 알 수 있을정도로 2년이란 시간은 연애의 시간으로도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나는 어쩌면 이 전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수화기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나 지금 집앞인데 잠시 이야기해주면 안돼...?"
나는 내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주체하지 못한다고 해야할지도 모른다.포커페이스는 당연히 되지 않으며 몸으로도 그 감정이 다 드러난다.나는 그 때 차라리 조금 늦게라도 나갔으면 내 감정이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그때의 나는 정말 쏜살같이 뛰어나가 그녀를 맞았다.아직 밤이 추운데 왜 찾아왔냐면서.누가 누굴 걱정하는건지 내 스스로도 답답하다.잘못 생각했다며 돌아온 그녀를 나는 조심히 안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받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하며 스스로를 바꿔 좀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지 않던 그녀에게 차마 묻지도 못한채 스스로 나를 바꿔나갔다.사실 나도 불안했던 것이다.이유도 몰랐으니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아니 분명히 떠날거라는 불안감이 컸다.근데 그 시점이 내 생각보다 너무나도 빨랐을 뿐이다.일주일이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그녀는 재차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술을 먹는다는 그녀는 한숨을 꺼져라 쉬며 얘기했다.
"나 그날 오빠에게 돌아간건 술김에 했던 것 같아. 그만 만나."
잡히지도, 잡을 수도 없는 이별 통보였다. 마치 금전관계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처럼, 계약관계의 갑과 을처럼 일방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처사였다.나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위치에 서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급격히 다시 망가지기 시작했다.진심으로 사랑하던 사람에게 두번이나 이유도 모른채 버림받고 나서는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되었다.어떻게 하면 세번째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같은 부질없는 상상속에 갇혀어떻게든 마음을 돌릴 편지를 쓰고 사진첩을 만들었다.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더욱 선명한 이별의 상황이었고모든 힘을 다 짜내 잡았지만 잡히지 않은 상황에 나는 이내 체념하게 되었다.되돌아봐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잡았지만 결국 잡을 수 없었고내게 남은 것은 무한한 상실감이었다.혹자는 그랬다. 마음껏 실컷 잡아보라고. 분명 후련하고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라고.하지만 나는 죽어라 잡은 끝에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잡히지 않은 사람이었구나그런 사람이 내 사랑이었구나 하는 무력감이 나를 덮쳐 안아하염없이 마음 속으로 나를 가라앉게 할 뿐이었다.
같은 사람과 두번째 헤어지고 나면 술한잔 하자고 누군가를 부르기도 미안해진다.이때부터는 오롯이 이별의 생채기를 나 혼자 겪어내야 하는 시기이다.조용히 다시 도서관에 나갔다.밀린 공부를 시작했고 머리가 아둔했던 나는 이미 남들과 차이난 부분을 쉽사리 메꿔가지 못했다. 애시당초 제대로 따라갈 자신이 없어 일찍 시작했던 임용공부였다.제대로 될리가 없었다.게다가 암기력이 너무나 젬병이었던 나였기에 그날 공부한 것을 아무리 열심히 복습해도 다음날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내 머리는 분명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메모리카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주변에서 수척해진 내 모습을 보며 수군대는 것을 들었고이런 분위기와 내 상황이 도서관에서 집중력과 엉덩이의 무게를 앗아갔다.
그동안 잘 잊고 나는 공부를 잘 해서 임용에 붙었다는 나름의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으련만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잊을만 하면 연락이 오던 그녀의 잔인한 장난에나는 정상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늪에 빠져버렸고점차 폐인이 되어갔다.이 상황에서도 주변사람이 그녀에게 욕하는 것이 싫어나는 조용히 내 상황을 스스로 삭혀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너무나 힘겨운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어느덧 나는 도서관에 앉아 제법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괜찮아 진 것이 아니라 힘듦에 익숙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하지만 남들은 두달이면 외운다는 수업모형을나는 그때까지도 전혀 외우지 못했고공부를 못해 차이났던 수준은멍청한 머리로 겨우겨우 따라간다 수준까지 왔을 뿐이다.비록 광주교대를 나왔지만 임용응시는 전국으로 할 수 있는데응시를 먼저 하고 시험은 이후에 하게 된다. 물론 한 곳으로만 응시할 수 있다.모든 임용고사는 같은 날에, 같은 문제로 치뤄진다.보통 서울을 비록한 여러 광역시들이 임용 합격 점수가 높고그중에서도 광주는 굉장히 합격컷이 높은 지역이었다.반면 전남은 굉장히 합격컷이 낮은 지역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매번 모의고사에 낮은 점수만 나오다 못해우리 과에서 뒤에서 2-3등을 다투던 나는자연스레 전남으로 응시할 것이라 사람들이 생각했다.물론 나도 내가 광주에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날은 도서관에서 일찍 나와야 했던 날이다.다음날 먹을 우유가 없어서 사야했기 때문이다.우리학교의 작디 작은 축제날이었던 그날은집으로 가는 길에 찰나라도 축제 분위기를 느끼겠다 하는 기대가 쌓여다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가고 있었다.분명, 시작하는 걸음은 가벼웠을 터이다.그리고 불행하게도나는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