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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을 소환한 사람 : 김치

알타이 |2016.12.27 17:38
조회 318 |추천 1
한국계 염라대왕2012.12.05

있고 저승사자를 부리고 있으므로 염라대왕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박우는 그리 오래 염라대왕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거겠네요. 네번째, 김치金緻(1577~1625). 염라대왕으로 제일 유명한 인물...


김치는 광해군 때 홍문교리(弘文校理)로 있다가 어떤일로 관직에서 물러나 용산으로 나가 살면서 두문불출했다.

 

김치가 어느날 자신의 점을 쳐보니 수변인(水邊人 : 물수변이 붙은 姓名의 사람)의 도움을 입게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있으니 전날 친분이 깊었던 심기원(沈器遠) 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김치는 문득 앞서의 점괘가 떠올라.

 

"음, " 수변인" 인 "심씨(沈)" 아닌가.....혹시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일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두사람은 오랫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가 많은 시간이 흘러 밤이 제법 깊어졌는데.

 

심기원이 자신의 사주(四柱)와 또 다른 사람의 사주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아, 내 운수점을 좀 쳐주고, 그리고 또 이 사주를 가진 사람의 운수도 한번 봐주게나,"

 

"응, 그러지, 그런데 자네 운수야 내 이미 알고있고, 헌데 이 사람은 누구인데 운수를 봐달라고 하는건가?

  어디 한번 보기나 할까?"

 

그런데 그 사주를 가지고 점을 치던 김치가 갑자기 놀라면서 일어서더니,

 

그 사주 적힌 종이를 상 위에 올려놓고 향을 피운 다음 의관을 정히 갖추고는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 사주는 능양군(綾陽君 : 반정 뒤에 왕위에 오른 인조 임금) 의 것으로, 광해군을 몰아내려는 반정 계획을

 

꾸미는 사람들이 뒤에 임금으로 받들려고 하는 분이었다.

 

이때 심기원이 이 반정 계획에 가담하여 능양군의 사주도 알아보고, 그리고 반정 날짜를 점치려고 김치에게 은밀히 찾아온 것이었다.

 

이날 밤 심기원은 같이 자면서 반정 계획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그리고 김치는 반정 거사의 좋은 날을 점쳐 그에게 알려 주었다.

 

이렇게 해서 인조반정이 성공하니, 심기원은 김치가 좋은날을 잡아준 것을 드러내며 그가 광해군 때 저지른 일에 대래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그 결과 김치는 다시 관직에 올라 마침내 경상도 관찰사(觀察使)가 되었다.

 

김치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안동 지역을 순행하던 중 학질에 걸려 큰 고통을 당했다.

 

그런데 누가 학질에 걸렸을 때에는 검정 소를 꺼꾸로 타고 있으면 낫는다는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치가 검정 소를 거꾸로 타고 다녀 보았으나 병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내 이제 명이 다했나 보다. 기운을 차릴 수가 없으니......."

 

김치는 이렇게 자신의 멍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도 머리가 아파서 방으로 들어가

 

한 기생의 머리를 베고 누웠다.

 

무릎을 베고 누워 기생을 쳐다보면서 김치는 별 생각없이 기생의 이름을 물었다.

 

"얘야, 네 얼굴이 참으로 곱구나. 네 이름이 뭐지?"

 

"얘, 나으리 . 소녀 이름은 일지화(一枝花)라고 하옵니다."

 

"음........일지화 ! "일지화"라고 했느냐. 그리고 여기 안동 지방은 또다른 이름이 "화산(花山)"이렸다."

 

이때 김치가 문득,

 

"화산에서 소를 탄 손님, 머리에는 일지화를 이고 있네(花山騎牛客 頭載一枝花)."

 

라는 글귀가 떠올랐다.전날 김치가 중국에 가서 한 술사(術士)를 만나 점을 쳤을때 그 술사가 적어 준 글귀였다.

 

김치는 이 글귀가 바로 지금의 자기 모습에 부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질 때문에 소를 타고 다닌 곳이 바로 여기 화산이고, 그리고 지금 일지화의 무릎을 베고 있으니 곧 일지화를 이고있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치는 생명이 다 되었음을 직감하고 , 기생을 시켜 목욕물을 준비하게 하여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새 이부자리를 펴게 하여 거기 누워 길게 한숨을 쉬고는 영원히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김치가 사망한 날, 삼척 부사(三陟府使)가 동헌 에 앉아 있으니 뜻밖에도 경상도 관찰사 김치가 많은 부하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이에 당황한 부사는 주위 사람들에게,

 

"거참 모를 일이네.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지만, 어찌 경상도 관찰사 직책에 있는 분이 예고도 없이 강원도 고을인 삼척

 

관아를 방문한단 말인가?"

 

라고 말하며 그를 맞이해 들였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게 된 까닭을 물으니 그는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 아, 나 말일세. 지금 염라대왕이 되러 가는 길인데, 마침 여기를 지나게 되어 친분이 있는 관계로 자시 들렀네.

 

그런데 내가 염라대왕으로 가서 입을 새 관복이 준비되지 않았으니, 부사가 내 새 관복을  한 벌 마련해 주게나."

 

이 말에 삼척 부사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비단 한 필을 내어주니  김치는 이를 받아 가지고 떠났다.

 

김치와 작별 인사를 한 부사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김치는 바로 그날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김치가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말이 세간에 널리 전파되었다.(조선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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