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죽는 순간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촤르륵 펼쳐진다고. 일명 '주마등', 이 현상이 꼭 죽는 순간에만 나타나는게 아님을 난 오늘 깨달았다.
난 흔히 말하는 대학을 못간 '재수생'이었다. 2017학년도 수능이 끝나고 나에게 남은건 44455라는 처참한 성적표와 할인혜택이 있는 수험표였다.원했던 대학은 원서를 쓸 기회조차 없었고 쓸모없는 고집만 남은 나는 재수중에서도 어렵다는 독학재수를 선택했다.친한 친구들중에서 재수를 한 사람은 나 하나 였기에,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며 대학생활을 하는것을 그저 페이스북, 카카오톡으로 구경할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과잠을 입고 멋지게 꾸미고 밖으로 나갈때, 나는 후줄근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말 재미없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던 일탈은 그저 조금 더 비싼 4000원 짜리 점심을 먹거나, 도서관이 끝나고 잠시 코인노래방에 들러 노래 3곡 부르고 집가기.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 행동들이 나는 너무 즐겁고 마음이 놓였다.
그만큼 1월부터 5월까지 내 인생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별거없이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6월 1일, 6월 모의고사가 다가왔다. 난 1월부터의 내 재수생활을 시험하고자 당당히 학교에 가서 시험을 응시했고, 결과는 시원하게 망했다.국어 2 수학 5 영어 3 과탐 5 5가채점을 한 순간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이게 뭐지...?'하며 시험지만 보던 나는 덜컥겁이났다. 독학재수를 한다던 나와 말리던 부모님, 주위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독학재수 해서 성적 잘 나오는 사람 5%도 안된다던데..''시간버리네 쯧쯧..''저럴바엔 학원이나 갈것이지..'나는 다섯달동안 뭘 한것인가 생각이 들며 여지껏 느끼지못한 최고의 자괴감을 느꼈다. 지금생각해보면 영화처럼 정신차리고 공부하는 전개가 나았겠지만, 나는 그 이후 방황을 시작했다.
펜조차 손에 잡히지 않고 그저 돌아다녔다. 피씨방, 노래방, 친구도 만나고 다니며 공부를 멀리했다. 도서관도 점점늦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꼴에 존심은 있었는지 6모 성적은 잘나왔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그 핑계로 또 학원은 안가고 독학재수를 이어했다.
또다시 시작된 도서관 생활.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공부를 안하다보니 주변이 눈에 잘 들어왔다. 나와 같은 독학재수생, 공시생, 사법고시 준비생, 심지어 공인중개사 준비하는 할아버지까지 모두 나보다 알차게 생활하고 나보다 간절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어릴때부터 놀고먹는 백수를 그리 싫어하고 안좋게 봤으면서 정작 지금 내가 그 백수처럼 살고있네? 내가 뭐하는거지...?어릴적 내가 그린 스무살의 그림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다시 펜을 들고,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탈선의 달콤한 맛을 본 나에게 쉽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고개를 들어 주위의 공부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그들의 공부 분위기에 방해가 되지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묵묵히 공부만 했다.
더위와 싸우며 공부만 한 나의 7,8월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7시에 도서관으로 향하며 11시에 집으로 가는 생활에서부릴 수 있던 여유는 없었다. 친구들의 여름방학이 너무나부러웠다. 그때마다 나는 내 스무살이 너무나도 초라하게느껴졌다. 나 혼자 정체된것같던 기분, 다른사람들은 주사위 돌려서 다 5,6이 나오는데 나 혼자 1이 나와 제자리걸음을 하는듯한 기분이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던건 공부뿐이라는 사실이 날 더 미치게했다.
수험생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약속의(?)9월, 9월모의고사를 앞둔 나는 6월의 그 참담함이 오버랩되어 자신감이 바닥일 때였다. 힘없이 9월을 보고 온 나는 또 나의 재수생활이 부정될까봐 하루 지난 날 가채점을 하였는데,국어 2 수학3 영어2 과탐1 2라는 난생 처음 받아본 성적을 받았다. 누가 성적떨어진다 그랬어 나와이씨 확기쁜 나머지 자랑을 하고, 자신감이 급상승되어 기분이 업된 나머지....나는 자만감에 빠져들고만다.
'나 독학재수로 성적 올린 사람이야'라는 자신감에 공부가 게을러졌고, 수능을 앞두고 큰 슬럼프가 찾아오게되었다.수학 모의고사에서 보통 쉬운난이도라 평가받는 15,16번문제조차 안풀리기 시작했고 심한날은 9,10번 조차 막히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하였거늘, 하늘 높은줄 모르고 빳빳이 고개를 편 나는 천벌을제대로 받는것이라 생각했다. 공부 안된다는 핑계로 집을 일찍 오는 날도 하루이틀 늘게 되었고, 수능을 앞둔 나를 불안감이 점점 목을 죄어왔다.
그럼에도 일단은 꾸역꾸역 공부를 해나갔고 드디어 수능날 아침이 되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보는데 많은친구들이 응원문자를 보내주었고, 몇명은 학교 앞까지 와나를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눈물 섞인 응원에 나 역시 눈시울을 붉히고 시험장에 들어가 수능을 응시했다.국어 수학을 보고 나니 망했다는 느낌이 확 나를 덮쳤지만 옆자리 응시생 국어영역 응시 후 탈주, 앞자리 응시생 내내 취침하는 분위기에서도 나는 망한 과목은 잊고 한시간 한시간 최선을 다했다.잠깐의 탈선을 빼면 나름 충실했던 재수생활이기에 조금 아쉬웠지만 후회는 남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곧장 가채점을 한 결과 세상에 평균 1.87등급이라니, 초대박을 쳤다.전년도 수능에 비해선 엄청난 성적 상승이었고 과탐을 제외하곤 최상위권 성적이었기에 인서울은 확정인 상황이다.진짜 며칠을 울었다. 뿌듯하고 행복함 반, 과탐을 망친 아쉬움 반으로 울고 울었다.그리고 다음날 도서관의 사물함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난 주마등을 처음 겪었다.내가 자주 앉던 자리..내가 식사하던 지하 매점..사물함..마음을 다잡았던 그 자리..별 보며 귀가하던 길까지 모두 스쳐지나갔다.그래, 이 기분, 이걸 위해 난 그동안 그리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겪을 당시에 나의 스무살은 보잘것없고, 화려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늦고 엉망이었던 스무살이었지만 뒤돌아보면웃으며 이야기할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앞으로 2018년, 2019년, 시간이 쭉 흘러도 그때의 스무살의 청춘들은 수없이 많겠지.나를, 지금 모든 스무살들을 이을 내년의 스무살들, 너희의스무살이 끝날 때도 너희들의 스무살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빛나는 추억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