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8살 직장인입니다 취업한지는 2년밖에 안되었어요
대학을 스스로 돈벌어서 다니느라 휴학을 두번 한것 때문에
늦게 졸업을 하게 되어 그마만큼 취업도 늦어졌습니다
각설하고 저희집은 남녀차별이 너무 심한 집안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현재는 가족들이 뿔뿔히 다 흩어졌습니다
모든 집의 법과 행사 같은것은 호랑이 같은 친할머니 한분의 명령으로
옛날부터 다 돌아가던 군대같은 집안분위기 였어요
근데 너무 웃긴게 할머니도 여자면서 며느리 딸 손녀들을 싸잡아 너무 대놓고 차별을 하셨고
말그대로 00달린 남자들은 누구하나 그것에 대해 잘못되었다 말하지 않고
비겁하게 할머니가 멋대로 정한 법속에서 특혜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할머니의 만행에 대해 몇가지 생각나는 것만 말해보면
저희집이 언니 저 막내남동생 이렇게 삼남매 입니다
예상하신대로 막내남동생은 언니와 제가 딸이라서 아들낳으라는 할머니 성화에
엄마가 40대 중반에 무리해서 낳은 아들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애낳기 전날까지 일을 다녔고 일을 다녀와서는
모든 집안청소와 식사준비 등등을혼자서만 하셨었고
저는 그때 철이 없어서 그게 너무 힘든것이란것을 몰랐었지만
저희 언니는 이게 부당하다는걸 알았었나봐요
할머니와 이건 잘못되었다고 맞서싸우다가
할머니가 대나무 끝에 무쇠같은거 달린 곰방대 아시죠?
그 곰방대 머리로 언니 머리를 말그대로 후려쳤습니다
사람머리에서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 나오는광경을 보고 어린나이였지만 너무 충격을 받았고
더불어서 할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그때부터 생긴것 같습니다
그렇게 손녀가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는데도 할머니는 그 피는 제가 닦게 했고
아빠한테는 계집피 닦으면 부정탄다고 제 자식 머리에서 피쏟는데 접근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더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건 아빠가 멋쩍게 그장면을 보더니 한숨쉬고 그냥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던 기억입니다.
할머니는 머리에서 피나는 언니를 쫒아내고 언니 몸에 굵은소금을 뿌렸었습니다.
엄마는 그때당시 보험아줌마 였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20여년 전에는
보험 아줌마가 기본급 없이 개인사업자처럼 실적에 따라서만 월급을 받던 시대였대요
그래서 엄마가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여기저기 영업하러 다니는것도 힘들고 하면서
나중엔 일을 나가도 얼마 못벌고 그랬었는데
돈못벌어온다고 밥먹지도 말라고 했대요 할머니가.
막내가 아들인것은 엄마가 진작에 알고 계셨는데
성별 말하는순간 갑자기 돌변해서 잘해주고 그런거 예상하니 미리 소름이 돋아서
일부러 성별 병원에서 얘기 안해준다고 거짓말 했는데
임신기간 내내 딸년이면 가만히 안둔다고
엄마뱃속에 애기한테다가 대고 욕설을 했다고 합니다.
막내동생 태어난 이후에 아들을 낳았으니 할머니가 엄마는 좀 덜 괴롭혔지만
애기낳고 한달도 안되서 엄마한테 돈벌어오라고 등떠밀듯 쫒겨나서 엄마 산후조리도 못하고
다시 보험일 하러 다녔구요
그러다가 하혈해 병원입원했는데도
애기 젖물리라고 할머니가 애기데리고 병원에 왔대요;;
그리고 막내동생 태어난 이후부터
저와 언니는 애초에 없어야 했지만 어쩔수 없이 존재하는
그런 사람 취급을 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옜날이라고 해도 한 90년대쯤이었는데
그 시대에 돈아깝다고 여자애한테 중학교도 안보내려는 그런 할머니 였습니다
교복 교과서 가방? 그딴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언니는 입학식날 초등학교때 쓰던가방 메고 입학했고
나중에 가방이 없다고 우니까 가방도 없는거 그만 둬야지 이런소리한 할머니에요
다행히 언니가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부를 엄청 잘했어요
그래서 말그대로 전교에서 놀던 그런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할머니가 어디서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쪽다리 저는 늙은남자한테 시집가라고 강제로 선보게 해서
언니는 그길로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언니는 대학을 갈돈을 마련해 보려고 집을 나와 공장을 들어갔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알았는지 나중에 언니 찾아서 돈번거 막내키우게 내놓으라고 그래서
언니는 그때부터 저희 집안이랑 연을 끊었습니다
할머니는 이것가지고 동네사람들 한테 이제막 고등학교 졸업한 년이 발랑까져서
남자랑 눈맞아 도망갔다고 헛소문을 내고 다녔어요.
