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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생산직의 일상.

사는게뭔지 |2008.11.10 20:42
조회 54,166 |추천 0

출근길은 언제나 남들과 다른 길로 간다.

 

차도에서 풍겨오는 더러운 매연을 마시며 걷는 그들과 달리

 

난 논두렁 길을 거닐며 남들보다 10분은 더 걷는다.

 

8분여 걸으면, 논두렁에서 벗어나 도로변으로 걷는다.

 

바람에 실려오는 개울물의 비린내와 풀 냄새도 좋지만

 

좀 있다가 나올 장소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더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다리 밑 대형트럭은 못 지나갈 작고 좁은 터널

 

햇볕이 들지 않아 축축한 콘크리트에서 텁텁하고도 퀴퀴한 냄새가 난다.

 

잠깐은 냄새에 취해 가만히 냄새를 맡지만, 이내 식상해진다.

 

잠깐은 맡기 좋은 냄새일 뿐이다. 그리고 그만 출근길을 서두른다.

 

 

출근카드를 체크하고 탈의실로 서둘러 걷는다.

 

집이 먼 이들은 통근 버스를 타고 이미 먼저 도착해 있을 것이다.

 

공장에 가까워 질수록 밤새 쉬지 않고 돌아갔을 부지런한 기계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려온다.

 

소리와 함께 검고 질퍽한 기름냄새와 차가운 쇠 냄새가 나를 반긴다.

 

이윽고 탈의실에 도착하고, 아주머니들의 시끄러운 수다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역겨운 가짜 화장품 냄새들로 숨을 쉬기가 힘들다.

 

엄마 냄새와 비슷하지만, 엄마 냄새는 아닌 가짜 냄새들이 싫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도망치듯이 식당 휴게실로 향한다.

 

식당에 도착해서 천천히 들이마시는 공기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반찬냄새가 섞여온다.

 

방금 전까지 철야 작업을 한 작업자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으리라.

 

냄새를 맡는 혼자만의 시간도 잠시이고,

 

여기저기 어른들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느라 바빠진다.

 

인사가 끝나고 식당구석 자판기 옆 테이블로 향하면 정겨운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매일 구석 자리에 앉는 이들은 서로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지만 그 사이만큼은 돈독하다.

 

근로자의 대부분은 나이 많은 어른들이라 젊은이가 드물고,

 

근무시간엔 서로 마주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아침시간엔 부서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얘기를 나눈다.

 

이 모임에서 사무부서들의 젊은이들은 제외다.

 

우리 회사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장부서와 사무부서는 사이가 안 좋다.

 

특별히 궁둥이 붙이고 일하는 그들이 싫은 것도 아닌데 그냥 사무직 사람들은 왠지 불편하다.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은 커피를 빨린 마신다.

 

종이컵을 재떨이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빨리 마시는지는 몰라도,

 

식기도 전에 다 마시고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다들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독한 담배 연기가 싫지만, 커피를 마시며 맡는 담배 냄새는 그리 나쁘진 않은 거 같다.

 

커피 8 담배 2의 비율이었으면 더 없이 좋았으리라.

 

근데, 난 원래 커피 향과 함께 맡는 담배 향을 좋아했던 걸까?

 

이내 궁금해져 새내기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기억이 날 리가 없다.

 

내년이면 근속 10년이니깐 말이다.

 

세월이란 그 놈 참 빠르단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엄마 손 잡고 회사 왔던 게 바로 어제 일만 같다.

 

이런저런 혼자만의 생각을 하다 보면,

 

얘기가 끝나있고 다들 일할 준비하러 뿔뿔이 흩어진다.

 

 

식당 건물을 나와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수돗가를 보면,

 

얼마 전 들어온 사무부서 신참내기가 커다란 쓰레기통을 씻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항상 개수가 2개인 걸 보니

 

사무동 1,2층 쓰레기통은 다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인물도 훤칠하고 키도 큰데, 씻는 폼이 뭔가 어설프다.

 

믿음직스럽진 않다 랄까? '기생오라비' 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친다.

 

그러다 이내 내가 보는 걸 눈치채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난 왠지 쑥스러워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도망치듯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은 과, 반, 조로 나뉜다.

 

부지런한 반들은 몇 년 전 도입된 안전체조를 벌써 하고 있다.

 

우리 반은 게으른 편이라 다른 반들 다 시작하면 그제서야 시작한다.

 

우리 반의 실적이 만년 하위권인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체조가 반쯤 진행되면 여기저기서 안전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다른반의 작업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우리반도 구호를 외치고 내 작업도 시작된다.

