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길더라도 글솜씨가 안좋은 것 감안하여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아왔던 친구가 있었다.
어렸을땐 그냥저냥 얼굴 이름만 알며 지내오다가 중3부터 고2까지 정말 매일 얼굴을 보며 제일 친하게 지내왔다.
성격도 잘 맞아 철없던 때의 갈등이 아니면 싸운 적이 없었고, 꿈이 비슷했던 우리는 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성인이 된 후에 같이 살 것이 분명했다.
서로에게 우스갯소리로 초중학교는 같았지만 고등학교까지 같았더라면 샴쌍둥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며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올라오면 실컷 놀던 시절을 정리하고 공부에 매진하며 철을 들일 때 우리는 철없게도 힘든일이 있으면 술을 간단히 마셨다.
각자 한병씩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시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럼으로써 쌓아왔던 슬픔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고2 1학기 중간고사 때는 뭔가 일이 안좋았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때 왜 안좋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나 후회가 들기도한다.
그날엔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셨기에 난 내친구를 우리집에 불렀다.
평소와 다르게 5병을 마신 우리는 밤에 엉엉 울면서 이젠 서로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며 관계를 더욱 단단히 했다.
너무 마신 탓인지 정신이 든 것은 아침이었고, 난 내 친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평소 성격을 보아 취한만큼 밖에 나가 깽판을 쳤거나 밖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동네를 한바퀴 뛰어다녔다.
사실 집을 나오면서 집 앞에 경찰이 많은것을 보고 어디서 깽판을 친 것일까 짜증이 났다.
동네 어디에서도 없었고 혹시나 그리 높은 높이는 아니지만 옥상에서 뛰어내려 어디론가 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옥상 아래를 둘러보았다.
나는 우리 빌라 뒷편 1층에 그친구가 곱게 누워있는 것을 보고 마음 깊숙히 깨달은 바가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냥 경찰에게 가서 내가 저기 누워있는 아이의 친구라고 말을 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경찰에게 내친구는 잘못된 것이냐고 물었고, 대답은 예상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새벽에 집에 돌아갈거라 말했기에 그친구는 자기 부모님께 다른말을 하지 않았다.
밤새 그친구의 부모님께서는 걱정하셨겠지만 아침이 되고나서야 그분들께 들려드린 소식은 부고였다.
그날 장례식은 열렸다.
영정사진은 어디서 가져온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나와서 보면 웃음이 나왔다. 쓴 웃음이었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넉살이 좋고 서글서글했던 그친구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가 그친구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부심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평생 죽지 않을 것만 같았던 친구의 부고였기에 그친구의 소식을 들은 다른 녀석들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장례식이 열린 날은 울지 않았다.
장난이 아라는 것을 안 친구들이 많이 왔기에 내가 걔네를 슬픔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둘째날에는 울다가 기절을 했단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누군가 그친구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던 동영상을 틀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친했고 추억이 많았지만 같이 찍은 사진이 적은 것에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그몇달간이 나에겐 지옥이었다.
옥상에서 싸우다 내가 밀친 게 아니냐는 의심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냥 더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항상 나를 괴롭게 했다.
그친구와의 추억이 누구와도 많아서 정말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것에 그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이따 학원 가면 ○○이한테 얘기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다 현실이 뭔지 깨닫고 나면 죽을 것만 같았다.
밤마다 중3시절 친구들과 울면서 전화를 했다.
중3때 먼저 간 내친구와 함께 다같이 친해진 멤버가 있어서 걔네와는 특별하게 슬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먼저 새벽에 우는 여자애를 달래주려고 공기계로 보이스톡을 하고 있었는데, 내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남자애는 목소리가 잠긴 채로 ○○에게 일어난 일이 거짓말이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보이스톡슬 켜놔서 전화내용이 여자애에게 들리는 와중에 나는 참았던 눈물을 그제서야 터뜨리며 지금까지 거짓말이었다, 내일 ○○이와 찾아갈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여자애는 또 그전화를 들으면서 더 슬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께 울며 감정을 정리하고, 사리분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뎌진 어느날 그제서야 나와 남은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보였다.
먼저 간 내친구의 부모님 생각이 먼저 났다.
은사님께서는 언젠가 나에게 나는 이제 부모님이 네 분이라고 하신 게 실감이 갔다.
마음 같아서는 자주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그집안의 다른 큰아들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 아들에게 술을 먹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한 장본인이라는 생각에 쉽게 찾아갈 수 없었다.
정말로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찾아가서 자주 인사를 드려도 될 아이인지..
사실 이게 3개월도 되지 않은 과거의 일입니다.
글솜씨가 부족해서 딱딱하게 글을 썻는데 제감정이 전해지실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정말 저한텐 이게 고민입니다. 아직 철없는 고등학생의 판단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발 조언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