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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동안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살려주세요.

OO |2017.01.24 01:47
조회 3,799 |추천 13
저는 20대 중반 소설가로 활동하는 여성입니다.
소설가라는 직업 특성상 주작아니냐는 말부터 나오겠지만...용기내어 글을 올립니다. 글이 매우 길 수 있고 두서없이 적겠지만... 한 번쯤 조언부탁드립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약 8년 전에 네이트 판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8년전이고 오래되어 제목이 무엇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내용은 얼추 기억합니다.

새아빠가 기초생활수급비로 유흥을 즐기고, 엄마를 비롯 제 다섯 동생들은 헌옷을 입는다는 점, 가난해서 밥 한끼 조차 먹지 못하는데 새아빠는 제게 어린동생(계부와 엄마 사이 자녀)을 맡기고 피시방을 갔다는 점, 매일 같이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서 1388에 도움 요청했다는 점, 집에서 매번 쫓겨나고 저는 가출 생활만 오랫동안했다는 걸 적었습니다. 그때 글을 올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새아빠(이하 계부라 하겠습니다.)가 네이트에 글을 올렸냐면서 저를 때렸고 그 글을 올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때 금전적 도움은 못주더라도 옷 같은 거 보내주시겠다는 분의 댓글만 확인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에 주작아니냐고 그런 집이 어딨냐는 소리도 들었었죠....



저는 그때부터 현재까지도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실 제목에 6년이라 적은 것은 제가 그 글을 쓰고 쫓겨난 뒤, 오갈곳이 없어서 떠돌던 차에 서울 청소년쉼터에서 지냈습니다.

그 후에는 단기 청소년쉼터 여러곳을 돌아다녔고요. 그래서 그곳에서 지낸 2년은 제외하였습니다. 행복했거든요.

저는 장녀이고 제 바로 밑에는 아빠가 같은 동생 1명, 계부와 엄마(친엄마예요)사이 태어난 동생이 3명이 있습니다.

저와 둘째는 성인이고, 밑에 아이들은 아직 어립니다. 초등학생이고 유치원생이니까요.

계부는 올해 40대 중후반으로 알고있습니다. 사실 나이도 잘 몰라요. 제가 아는 것이라고눈 그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이 엄마와 재혼 전 낳았던 아이의 이름, 엄마와 혼인 관계일 때 다녔던 회사 정도입니다.

계부는 현재 어머니와 합의 이혼을 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뭘하는지는 모르나, 근래 어린동생들 명의로 핸드폰을 개설하여 사용한 전황은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사람의 현부인인지 아는사람인지 몰라도 40대여성의 연락처, 거주지역을 확보한 상태예요. 저는 이 사람을 꼭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아래는 제가 왜 이사람을 잡아야하는지 적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첫입학을 했을때. 계부는 어머니와 셋째(계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첫째)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시 바로 밑 동생이랑 외조모님 밑에서 살았고요.

외가에 저를 맡긴사람은 친아빠였고, 친아빠는 데리러온다는 말만 남기고서, 16살이 지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도록 연락되지않았습니다. 현재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길이 없어요. (이따금 인천 연수구 피시방에서 돈 안내고 도망쳤다고 딸인 제게 경찰이 연락오는 정도)

솔직히 외가에 살면서 다 쉬어빠진 음식을 먹고, 남이 버린 것들 주워서 씻어서도 먹고, 쥐가 오줌 싼 이불을 덮고, 하얀 옷이 누렇게 되고 구멍이 나도 입을 옷이 없었고, 목욕은 여름에 다리 밑에 물놀이 가면 그때 한벋 씻었습니다. 그마저도 바디워시 같은 걸로 씻는게 아니라 그냥 물에 들어가서 때 불리고 미는거죠. 머리 감을 샴푸도 없어서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로 감았고요. 한겨울에는 따뜻한 물 나오는 보일러마저 없어서 꽝꽝 언 얼음 깨서 머리 감았어요. 볼일 보고 나면 휴지는 4칸밖에 못썼습니다. 4칸이상 쓰면 맞았어요. 아껴쓰라고.

