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0806331
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5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JTBC] 입력 2015-03-15 오전 12:03:18 수정 2015-03-15 오전 9:02:05체셔 고양이는 왜 3월 토끼와 모자 장수가 미쳤다고 할까
일러스트=홍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지?"
"저쪽에는 모자 장수가, 이쪽은 3월 토끼가 살아."
고양이는 오른발을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가 봐. 어느 쪽이나 미치광이들이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난 미친 사람들과는 만나고 싶지 않은 걸."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야. 여기 살고 있는 동물이나 사람들은 모두 미쳤으니까. 나도 너도 모두 돌았단 말야."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든 흰 토끼를 따라 이상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이상한 세계로 간다. 앨리스는 체셔 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위와 같은 대화 끝에 결국 3월 토끼네 다과회(A Mad Tea-Party)에서 둘 다 만난다. 그런데 왜 체셔 고양이는 3월 토끼(March hare)와 모자 장수(Hatter)가 미쳤다고 말할까?
영국인들은 토끼가 3월이 되면 사납고 괴팍해진다고 봤다. 봄나들이를 가면 들판 여기저기 마치 권투하는 것처럼 두 다리로 서서 앞발로 상대를 가격하는 토끼가 흔했기 때문이다. 맘에 드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패권 싸움인데, 암토끼도 맘에 들지 않는 수토끼를 앞발로 냉정하게 격퇴한다. 또 들판에서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토끼의 교미기간은 2~9월이지만 초기인 3월에 특히 더 야단스럽다고 알려져 있다. 즉, 3월의 토끼들은 사랑 때문에 미친 거다.
그럼 모자 장수는 왜 미쳤을까? 토끼들이야 생물학적 이유로 미쳐 보일 뿐 아주 건강하지만, 모자 장수는 그렇지 않다. 유별나게 말하고 행동하며 외모도 아파 보인다. 루이스 캐럴의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모자 장수'라고 나오지만 영화 등에서는 아예 대놓고 '매드 해터(Mad Hatter)'로 불릴 정도다. 그러나 모자 장수는 미친 것이 아니다. 직업병에 걸린 것이다.
19세기 유럽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자를 쓰는 것이 예법이고 관습이었다. 이 시대에는 모자의 주재료인 펠트 천을 만들 때 질산수은으로 양모를 축융(모직물을 수축시켜 밀도를 조밀하게 만드는 가공법)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수은 증기에 중독돼 시력·청력 장애와 경련·우울증·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를 영어로 'hatter's shakes(모자 장수의 경련)'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미나마타병이라고 부르는 수은중독병을 'mad hatter disease(미친 모자 장수 병)'라고 부를 정도로 모자 장인들은 수은중독에 시달렸다.
루이스 캐럴이 어려서 살던 체셔 주 데이스베리 마을 근처 스톡포트는 모자 제조·수출이 주력 산업이었다. 1884년 한 해에만 모자를 육백만 개나 수출했다고 한다. 작가는 직접 본 비참한 현실을 소설에 반영했다. 아니다, 현실은 더 비참했다. 소설 속 모자 장수는 성인 남성이지만 실제로는 수은중독 때문에 대개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영어의 관용적 표현 중에는 '3월 토끼처럼 미친(as mad as a march hare)', '모자 장수만큼 미친(as mad as a hatter)'이란 어구도 있다. 아마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상에서 쓰던 표현을 가져와 이름을 붙였나 보다. '모자 장수'의 작명 유래는 너무 끔찍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에 빠진 토끼는 열심히 미치고, 일하는 사람은 건강한 환경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기를.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소년중앙 페이스북
▶소년중앙 지면 보기
▶소년중앙 구독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