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이 있다고만 알았지 정말 제가 글을 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제목처럼 우리는 작년 초 유럽에서 만났습니다.
이십대를 열심히 불사지른 저에게 유럽 여행이란 선물을
주었고 그 곳에서 더 큰 선물을 얻어 왔었죠.
그녀와 우연히 엮여진 며칠동안 우리는 이복남매는 아닐까 싶은 동질감을 느꼈고. 비엔나에서 고백을 하여
제 유럽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그녀의 여행길을 따랐습니다.
그때 호스텔 환불을 요청하며 '트루 러브를 만나 난 헝가리가 아닌 이태리로 가야해'라며 외쳤던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간 이태리에서 같은 꿈을 꾸었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바로 회사 교육을 시작했고, 경상도가 고향인 저는 좋은기회로 지인의 회사로 입사 했습니다. 그녀가 항상 부담이라고 싫어해서 솔직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전공과 다른 그 길이 가시밭길이란것을 알았어도
어떻게든 서울로 향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일을 겪어 본 저에게는 이것 또한 도전이었거든요.
서울생활은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절반이 된 월급, 엄두가 안나는 집값...
미래를 생각 할 수록 전 더 작아 질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 같은 나이대 적지 않은 돈을 모아 놓은 저였지만
멀리 바라 볼수록 배 불리 살 수 없었죠...
결국 꿈 많았던 저는 직장도 그만두고 노량진을 향했습니다. 여자친구의 로망을 위해 난생 처음 분양 받은 고양이와 모든 상황이 제 정신을 옥죄었습니다. 400원 연두부와 특가 바나나로 아침 저녁을 때우고 컵밥으로 버티면서 전 점점 약해져만 갔고
작년부터 우리사이의 위기를 느꼈고, 무엇이든 주고 싶은 그녀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일방적인 헌신을 좋아 하지 않던 그녀는 떠나갔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생각도 달랐고, 저 또한 어느순간
끝이 보인다는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추억이 아름다울때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녀는 큰 미련없이 잘 지내고 있을거에요.
목표가 뚜렷한 그녀니까요.
저도 모든 것을 바꾸고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양이와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집밥을 먹으며 다시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됐습니다.
주변 모두가 옳다고 했고, 심지어 고양이도 가족 사랑을 듬뿍 받고 지내는 지금.. 그 고통스럽던 서울 생활이 그립습니다. 유럽에서 만난 단순한 여자가 아닌 그녀라서 전 최선을 다했고, 떨어지면 외롭다가 만나서 차갑게 굴어 서운했지만 한번 웃어 주면 모든게 증발 되던 저였습니다.
헤어지는 날에도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고 몇분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지만 잡을 수 없다는걸 알기에
떠나보냈습니다.
혼자 남은 독서실에서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는 이 글을
쓰는 저를 독자분들이 너그러히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ps. 고양이를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텐데 제가 벌린 일이고 서울생활의 마지막 남은 추억인 제 고양이는 무지개다리 건널때까지 제가 책임지고 키우려 합니다^^
기억도 이와 같다면
내가 가진 당신의 옷을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숨긴 것처럼
함께 찍은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컴퓨터 폴더 구석에 넣은 것 처럼
내 기억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 잊을때쯤
웃으며 열어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 기억이란 놈은 왜 자꾸 밀려나오는지...
그놈들이 얼마나 날 비웃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