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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 이화여대 학생의 글.txt

ㅇㅇ |2016.10.30 21:35
조회 504 |추천 3


항상 하고 싶은 말이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꺼내지 못했던 말을 해보려 한다.

나에게 여성혐오의 첫 경험은 대학에 입학하고서였다.

대학에 합격하고 엄마가 대학생이 되어 축하한다고 선물해주신 모 브랜드 가방을 고등학교 모임에 들고 나갔다.

하지만 그 가방을 본,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같은 교실에서 대입을 준비하였던 친구는 나에게 '너 이대녀 다 됐네~'라는 말을 날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울면서 집에 왔고, 다시는 그 모임에 그 가방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이대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인식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었을까?

부끄럽지만 나는 그 이후 개강을 할때까지 사람들이 이대를 무작위로 비방해 놓은 악플들을 읽으며 울면서 나는 이런 이대생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였다.

사실 그 당시에 몰랐던 것은 그 친구의 발언은 앞으로 경험할 수 많은 어이없는 혐오에 대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새내기 배움터를 가서 선배와의 대화를 하던 날, 선배들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환영의 인사가 아니라 주의였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이대는 어디가서 무엇을 하던 욕을 먹으니 주의와 당부를 전달해주었다.

미팅에 가서 술을 너무 많이 먹지 말아라, 말 조심하여라, 노출이 있는 옷은 입지 말아라, 돈은 꼭 반반으로 내라, 학교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게 주의하여라.

선배들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왜?'라는 궁금증이 솟구쳤다.

왜,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해서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하고, 검열하고, 숨통을 죽여야 하는거지?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이런 주의를 주던 선배들도 피해자였다.



그 후 새내기 2학년 때는 학교 정문에 여성과 이대에 대한 온갖 모욕이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남성이 찾아왔다.

피켓에는 '닳고 닳은 __', '창녀', '____ 변기', 쓰고 버릴 __'등등 생전 태어나서 처음 듣는 모욕이 적혀져 있었다.

나는 그 피켓을 보고 집에 가면서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더욱 슬픈 것은 너무 화가 나 집에가서 엄마와 아빠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부모님은 도리어 화를 내며 '이런 쓸데없는 쓰레기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하여라'는 대답을 하신 것이다.

글쎄...내가 그때 이런 일에 신경을 그고 내 할 일이나 했으면 내 삶이 좀 더 나아졌을까?

그보다 면전에 대고 쌍욕을 퍼붓는 사람을 무시하고 '내 할일'에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2학년이 된 해에는 페이스북에 여성혐오 페이지에서 이대를 근거 없이 비방하는 글을 보았다.

댓글들은 언제나와 같이 충격적이었다.

가장 기억나는 댓글 몇개가 있다면, '이대생들 내장을 순대 썰듯이 썰어버려야 한다.' '이대생들은 군인들 총알받이로 써야한다.'등이었다.

평소같으면 두려움에 조용히 침묵하고 가만히 있었을텐데, 그 날 나는 왜 그리 화가 나던지...

나는 겁도 없이 본계정으로 근거없는 비방을 그만 하라고 댓글을 남겼으며 어쩌다 보니 거기에 상주하는 다수의 페북 유저들과 일대 다수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나의 페이스북 계정에 친구신청이 무수히 많이 들어왔고, 죽여버린다는 협박 메세지들이 잔뜩 도착하였다.

알고보니, 그 페이지에서는 나의 계정을 캡쳐하고 링크를 복사하여 일명 '신상털이'를 한 것이었다.

그 후 한동안 나는 인터넷은 일절 들어가지도 못했으며, 밖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고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총학생회의 도움을 받아 학교와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려고 경찰서에도 가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어차피 못 잡으니 포기하라'는 싸늘한 답변이었다.



그 후에도 화이트데이에 탈을 쓴 일간베스트 유저가 학교로 찾아오고, 학교의 졸업사진 기사에 국내 최고 취집대학이라는 댓글이 달리는 등, 이러한 사건은 수도 없이 일어났지만 나는 그때부터 대응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차피 대응을 하여도 나만 손해인 걸...어차피 반박을 하여도 변하는 게 없는걸...

나는 그렇게 학교가 욕을 먹어 슬프다는 후배한테 '그런 병신들 신경쓰지 말고, 댓글도 보지마라.'라고 얘기하는 선배가 되었고, 네이버에 학교 관련 기사에 달리는 '이대생들은 다 잡아다가 군인들 ____ 위안부로 써야 한다.'는 악성댓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다.

신경을 써봤자 나만 손해다. 무시하면 저러다 말겠지. 가만히 있자. 가만히 있자.

나에게 수백번 타이르고 타일렀다.



한 가지 착각한 것이 있다면, 무시를 하여도 혐오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더 커져갔고, 더 퍼져나갔다.

단지 이대생이라서 욕을 먹는다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후에는 단지 여성이라서 욕을 먹는 것을 목격하는 빈도수가 많아졌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에는 그러게 여자가 왜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냐, 꽃뱀 아니냐는 댓글이 수두룩했고, 남녀 임금차별을 다룬 기사에는 여자는 태생이 게으르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댓글이 베플이었다.

뉴스기사에 여성의 몸의 일부나 얼굴이 나오면 댓글은 기사의 내용보다는 성희롱과 얼평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단지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구나.

이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겠구나.



이번 강남역 사건과 그 전 메갈리아 열풍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시선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면 안 된다. 한 사건으로 남녀의 갈등을 극대화시키지 말자.

전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왜 그 같은 말을 좀 더 일찍 외쳐주지 않으셨나요?

셀 수 없는 많은 시간 전부터 수 많은 여성들이 모던걸, 창년, __, 화냥년, 된장녀, 이대녀, 김치녀등의 수많은 네이밍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에는 왜 혐오를 멈춰달라는 목소리를 내주시지 않으셨나요?

그동안은 무엇을 하다가, 그 혐오가 자신의 일이 된 지금에서야 말을 꺼내시는 건가요?

지금에서라도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하자며 이슈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수많은 억압과 차별을 없애는 것에 함께 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너무나 큰 소망인 것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나의 동갑인 친구가 여자인채로 번화가의 화장실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되는 것을 묵인하고 싶지 않다.

나의 선배가 졸업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만으로 댓글로 온갖 성희롱과 모욕을 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나의 동기가 혐오댓글을 보고 슬퍼할때 신경 끄고 할일이나 하라고 충고해주는 친구가 되고싶지 않다.

갓 입학한 후배들이 폭언을 듣고 눈물바람으로 집에 가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

나의 미래의 딸이 친구들과 놀러 집에서 나갈때, 일찍 들어오고 짧은 옷은 입지 말고 밤길 조심하라며 충고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대상화에 웃고 넘어가고 싶지 않다.



영국 여성의 첫 참정권은 고상한 대화가 아닌, 방화를 하고 벽돌로 유리창을 깨며 말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행위들을 함으로써 얻어졌다.

그리고 영국사회는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못생기고, 집안일을 안하며, 사회성이 부족한 여자'로 일반화하였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들이 쓴 방법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아니였다면 여성에게 투표권은 과연 주어졌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력하여야 여성이 짧은 옷을 입고도 밤길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사회가 올 지 모르겠지만, 분명 작은 변화는 큰 변화를 일으킨다.

때문에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서는, 현재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혐오를 역사책으로 배우며, 미개하고 잘못된 인식이었다 교육될 세상이 올 것을 나는 믿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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