 

 

작업은 간단하다.

 

간단한 제품의 후 가공 공정인데,

 

이 일의 장점은 일이 단순하고 쉽다는 거고,

 

이 일의 단점도 일이 단순하고 쉽다는 거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일이 쉬우니 빨리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일이 쉬우니 단순 반복이 지루하다는 거다.

 

수년간 일을 해오며 많은 사람들을 봐왔는데 게 중엔 일하다가 서서 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일이 쉽다고 해서 만만하다는 말은 아니다.

 

반복작업이란 건 특정부위만을 쉴새 없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만 해도 많은 작업자들이 직업병을 앓고 있고,

 

나 역시 손목이 욱신거려 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한다.

 

손목이 아픈 걸 신경 쓸새 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종이 울리면 하던 일은 재빨리 마무리 짓고 식당으로 달려간다.

 

식당에 빨리 도착할수록 오래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부서는 식당에서 꽤 먼 편이라 언제나 뒷줄에 서게 되지만,

 

그나마 꼴찌가 아닌 게 어디랴? 하고 언제나 자기자신을 위로한다.

 

식사가 끝나면 다들 다양한 장소로 흩어진다.

 

남자들은 장기를 두거나, 탈의실, 차, 기숙사 등에서 잠을 자는 반면,

 

여자들은 소수만 탈의실에서 잠을 자고 나머진 오후의 일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거나

 

현장의 각 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나 음료를 마시며 간단한 다도회를 갖는다.

 

다도회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면 쉬는 시간이 끝나감을 알리는 예비종이 울리고,

 

남자 직원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각 반의 장들이 오게 되면,

 

간단한 안전체조 후 구호를 외치고 각자 일을 하러 간다.

 

언뜻 보면 아침과 같지만, 외치는 구호가 다르고,

 

잔업을 맡게 된 남자 직원들의 표정이 시무룩하므로 아침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후작업도 역시 아침과 동일하다.

 

2시 반에서 3시경이 되면, 잠이 온다는 점을 빼면 아침과 동일하다.

 

가끔씩 1년에 한 두 번 꼴로 근무지역을 이탈하여 탈의실에서 몰래 잠을 자다가

 

관리자들에게 걸려 혼나는 조금 꼴불견인 직원들도 볼 수 있다.

 

단 한 명, 관리자들도 두손 두발 다 든 직원이 있는데 그 사람은 탈의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 사람은 옆 반과의 경계구역에서 일하는 옆 반 직원으로 상종 못할 인간이다.

 

일하다가 난데없이 남의 근무구역에 와서는 욕설을 내뱉는 인간인데.

 

여기서 뭐라 다 말은 못하겠지만 주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담치' 이다.

 

처음에 이 사람이 심한 말을 하고 갔을 때의 난 아직 어렸기 때문에

 

수치심과 모욕감이 들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혼자서 분을 삭혔는데,

 

이제는 아주머니들과 합세하여 화를 내고, 극성인 아주머니들은 불량 제품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선, 우린 단결하여 그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하고 씹길 시작한다.

 

사실상 이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모욕감이 들진 않지만, 그래도 그냥 씹는다.

 

그 사람도 이제는 그런 장난을 치기에 지치고, 질렸을 텐데도 계속 시비를 건다.

 

사측에서는 이런 도움도 안 되고 피해만 주는 사람을 노조 때문에 자르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그도 그 나름대로 회사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타 작업자들은 그를 욕하고 비난하면서 업무의 스트레스를 약간이나마 덜고 있을 것이고,

 

그는 장난을 치는 행위를 질리지도 않고 즐기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윈 윈 아닌가?

 

그에 대하여 비유를 하자면 파리나 모기 같은 해충은 우리에겐 피해만 주지만,

 

크게 따져서 생태계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딴생각도 하면서 일하다 보면 쉬는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 끝나서 조금 일하다 보면 퇴근 준비하느라 바쁘다.

 

회사에서의 오후도 이렇게 저문다.

 

 

퇴근길은 즐겁다.

 

다들 수고했다는 인사를 서로 정답게 나누고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기로 의논하기도 하고,

 

급한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퇴근을 서두른다.

 

일에서 해방되어 내 시간을 갖게 된다는 기대감도 즐겁지만,

 

이러한 퇴근길의 풍경을 보는 것도 즐겁다.

 

물론 즐겁지 않은 것도 있다.