언니는 지금도 저랑만 간간히 연락하는데
절대 본인의 존재가 할머니나 부모님께 노출되는걸 싫어해
저도 언니의 행방을 모르는척을 해왔습니다.
아빠는 한평생을 이러한 할머니 등에 업혀
엄마에게도 저희에게도 할머니가 어른이니 어른말 듣는게 법도라고 하며 본인 이득만 보려했고
평생 고생만 하고산 엄마의 편에 서주질 않았어요
암튼 시간이 많이 지나서 엄마는
이혼소송을 해서 재산분할도 받고 이혼소송에 승소 하셨고
지금은 식당에서 그냥 일하시면서 평범한 아주머니로 사십니다.
반면 할머니는 집에 엄마가 없으니 그때당시 이제 막 고등학생이던 저에게
엄마역할처럼 돈벌고 모든 가사 모든 살림 막내동생 아버지 할머니 부양을 강제로 시켰습니다
언니가 그렇게 집을 나간것 때문인지는 모르겟지만 저는 고등학교까지는 보내주더라구요?
그러면서도 그걸 감사히 여기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제앞에서 대놓고 제엄마 흉을 보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아들이 바르고 착한데
며느리년이 직장에서 이놈저놈하고 그렇고 그런사이라 이혼당했다고
근거없는 헛소문을 퍼트렸고 저한테도 엄마처럼 살면 니 인생도 저렇게 이혼당하는거라고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없다고 결국 아들낳고 살림잘하고 아랫도리만 잘 쓰면서 살면
책 몇천권 본 여자보다 더 사랑받는다고 성희롱과 인격모독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할머니는 제게 당연하다는듯이 공장을 가라고 했고
저도 언니처럼 그길로 집을 나왔습니다.
제가 이 집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언니처럼 대학을 다른지방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천안에서 혼자 사시는데 그래서 저도 일부러 대학을 천안으로 지원을했습니다
천안의 대학은 일단 제 점수보다 낮은곳을 지원한거라서 백퍼 합격을 했었었고
비로소 저는 엄마와 언니와 자유롭게 연락을 하며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유롭다고 볼순 없엇어요 계속 공부 휴학 알바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전 그생활이 백만배 천만배 행복했습니다.
가끔 힘들때마다 이 할머니에게 어떻게든 성공해서 복수한다
아빠한테도 본때를 보여준다 아들보다 성공한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꽉차서
일분일초가 아까웠습니다. 빨리 돈도 벌고 성공해야 했으니까요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연애도 친구도 동아리도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랑 일만 하다보니
길기만 할줄 알았던 대학생활도 금방 지나더라구요
그리고 학점도 거의 만점으로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꽤 좋은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현재는 2년차밖에 안되서 연봉이 3.0~3.6 왔다갔다 하지만
승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회사라 노력하면
충분히 나중에는 연봉 6천 7천 이렇게도 받을수 있는 회사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언니랑은 간간히 연락을 하기 때문에 언니한테 취직했고
어떻게 산다 안부인사 하다가 막내동생 보고싶다 이런 얘기가 나왔고
아직 학생인 막내동생 누나들이 취직해서 잘나가게 되었으니
맛있는것도 사주고 하려고 막내동생에게만 살짝 연락을 하려던것이
막내동생이 누나들 만난다는 얘기를 할머니랑 아버지께 해버렸습니다
그동안 저도 언니도 엄마도
어디로 간다고 말도 안했고 쥐죽은듯이 지냈으니 찾기가 힘들었었겟죠...
근데 그 세월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역시나 변하지 않았더군요
다 늙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것만 빼면 ....
그렇게 저희를 차별하고 인간대접도안해주더니
이제 자기 옆에는 나이든 아들과 학생인 손주만 남아있으니 더이상 돈도없고
잘나신 남자분들이라 돈보태달라고 하기 미안하셨는지
저희한테 눈하나깜짝안하고 너희들 돈 잘번다며?
엄마랑 너랑 언니랑 한사람당 5백만원씩 거둬서 계좌이체 하라면서
전화기 너머로 계좌번호 적은 종이를 찾는지 하여간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틈에
그간 당한설움이 폭발하여 그만좀해 이 ㅅㅂ년아 이러고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이후에 전화가 계속오고 문자로도
노인학대 이런거로 신고한다고 하는데 하나도 무섭지가 않아요
그냥 미안했다 이말 하나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그대로 누워있다 돈없어서 병원에서 쫒겨나고 그냥 할머니가 죽어버렸음 좋겟어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그게 그대로 돌아와서 결국 자기가 피해를 입는다던데
이미 피해는 받을만큼 받으며 살아왔는지라 하나도 겁이 안나요
이런 할머니가 빨리 죽어버리게 다같이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