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4:21~25}
[바다같은 맘 품기]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원어사전:
등불:lucno"(3088, 뤼크노스)
lamp, 빛 light.
(e) 요 5:35에서 예수님은 세례(침례) 요한을 켜서 비취는 `등불'에 비하셨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예수님께서 자신은 빛(포스)로 묘사하는 반면에 그의 선구자 요한을 타오르며 비취는 등불에 비유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여 선구자의 사명의 위대성을 증거하신다. 요한이 빛 자체라고 불릴 수는 없지만(참조: 요 1:8), 그는 빛에 대하여 충실히 증거하였다.
(g) 계 18:23에서 바벨론은 멸망할 때,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리라'는 경고를 받는다. 반면에 계21:23에 의하면 어린양 자신이 천국 도성의 등불이 된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또한 그 때에는 모든 등불이 쓸모없게 될 것이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오직 하나의 참 빛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기독교인은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말:movdio"(3426, 모디오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모디오스(Epict., Plut.)는 라틴어 modius이며, 약 1펙(a peck)(약 8리터)에 해당하는 고체 도량형기를 의미한다.
평상:klivnh(2825, 클리네)
침상, 침대, 평상.
# 우리는 세상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그 소명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려 함입니다. 집안에 형광등이 있는데 천으로 덮어두고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기에 세상에 나가 빛을 비추이고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을 알리고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은 우리를 감추이려 우리를 고립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끼리만이 아닌 믿지 않는 자와 오히려 더욱 접촉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구원하시려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릇을 넓힐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와일드 함이 하나님의 더 큰 그릇으로 사용하시고자 함입니다. 남을 작게 좁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그 사람과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남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더 크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나가 간절히 입을 읊조리며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주정한다고 쫓아 버렸다면 사무엘 같은 대선지자가 나올 수 있을지 의심이 됩니다. 한나의 간절한 설명으로 이해 시켜 그 위기를 모면 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어둔한 이해자로 이미지가 남고 맙니다.
남의 신앙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진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성경을 보고 찬양하면 남도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복음적이고 남은 진심이 아니다라는 독선적 사고는 우리의 믿음 생활을 피폐하게 합니다. 남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넓은 그릇은 더 많은 사람을 그에게 맡겨 다윗이 조직적 대군을 이룬 것처럼 그의 사역을 돕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고 왕성하게 할 것입니다. 남에 대한 포용심이 부족한 것은 저의 부족함이기도 합니다. 살아갈 때에도 남을 오해하여 후회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헤아리고 조급함으로 나 또한 남에게 조급함으로 부정적으로 판단을 받아 곤란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주어진 진리의 말씀대로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또 내가 남에게 그 좁은 맘으로 판단을 받아 괴로운 경우가 종종 누구나 있습니다. 오래전 신학 교수님이 내가 내 가슴에 못을 박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말씀에 속시원히 뽑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답인줄 알았는데 바다같은 맘으로 포용을 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남이 주는데로 보수하는게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놀라운 자연의 기적이 있죠 메아리 이것은 진리입니다. 내가 산등성이에서 외친 메아리는 도로 똑같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진동하여 다시 여러 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성되어 들리는 것입니다. 남을 넓게 포용하고 이해하고 축복하여 외치는 자 그 갑절로 갚아 주시고 이해 받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제가 올리거나 여러분이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는 신앙적 모습은 등불인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세상에 빛을 비추이고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동일 합니다. 정치적 보복의 일들이 행해지고 그 남의 헤아리지 못하는 맘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국가 경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좁은 마음으로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는 것을 보며 오명을 남기는 것을 봅니다. 인간은 오직 사랑을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진리입니다. 숱하게 많은 사람들의 과오를 찾고 지적하고 찾기에만 급하다면 자신의 과오과 자신의 국가의 대사의 과오는 발견하지 못하는 대오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 빛은 사랑을 베푸는 넓은 아량의 선한 맘일 것입니다.
그 사랑의 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소금과 빛의 진리에서 소금같이 부패방지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닌
동시에 용서와 사랑의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빛이기에 불을 붙이시고 말씀과 찬양안에 등불에 밝게 비추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진심어린 손길이신 것입니다. 진심 빛이기에 진심 빛으로 세상을 밝히우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안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그 복음 안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전하시고 그 복음 안에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시고 그 복음 안에 남을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이해하고 포용하고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축복과 사랑의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제가 남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보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말하고 다니는 나쁜 습관이 없었는지요 그 헤아림으로 남에게 헤아림 받아 곤란을 겪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사실임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시고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바다같은 이해와 포용으로 능력과 축원의 사람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 나라에 방해가 되지 않고 온전히 돕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좁은 맘이 세상의 좁은 세상으로 가둬둡니다 넒은 믿음의 지경을 넓히어 주시고 그 지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자유함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 넓은 맘이 주님의 강에서 흘러 나와 모든 한국민의 마음에 흘러와 넓은 그 믿음의 지경으로 한국을 축복하시고 세계에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청결하고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개인과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가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