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6일.현재 시각 오전 5시 41분을 경과하고 있었다.강원도 춘천으로 향하는 경춘선은 아직 한적했다. 이제 막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라서 그런 모양이다. 내 대각선 앞좌석에 앉은 아주머니는 목도리를 두른 채 허연 입김을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저쪽 한 좌석 건너편의 청년은 새벽의 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눈을 감은 채 양손을 비비고 있었다.이렇게 차디찬 한겨울의 새벽녘부터 나는 전철을 타고 이 쓰잘데기없는 불쏘시개를 끄적이고 있었다. 어째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냐고 묻는 눈치 없는 이는 없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른 누군가는 활기 넘치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인파 속에서 마지막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하는 것은 오직 나밖에 없을 테니까.그렇다. 나는 이 한심하기만 한 인생의 마지막 도장을 찍기 위해서, 부질없는 이 한목숨을 마무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바보 같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자신이 벌인 모든 짓거리에서 도망치는 길을 택한 것이다.‘청량리, 이번 역은 청량리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라는 안내문이 귀를 괴롭혀댄다. 내용은 알아도 알아듣기는 힘든 영어와 일어로 떠들어대는 두 번째 세 번째 방송이 끝나자, 이윽고 전철이 움직임을 멈추고 몇 안 되는 승객들이 열차를 떠나 오늘의 일과를 맞이하러 간다. 나에겐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리라. 적어도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조용히 떠나고 싶었으니까.서른. 며칠 남지 않은 올해가 끝나면 곧 서른하나가 될 내가 어쩌다가 이런 서글프고 부질없으며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된 건지 구구절절이 읊고 싶지만 그리하기엔 내게 남겨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뭐 그래도 굳이 짧게나마 몇 줄 써보고자 한다면 쓰지 못할 것도 없겠지. 한 마디로 실패한 인생의 말로라고나 할까. 본래 인생이 결국엔 빈손으로 떠나간다지만, 지금의 나는 살아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넷상에서 소위 말하는 __ 인생이나 다름없었다. 하려던 일은 모두 다 실패했고, 내 손에 남은 건 빛이 보이지 않는 빚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차가운 기계 상자에 앉아 마지막을 향하는 것이었다.퍽퍽하고 어두컴컴하기만 한 삶이다. 모든 재앙을 담아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마저도 마지막에는 희망을 남겨놓았건만, 내 인생이라는 상자에는 담겨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새카만 어둠 구덩이의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라.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그것도 너무 큰 문제가.나는 자신이 없었다. 살 자신이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이 현대사회의 틈 속에서, 다른 이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앞에 선다는 것이 나에겐 어찌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던지. 타인과 섞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이 시대에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두려워한다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으리라.아침 7시 30분경.내가 내린 곳은 경기도 가평이었다.아직 새벽녘의 추위가 가시지 않아 입가에서 얼얼한 입김이 새어 나온다. 역에서 나와 건너편의 정류장에서 30분은 넘게 버스를 기다렸던 것 같다. 뒤편의 허허벌판을 바라보며 피는 담배가 타들어 갈 때마다 내 목숨도 사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휑한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이윽고 도착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해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 찾은 가장 가까운 산은 연인산이었다. 몇백 미터 걸어가야 도착하는 가평군청을 지나 초등학교 뒤부터 산기슭을 올라갈 수 있는 듯해 무덤덤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길이 몇 킬로나 되는 장거리였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수도권에서 떨어져 있는 탓인지 지도는 정말 엉망이었다. 빌어먹을 X이버 같으니. 바로 옆이 소위 감자국이라 부르는 권외의 지역이라지만 지도가 이렇게 틀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마지막을 향하는 여정은 시작부터 고단했다. 지도에서는 분명 초등학교의 바로 옆으로 길이 있다고 했지만 내 앞에 그런 길은 없었고 결국 몇백 미터는 되는 길을 뺑 돌아가야만 했다. 학교 뒤쪽의 4차선 도로에 도착해 이제야 길을 찾아가는 도중 몇몇 차들이 학교 뒷문의 근처에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나도 15년 전쯤에 부모님이 나를 데려다주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뒤론 정말 하염없이 걸었던 것 같다. 가는 길 중간에 있던 편의점에서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에 술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맥주 한 병을 사 종이봉투에 넣고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겨울철이라 장사가 안되는 모양인지 연인산으로 올라가며 마주친 펜션들은 하나같이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가평군천에서 용추폭포까지의 거리는 약 7km.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던 놈이 이 거리를 한겨울에 걸어왔으니 나도 참 앞뒤 안 가리는 무식한 놈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정상까지 걸어야 할 거리는 자그마치 14km니 이제 겨우 반절조차 오지 않은 셈이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옆의 개울에 수그려 목을 축인 후 나는 다시 무덤으로 정한 곳으로 출발했다.
뒷이야기는 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