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마지막아담정기우는 살려주는 영이 되다.

정기우 |2017.12.11 16:31
조회 87 |추천 0

마지막 아담 정기우는 살려주는 영 ( 프뉴마)가 되다.  게시판  

12분 전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newkoreagod/221160401050

 

통계보기

 


 

전용뷰어 보기

 


 

 

 

 
 


구약 성경에는 영과 혼과 몸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루아흐’‘네페쉬’‘바싸르’로 구별이 되어 기록이 됩니다.

신약 성경에도 영 과 혼과 몸은 정확하게 ‘프뉴마’‘프쉬케’‘소마’로 구분이 되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영은 ‘프뉴마’입니다. 그 단어는 항상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그 ‘프뉴마’라는 단어가 ‘성도의 영’을 가리킬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살아계신 이는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인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 성도의 영은 우리의 것이 아니면서


외부의 어떤 존재로부터 우리의 것으로 주어지고 인정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영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걸 성경이 ‘영이 죽었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그 말은 인간 안에 사유되어 있던 독립적 개체로서의 영이 죄로 인해 죽어 있다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살 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간에게 영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시게 되면 인간은 비로소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을 하나님을 감지하고, 그분과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과 교통도 할 수없는 세상 사람들은 영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 15:45)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여기에서 첫 사람 아담에게 쓰인 ‘영’이라는 단어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쓰인 ‘영’이라는 단어는 다른 단어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쓰인 단어는 우리가 흔히 ‘혼’이라고 번역을 하는 ‘프쉬케’(히브리어로는 ‘네페쉬’)이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에게 쓰인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프뉴마’(히브리어로는 ‘루아흐’)입니다.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이 창세기 2장 7절의 ‘생령’의 부분을 인용 해다가 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단어를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살아있는 프쉬케’, 즉 ‘살아있는 혼’이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2장 7절의 ‘생령’도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혼이 되어야 맞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7절에도 ‘루아흐’가 아닌 ‘네페쉬’라는 단어가 쓰인 것입니다.

 

 


(창 2:7)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 즉 ‘루아흐’를 불어 넣으셨더니

 


사람이 살아있는 ‘네페쉬’ ‘혼’이 된 것입니다.

생기, 즉 성령(루아흐)과 생령에서의 ‘영’(네페쉬 하야)이 다른 단어란 말입니다.

네페쉬(혼)에 루아흐(성령)이 들어가니까 ‘살아있는 혼(네페쉬)’ 즉 ‘영’이 되는 형국입니다.

 


그러니까 ‘즉 숨 혼’ ‘네페쉬’라는 것은 인간의 몸 안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혼령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 아래에서 숨, 숨을 갖게 된 모든 피조물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것입니다.

그 ‘혼’이라는 단어는 구원받은 자나 구원 받지 못한 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숨인 것입니다.

심지어 그 ‘혼’이라는 단어는 짐승에게도 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네페쉬’ ‘혼’은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도 아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적 개념의 ‘혼령’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혼’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직접 닿은, 숨이 붙어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피조물에게 하사된, 하늘의 생명과 구별되는, 역사 속의 생명,


그리고 하늘과 구별되는 지옥 속의 생명을 총칭하여 ‘혼’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이 나가면 죽는다고 하는 것이고 ‘혼’이 다시 들어오면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건 육신적인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며 아울러 하늘 생명과 대조되는 지옥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혼이 부어지기 전의 상태를 ‘몸’, 즉 '죽은 흙'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혼’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의해 산 존재가 된 자들을 가리키며

 


 그건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공히 쓰이는 보편적 칭호입니다.

그래서 그 ‘혼’을 가리키는 ‘네페쉬’나 ‘네솨마’라는 단어는 ‘숨’이나 ‘목숨’등으로 혼용하여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혼, 네페쉬, 네솨마’가 끊어지면 살아있던 존재가 죽은 흙덩이, 먼지 덩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걸 ‘몸’이라 합니다.

 

 


‘혼’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숨, 호흡, 생명’을 가진 피조물의 상태를 ‘혼’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전인적인 존재입니다.

몸을 가진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숨, 생명이 들어가면 그 자체가 혼이 되는 것이고,

그 혼에 성령이 들어가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하게 되면 그 상태를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각각이 개별적이며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 안에, 성도가 소유한 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로 인해 하나님의 것으로 편입이 된 그 사람을

‘영’에 속 한 사람, ‘영’이 살아난 사람, 혹은 그냥 ‘영’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고

그를 성령이 낳은 영이라 부르는 것이며 그들만이 그 영의 상태에서 하늘 임금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빠져나가면 그들은 곧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 속에서 맺혀진 그 어떤 종류의 열매와 꽃도 다 누구의 작품이라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의 작품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국에 가서 "하나님, 제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짜 제물, 진짜 열매이신 예수님을 주신 것이군요,

저는 죄인 중의 괴수일 뿐입니다"라는 고백을 하늘 임금에게 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완성이 되어 머물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이라 하지 않고 살아 있는 ‘혼’, 하나님의 보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혼’이라 하는 것입니다.그 ‘프쉬케’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붙들려 있는 상태 가 ‘영’의 상태 ‘프뉴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연합되어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자가 된 그들을 ‘영’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영’은 인간 자체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인간에게 속한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된

어떤 존재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살아있는 ‘영’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며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러한 ‘영’의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고 가신 분입니다

(눅24:39)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