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는 무섭습니다.
도망치면 아니 된다 배웠습니다.
이겨내어야 한다 그리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밤하늘 아래 몸을 뉘이면
감당 하지 못할 두려움이 나를 감쌉니다.
아버지 나는 무섭습니다.
집은 무엇인가요,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주인 없는 지붕 아래 땅은 집이라 부르면
아니 되는 것이라 그리 배웠을 터 입니다.
머나먼 고국 땅에, 사랑하는 조국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그 땅에,
아픔과 슬픔이 차다 못해 넘쳐나는 와중에도
저는 이곳에서 유유자적 지내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 은
아득한 제 슬픔인 것이라
우리는 이제 집이 없어 쉴 곳이 없습니다.
시간이 반 하루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이 부족하지 않는 저의 아픔은
실로 보잘것없어서 자랑할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운 용현동 집 앞, 노인정 장기판 위의 김씨 할아버지 말마따나
세상에는 보다 큰 아픔들이 많고 그래서 제 아픔은 기가 죽습니다.
지금 조국의 아픔은 그 무엇보다 큰 것이겠지요.
제가 아무리 남의 나라의 글씨로
조국의 이름을 멋드러지게 쓴다한들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어야 한다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 배웠을 터 입니다. **
저는 훗날 제 아이에게 뭐라 변명해야 할까요.
분명 저 아비 닮아 마음이 여려 몸이 여리고
생각이 많아 그 무게로 두통이 잦을 터인
그 어여쁜 피붙이에게
저는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저 달은 질 생각을 하지 않고, 별들은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어서 해가 떠야 해바라기들이 봉우리를 피울 터인데요.
분명 “구르미 그린 달빛” 이어야 할 터인데요.
저 거리에는 반딧불이들 무수히 떴다지요.
동토에 여명이 오지 않으니
저들 빛으로 얼어붙은 땅 녹여보려 했나 봅니다.
저들은 모두 제 누이이고 형님이고 학우이고 부모입니다.
두꺼운 옷을 입고 나가야 버틸만한 나날들이 왔는데
옷깃을 여며 폐부를 찌르는 찬 바람은 막아 보아도
텅 빈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은 막기 어렵습니다.
螢雪之功이라 저 숭고한 불빛들 아래 공부해야 할 저는
憂國之情이 먼저 들어 책을 잡기가 힘이 듭니다.
立身揚名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我田引水하는 저들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약수동의 달은 어디로 간 것일 까요.
동네가 바뀌고 땅에 돈이 흐른다 하여
저 달도 썩어 버린 것일 까요.
아버지 나는 두렵습니다.
신문고(申聞鼓)의 소리는 달에게 닿질 않고
신문(新聞)고는 한동안 입을 다물더이다.
관철되지 않는 정의가 뿌리 박힌 하늘 아래
우리는 무슨 의미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윤동주, '序詩'
십일월 십이일, 머나먼 타국에서
마음마저 추워지는 시기에 고생하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고향땅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文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