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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이 쓴 대한민국 이야기

여고생 |2016.11.17 17:14
조회 60 |추천 0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을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북한과의 경기였는데, 그 당시에도 챙겨보지 않은 경기를 오늘 보게 된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과의 대결이라면 모를까, 북한과의 대결이라니 조금 마음이 이상했다. 하지만 여느 사람이 그렇듯 나는 경기를 보는 내내 한국을 응원하기에 바빴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대로 한국은 연장 후반, 골을 넣어 1:0으로 우승하게 되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화면에는 엎드려 고개 숙인 북한 골키퍼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러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해짐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여주기는 잠시 뿐이고 이내 기뻐하며 환호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담겼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엎드려 있는 우리 선수들 또한 비쳤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 옆에는 북한 선수들도 엎드려 고개 숙인 채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선수들 모두 같은 자세였지만 그들의 마음 또한 같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한 명은 승자요, 한 명은 패자이기 때문이다. 승자는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랬을 테고, 패자는 그 서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화면에는 꼭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 함께 담겨야 했을까?

 

 북한 선수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오로지 이 금메달만을 위해 죽을 듯이 노력했을 텐데. 아, 그렇다고 해서 한국 선수들의 노력이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나라 선수들은 조금 더, 아니 조금 많이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노력했을 테다. 그 환경이 다른 것은 엄연한 차이가 맞다.

내가 경기가 끝나고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가 이겨서 좋은 기쁨보다도 다가올 북한 선수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축구를 잘한다고 해서 뽑혀서, 이 날만을 기다리며 연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승전에서 우승이라는 문턱 앞에 있었고 실제로 골을 넣을 여러 번의 기회도 있었다. 정말 그 문턱에 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은 대한민국에게 단 한 개의 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것도 연장 결승에서.

그들이 북한에 가서 과연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승자와 패자의 모습은 늘 역설적이다.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슬픔이 대비되는 건 당연시된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라면서 어느 경기에서나 승자는 존재하고 패자도 존재한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늘 승자는 기뻐 울고, 패자는 슬퍼 운다. 역설적이지 아닐 수가 없다. 난 단 한 번도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올림픽은 세계인이 경쟁하는 거지, 축제가 아니다. 축제는 모두가 즐겨야 하는 건데, 올림픽의 모든 경기는 승자와 패자를 규정한다. 심지어 승자 내에서도 색깔에 따라 더 잘한 사람, 덜 잘한 사람이 나뉘게 된다. 모두의 노력은 같은데도. 올림픽 시즌만 되면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누가 금메달을 땄네, 어쩌네 하면서. 최근에는 조금 나아진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라들 중 가장 메달 색에 연연하는 나라일 것이다. 국가에서 금메달과 음메달, 동메달에 해주는 대우도 달라지고, 사람들도 은메달, 동메달 보다는 금메달에 환호하기 때문이다.

 

난 사회 어느 곳에서나 승자와 패자가 나뉘어지는 것이 너무나 싫을 뿐이다.

 

승자와 패자는 사회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은 승자와 패자를 규정짓는 자주 쓰이는 말이 되어버렸다. 어느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데 자신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비리가 만연하고 뇌물로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시되는 것이다. 금수저라는 단어는. 이렇게 퇴색된 더러운 사회에서 어느 누가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승자와 패자가 대비되는 게 정말 싫은데, 이 사회에서는 승자는 너무 잘나고, 패자는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패자는 승자가 될 수가 없는 것 같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축구경기였다.

하나의 경기로 이렇게까지 긴 글을 쓰게 된 건 역시 우주의 기운 때문인가.

 

물론 상대팀이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마 나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어다녔겠지. 그것 또한 나의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사회가 승자와 패자를 더는 대비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민족이었는데 축구경기에서 이겼다고 슬퍼하는 북한 선수들과 우리나라의 선수들을 화면 내에서 그렇게 함께 비춘다는 건 너무나 잔인하기에. 이 사회가 승자와 패자를 대비시키지 않으려면 어느 누구나 승자가 될 수도 있고, 패자가 될 수도 있어야겠지. 우리나라에서 승자는 영원한 승자이고, 패자는 너무나 많은데, 아직 먼 얘기로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음 좋겠다. 흙수저가 영원히 금수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것보다도 더 슬픈 일은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일테다. 더는 우리 사회가 승자와 패자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패자도 언젠간 승자가 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사회,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고 1 여학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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