집도 있는데 왜 그러냐고 생각하실텐데.. 당시 제가 살던 집은 밭으로 된 땅에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겨울 난방은 연탄보일러로 했지만 우풍이 심해서 늘 추웠고, 집 안에는 늘 곰팡이 냄새가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 어떻게 살았나 싶더라구요. 외갓집이 많이 가난했지만.. 그때 거기서 사는 건 사람이 사람사는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죠. 저는 가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조부모님은 평생을 남들 일 해주는 사람으로 살았고,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집마저 일시키는 사람의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친아빠 폭력에 사라져서 연락도 안 되고, 이모와 삼촌들은 자기들 먹고 사는게 바빠서 저흴 외면했어요. 친가쪽도 마찬가지고요. 친가쪽은 너희 같은 애들 모른다며 저랑 바로 밑 동생을 무시하고 연락도 하지말랬어요.

그러던 차에 제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제가 학비가 없어서 자퇴하려고 했을 때였어요. 교복 살 돈도 없다고 외갓집에선 니 아빠 찾아가라 이러고 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당시에 제가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길은 많았는데.....정말 몰랐습니다. 저 그때만 해도 시골소녀였거든요. 저를 도와줄 어른들이 없었어요.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아무튼 이모통해서 엄마랑 연락하고... 엄마랑 연락되자마자 엄마랑 살고 싶다고 외갓집에서 못살겠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럼 같이살자고 그랬죠.

그때가 제가17살 되던 해입니다. 정확한 건 기억이 잘 안나지만 겨울이었고요. 많이 추웠어요.

엄마랑 같이 살러갔더니 웬 아저씨가 있더군요. 엄마는 저와 바로 밑 동생에게 그 사람한테 아빠라고 부를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친아빠도 아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아빠라 할 리가 없잖아요. 저는 엄마하고만 살줄 알고 왔더니 어린 애기 안고 있더라구요. 거기에 이제 갓 태어난 아이까지요.

처음에는 계부가 저를 때리지않았습니다. 하지만 매번 어린 동생을 저한테 맡기고 피시방나가고, 수급비는 매달 20일에 나오거든요. 그 수급비가 나오는 날에도 집에는 먹을 게 나라미 밖에 없었어요. 그마저도 없을때도 많았어요. 나라미를 자기멋대로 자기친구한테 주고 그랬으니까요. 당시 넷째는 태어난지 4개월? 정도였어요.

분유먹을때였거든요. 분유도 제가 다 타서 먹이고 엄마는 넷째낳으면서 거의 죽을뻔한걸 겨우 살았다고...늘 집에 누워있었어요. 그래서 애 보는 건 제일 나이 많은 제 몫이었어요. 둘째는 자기 사춘기라고 봐주지도 않았고요. 근데 애 돌보는게 돈이 장난아니더라구요. 처음에는 제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동생 젖병도사고 분유도샀어요. 근데 집에서 제가 애를 암보면 아무도 안보는거예요. 엄마는 곧죽겠다고 골골거리지, 둘째는 집에서 마주쳐도 대화도안하지, 계부는 맨날 놀러다니지.... 결국 제가 알바 그만두고 동생을 돌보게되었어요. (전 학교 안다녔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넷째 동생은 아빠가 다른데도 애정이 깊어요. 제가 똥기저귀 다 갈면서 키운애라서요.

제가 애를 보는동안 계부는 수급비로 노래주점을 다니고 자기만 정장 사입고 자기 회사동료랑 술집갔습니다. 근데 웃긴게 이사람은 술을 못마셔요. 그냥 자기가 있어보이려고 술값 계산한거죠. 그리고 수급비가 당시 120정도면요.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많이 받는거잖아요. 그런데 계부는 수급비로 분유도 안사고. 옷도 안사고(맨날 자기꺼만 삼). 피시방 가서 리니지2 월정액끊고 한달 피시방비만 40만원 넘게나오고...일은 또 안하고 ㅎㅎ..나라에서 그 사람 유흥 즐기라고 돈주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집이 가난하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 돈을 주는 거잖아요. 집 보살피라고. 하지만 그 사람은 그 돈을 모두 자기가 썼습니다. 자기는 비싼 양복,비싼 구두, 염색까지하고요. 향수도 사고요. 엄마는 입을 옷도 없어서 제가 인터넷으로 산 4900원짜리 티셔츠 목 다 늘어난것들 그런거 입었어요.

