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꼭 대학을 가야만 성공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가득했고 중학교 때 왕따를 겪었던 나로써 대인기피증이 있었기에
부모님은 고등학교를 진학했다는 것 만으로도 난 충분히 잘해냈다고 하셨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난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잘 살면 되지, 남부럽지않게 살면 되지 그저 허망한 생각뿐이었다. 윗글에 중학교 때 왕따를 겪었다는 일을 잠시 거론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풀어보자면 그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잘못된 입방정과 이상한 소문 때문이었다. 대인관계에선 한번도 문제를 느껴보지 못했던 나로써는 정말 지옥같은 나날들이었고, 죽고싶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나를 간신히 달래 고등학교에 보내신 부모님께는 지금도 나를 붙잡아 주신것에 너무 감사하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정말 남부럽지 않게 잘지냈다. 그 사건이후 사람들을 잘 믿지못했던 나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나의 상처는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변화하였고 끝내 사교성넘쳤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항상 나의 곁엔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나를 보호해주고 함께해주었다.
3학년이 된 3월.
내가 고3이 되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았고,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못해 직업과정을 선택하였기에 직업위탁생으로 다른 학교에가서 전문직업과정을 배웠다. 내가 선택한 것은 미용이었다. 항상 친구들사이에서 머리나 화장담당은 나였고 내 성격상 서비스 직은 나와 잘 맞았다. 새로운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도 즐거웠고 여러가지를 배우며 나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3학년이 된 4월.
그곳에선 내가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다. 내신등급 4등급이 나오는 아이가 왜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했을까.. 그곳은 거의 6~8등급의 친구들이 많았다. 갑자기 나의 성적이 아까웠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곳을 조금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내 성적에 이름들어봤을 법한 대학을 막 쓸순 없었지만 그래도 미용쪽으로 알아주는 수도권 대학정도는 쓸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난 취업과 기술이 먼저였기에 대학에 대해 그렇게 큰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3학년이 된 5월.
자격증을 따기위해 노력했다. 미용실에서 몇개월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자격증의 중요성을 느꼈다. 솔직히 면허증이 나오기에 자격증이 필요없다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자격증여부를 보는 곳이 많았다. 3월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는데 왜 미용실에서 알바를 하게되었냐고 묻는다면 일단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메이크업 쪽에선 스텝을 뽑지않았다. 직업학교에서도 메이크업보단 헤어가 비전이있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실습도 헤어의 비중이 가장높았다. 또한 나는 무대분장쪽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무대분장은 배우지도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먹고 사는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학년이 된 6월.
선생님과의 다툼이 잦아졌다. 미용실의 실무와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은 많이 달랐고, 내가 쫓아가기에는 이미 내 몸에 박혀진 방식이 있었다. 자격증을 따기위해 학원을 다녔었지만 학원과 학교, 미용실에서 배우는 미용은 각자 모두 달랐다. 많이 혼란스러웠고 그럴때마다 트러블을 더욱 격하게 나를 찾아왔다. 사실 미용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낀 시점도 이때였다. 주6일 근무에 열정페이, 손은 항상 샴푸독에 올라있었고 손님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갑질이 무엇인지를 정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고 미용실안에선 경력대로 무시당하고 까였다. 사회현실이 이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알고있는 거랑 직접 느끼는 거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진짜로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3학년이 된 7월.
계속해서 내가 진짜로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되었다. 그저 어떻게든 성공해서 먹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면서 살기엔 내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미용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느낀 개인적인 나의 관점이자 생각이었다. 나는 아직도 미용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있는 일을 찾아 보았을 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할 줄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었다. 고객응대는 자신있었다ㅋㅋㅋㅋ그저 스트레스 이빠이 받을 뿐이다. 나는 중학교 때 부터 계속 연극부 활동을 해왔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1때까지 나의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고, 중학교 시절 왕따로 인해 그 꿈을 접은 체 살아왔다. 뮤지컬을 이제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쉽게 시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잘할 자신도 없었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나고 무대를 더욱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그 안에서 빛을 낼꺼란 보장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나의 꿈을 찾았다. 매일 나의 미래에대한 불안함에 울고, 힘들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스트레스를 받아 갑자기 살이 확 찌기 시작했고, 탈모는 아니었지만 머리숱도 굉장히 많이 빠졌다. 밤엔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울다지쳐 잠드는 일상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어느날 친구와 기분전환으로 연극을 보러갔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난 아무것도 하지않았고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난 어렸을 적 부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도 대본을 쓰고, 각색을하고, 연출을 하는 일은 항상 나의 담당이었다. 그냥 내가 좋아서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기획부터 연출, 대본창작, 연기 까지 연극의 모든 부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항상 행복하게 했고 그 무대가 실현되었을 때 느꼈던 설렘은 아직도 나와 함께한다. 드디어 꿈을 찾았다 연출가가 되야겠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7월이 지나갔다.
3학년이 된 8월.
연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러 다녔다. 연출가를 어떻게 준비해야하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공연을 많이 보기 위해 노력하였고 공연이 끝나면 항상 느낀 점을 작성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대학의 중요성을 느꼈다. 대학의 타이틀을 갖기위해서가 아닌 내가 배울 수 있는 곳이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노력했고 희곡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연출안을 작성해보기도 하고, 대학 실기에 맞춰 주어진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기도 했다. 인물을 분석하고 배경을 분석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공부에 별 흥미도 관심도 없었던 내가 가장 집중력을 가지고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연출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저 이것을 할 수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드디어 나의 꿈을 찾았다는 생각에 늦은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3학년이 된 9월.
