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내담자와의 윤리를 저버리는 자살핫라인콜센터

나는 이건 진짜 공론화해야 할 것 같다. 슬픔보다 분노가 앞서서 그런다.

 

나와 같은 정병러 환자들은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라고 보고, 이건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지켜야할 어떤 윤리적 규범을 저버린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5월까지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정신과에 다녔다. 결과적으로 중증우을에피소드와 경계선인격장애라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게 되었는데, 5월 이후로는 아주 괜찮아져서 병원에도 다니지 않았고 일상생활도 무리 없이 가능했다. 그러나 몇 주 전부터는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가 싶더니 한동안 하지 않던 자해를 하게 되었다.

 

간만에 찾아온 우울증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고 이전에도 숱하게 겪어왔던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함도 다시 겪게 되니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래서 10월 10일 오늘 자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우울증을 겪고 자해를 해왔기 때문에, 자해라는 것에 대해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우울증을 한 번 극복하고서 알게 된 것은 자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며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을 때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고, 더더군다나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터놓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었기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여러 자살방지대책 전화에 전화를 거는 것은 내키지 않았으나, 나의 이런 충동적인 자해욕구를 멈추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판단하여 자살예방핫라인(1577-0199)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았던 상담사는 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이야기의 후반부쯤에 나에게 응급차를 불러줘도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내가 보기에 나의 자해정도는 심하지 않았고 이정도로 응급실에 실려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궁금한 사항이 있어, 혹시 응급차를 부르게 되면 보호자에게(특히 부모님에게)연락이 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상담자는 당연히 성인이니 그럴 일이 없고 이 상담전화 자체도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적인 대화이니 이 대화가 유출되거나 이 사안이 누군가에게(제 3자) 알려질 일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끝낸 후에 감정적으로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전화를 끊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의 자해가 멈추질 않아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던 상담자 말고 다른 사람(남성분)께서 전화를 받았다. 이전의 통화내역을 서류를 통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전화를 1분여 하고 나서 바로 응급차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전과 같이 싫다고 답했으며 경찰차를 불러주겠다는 답변에도 다시 싫다고 답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진피를 뚫고 가지 못한, 다시 말해 표피만 스치듯이 지나간 자해에 경찰과 응급차가 출동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았고, 둘째는 내가 사는 곳의 주위를 소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가 둘째였다.

 

위와 같은 이유를 대며 나는 싫다고 말했는데, 그러면 경찰만이라도 출동해서 위험도구를 수거하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고, 그러면 경찰만 출동하되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나에게 연락을 하고 내가 현관문을 열어주는 조건 1과 위험물질만 수거하는 조건2로 경찰을 부르는 것에 응했다.

 

상담자는 요구를 반영해 경찰에게 연락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상담사와의 연락을 끊고 경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경찰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려가 보니 내가 사는 빌라의 사람들에게 부탁해 이미 현관문을 통과했고 303호가 어디냐고 묻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밖으로 가자는 모션을 취한 뒤, 이렇게까지 안하셔도 되고 나는 아주 괜찮으며 자해흉기로 썼던 물건을 가지고 나왔으니 가시라고 했다.

 

그 사이 응급차가 도착했고 심지어는 119소방대원도 도착해 조금한 원룸촌은 아주 혼잡한 상황이 되었으며, 내가 사는 곳의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응급차에서 응급대원들이 내려 나의 팔목을 보더니 이 정도면 그냥 소독만 해도 괜찮겠다며,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았고 뒤이어 왔던 소방대원들과 같이 큰 일 아니라며 자리를 떴다.

 

내가 그리도 싫어하던, 이 좁은 골목을 소란하게 만들었음은 둘째 치고, 왜 내가 불러달라고 하지도 않은 응급차와 소방대원이 출동한 것인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결국 남겨진 것은 지구대에서 나온 경찰 두 분과 나뿐이었는데 집에 올라가 이야기하자기에 알겠다고 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나눈 이야기는 별 것 없고, 살날이 오래 남았으니 죽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었다. 애초에 나는 죽을 생각이 없었으므로(콜센터에 전화를 했을 때도,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수백번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비록 나의 이런 몹쓸 전화 때문에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이 좁은 골목길에 경찰차와 119소방관 응급차가 모두 출동했구나, 하는 자책감정도였다. 그런데 경찰차가 떠나고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가 오더니 ‘무슨일이냐’고 묻더라. 순간 너무 어이가 없고, 분명 나는 전화상담시에 부모님께 연락이 가는 것은 죽어도 싫으며 그럴 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지어 상담자 본인도 부모님께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죠?라고 말하며 나에 말에 공감해준 듯 했는데, 분명 절대 연락 갈 일이 없다고 했는데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정신과에서 상담을 해도 내담자와 한 이야기는 부모에게라도 이야기하지 않는 법인데, 나는 그 확인을 전화로 수차례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차가 떠나자마자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고 부모님의 충격어린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더더군다나 나는 지금은 부모님과의 사이가 원만해진 편이지만 이전에는 그리 좋지 않은 관계였으며, 부모님은 나의 이런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는 게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것이 자살예방핫라인에서 걸었던 전화건 지구대에서 걸었던 전화건 소방서에서 걸었던 전화건, 분명 나에게 일러준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군다나 그것이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일임이 분명한데 왜 내담자의 모든 요구를 무시하고 이런 결과를 자초했는지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결국 부모님과 한 시간여 통화를 하고 계속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의미 없는 안심을 시켜드린 다음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내가 혼자 판단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자살예방콜센터에 전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자살을 생각할 때, 특히나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삶의 기로에 서 있을 때(나는 이런 사람이 절대 적지 않다고 본다), 이런 식의 해법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앞으로도 혹여나 전화 걸으시려는 분들도 나와 같은 전례가 있음을 알고,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다면 전화 거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기나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추천수4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