당시 수급비는 엄마 통장으로 나왔구요. 저를 포함하여 4명의 동생들에 대한 돈이었습니다. 다자녀 뭐 그런 것하고 해서요. 그리고 친아빠가 엄마랑 이혼안해줘서 사실상 법적으로는 계부와 엄마는 남이었어요. 수급비를 자기가 빼서 쓸 권한 자체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도 그 사람이 수급비 쓸 수 있었던 건... 돈을 주지 않으면 저를 때렸어요. 저더러 돈 벌라고. 니가 벌어서 자업자득 하라고.(이 사람은 자업자득 뜻도 모르는 듯했음.) 그리고 제가 수급비만 모았어도 제대로 된 집에 제대로된 밥 먹었겠다고 했다가..

그뒤로 눈만 마주쳐도 맞게되었습니다. 제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고요. 집에서 잘못된걸 말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더 미워보였겠죠. 수급비 당신이 뭔데 쓰냐고 애들 뭐 하나라도 더 사주라고 했다가 그날 기절하도록 맞았어요. 나중에서야 둘째가 울면서 저 깨워서 제가 기절한줄 알았죠. 저 죽는 줄 알았대요. (전 맞은 것만 기억있고 후에 기억은 없었어요)

저는 늘 맞았고. 입에 담지도 못할 말로 욕까지 들었어요. 자살하고 싶다가도 어린 동생,아픈 엄마 보면 나 없으면 이 사람들 다 죽겠다 싶더라구요. 내가 철이 일찍 들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당시 저는 가족들을 지켜야겠다생각했고, 죽고 싶은 것도 참았죠.

계부는 어린 동생들이 운다고 구두신고서 발로차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주 어린동생이 분유 못먹는 날이 너무나도 많아서 제가 쌀을 곱게 갈아 분유대신 미음 먹이기도했었습니다. 얻어맞으면서도 부당한 대우받는 거에 대해서 계부와 맞서 싸웠구요.(물론 그때마다 얻어맞았지만.)

그러던 차에 제가 18살이 되던해에 계부가 집으로 자기 회사동료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저 소개시캬주면서 자기 딸이라고 그랬는데요. 거기 회사동료 한명이 저 예쁘다고(그사람 눈 기준) 몇살이냐해서 저 미성년자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후로 매일 같이 그사람이 집으로왔어요. 집에 오면 제 허벅지 더듬고 귓볼 만지고 그랬는데요. 엄마한테 말하니 그사람이 왜 그러겟냐구 여친있다구그랬고요. 계부한테 회사동료 데려오지말라고 했다가 뺨맞고 얼굴 주먹으로 얻어맞았어요. 오지말란다고 안 데려올거 같지않아서 집 나가있으려고하면 집에 있으라고 욕하고 때리고요. 회사동료는 계속 제 몸을 더듬고 가슴도 만지고 그랬습니다. 이쁘다구요. 엄마한테 울면서 말해도 안믿어주더군요. 회사동료란 인간이 환심산다고 집에올때면 분유나 기저귀같은고 사왔거든요. 엄마한테는 그사람이 좋은 사람이었나봐요.

그 회사동료가. 저를 성추행한 것뿐만 아니라 제 바로 동생한테도 그랬고. 18살이 되던 해에 저는 그사람한테 강간당했습니다. 강간당하기 전. 그 인간이 저한테 계부 거들먹거리면서 조용히안하먼 니동생들 다 죽일거가고 그러고, 너도 가만안두겠다 이랬거든요.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거부한다고요. 여자면 어차피 다하는거라고 괜찮다고 하면서 구슬리다가 ㅈ제가 끝까지 하지말라고 빌고 싫다고 소리지르니까 그러더라구요.