직업학교에선 연출을 계속 공부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보기엔 꾸준히 하지도 못하고 금방 때려치는 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꿈을 위해서라면 더 큰 일도 때려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난 늦었으니까. 다른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걸 다 놓아야 했으니까. 주위의 시선은 좋지않았다. 이제와서 니가 뭘 하려고하느냐. 연극이 쉬운줄 아냐. 니가 될 것같냐. 많은 비난을 받고 또 그만큼 사람들이 나에대한 관심이 컸다. 쟤가 성공하나 보자. 뭐 이런 시선이었던 것 같다. 복교신청서를 내고 본교로 돌아왔다. 나를 반겨주는 건 내 친구들 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항상 내가 계속해서 연극을 하길 바래왔던 아이들이여서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었고 위로해주었고 매일 용기를 주었다. 실습위주로 학교생활을 하다 돌아와 계속 앉아서 공부하려니까 익숙치않았다. 딱히 공부도 아니였지만 그 분위기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계속 연출에 대해 분석했고 책을 읽었다. 멀리는 가지 못했어도 틈틈히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기도 하였다.
3학년이 된 10월.
난 연출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대학로 연극이란 그저 상업극에 불과했다. 난 대학로 연극을 보면서 많은 위로와 공감을 할 수 있었는데 연출하는 사람들은 항상 희곡작품으로 올려지는 공연만을 우선시 하였다. 10월부터 입시는 시작되었고, 성적이 되든 안되든 무조건 연출과 관련된 학과가 있는 대학교라면 다 집어넣었다. 난 정말 이름 모를 대학교여도 연출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전문대건 4년제건 연극영화과가 있는 대학교는 모조리 정보를 수집해 연출전공이 따로 있는 대학교를 찾아냈다. 연극연출관련 학과는 많지않았다. 그래도 되는 대로 다 집어 넣었다. 실기를 보러가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고 학교가 많이 없는 만큼 경쟁률도 굉장히 높았다. 10월달은 정말 면접과 실기준비만 죽어라 했던 것 같다. 학교 끝나면 면접준비 학교에선 포트폴리오와 글쓰기 준비. 쉬고 싶고, 그만 준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배울 수 있는 길은 이길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매달렸던 것 같다. 면접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어려웠다.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라 대학별로 입학처에 전화하고 자료실을 확인하고 작년 후기등을 찾아보며 준비했다. 막상 실기때가 되니 머릿속이 하얘졌고 소신껏 이야기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0월은 처음으로 연출이라는 것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크고 높은 벽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학년이 된 11월.
실기가 하나 둘씩 끝나고, 수시2차를 준비하기 전까지 조금의 쉴 틈이 있었다. 무조건 놀았다. 이 시간 말고는 또 없을 것이란 생각으로 놀고 또 놀았다. 어차피 정시준비를 하기엔 1년동안 배운 학문이 미용밖에 없었기에 아예 정시는 포기했고, 수시에 목숨걸자는 생각으로 지냈다. 아이들은 정시가 끝나면 이제 숨통이 트이겠지만 예체능인 나로서는 2차의 시작이므로 정시가 끝나기 전까지 노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노는 것은 주로 연극을 관람하며 놀았다. 이제 대학로를 걷다보면 3분의2정도는 내가 본 공연의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11월말인 현재. 나는 수시2차를 준비하고있다. 이미 시작된 학교도 있고, 실기 일정을 기다리는 학교도 있다. 지금은 대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나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내가 하고싶은 일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없어지는 것 같아 많이 조급해했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수시 1차 때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을 때면 막막한 현실에 좌절하며 다시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일까 수시2차는 나를 더욱 억눌렀고 힘들게 하였다.
엄마는 모든것을 내려놓자고 하셨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정신을 차려야 겠다는 생각에 지나온 길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공연을 하던 나의 모습, 미용을하며 힘들어하던 나의 모습, 왕따를 당하던 나의 모습, 꿈을 찾지못해 잠못이루던 나의 모습들을 보며 지금의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좌절하지 않고 정신차리기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며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대학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부턴 한번도 대학을 안가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대학에 목숨걸지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매우 짧았던 나의 고3레이스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내가 얻은 것은 나에대한 믿음이었다. 하루하루 불안했지만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같다. 정말 정신병자 같이 하루하루를 보낸 건 사실이다. 아마 고3 학생들은 느낄 것이다. 수능과 수시가 다가올 수록 예민해지고 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내 글을 읽으며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결과를 알면서도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이곳엔 이제 꿈을찾아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이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전하며 방황하는 친구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분명 이곳엔 말을 하지않아도 나보다 더 큰 시험과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분들에게도 정말 대단하다는 마음을 표하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대학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들의 재능에 초점을 맞춰주고 배려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나는 대학이라는 문에 들어가기 위해 생쇼를 다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꼭 그 길이 아니여도 된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잠시 넘어지더라도 꼭 나의 레이스를 완주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꿈을 찾지못해 힘들어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였다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에 비해 나는 지금이라도 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다. 결과가 모두 나오지 못해 나의 진학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내곁에는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를 믿어주는 내가 있기에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 길을 걸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다보면 나의 간절함을 알고서라도 한번쯤은 그 문을 열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 여러분들에게 읊어주고싶다.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꽃들도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자
길고 긴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함께 나누고싶었어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싶으신 분들 댓글. 쪽지 뭐든 좋습니다. 남겨주신다면 함께 이야기하고싶네요^^
이제 고3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수능이 끝난 지금의 고3학생들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재수생분들도
모두 여러분들의 계절을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