 

밝은 햇볕이 들어오는 반대편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즐거운 퇴근길도 마냥 즐거울 리는 없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서두르는 이들,

 

학창시절 친구들과 즐겁게 통화를 하며 통근차에 몸을 싣는 이들,

 

그런 그들은 인맥이라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해온 이 회사의 직원들이 전부인 나를

 

어딘가로 숨고 싶게 만들었었다.

 

해방감이 빛이라면, 열등감이 그림자이라.

 

어둡고 칙칙한 그림자라고 마냥 싫어할 수는 없는 법,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창시절의 친구들이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집에 도착하면,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혼자서 중얼거리곤 한다.

 

Home sweet home.

 

집만한 곳이 어디 있으랴.

 

집에 오면 우선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양말을 벗는다.

 

그리고는 양말에 배인 발 냄새를 두어 번 킁킁 맡는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발 냄새는 참 매력적이다.

 

구수하면서도 지리고 시큼한 이 냄새는 힘들게 일하고 왔을 때가 절정이랴.

 

양말에 배인 발 냄새가 더 이상 자극이 되지 않을 때가 되면,

 

발가락들 사이 사이를 검지손가락으로 문질러 코에 갖다 대고 킁킁 맡아대길 시작한다.

 

양말에서 나는 냄새완 미묘히 다른 이 진득한 냄새가 더 좋다.

 

그래도 최고의 냄새는 매주 토요일 발톱을 깎을 때의 냄새이다.

 

엄지발톱과 살이 연결되는 양쪽 끝 부위의 발톱을 살짝 들어 올리듯이

 

손톱깎이에 부착된 칼로 파 올렸을 때 칼에 묻어 나오는 이물질,

 

일주일간 외부의 어떤 것과도 닿지 않고 고이 있었을 그것을 난 좋아한다.

 

남자들이 경험이 없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때 같은 그것의 냄새는 원초적이고 진하며,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발 냄새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코가 이미 발 냄새에 둔감해져서 더 이상 감흥을 느낄 수 없을 때쯤이면

 

빨래도 할 겸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 간다.

 

샤워를 하는 행위 자체는 좋아하지 않지만,

 

샤워 후 깨끗이 빨아 놓은 잠옷을 꺼내 입을 때가 너무나도 좋기에 샤워를 좋아한다.

 

까실까실한 옷의 감촉이 살결에 닿으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어린애 마냥 꺄르르 웃으며 방방 뛰고 싶어 진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며 이런저런 표정도 지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배가 고파지고 저녁을 준비한다.

 

퇴근길에 사온 두부 반 모와 냉장고안의 500ml 맥주 한 캔이 내 저녁이다.

 

두부는 참 맛있고도 놀라운 가공식품이다.

 

살짝 데치기만 하면 양념장에 먹어도 맛있고,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어도 맛있고,

 

그냥 두부 그 자체로도 맛있으며,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으니깐 말이다.

 

하루하루 똑 같은 일상이 10년 가까이 반복되면서도 매일 달랐듯이

 

두부도 양념장도 김치도 매일 같으면서도 다르다.

 

매일 같은 내 일상과 두부는 질릴 법 한데도 안 질리고 매일 재미있고, 맛있다.

 

TV를 보면서 두부와 맥주를 뚝딱 비우고 나선,

 

남아있는 오늘 정리할 일들을 정리한다.

 

정리가 끝나면 인터넷으로 뉴스도 보고, 영화도 보다가 피곤해지면 그제서야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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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플레몬씨앗|2008.11.10 20:50
무척 고달퍼 보이시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 아싸 베플...소설인것같아서 리플달았는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글쓴이님을 비롯한 톡커분들 오늘부터 행복한 일만 있으실꺼구요... 빼빼로 많이 받으시고 남는 빼빼로 저한테 버리셔두 됩니다~^^ http://www.cyworld.com/z-hong
베플김현정|2008.11.10 22:16
잘은 모르지만 글쓰기에 무척 소질이 있어보여요.. 그쪽으로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건 어떨까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
베플소설 아닌가|2008.11.11 00:21
신춘문예 지망생인듯 띄어쓰기까지 아주 철저하게 썼네...아직 내공은 부족해 보이지만 좀 더 노력하쇼 내년봄엔 좋은일이 있을수도 있잖소 이정도로 글쓰기에 소질있다는분들은 책을 안 읽어 보신듯 ㅋㅋ 이정도 쓰는사람은 주변에도 널렸어요~ 저도 전공은 문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요...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작위적인 느낌이 나서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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