그때 생각하니 끔찍하고 저는 그 사람 덕분에 남자만 보면 겁이나요. 눈도 못마주치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습니다. 지금도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신경정신과 진료 받고 있어요. 괴로워서요. 눈만 감으면 그 사람이 내 몸을 만졌던 것들, 내 귀에 대고 했던 말들, 참 정없다 해도 나를 외면했던 계부까지. 생생하게 떠올라요. 지금도 이 몇자 적는데 너무 힘들고 숨이 막히네요. 나를 죽였던 사람이 그 사람이지만. 나를 죽이는 걸 보면서도 침묵했다는 게 계부인걸. 저는 그때 알았어요. 알고 있었더라구요. 그 놈이 저를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는걸. 그러면서 저더러 그 인간한테 시집가라고 했어요. 잘해줄거라고. 더러운 욕정 풀겠다고 강간하는 놈이 잘해준다고요? 라고 했다가 또 얻어맞았습니다.

저는 강간당한 뒤에 1388에 전화한 뒤 도움받아서 바로 쉼터로 갔고요.(쉼터갈때는 그냥 가출했다고해서 갔음) 집에 다시는 못돌아갈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회사동료란 놈이 제가 집에서 사라지니 제 동생을 건들일려고 한다고..연락받았어요. 동생이 연락줘서요. 그래서 용기내서. 그 놈을 고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않으면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벌어질테니까요. 그동안은 내가 강간당했다는게 너무 부끄러워서 말 못하다가. 처음으로 그 이야길 꺼냈어요. 나 그런 일있었다고. 처음 제가 상담했던 선생님은 이미 7개월이 흘렀고 가능성이없다고. 증거가 없다고했어요. 선생님 입장도 이해되는게 제가 신고를 결심한 그 년도에는 성폭력특별법이란게 재대로 갖추어지지않았고, 무엇보다 저는 증거라고 해봐야 제 증언 하나만 있었거든요. 체액 같은 거 있으면 바로 될텐데.. 전 아무것도없었어요. 승소 할 확률도 없었죠.

그래도 하고 싶다고. 신고할고라고. 벌받게할거라고 우겨서 결국 그 쉼터를 나왔어요. 선생님은 절 돕고자했지만 가능성이 없어서 안타까워만하셨고. 저는 그분이 절 도울수없다는 걸 알았죠.

사건이 있고 7개월만에 결심이 선 저는 처음에는 상담사이트에서 상담 받았어요. 근데 조사하려면 사건이 있었던 지역으로 제가 가야한다고하더라구요. 집에 가야한다니 무서웠지만 그대로 끝을 보려면 가야해서.. 갔죠. 가니까 계부랑 엄마가 절 맞이하더라구요. 계부는 저보자마자 걸11레같은 년이라고 욕했고요. 니가 뭔데 oo(가해자)이 강간범으로만드냐고 소리질렀어요. 그때 엄마가 막아줬고 엄마랑 계부가 싸워서 원스톱 센터로 갔죠. 원스톱에서 고소장 접수 후, 경찰서로 이관되길 기다렸어요. 전 아직도 생각나는게요. 우리나라 경찰들은 피해자에게 자세한걸 요구해요. 원스톱에서 절 담당한 경찰은 여경이었지만 제게 그게 진짜냐고 다그쳤고, 더 자세히 말해보라고(어딜 어떻게 만졌고 느낌이 어땠고 등) 했어요. 옆에있던 여간호사는 안그랬구요. 엄청 다그치더라구요. 저는 한마디 내뱉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요. (결국은 자필로 진술서 작성했습니다.)

진술서 다쓰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경찰서 이관 소식 들었는데요. 며칠 뒤에 집에 있는데 가해자가 집까지 찾아와서 난리치더라구요. 엄마가 안열어준다고 소리치고 그래서 쫓아냈지만요. 전 무서웠어요. 또 찾아올까봐요. 근데 그다음에는 가해자 친구란 사람이 찾아오고 그 다음은 가해자 엄마란 사람이 왔어요. 어떻게 찾아온건가했더니 계부가 그랬다네요.

