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노예]
노예 1 : 너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 있잖아. 너무 무겁고 꽉 조여서 불편하지 않니?
노예 2 :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
노예 1 : 제대로 닦지도 못해서 더러워지기도 했고 말이야.
노예 2 : 맞아. 지독한 냄새가 나.
노예 1 : 나는 주인님한테 부탁해서 새 사슬로 바꿨어.
노예 2 : 정말? 주인님이 순순히 바꿔 주셨어?
노예 1 : 아니. 첨엔 노예 주제에 무슨 새 것이냐고 화를 내셨는데 내가 하도 졸라 대니 결국 바꿔 주셨지.
노예 2 : 지금은 어때?
노예 1 : 전에 채우고 다니던 것보다 훨씬 편해. 꽉 조이지도 않고 새 것이라 냄새도 안 나. 무게도 가벼워서 정말 날아갈 것 같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됐어.
노예 2 : 흠... 다행이네.
노예 1 : 너도 주인님한테 가서 바꿔 달라고 해 봐. 자기 권리는 자기가 찾는 거야.
노예 2 : 아냐. 난 됐어.
노예 1 : 왜?
노예 2 : 그냥 싫어.
노예 1 : 더 가볍고 깨끗한 쇠사슬로 교체하는 건데 왜 싫어? 너 혹시 일하기 싫으니?
노예 2 : 아니. 그런 거 아냐.
노예 1 : 그럼? 아, 주인님한테 혼날까 봐 그러는구나. 걱정하지 마. 내가 다른 노예들한테도 미리 말해 뒀어. 다들 주인님한테 가서 부탁드려 보겠대. 너도 걔들이랑 같이 가. 여럿이 함께 가면 주인님도 어쩔 수 없이 새 사슬로 교체해 주실 거야.
노예 2 : 난 괜찮으니 사양할게.
노예 1 : 너 좀 이상하다? 왜 그래? 이렇게 불편하고 더러운 쇠사슬을 질질 끌고 다니고 싶은 거야? 너 그러다 주인님이 시키신 일들 제시간 안에 다 못하면 어떡하려고? 주인님 말씀 기억 안 나? 한 명이라도 일을 다 못 끝내면 우리 모두가 저녁을 굶어야 해.
노예 2 : 있잖아. 혹시 너는 사슬을 벗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니?
노예 1 : 뭐? 사슬을 벗어? 야, 그게 말이 돼? 우리는 노예야. 주인님을 위해 몸 바쳐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그런데 어떻게 사슬을 벗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어?
노예 2 : 그렇구나.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노예 1 : 무슨 상상?
노예 2 : 사슬을 벗고 자유롭게 저 들판을 뛰어다니는 상상.
노예 1 : 너 미쳤구나. 현실을 똑바로 봐. 우리는 노예고, 노예에게 쇠사슬은 운명과도 같아. 왜 운명을 거역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하니?
노예 2 : ......
노예 1 : 더구나 우리가 자유로워지면 주인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 우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고루 챙겨 주시고 잠잘 곳까지 마련해 주시는 분이야. 우리는 그분을 슬프게 해드리면 안 돼.
노예 2 : ......
노예 1 :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 둬. 이곳엔 나 말고도 수많은 노예들의 눈이 있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금방 들통 나서 주인님의 귀로 들어갈 거야. 그럼 너는 끝장이야.
노예 2 : ...아냐. 다 농담이야. 내가 그럴 리가 있겠니. 지금은 몸이 좀 피곤해서 쉬고 싶을 뿐이야. 사슬은 나중에 교체할게. 어차피 나는 발목이 가늘어서 지금 채워져 있는 쇠사슬도 괜찮아. 더러워진 부분은 닦으면 되고.
노예 1 : 흠... 너 진짜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노예 2 : 아니니 안심해.
노예 1 : 그래. 그럼 쉬고 있어. 나는 노예들 데리고 주인님한테 다녀올게. 사슬 교체를 위해서 모두 힘을 합쳐야 하니까.
노예 2 : 그래. 잘 다녀와.
노예 1 : 다음엔 너도 꼭 함께 가자. 알았지?
노예 2 : ......
노예 1 : 알았지?
노예 2 : ......
노예 1 : 야, 너 왜 대답 안 해?
노예 2 : 미안해. 피곤해서 그래. 얼른 다녀와.
노예 1 : 다음에는 내가 널 무슨 수를 써서든 데리고 갈 거야.
노예 2 : 알았어.
노예 1 : 우리 주인님은 정말 고마우신 분이야. 항상 우리를 위해 신경 써 주시고 우리 이야기도 잘 들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노예 2 : 얼른 가 봐. 밖에 캄캄하니 여기 촛불도 가져가고.
노예 1 : 고마워.
노예 2 : 더 가볍고 깨끗한 쇠사슬에 경배를!
노예 1 : 경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