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변신

태송은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회사의 복도를 거닐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인사를 받고 싶었다. 온갖 선남선녀 연예인들과 연습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받고 있노라면 난쟁이 똥자루보다 작은 그의 키도 그 누구보다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허영심과 이기주의의 끝판왕에 도달한 태송. 그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런 시선을 즐겼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바라보는 두려움과 경외감의 시선. 그 시선이 그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어떻게 받아낼까 하는 두려움과, 저 인간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 키를 유지하고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라는 사실은 아마 태송 그 자신만 모를 것이었다. 이 회사 내에서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명도. 오히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남한 사람들이 김정은을 바라보는 그것과 똑같았다. 멍청한 욕심쟁이 돼지새끼.



태송은 길을 걷다 비에이피 타운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보아 대현이 보컬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저 정도 실력이면 보컬 트레이너를 굳이 고용할 필요도 없겠어. 게다가 병원까지 요즘에 보내주고 있잖아, 라는 생각이 든 태송은 본인의 착한 마음씨에 스스로 감동해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본인이 아티스트의 대우를 잘 해주었던지 연습에 열중한 대현은 밖에 태송이 온 것도 모른 채 연습에 매진해 있었다. 태송은 참으로 옹졸하고 비겁한 마음씨의 소유자다. 하지만 이 회사 내에서, 적어도 직책만큼은 사장인 그의 생각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그는 이 회사 내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한 지도자인 것이다.



다시 고개를 틀어 걸음을 옮기려던 태송의 눈에 띈 것은 마침 안무 연습을 하러 연습실로 오고 있던 종업과 준홍이었다. 태송은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이 아니꼬웠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가 그들을 왜 싫어하는 지에 대해서, 어린 나이에 데려와서 키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버릇없이 대든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상은 그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큰 키, 훤칠한 외모, 뛰어난 실력, 모든 연령층의 여자들이 넘치도록 퍼붓는 사랑까지. 종업과 준홍은 태송이 가지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태송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 어느 것도 태송은, 아무리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대도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었다. 애초에 난쟁이 똥자루의 키로 태어난 것을, 애초에 천하고 못난 얼굴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 거기다 성격까지 더러운 태송같은 사람을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겠지. 마치 하늘의 미움을 받아 태어난 사람처럼 태송은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받으며 살아왔다. 괜히 억울하고 분해 태송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두 소년을 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 비에이피. 항상 열심히 하고."



그래, 이 정도면 티 내지 않고 어른스럽게 대처했어.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더럽고 옹졸한 말투였으나 오로지 본인, 태송만은 그것을 몰랐다. 멋진 사장, 돈과 명예를 모두 쥔 대단한 사나이. 두 사람은 인사를 하는 중 마는 둥 한 채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무심함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태송은 그저 스스로 만들어 낸 본인의 이미지에 심취해선 즐겁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태송은 마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나오던 힘찬과 마주쳤다. 태송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저 망할 놈. 정말 예쁘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힘찬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태송의 눈에는 그것만큼 분노에 차오르게 하는 얼굴이 없었다. 저 멍청한 놈만 없었어도, 저 오지랖 넓은 놈과 용국만 없었어도 내 마음대로 애들을 쥐락 펴락 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사장을 앞에 놔두고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힘찬의 모습이 아니꼬워 태송은 한마디 하려 입을 열었다. 오늘 따라 너무 커 보이는 그의 키도 태송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데 한몫 더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제 맘대로 열리지 않았다.



"뭐야. 왜 회사 안에 벌레가 있지."



태송과 눈이 마주친 힘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태송은 방금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벌레? 감히 사장님한테 벌레라고? 감히 너를 키워 주고 재워 주고 최고의 연예인으로 만들어 준 사장님한테 벌레라고? 힘찬이 드디어 미쳤나 싶어 태송이 분노에 차선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찍찍거리는, 본인이 들어도 소름끼치는 이상한 말 뿐이었다. 뭐야, 내 목소리가 왜 이러지. 가만히 서 있는 힘찬의 뒤에 영재가 나타났다. 영재는 뭐 하냐는 듯 힘찬의 어깨를 톡 톡 두드렸다.



"뭐해요 형?"
"아, 저기 벌레 때문에 못 가겠어."
"잡으면 되잖아요."
"무서워 벌레...징그럽단 말야."
"나이가 몇 살이에요?"



영재가 뚜벅뚜벅 태송을 향해 걸어왔다. 태송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아이들이 나보다 컸어도 이렇게 크진 않았는데.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너무 크게 보이잖아. 태송은 너무 놀래선 서둘러 자기 몸을 살펴보았다. 이 얇고 검은 다리는 뭐지? 자기 등에 파닥거리는 이 이상한 느낌의 날개는 뭐란 말인가? 그리고 자기 이마 위에서 불길하게 파르르 떨리는 이건, 설마 더듬이인가? 내 몸이 왜 이렇게 변한거야.
태송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벌레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었던 태송이 갑자기 벌레로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벌레였던 태송이 사람 행세를 하다가 다시 벌레로 돌아간 건지 그건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런 태송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재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태송은 그런 영재를 말리려 애써 파닥거리며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안돼! 난 난 너희의 사장이야! 날 밟으면 안돼! 영재야! 힘찬아! 날 왜 못 알아보는 거야! 안돼! 하지만 찍찍거리는 태송의 말을 영재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공포에 질린 태송은 도망가지도 못한 채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등을 영재는 힘을 실은 채 발로 밟아버렸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벌레는 영재의 발 아래서 으깨졌다.



"으, 더러워 진짜. 너 그 신발 버려."
"안 그래도 버릴 신발이었어요."



힘찬과 영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기분이 좋네여 ㅎ



추천수14
반대수2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