큰년이 너 신고했으니 잘 도망가라고. 너 잡히면 깜빵간다고.

계부가 다 말했길래 그걸로 제가 뭐라하니까 저더러 걸11레같은 년이 말이많다고 때리고 나가라고 그래서
엄마가 그날 저 대신맞고 저한테 있는돈 2만원 주면서 서울로 가있으랬어요. 쉼터라도 가있으라고. 그래서 전 서울올라왔죠. 그리고 처음 제가 쫓겨났을때 갔던 쉼터가서 무사히 신고할수있었어요. 심리치료도 받았고요. 우울증 심해서 히스테리 엄청 부렸는데도 쉼터 선생님들이 엄청 이해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당시에는 제가 날이 서 있어서 감사인사 제대로 못한게 한이네요.

아무튼 신고도했고 결국은 그 가해자와 공판까지가서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기간도 너무지났고해서 3년형이 전부더라구요. 제 사건 맡운 검사도 2번 바뀌었고 증거 모을 수 없어서 힘들었지만... 지금도 그때 신고하길 잘했다고 믿고 있어요. 재판때문에 몇차례 더 집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었어요. 그때마다 동생통해서 집 소식 들었죠.

제가 신고하고 승소판결 떨어지고 나서... 계부는 엄마에게 이혼해달라고했습니다. 그전꺼지눈 해달라고 해도 안해주더니 지가 해준다더군요. 그래서 엄마가 협의이혼해줬는데 친권은 공동으로 갖는걸로하고 애는 엄마가 키우기로 했다합니다. 그런데 협의이혼 후에도 그인간은 엄마집에서 살고 수급비 통장하고 이어진 카드 자기가 들고다니고... 제동생이 이혼했으면서 무슨 염치로 집에 있냐고 했다가 얻어맞기도 했다네요. 이건 동생 통해서 들었습니다.

승소 판결 이후 저는 한참동안 집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동생이 저 보고싶다해서 내려갔다가 계부가 바람피는 현장 목격했어요. 협의 이혼 요구한 이유를 알겠더군요. 계부있는데서 말하면 전 또 얻어맞으니까 나중에 내연녀한테 울엄마 버젓이 살아있는데 이런건 절대 용납못한다고 만나지말라했구요. 내연녀 차사진 아직도 갖고있습니다. 내연녀로부터 받은 각서도 있고요. 협의이혼전부터 만났던 사이고,엄마가 이사실을 알고 계부더러 집 나가라고 하니 .... 계부가 그 여자(내연녀)랑 못살면 죽는다고 농약 먹었습니다. 약먹으면 곱게 먼던지 엄마한테 연락했더라구요. 엄마가 모질게 말했지만 그래도 농약 먹었다니 놀라서 119신고했구요. 엄마돈으로 위세척해줬습니다. 퇴원후에도 계부는 엄마한테 얹혀살면서 다신 안그런다햇고 엄만 또 그걸 믿어주더라구요.

이미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도않는데 엄마는 계부 말이 믿고 싶었나 봅니다. 저랑 둘째가 절대 안된다는데도 기어코 한번 더 믿어주자더라구요.

결국 남은 건 없는 가정 형편에 빚만 가득이에요. 계부는 공동친권이라는 걸 내세워서 만든 핸드폰들. 그리고 미납금... 애들 명의로 개통하면서 법대 주민번호는 자기꺼 쓰고 주소랑 번호는 엄마꺼해놨더라구요. 심지어 자기 자식 명의로 만든 폰을 새로운 내연녀에게 주었습니다. 내연녀 사진도 갖고있어요. 내연녀 큰아들이 작년에 군대 갔다죠ㅎㅎ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번호 저장만하면 뜨니 쉽게 정보 얻었습니다.

저는 지금 엄마 비롯 동생들과 2년째 함께살고있습니다. 제가 대인기피증이 너무 심해서 가족들 품으로 온 거죠. 그전까지는 살고자 일했지만. 전 여전히 사람이 무섭습니다. 특히나 남자는요.

