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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어도 불신만 생기는 사람에게

ㄹㄹ |2017.02.05 04:30
조회 177 |추천 1
 성경이 논리정연하지 않다.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해석 하기 어렵다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간의 죽은 지식으로 감히 그 가치를 평가 할 수 없고 신도 그것을 원치 않는다. 성경 속 사실은 팩트가 아니다. 즉 사실로 '수긍'하는게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설령 인간의 머리로 이해 할 수 없는 판타지 소설이여도 하나님이 주신 '영의 눈'으로 아멘 하며 '믿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논리적이고,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과 사고방식이 다 옳은가. 왜 나는 많고 많은 나라 중 한국에서 태어났고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났나. '나'란 누군가? 이 사실을 과학적 혹은 사회학적 혹은 모든 지식을 동원해 반론없이 완전할 수 있는가. 어림없다. 따져보면 세상만사가 아이러니 투성이다. 태어난 순간 부터 죽을때까지, 인간이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과 판단할 수 없는 일, 무조건 옳다 할 수 없는 일이 태반이다. 1 더하기 1은 2. 우리가 흔히 진리라 하는 이 명제도 아인슈타인은 1 더하기 1은 1이라고 했다. 두개 물방울이 합쳐지면 하나의 물방울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1'에 대한 정의를 흔드는 반론이다. 즉, 인간의 지식은 오로지 과학지식으로만, 철학적 지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진리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지식 속 불변의 진리는 없다.  왜일까. 애초에 인간이 태어난 곳은 세상 밖에 스스로 존재하는 신의 손 안에서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맹신도라 해도 좋다. 다만 끝까지 읽어보고 맘껏 욕해라.) 인간의 지식자랑과 신을 부정하는 논리정연한 지식은 모두 신의 손바닥안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이다.  배울만큼 배웠다던 하버드를 나온 교수는 '정의' 가 무엇인가를 두고 일생을 고민한다. 즉 세상 모든 것은 겉은 견고하나 그 속을 꺼내보면 의문 투성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반론을 수정해가며 과학은 '발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발전'의 끝을 보아 더이상 '발전' 이라는 말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과학. 그 찬란하고도 편리한 영수증 같은 지식은 인간이 종이에  적어 '기록' 하고 설명하고 증명을 위해 연구해야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세상의 상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허나 이 모든것은 인간이 살아있을때 유효하다. 세상의 말 중 진리에 흡사한 것은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이 말 뿐이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이 진리라 떵떵거리던 그 지식은 반드시 언젠간 사라진다. 그 모든 지식은 논리와 불멸할 것만 같은 사실, 사람들의 지지. 삼박자가 다 맞지만 가장 중요한 생명이 없다.  생명없는 존재가  그 얼마나 연약한가. 아담이 하와와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같이  똑똑해지기위해 선악과를 따먹은 그 순간 부터 신은 인간을 시험하기로 했다. 오로지 신의 존재를 믿는 '믿음'만이  그의 존재의 증거로 둔채. 신은 그저 성경과 세상 지식의 투쟁. 그 실랑이를 팔짱 낀채 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사회는 자연선택이란 탈을 쓴 뱀과같이,  명예를 줄 것 같은 선악과와 같은 모습으로 신과 인간의 신뢰를 깨트리기 충분한 매혹적인 향을 내뿜고 있다.  오래 전 그때와 같이 뱀과 인간에게 현혹되어 믿음과 맞바꾼 그 선택은 영원히 당신을 숨쉬게 할 수 있는가. 문제는 신의 몫이고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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