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될 즈음 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때마침 자취하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편의점에서 구인을 하는 글을 보고 단숨에 일을 시작하게됐다.
일은 여느 편의점과 같이 카운터 업무, 청소, 상품 진열... 하루 하루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였다. 주변에 기사 식당이 많은 탓에 내가 출근 하는 시간때면 일을 마치고 들르는 아저씨 손님들로 매장은 항상 바빴다.
퇴근 시간대가 지나고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나면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렇게 한숨돌리며 유리창 너머 바깥 경치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편안한 기분마저 들곤 했었다. 이렇게 일하기를 약 1개월하고도 보름정도 됐을까? 항상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에 그 손님이 찾아온 뒤로 내 맘 속에 무언가 찾아 들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8월 초중순쯤, 여느때와같이 친구들과 만든 단톡방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며 매장업무를 보던중... 어떤 한 남자 손님이 찾아왔다.
"팔X아멘트 아쿠아5 한갑 주세요~"
잘생긴 외모는 아니였지만 차분하고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 약간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알바생이 귀엽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빨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계산을 마친 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매장을 나갔다.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오면서 처음 본 손님이라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평소대로라면 그냥 손님과 알바생의 입장으로 별 뜻없이 지나갔을 상황이지만, 방금전 계산을 하며 보여준 그 남자 손님의 미소, 소년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미소. 그 미소가 나는 다시 한번더 보고 싶어졌다.
다음 날이 되고, 난 출근 준비를 하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꾸미고 나갔다. 준비를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꾸미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출근해서 매장에 들어서자 내 얼굴을 보신 점장님이 대뜸 한 말씀 하셨다.
"누구 남자라도 만나고 오는길이야~? 화장했네?" 라며 짖궂게 놀리셨다. 그런거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 기분전환 때문이라고 얼버무리며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도 난 평소보다 자주 매장 밖을 쳐다 보게 됐다. '그 사람이 뭐라고...'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몇시간쯤 지났을까... 멀리서 수수한 차림으로 걸어오는 그 손님을 보게되었다. 그 순간 난, 정말 미칠 듯한 떨림과 설렘, 그리고 호기심이 생겨났다. '우리 매장에 들려줬으면..' 하며 바랬는데 그 바램을 들어 주셨는지 그 손님은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날은 처음 마주친 날보다 더 유심히 관찰했던것 같다. 키는 177~179정도 되는 것같았으며 옷차림은 내맘에 쏙 들게 잘 입었었다. 향수도 뿌렸는지 들어올때 풍기는 그 향이 그렇게 좋았다. 그 남자는 무슨 일에선지 엄청 해맑은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나에게 "안녕하세요~" 라며 선뜻 인사를 건넸다. 당황한 나머지 난 "아..." 라는 신음섞인 듯한 목소리로 탄식만 하고 말았다. '으이그 등신아'
5분 정도 이것 저것 고르더니 계산대로 왔다.
'당당하자! 내 앞에 선 이 남자는 그냥 손님일 뿐이다! 난 알바생이고 넌 손님이야' 라고 다짐하면서 태연하게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오늘 화장하셨네요?" 라고 말을 거는게 아닌가... 그래서 대답을 하려고 고개를 드는데 앞에 그 손님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지난번과 같은 그 미소로 웃고있는게 아닌가... 나는 그 순간 얼음마냥 대답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며 넋 놓고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어리버리 하고 있는 찰나, "계산 안해주세요~? 하하하" 하며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나긋이 웃는 저 웃음소리가 얼마나 매력있던지... 힘겹게 계산을 끝내고 그 손님을 보내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서 조금전 상황을 곱 씹으며 '바보등신머저리 대답이나 똑바로하지... 넌 나가 죽어야되!!!!' 라며 내 자신을 채찍질 했다.
이 일이 있고난 뒤로 그 손님은 2~3일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건지 여행을 간건지... 알 턱이 없어 더더욱 궁금해졌다. 무언가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난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속상하고 짜증만 늘었다. '말이라도 걸어 볼걸' 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는 그 시점, 바깥 테이블에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치우려고 나갔는데 테이블 구석쯤 이어폰을 끼고 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는 그 남자를 보게됐다. '분명 아까 볼 땐 없었는데... 언제 온거지? 아니 그것보다 어디 갔다 이제 온거야? ' 하는 생각과 함께 안도감으로 마음이 진정되었다.
테이블을 정리하며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을 하는지 듣고 싶었지만 그날 따라 화장도 잘 안먹고 뭔가 후줄근 해 보여서 빨리 벗어 나고 싶었다. 마음은 급하고 몸은 안따라주고... '빨리 치우고 들어가야지!!' 하며 서두르는데 갑자기 등뒤 쪽에서 "깡!!!" 하는 쇠마찰음이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옆쪽에 있던 그 남자가 나를 확 끌어 당기면서 내 뒷쪽 테이블을 발로 차버렸다. 순간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한 나머지 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 앉아버렸다. 그 남자는 나보고 연신 괜찮냐며 다친데 없냐고 다독여 주었다. 상황은 이러했다. 내 뒤쪽 테이블에 꽂혀있던 파라솔 중간 이음새 부분이 헐겁게 되서 파라솔이 뽑혀서 내쪽으로 쓰러지고 있던 상황이였다고 한다. 파라솔이 조금 크기가 큰 만큼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자신쪽으로 끌어 당기고 테이블을 발로 찰 수 밖에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여러번 사과했다. 괜찮다고 다친데 없다고 하는데도 이곳 저곳 둘러보며 다쳤는지 확인 해주고 망가져 가는 테이블인 그 남자가 고이 접어서 매장 옆쪽에 잘 정리 해주고 갔다.
무언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법한 (아닌가?) 상황을 직접 겪어보니 왜 여주인공들이 설레여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약간 박력있고 섹시한? 그런 모습에 심장은 염치없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뒤로 무언가 보답하고 싶어서 기회를 잡고 있는데 그사람은 나타나지 않고있다. 내가 놀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건지 근처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보여준 그 해맑던 미소, 나를 구해준 그 용기 전부 잊지못하고 아직까지 설레이며 기다린다. 개강 탓에 아르바이트는 그만 두게됐지만 집근처이다보니 괜시리 바깥을 서성이고 잘 가지도 않는 편의점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내모습을 보니 이대론 상사병으로 죽을 것만 같다. 아직 서로 이름 석자 모르는데... 언제쯤 다시 눈 앞에 나타나 줄지
그남자 정말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