계부는 2015년까지 저희집에 오가며 애들 친권 자기가 가져간다고 협박하고,엄마가 돈을 주지않으면 때리려고하는 등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차례 돈을 준 적 있구요. 저도 작가 생활해서 책 팔아서 번 푼돋(10만원도 안 됨) 다 빼앗겼구요. 안주면 패고 그러니까요.

제가 경찰에 신고안해본거아닙니다. 그간 수없이했으나 엄마가 자꾸 봐주자고 말도안되는 소리해서 시기를 놓치고 놓친거죠. 이것만 놓고보면 엄마 원망도 합니다. 내가 얻어맞고 내동생들 얻어맞을 때 신고했다면. 그때 용기를 내줬더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았겠죠.

하지만 저는 아파야 할 사람이 나와 우리 가족이 아닌 그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6년간 저는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지금도 지옥 한가운데 살고 있고요. 앞으로도 지옥이겠죠. 이 인간을 잡는다면 모를까.

작년에는 계부가 자기는 이제 번듯한 직장 다닌다고 기초생활수급자에 아픈 엄마는 양육권과 친권도 다시 뺏아가면 그만이라네요. 그리고 저는 작가 생활 시작했으니 제가 책 팔아서 돈 번다고 부정수급자로 신고한다고했어요. 근데 저는 책 팔아봤자 1년에 10만원이면 많이나와요. 아마추어 연재사이트에서 연재하면서 그걸로 치유받고 있거든요. 직업이 아니라요. 시청에서도 제 일 다 알고 있고해서 계부가 부정 수급자라 우긴 건 헤프닝으로만 넘어갔어요. 계부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니까 당연한거지만요. (제가 재벌도 아니고 재산 빼돌려서 숨긴다고 한들 공무원이 모를까요. 다 알죠. 저는 당당합니다. )

정작 엄마한테 이 협박 전화 문자해놓고는 번호바꾸고 잠수탔어요. 이놈이. 경찰에 상담받았더니 얻어맞은거 아니고 칼에 찔려 죽은 거 아니면 도와줄 방법이없대요. 그리고 핸드폰 개설한것도 통신사에 계부가 애 쓸거 만든다하면 그만이라네요. 그럼 못잡는다고요. 혹시 몰라서 그 사람 이름으로 날아오는 고지서 같은 건 뜯지도 않고 보관중입니다. 신용보증기관에서 전화오면 그사람하고 연락안된다했구요.


가정폭력상담소 및 여러 기관 다 연락해도 방법을 못찾고 있어요. 제가 돈이 많았다면 유능한 변호사 선임해서 진행했겠지만...부끄럽게도 저는 성인이 될 때까지 벌어둔 돈이 없습니다. 진짜 뭐하고 살았나 싶어요.

이제 초등학생인 셋째는 자기 아빠이야기만 나와도 경기 일으킵니다. 저희 모르게 학교로 연락오기를,아빠가 너 데려갈거야 라고했다고 그날 학교에서 울었다네요. 담임 선생님이 전화까지 주셨더군요. 셋째가 그엏게 무서워하니까 차마 저는 아빠가 다른데도 외면할 수가 없어요. 힘든 시기 함께해서겠지만. 무엇보다 내 동생들만큼은 부모님 원망 안하길 바라거든요.

저는 저와 우리 가족을 망친 이 놈을 반드시 잡고 싶습니다. 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지는 못해도 계부가 남을 아프게해서 웃었던 것들. 모두 눈물로 바꿔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또다시 그 폭력 속으로 내몰고 싶지 않습니다. 지키고 싶어요.

계부 사진하고 인적사항 풀면 찾기야 쉽겠지만.. 요즘 법이 사실 적시해도 명훼라해서 초성조차 언급못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은거구요.

혹시나 법쪽으로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도와주세요.
사례는 제가 어떻게서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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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빠진거 있어서 덧붙여요.

친아빠 행불 신고 하고 난 다음해에 계부와ㅜ엄마가 혼인신고했고 셋째부터 호적등록했어요. 그전까진 유치원도 못가고 계부한테서 방임 학대 받았구요.
추천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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